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문화 답사
한반도 the Korean Peninsula
[한반도 중남부 선사유적 답사기] 몸의 기억
한반도 답사(1)/240910/강평
몸의 기억
알맹이만 있는 삶
답사 한번 가기 어렵다. 일본 지진 소식에 부랴부랴 부산 일대 유적지로 답사지를 겨우 변경했는데, 이번에는 내가 업무 중 책상 위 스프링클러에서 쏟아진 물벼락을 맞았다. 답사 일주일 전이다. 귀를 때리는 화재 경보음과 대피 안내가 나왔다. 5분도 되지 않아 총무팀에서 배관 시스템과 화재 경보를 강제 차단했지만, 짧은 시간에 서버실, 복합기, PC, 시스템 에어컨이 침수되고 사람들은 물에 빠진 생쥐가 되었다. 원인은 노후화된 건물 배관으로 인한 스프링클러 오작동으로 밝혀졌다. 모든 업무는 셧다운되었다. 나는 찜통이 된 사무실에서 물을 철벅거리며 보고서 납품 지연을 고객들에게 알리느라 진땀이 났다. 서버의 백업도 실시간으로 되지는 않아서 업무는 단계마다 삐걱거렸다. 그간 효율을 위해 어렵게 구축한 데이터 통합 시스템은 결과적으로 모든 자원을 한꺼번에 모아서 물에 담가버린 꼴이 되었다. 고가의 첨단 기기들이 무용지물이었다. 책상에 앉아 키보드를 치고 마우스를 클릭하며 장비를 장악하던 나와 동료들은, 우왕좌왕 쓰레기통으로 물을 퍼내고 집기를 치우느라 부산했지만 복구는커녕 급한 불 끄기도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너무 더웠다. 기계나 사람 부릴 줄만 알던 나를 비롯한 회사 구성원들은, 물도 제대로 푸지 못하고 더위도 견딜 수 없는 무능력한 신체를 경험했다. 첨단 장비가 가려주던 허약한 체력, 능력이 드러나는 데는 5분이면 충분했다.
우여곡절 끝, 나는 뒤가 따가웠지만 다행히 답사를 떠났다. 장생포 고래 박물관>은 지난 <울산 반구대 답사>때 보았던 암각화 그림이 현실 밖으로 튀어나와 석기 시대 고래와 고래를 잡던 사람들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고래가 몇 톤이라고 책으로 봤지만 눈앞에서 본 고래의 크기에 압도되고 중저음의 귀신고래 울음 소리를 들으니 ‘두려움’과 ‘경외감’이 동시에 들었다. 물고기라기보다는 공룡에 가까울만큼 단단해서 당장 대들보로 올려도 내구성이 끝내줄 것 같은 고래 뼈를 보고, 석기 시대 사람들이 이렇게 크고 무서운 고래를, 그것도 고래의 홈그라운드로 나가서 잡아왔다는 사실이 다시금 믿기지 않았다. 고래는 남기는 것 하나 없이 살, 뼈, 기름 등을 발라서 다양하게 썼다고 들었지만, 연필심, 화장품까지 망라된 품목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그렇게 귀중한 ‘자원’인 고래를 잡으러 바다로 나가려면 시각, 청각 등 온감각을 열어두어야 했을 것이다. 바다에서의 위치, 방향, 수심을 파악하고, 고래의 특성에 따른 동선을 파악해 길목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타이밍을 정확히 잡아 단 한번의 일격으로 작살을 꽂는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경이로웠다. 고래를 잡는 사람들은 고래잡이의 처음과 끝을 알고 있어야 했고, 함께 연구하고 기획하고 실행했어야 할 것이다.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 알지 못하고 ‘고래 고기’만 덩그러니 식탁에서 소비하는 사람, 첨단 장비만 조작하는 사람과는 신체가 다르게 작동할 수밖에 없다. 고래를 알고, 고래 사냥을 기획하고 실행하고, 해체하고 나누는 전 과정을 생략한 채 ‘고래 고기’라는 알맹이만 얻으려고 하는 것은 시간과 노동을 줄이기 위해서이다. 시간이 아까우니까, 힘이 드니까. 나는 <장생포 고래 박물관>에서 귀신 고래의 울음 소리를 들으며 문득 그 아꼈다는 시간과 노동은 어디로 가서, 어디에 어떻게 쓰이고 있을지 생각하게 되었다.
두려움과 경외감
고래 잡는 사람들의 두려움과 경외감, 그리고 놀라운 사냥 기술과 첨단 기기를 자랑하는 이들의 자신감의 차이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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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생각을 더 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