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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답사 오리엔테이션](곰에서 왕으로)_대칭성, 자연의 비밀스러운 힘
『곰에서 왕으로』
대칭성, 자연의 비밀스러운 힘
2024.7.18. 최수정
자연과 문화의 분리가 균형을 상실하고 문명으로
신화 시대를 살던 사람들에게 동물은 ‘자연’상태 그대로 살고 있는, 인간이 쉽게 접할 수도 손에 놓을 수도 없는 ‘자연의 힘’의 비밀을 쥐고 있는 존재였다. 그래서 인간은 신화나 제의를 통해 ‘자연의 힘’의 비밀에 접근하고자 했다. 대칭성 사회에서는 권력은 원래 인간의 소유가 아니였다. 그런데 국가의 탄생과 동시에 그런 관계가 깨지고 만다. 국가라는 테제 속에서 살고 있는 인간은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김과 동시에, 원래는 동물의 소유였던 ‘자연의 힘’의 비밀마저도 자신의 수중에 넣으려고 했다.
대칭성 사회에서는 ‘문화’와 ‘자연’은 이질적인 원리로 간주되어 가능한 한 분리되어 있었다. 하지만 ‘자연’의 것인 권력=능력을 사회의 내부로 들여온 왕이 존재하는 세계에서는, 이런 분리는 불가능해진다. 왕 스스로가 ‘문화’와 ‘자연’의 이종교배에 의해 탄생했으며, ‘나라’의 권력 역시 동일한 이종교배의 원리에 의해 구성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이종교배에 의한 구성체에 부여된 이름이 바로 ‘문명’이다. ‘문화’는 본래 ‘자연’과의 대칭적인 관계를 유지할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 것인데. 지금은 대칭성의 균형을 상실한 ‘문명’으로 변하고 말았다.
야만은 여기서부터 발생한다. 왕과 같은 존재를 허용한 순간부터 인간은 마치 힘의 비밀을 ‘자연’으로부터 빼앗기라도 한 듯이, 그때까지 소중하게 여겨오던 경건한 마음가짐을 상실하고, 동물이나 식물도 단지 인간의 필요를 위해 존재하는 대상으로만 보게 되었다.
권력은 사회의 외부에 있어야 한다
‘샤먼’은 자연의 힘(권력)의 비밀을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샤먼은 사람들의 생활로부터 떨어져 있을 필요가 있었다. 샤먼과 같은 사람들이 인류에게 새로운 영역, 새로운 가능성의 세계를 열어주고 있다는 점을 충분히 이해했음에도 불구하고, 대칭적 사회의 ‘지혜’는 아직 샤먼을 사회의 내부로 흡수해버리거나, 현실 사회에서 권력을 부여하거나 함으로써, 샤먼이 접촉하고 있는 자연 속 깊숙한 곳에 숨어 있는 비밀스런 힘을 현실 속에 풀어주는 것을 경계했다.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샤먼은 그런 사회에서는 항상 주변에 존재할 뿐 사회적인 권력의 중심에 접근할 수 없었다.
대칭적 사회의 ‘지혜’로 뽑혀 사회의 중심부에 있었던 것은 ‘수장’이었다. 샤먼과 수장은 여러면에서 대립되는 존재다. 샤먼을 지탱해주는 힘의 원천은 자연 속에 있었다. 그에 비해서 수장이라는 존재는 문화의 원리에 의존한다. 샤먼이나 전사처럼 유동성이 넘치는 힘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걸 피하고, ‘문화’를 이루고 있는 규칙이나 양식에 따라서 사회의 평화를 유지하고자 한다. 수장은 ‘왕’이 아니다. 수장은 권력이 없다. 수장은 아낌없이 베푸는 마음과 말 잘하고 노래 부르고 춤 잘 추는 것이 정치 권력의 기반이었다.
왕을 갖기를 거부하고, ‘수장’이라고 불리는 리더를 중심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사회에서는 ‘문화’라는 것에 ‘권력’에 대한 대항원리로서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수장에게는 왕이나 근대 정치가가 갖고 있는 것과 같은 권력은 없다. 수장은 권력에 맞서 ‘문화’를 지키려고 한다. 초이성적인 권력은 원래 ‘자연’의 영역에 속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사회에서는 사회를 움직이고 있는 것은 ‘문화’의 원리여야만 한다. 권력은 사회의 외부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주의 일원인 인간은 주위 세계와의 사이에 대칭성을 실현시킬 수 없게 되어버린다.
그러나 이런 사고의 경계선을 뛰어넘어 왕으로 거듭나는 수장이 출현해 ‘나라’가 발생하게 되자, ‘문화’는 급속도로 권력에 대한 대항력을 잃어간다. 강력한 권력은 예전의 수장들과 달리 소유에 대한 욕망에 의해 조종을 당한다. 국가를 가진 사회에서는 ‘문화’마저 권력에 사로잡혀 잡아먹히게 된다.
자연은 인간이 행하는 문화적 행위를 무화시키는 힘이 있다
인간은 ‘문화’의 원리에 따라 자신들이 살아갈 공간을 ‘자연’ 한가운데에 만들지만, 그것은 안팎에서 끊임없이 가해지는 ‘자연’의 위협에 방치되어 있다. 바람이나 비, 우거진 식물, 지진, 화재 등에 의해 ‘문화’의 공간이 풍화되고 파괴될 위험이 있다. 또한 내부로터의 위협, 근친상간에 대한 욕망이나 탐욕, 성적 욕망과 같은 충동에도 방치되어 있다.
말하자면 태초부터 ‘자연’은 항상 ‘문화’를 무화시키는 힘을 드러내고 있었던 셈이다. 그 힘은 아메리카 북서해안 인디언이 창조한 다양한 ‘식인’에 상징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식인’은 깊은 숲속, 즉 ‘자연’의 영역 깊숙한 곳에서 나타나서 ‘문화’가 부여해주는 인간의 의미를 거침없이 먹어치워 무화시키는 힘을 체현하고 있다. 그리고 ‘식인’의 개념을 사회 내부로 받아들이 순간부터 권력을 가진 수장, 즉 왕이 출현한 셈이다.
곰=자연=신
대칭적 사고에서 곰은 ‘자연’ 속에 숨겨져 있는 힘을 대표하는 존재로서, 인간의 ‘문화’가 만들어내는 것을 철저하게 부정하는 힘을 갖고 있다. 자연=신은 곰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곰으로 상징되는 무서운 ‘자연’의 힘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사냥꾼은 행동이나 언어 사용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며, 이 ‘자연’의 힘과 대항하고자 한다. 그리고 곰과 마주치더라도 활이나 총 같은 무기나 너무 예리한 흉기를 사용하지 않는다. 자신을 압도하는 ‘자연’에 억제와 배려에 의해 양식화된 행동을 함으로써, 대칭적인 관계하에 우아함을 갖춘 한판의 싸움을 벌이려 한다. 그래야 인간과 동물 사이에 신중하고 세심한 배려에 의해 유지되어오던 대칭성의 파괴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또한 다른 생명을 빼앗는다는 행위에 따르게 마련인 심리적인 중압감을 약하게 할 수 있다.
미야자와 겐지
미야자와 겐지는 인간과 동물을 철저하게 분리하는 사고방식과, 인간사회 안에 불평들이나 불의가 행해지고 있는 현실 사이에는 깊은 연관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인간과 동물이 전체성에서 서로 연결되는 이상향을 생각하게 된다.
미야자와 겐지 동화에 자주 등장하는 ‘이하토브’는 그가 살던 ‘이와테’의 에스페란토어로 ‘이상향’을 나타낸다. 그는 인간과 동물 사이의 비대칭 관계를 뒤엎는 통쾌한 이야기를 만들어 모두가 동화의 세계와 같은 ‘이상향’에 살 수 있기를 바랐다. 그의 대표작 『빙하쥐의 털가죽』이 ‘이하토브’역에 정차해서 언제라도 떠날 준비를 마친 ‘베링행 초특급 열차’라는 설정은 신화의 상상력을 움직이는 구동장치였다. 미야자와 겐지는 배링해협을 사이에 두고 있는 북방세계에서 신화적 사고의 아르카디아arcadia(이상향)을 발견했다. 그 곳에서는 인간이 항상 압적인 힘으로 동물을 지배하지 않는다. 인간 역시 다른 동물을 잡아먹기도 하고 다른 동물에 의해 잡아먹히기도 하는 먹이사슬에 서로 얽혀 있으며, 조금도 특별한 존재가 아닌 생명의 일원으로서 인간보다도 몸집이 큰 존재에 의해 ‘잡아먹힐 수밖에 없다’는 사상이 살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