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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오른손(1) 발제]죽음과 이중 장례식
죽음과 이중 장례식
일반적으로 현대인에게 ‘죽음’은 한 생명이 소멸하는 개체의 생물학적 문제로 다뤄진다. 그렇기에 죽음을 둘러싼 여러 의례들은 간소화되고 죽음 이후의 절차보다는 그 이전의 삶에 초점이 맞춰지는 것이 사실이다. 눈에 보이는 개체의 삶이 소거되는 죽음 이후는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여겨지고, 장례 의례는 거추장스러운 형식의 고집으로만 치부된다. 나 또한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경험하고도 이 문제를 그렇게 해왔으니 따라야 하는 절차로 생각했지, 그 의례들이 어디에서 연유했는지, 그리고 그 이면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생각해보려 하지 못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우리는 어떤 죽음을 앞에 두고도 그냥 한 개인이 죽었구나 하는 식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실질적으로 모든 죽음은 단순히 심장이 멎고 호흡이 멈추는 한 개체의 생물학적 소멸의 문제를 넘어선다. 그 죽음이 나에게 별 영향을 미치지 않거나 내가 그렇게 비난했던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로베르 에르츠는 「죽음과 이중 장례식」(『죽음과 오른손』, 로베르 에르츠 지음, 박정호 옮김, 문학동네)에서 말레이 제도의 여러 부족의 이중 장례 문화를 통해 죽음이 인간 집단에 어떻게 표상되는지 그 기원을 살펴본다. 말레이 제도의 부족들은 외부로부터 강제적인 문화의 변형을 적게 겪은 사람들이다. 이런 측면에서 이들의 장례 의례를 살펴보는 것은 인류에게 죽음이 어떻게 인식되었는지 그 기원을 찾아가는 데 유의미하다.
이 책에서 장례는 두 지점으로 나뉜다. 그 첫 번째는 우리의 문화에서 그러하듯 생명이 소거되는 신체의 죽음으로 임시 매장이 진행되고, 두 번째는 신체적 죽음 이후 영혼의 죽음의 장례로 최종 장례가 진행된다. 이 두 시점 사이의 시간은 부족마다 판이하게 다지만, 죽음을 다루는 데 있어 이러한 의례를 통한다는 데는 분명히 일치한다. 우리에게는 죽음이 즉각적인 장례로 이어지지만 이 책에서 논의되는 부족들은 그 형식이 다르더라도 큰 틀에서는 ‘이중 장례’의 형식을 가지고 있다. 사실상 이중 장례에서 중요한 의례는 첫 번째 장례와 두 번째 장례 사이의 중간 단계와 최종 장례에 있으며, 이는 고인의 시신, 고인의 영혼, 살아 있는 자의 세 측면에서 그 의미를 해석해 볼 수 있다.
중간 단계 기간
고인이 사망한다고 해서 시신은 바로 매장되지 않는다. 사망과 최종 장례(매장)까지 기간은 부족마다 몇 개월에서 10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어떤 이유에서 이 기간이 길든 짧든, 이 기간을 지연시키든 단축시키든 간에 이 ‘중간 단계’의 의례가 가진 의미는 다르지 않다. 모든 부족에서 시신은 뼈에 붙은 살이 자연적으로든 인위적으로든(화장이 이런 경우다) 제거될 때까지 임시로 안치되거나 매장되며, 이 장소는 최종적으로 매장되는 곳과는 분리된 곳으로 대부분 고립된 곳이다. 부족마다 시체의 부패를 관리하는 방법이 다를 뿐 그동안 시신에서 일어나는 부패 또한 그들에게 중요하게 다뤄진다는 것을 볼 때 인간에게 죽음이란 ‘몇 시 몇 분 고인께서 사망하셨습니다’와 같은 한 문장으로 말하여질 수 없는 문제이다.
중간 단계에 있는 고인의 시신은 위험한 요소를 잔뜩 안고 있는 불안하고 위협적인 존재로 여겨진다. 고인의 몸은 이미 죽었지만 그의 영혼은 아직도 살아남아 살아 있는 자들의 세계를 떠돈다. 그는 죽은 자들의 세계에도 들어가 보지만 그곳에서 그의 영혼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아직 그의 육신의 살이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승에도 저승에도 속하지 못하는 영혼은 각 세계의 제약을 받지 않기에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이승에서는 할 수 없었던 일을 저지를 수 있고, 생전의 원한이나 분노를 앙갚음하거나 자신이 죽은 뒤 자신을 어떻게 대하는지 지켜보고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살아 있는 자들, 특히 고인과 가까웠던 이들은 더욱 큰 위험에 노출되어 있고, 이들은 죽은 자가 품고 있는 위험성을 함께 안고 있어 공동체로부터 격리되거나 행동에 제약이 부여되는 금기들이 적용된다. 고인과 가까웠던 사람들은 영혼이 이승을 떠돌고 있는 기간 동안 고인의 영혼이 여기에도 저기에도 속하지 못하고 떠도는 안타까운 처지를 위로하고, 그가 원한을 품고 위협적인 일을 일으키지 않도록 극진히 대접한다. 이 중간 단계에서 무사히 벗어날 수 있기 위해 부족들이 취하는 방식은 다양하지만, 그들은 애도와 두려움이라는 두 감정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최종 의식
최종 장례식에서야 고인의 시인은 임시 매장지에서 최종 매장지로 옮겨진다. 앞에서 중단 단계의 기간이 고인의 뼈만 남겨질 때까지 지속되는 것을 봤듯이, 최종 매장에서는 고인의 유해를 수습한다. 임시 매장지와 멀리 떨어진 최종 매장지에서 공동체는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그의 새로운 탄생을 축복한다. 이때 고인의 유해는 깨끗이 씻기고 귀한 옷을 입히는 의식으로 새롭게 태어나게 되고 새로운 힘을 부여받게 된다.
유해가 수습된 고인의 영혼은 이제야 저승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게 된다. 조상의 영혼들이 있는 세계에 들어간 고인은 공동체를 보호하는 자로 자리 잡는다. 최종 장례를 마무리함으로써 죽은 자의 친인척들도 이제 공동체로 되돌아갈 수 있게 된다. 고인과 가까운 상태로 존재였던 이들에게 이제 금기는 해제되고, 고인에 대한 마음의 부채에서도 벗어나고 고인이 가할 수 있는 사악한 힘에서도 놓여난다.
또한 모두의 죽음이 같은 방식으로 다뤄지지 않는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태아나 아이, 노예, 노인의 죽음과 같이 사회에 영향력을 미치는 범위 밖에 있는 자의 죽음은 이러한 의례들이 치러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인 반면, 부족장과 같이 공동체에 지대한 영향력을 가지는 이들의 죽음은 최대한 숨겨지기도 하고 그 의례가 아주 성대하고 길게 치러진다. 장례의 중간 단계와 최종 의식에서 부족들마다 그 의례의 형식이 다양하고 그 기간도 각양각색이지만, 분명한 것은 ‘죽음’이 사망이라는 신체적 죽음으로 인해 ‘완결되지 않는다’(31쪽)는 점과 순간적인 소거가 아니라 ‘과도기적 사건’(31쪽)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