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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엔테이션] 대칭성과 비대칭성, 끊임없는 힘겨루기
일본답사(1) / 곰에서 왕으로 / 2024.07.18 / 손유나
대칭성과 비대칭성, 끊임없는 힘겨루기
정치의 역사는 왕을 중심으로 하는 고대의 제정일치에서 현대의 만민평등과 삼권분립이라는 민주주의 체제로 흐르는 변화를 보여준다. 언뜻 보기에 비대칭에서 대칭성으로 향하는 진보의 발걸음으로 보인다. 하지만 사실은 이미 오랜 과거에 대칭성이 깨어졌으며, 그 결과가 상당히 불가역적이었다는 사실, 동시에 이미 어그러진 토대 위에서도 대칭성을 지향하는 힘이 항존한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나카자와 신이치는 비대칭의 정점이자 시작점인 왕의 탄생을 북미 북서해안 원주민 사회를 예시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북서해안 원주민은 여름에는 가족 단위로 분산하여 동물을 사냥하며 지낸다. 이 계절에는 세속적인 질서를 유지하는 수장이 중심 역할을 맡는다. 그러다 겨울이 오면 겨울을 지내는 마을에 모두 모인다. 가족 중심의 구조가 해체되고, 개인이 속한 비밀결사별로 모여 제의를 지낸다. 이 시기는 비밀결사의 리더가 주도권을 가진다.
이 사회는 ‘문화’와 ‘자연’이라는 대칭을 이루고 있다. 여름에는 수장이 제시하는 질서 아래서 동물을 사냥하여 먹고, 겨울에 되면 반대로 인간이 ‘식인’에게 먹히는 존재가 된다. 나카자와 신이치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비밀결사는 세속적인 사회에서 통하던 그 사람의 지위를 ‘먹어치워’ 개인을 형태가 없는 ‘영혼’ 상태로 되돌리는 작용을 합니다.”(204)
그렇다면 ‘식인’은 무엇일까? 식인의 수장은 거대한 ‘자연’의 주인으로 숲에서 살고 있는 ‘바후바쿠아라누프쉬웨’이다. 그리고 비범한 자들, 가혹한 통과의례를 거친 비밀결사원, 전사, 샤먼이 이 식인에게 잡아먹혀 자연이 가진 힘에 접속하고 권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스스로도 식인이 되는 것이다. 세속적인 생활 전반을 떠맡는 수장과 달리 이들은 인간 이성을 초월한 영역의 활동에 관여하고, 겨울이 끝나면 힘을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낸다. 그리고 권력은 다시 수장에게로 넘어간다. 이처럼 엄격하게 질서에 따라 권력을 이양함으로써, 힘이 개인에게 속하지 않고 자연에서 빌려온 것임을 확인하고 대칭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반면에 왕은 세속의 지도자인 동시에 자연의 힘을 가진 ‘식인’이다. 왕은 자연으로 돌려보냈어야 할 힘을 인간인 자신의 수중으로 끌어들이고 국가를 만들어 내어 군림한다. 왕에게 먹힌 사람은 자연의 힘에 접속할 수 있는 비범한 존재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자율성을 일부 빼앗겨 자신의 의지로 왕을 벗어날 수 없고, 세금, 강제노역 등을 통해 왕을 위해 봉사하는 존재가 되어 버린다. 왕은 자연과 문화, 인간 사회 내에서 다양한 집단이 상호 견제하며 유지했던 균형이 무너진 결과이다. “심연과 안전 사이에서 절묘한 균형을 이루는 것, 수장과 ‘식인’을 분리하는 것, 바로 이것이 대칭성 사회에 갖추어져 있던 최대의 지혜이며, 인간이 국가를 갖는 순간부터 잃어버려 다시는 되찾을 수 없게 된 지혜입니다.”(213)라고 나카자와 신이치는 말한다.
인류사에 대칭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노력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조로아스터교, 기독교, 불교 등 종교에서 그 힘을 찾아볼 수 있고, 현대 정치의 삼권분립도 그런 한 예시에 해당한다. 과거의 대칭성이 끊임없는 힘 겨루기를 통해 간신히 유지되었던 것처럼, 지금의 비대칭성도 균형을 회복하고자 하는 세력의 끝없는 도전을 받게 될 것이다. 다만 한번 잃어버린 대칭성을 회복하는 일이 쉽지 않은 듯하여 안타까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