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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오른손(1) 발제] 야만인이라고 알던 사람들

작성자
기헌
작성일
2024-08-12 17:49
조회
145

 

죽음 이후의 세계가 있다고 책에서 읽거나 매체를 통해 들어본 적이 있다. 하지만 그 세계는 나와 무관한 일이라고 생각해왔다. 아니 그런 정보를 접하는 순간 이외에는 관심 두지 않았다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가까이서 죽음을 경험해본 적이 없기에 정말로 나에게는 먼 이야기일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제사라는 의례가 점점 사라지고 돌아가신 조상에 대한 기억이 죽음과 함께 금방 옅어지는 현실에서 죽음 이후의 세계는 점점 힘을 잃어가는 듯하다. 로베르 에르츠의 죽음과 오른손에 따르면 죽음 이후에 다른 세계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그 세계에서 다시 삶으로 연결된다고 믿었다. 가슴과 머리로 믿고 생각만 한 게 아니라 그에 상응하는 엄청난 노력과 희생을 공동체에 바친다. 내가 야만인이라고 알던 사람들은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해 뭘 모르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문명의 공격을 아직 받지 않아 보이지 않는 세계를 그대로, 아니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로베르 에르츠는 삶과 죽음이라는 두 세계가 연결되어 있다고 바라본 인도네시아 원시 부족들을 주목한다. 그들이 안간힘을 쓰며 행하는 이중 장례식으로 죽음에 대한 그들의 믿음과 의식을 밝힌다. 나는 장례식이 살던 세상에 이별을 고하는 의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들에게 장례식은 새로운 세상으로 떠나야 하는 죽은 자들의 입문식이다. 이 입문식은 산 자들에게 어지간히힘들다고 한다. 막대한 비용과 장기간에 걸친 의례, 그리고 그 기간에 겪어야 할 사회적 배제, 자칫 나쁜 마음으로 조상의 분노를 사게 될까 하는 공포 때문이다. 이 어려움을 한 개인이나 가족만 짊어지지 않는다. 정도에 따라 다르지만 공동체 전체가 이 애도 의식에 참여한다. 죽음에서 최종 장례식에 이르는 과정에서 그들의 죽음에 대한 의식을 살펴보자.

 

아직 죽지 않은 시신

말레이제도 민족들 사이에서는 시체를 최종 매장지로 단번에 옮기지 않는 관습이 있다. 중요한 것은 죽은 이의 시신을 최종 장례식(티와)을 치르기 전까지 일시적으로 고립된 장소에 보관한다는 것이다. 임시 매장지에서 최종 매장지까지 이동이 적어도 7~8개월에서 1, 혹은 2년 심지어 10년이 걸리기도 한다. 이는 곧 산 자와 죽은 자를 위한 정화 기간으로, 살아 있는 자를 위한 평화와 안녕뿐 아니라 고인을 위한 구원에도 필수적이다. 그렇다면 티와까지 대기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 번째는 대규모로 진행되는 연회 때문인데, 이 연회에 쓰이는 물자를 조달하느라 1년 이상 소요되고 일가친척까지 동원하여 재원을 모은다. 하지만 물질적 조건이 충족되었다 하더라도 사망 직후에는 장례를 치를 수 없는 대기의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시체가 완전히 부패하고 뼈가 건조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부패한 시체는 위협적이고 악한 기운이 있기 때문에 부패물이 관 밖으로 배출되도록 주의를 기울이고 매일 의식을 치른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시신은 아직 죽음 이후의 세계로 진입하지 못한다.

시신이 아직 이승에서 삶을 끝내지 않은 것처럼 영혼도 시신 주변에서 머물면서 살았던 장소를 들락날락 오간다. 산 자들은 영혼을 부양할 책임을 진다. 올로마아냔족은 하루에 두 차례씩 영혼에게 음식을 제공한다. 티모르에서는 대족장이 죽었더라도 시신이 최종 매장되기 전에는 후계자를 공식적으로 지명하지 않는다. 최종 장례식이 끝날 때까지 고인은 실제로 죽은 게 아니라 집에서 자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산 자들이 보기에 영혼은 뭔가 부당하고 비밀스러운 존재처럼 여겨진다. 영혼은 저승에 들어갈 수도 없고, 이승에서는 꺼리는 존재가 되어 여기저기 떠돌며 초조하게 최종 의례를 기다린다. 하지만 친척들이 애도에 소홀히 하면 격분하면서 질병을 퍼뜨린다. 산 자들에게 영혼은 가련하여 보살펴야 할 존재임과 동시에 자칫하면 자신들에게 해를 가할 수 있는 공포의 대상이된다.

죽은 자의 살과 뼈가 분리되는 애도 기간, 죽음이 집단 내부에서 계속 맹위를 떨치는 일을 원치 않으면 죽은 자와 어떻게든 소통함으로써 언제 닥칠지 모르는 불행으로부터 사회를 지켜내야 한다. 죽은 자의 친척은 불순한 구름에 둘러싸인 존재로 여겨져 관례에 따라 공동체에서 격리된다. 애도 금기로 그는 마을을 떠날 수도 다른 곳을 방문할 수도 없고 집안에 갇힌 채, 외부 사람을 만날 수도 없고 어떤 질문에 대답할 수도 없다. 또한 홀아비나 과부는 재혼할 수 없고, 근친은 죽은 자와 일체를 이룬다고 생각하여 그들 역시 죽은 것과 마찬가지로 여긴다. 죽은 이가 있던 곳을 방문할 수 없고, 그에게 속했던 물건도 금기가 해제될 때까지 만져서는 안된다. 애도하는 사람들은 죽음과 계속 은밀히 접촉하며 살아간다. 애도 기간 이승에서 죽은 자의 낡은 몸이 파괴되는 동안 저승에서 쓸 새로운 몸이 점점 형성되어 간다.

 

최종 의식, 죽은 자의 재탄생

드디어 오랜 애도 기간의 끝에 최종 장례식이 정해지면 마을 전체가 참여하여 화려한 의식을 치른다. 최종 장례식에는 세 가지 목적이 있다. 첫째는 고인의 유해를 최종 매장하는 것이고, 둘째는 그의 영혼에 안식을 주어 죽은 자들의 세계로 들여보내는 것이며, 셋째는 살아 있는 자들을 애도 의무에서 풀어주는 것이다. 최종 매장 방식은 부족에 따라 다양하지만 대부분 집합적 성격, 가족적 성격을 띤다. 보르네오 남동부에 사는 다약족은 시신을 단단한 나무로 만든 높은 기둥 위 작은 집(산동sandong)에 안치한다. 마을 울타리 안쪽 가족 매장지를 말한다. 최종 의식으로 시신은 단순한 장소 변경이 아니라 고립되었던 상태에서 빠져나와 이제 조상의 몸과 재결합할 수 있다. 뼈를 물로 씻고, 값비싼 천으로 뼈를 감싸며 한 시기의 끝과 다른 시기의 시작을 표시한다. 이제 불길한 과거는 안녕하고 죽은 이에게 새로운 옷을 입은 영광스러운 몸을 부여하는 것이다. 죽은 이는 이제 조상들의 세계로 당당히 들어서게 된다. 산 자들에게 이제 뼈는 반감과 혐오가 아닌 경외와 신뢰의 대상이 된다.



sandong raung


죽은 자에게는 조상들과의 재결합이 최종 의식의 본질적 목적이다. 이 재결합은 공동 무덤에 유해를 안치하고, 영혼을 조상들의 공동 거주지에 들여보내는 것이다. 영혼은 천상에 일곱 세대 동안 머물러 한 세대가 끌날 때마다 재생을 위해 죽어야 한다. 일곱 번 죽고 나면 지상에 내려 올 수 있는데 다시 인간으로 태어나는 방법은 여자에게 먹혀야 하고, 행여 동물에게 먹히면 동물로 환생한다. 인간이 동물을 잡아 먹는다면 인간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 먹히지 못하면 영혼은 영원히 사라진다. 영혼은 죽음과 재생의 순환을 끝없이 반복하도록 운명지어졌다고 볼 수 있다. 정화된 인간의 뼈는 앞으로 생겨날 존재의 싹을 담고 있으므로 집단 지속성의 담보로서 소중히 보관해야 한다. 따라서 씨족의 뼈 더미는 조상들이 만나는 공동 거주지인 동시에 후손들이 출현하게 될 영혼의 저장소이다.


sandong tulang(wikipedia)

최종 장례식에는 희생제의가 필수적이다. 희생제물이 된 사람을 잔인하게 고문할수록 천상의 영혼들은 더 행복해진다. 장례식의 결정적 행위를 담당하는 희생제의는 고인의 영혼에게는 평화와 복을 주고 그의 몸을 재생시킨다. 애도중인 사람들은 이로써 금기에서 해방된다. 최종 의식은 뚜렷한 집합적 성격을 항상 나타내며 사회체의 응집을 수반한다. 그런데 이 경우 죽은 자들을 사회적 융합으로 재통합하기 위해 직접 개입하는 것은 가족이나 마을이 아니라 민족이다. 그러므로 이 행위는 정치적 의미를 띠게 된다. 죽은 자들을 공동으로 안치함으로써 여러 혈연 집단과 지역 집단은 더 높은 차원의 집단 단위를 형성하고 그들을 하나로 묶고 유지해주는 관계를 인식하게 된다.

이중 장례식을 행하는 야만인의 사회를 관찰하고 보니 현실이 삶이고, 죽음은 먼 저편의 이야기라는 내 생각과 전혀 달라서 놀랐다. 오히려 그들에게는 죽음 이후가 현실적으로 보인다. 썩어가는 육신에서 죽음이 아닌 삶을 본다. 또한 개인의 죽음은 고인이 각인된 사회적 범위를 포괄한다. 가진 힘을 다 써서 이중 장례식을 치러야만 했던 것은 죽은 자의 가치에 걸맞는 참된 의식을 치름으로써 고인의 파괴된 사회적 존재를 회복시키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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