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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문화 답사

한반도 the Korean Peninsula

 

[한반도 중남부 선사유적 답사기] 무엇을 어떻게 전할 것인가

작성자
덕후
작성일
2024-09-09 17:45
조회
61

무엇을 어떻게 전할 것인가

 

이번 답사에 앞서 나는 자료로 쓸 조몬 성지 순례의 부분 번역을 맡게 되었다. 번역이 진행될수록 어떤 의미로 읽을 것인가, 어떻게 전할 것인가의 고민이 늘어갔는데, 책에서 나카자와 신이치는 대칭성을 잃어버린 우리 세계에서 무엇을 어떻게 전하고 만들어 갈 것인가의 힌트가 조몬에 있다고 답하고 있다. 나는 답사를 통해 조몬적인 것은 무엇이고, 무문자 사회이면서 국가 이전의 사회로부터 무엇을 읽고 어떻게 전해야 할지 생각해 보기로 했다.

 

조몬적인 것

조몬시대는 일본의 독자적인 시대구분으로 기원전 13000년부터 3000년 정도까지의 시기를 말한다. 조몬시대 이전에는 구석기시대였고 이후는 벼농사 농경문화인 야요이시대였다. 조몬시대는 아직 농경을 하지 않는 수렵채집의 시대였으나 토기를 사용하여 정주를 시작하면서 무덤을 만들고 여러 도구를 만들어 제사의례를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 중요하게 보는 것은 환상열석의 단차에서 드러나는 신분 계급인데, 무덤을 마을 밖으로 옮기고 성과 속을 구분하여 제의를 지내면서도 국가의 탄생으로 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등가교환에 의한 국가로 가지 않고 생명과 관련된 증여로 움직이는 세계, 대칭성이 살아있는 세계가 바로 조몬시대였을 것이다. 우리가 역사 속에서 단선적으로 생각하는 국가의 탄생과는 다른 발자취를 조몬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등가교환으로 부를 축적하는 자본주의 원리에 지배되지 않았던, 우리가 지금 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닌 세계인 것이다.

 

왼손은 거들 뿐

답사에서 나는 로베르 에르츠의 죽음과 오른손에 나오는 오른손과 왼손의 비대칭성을 생각해 보려고 했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왼손은 오른손을 거들고 보좌하거나 아니면 잠자코 있을 따름이다(로베르 에르츠, 박정호 옮김, 죽음과 오른손문학동네, 73). 선주민의 정신세계를 지배했던 근원적 이원론은 우주의 모든 존재에게 하나의 성을 부여했고, 오른손은 남자, 왼손은 여자로 여겨졌다. 이러한 근원적 대립은 종교적 영역에서 남성은 성스럽고 여성은 속되다로 이어진다. 이는 각각 생명과 죽음에 대응하는데, 이와 같은 남녀의 분리는 성스러움과 속된 것이 섞이게 되면 죽음을 초래한다는 면에서 엄격하게 이루어졌다. 절대 혼란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의미로 남녀활동을 갈라놓는 분업이 생겼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볼 수 있는 유물들 중에서 오른손에 해당하는 유물과 왼손에 해당하는 유물을 구분할 수 있을까? 남성적인 유물은 생명과 이어지는 생활에 필요한 토기나 도구이고 여성적인 유물은 죽음과 관련된, 즉 제의에 사용된 토기나 도구라고 보면 될까? 하지만 로베르 에르츠는 죽음과 관련된 왼손은 속된 것을 전염시키므로 자칫하면 모두를 오염시키고 죽음으로 몰아갈 수 있기에 어떤 것도 함부로 만져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제의에 사용되는 토기나 도구조차 여성의 손을 통해 만들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여성과 남성, 오른손과 왼손의 대립 중에서 다시 여성의 오른손과 왼손으로 나뉘어져야 할까? 그렇다면 철저한 분업 가운데 여성은 어떤 일을 할 수 있었을까? 여성이 사용했음직한 유물은 그림을 통해 알 수 있는 장신구 정도였고, 여성이 일을 하고 있던 장면은 몇 개 전시관에 재현되어 있는 인물상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재현물로 읽기

유적이나 답사에 가는 이유로는 물론 유물이 내뿜는 아우라를 직접 보는 것도 있고 현장의 공기나 분위기를 실감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도록이나 자료집에 나오는 그림이나 사진으로는 그 크기나 모양을 실물처럼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각 시대의 재현물은 자료집에서는 보기 어렵고 박물관에 가야만 볼 수 있다. 예전에는 전시관의 재현물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고 지나치거나 혹은 왜 이런 걸 만들었을까 생각한 적도 있다. 마네킹 크기로 만들어진 재현물 중에는 꿈에 나올까 무섭게 느껴지는 것도 있었다. 이번에는 구석기와 신석기시대의 유물을 보며 생활상을 상상하다보니 마을 전체를 재현했거나 당시의 생활 모습 등을 재현한 것을 유심히 보게 되었다.

부산 <동삼동 패총 전시관>에는 신석기시대 동삼동 패총 사람들의 1을 재현해 두었는데, 원시 농경과 수렵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잡은 생선을 말리고, 요리를 하기도 하고 조개팔찌와 도구를 제작하고 움집도 만든다. 인상적인 것은 쓰레기 버리는 모습이라고 명명된 부분이었는데 쓰레기를 버리는 곳이 마을의 가장자리에 있었다. 작은 마을을 상징적인 여러 모습들로 나열하다보니 마지막으로 밀려난 것일까, 쓰레기와 같은 더러운 것은 되도록 멀리하려는 현대의 사고방식으로 배치한 것일까. 그때도 먹고 난 조개껍질과 동물의 뼈 등을 쓰레기라고 여겼을까?

단양 <수양개 선사유물 전시관>에는 구석기시대 생활상이 재현되어 있었다. 수렵과 채집을 하는 사람들은 고개를 숙이고 각자의 일에 열중하고 있는데, 돌을 깨어 주먹도끼를 만들고 있는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은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이마에 깊은 주름이 있었다. 당시 사람들도 저만큼 늙을 때까지 살았을까? 나무 열매를 따는 남자 옆에는 작은 남자아이가 서 있었고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여자인 듯 엉클어진 긴 머리카락을 아래로 늘어뜨리고 상체를 숙인 사람이 바닥에 떨어진 열매를 줍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재현물에서 아이는 별로 보지 못했던 것 같다. 주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여주고 있었는데, 아이들은 어디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었던 걸까? 유일하게 표현된 아이는 아빠로 보이는 남자와 엄마로 보이는 여자 근처에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현대의 핵가족을 보여주고 있는 듯 했는데, 구석기시대에는 핵가족은커녕 가족이라는 구분보다는 부족 공동체의 생활방식을 갖고 있지 않았을까? 신석기시대 쓰레기장의 위치나 쓰레기라는 표현, 그리고 구석기 핵가족의 모습은 어쩐지 이 재현물을 만든 사람의 렌즈 필터를 통과하면서 생긴 왜곡은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왜곡 없이 전달하기

조몬 성지 순례에서 사카모토 류이치는 조몬을 구석기와 야요이시대 사이의 시기로 지칭함으로써 거기에 담긴 다양하고 복합적인 의미가 마치 필터를 끼운 듯 가려져서 보이지 않게 되었다고 말한다. 다른 지역에서 신석기시대가 열리는 동안 모노컬처, 즉 단일 재배를 하지 않았고 국가의 형태로 가지도 않았기에 우리의 역사가 필연적으로 국가로 가야만 했던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조몬을 단선적으로 국가 형태 이전의 한 시기로 분류해버리면 당시 선주민의 사고방식이나 잠재력 등은 지워지고 단순히 국가가 되려는 준비 단계로 여겨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비선형적인 요소는 감춰지고 우리에게 익숙한 선형적인 요소로만 읽히게 된다.

자료를 번역하면서 단어와 단어의 연결만으로는 문장을 매끄럽게 이어나갈 수 없음에 자주 부딪혔다. 내가 알고 있는 단어라고 해도 그 외의 뜻은 없는지, 또 다른 의미로 해석한다면 어떤 내용으로 읽힐 수 있는지 고민하는 지점이 많았다. 예를 들어 피의 부정(不淨)을 기피하는 일본의 미의식수렵민의 감성이 아니고 벼농사적인 백()을 중요시하는 감성이라고 말하는 부분이 있는데 여기서 백()을 결백이나 순백 또는 순수라고 해야 할지, 그냥 백이라고 해야 할지, 벼농사적인 백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없어서 곤란했다. 모노컬처를 순백으로 여기고 그것만을 향해 나아가는 것을 선형적(linear) 사고방식이라고 한다면 수렵민의 감성이란 비선형적(non-linear) 사고방식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어떤 글을 번역하여 독자에게 전달하는 일은 나의 렌즈를 통해 이야기를 전하는 일이다. 오역이든 무지든, 공부를 아무리 많이 한다고 해도 나의 렌즈 필터를 통과하며 생긴 왜곡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의 문제는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우리는 지금 알고 있는 것에 대해 대부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전시관의 재현물을 보면서 질문없이 받아들였던 부분이다. 구석기시대의 사람들은 적어도 아랫도리는 가리고 있지 않았을까. 신석기에는 그래도 상체까지 가린 옷을 입었을 거야. 움집을 만들거나 도구를 만드는 일은 남자가, 요리와 조개 팔찌는 여자가 만들지 않았을까. 조개와 동물을 먹고 남은 껍질과 뼈는 쓸모가 없어 버리는 쓰레기이고, 쓰레기는 되도록 멀리 두어야 하니까 마을의 가장자리에 있으면 좋을 거야. 주먹도끼를 만드는 법을 가르치는 것은 이마에 주름이 있는 노인일 것이고, 아이는 엄마 아빠를 따라서 나무 열매를 따는 법을 보고 배웠을 거야. 생각해보니 우리들 누구나 예상할 법한 시나리오대로 재현물이 만들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조몬시대 사람들이 오랫동안 국가에 저항하면서 사회를 유지했던 것, 우리나라의 구석기와 신석기에 비슷한 생활상을 거치며 국가가 생기기 이전의 사람들이 살아왔던 방식에는 하나의 길만 있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 조몬적인 것은 비선형적인 것이고 그것은 지금 있는 것이 다가 아니라고 말한다. 대칭성을 찾자는 것은 다시 구석기인이 되어 주먹도끼를 만들며 살자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사고방식으로 돌아가 자본주의와 국가에 사로잡혀 굳어져 버린 두뇌회로를 열어보라는 것이다. 재현은, 또는 번역은 단선적으로 전달될 수밖에 없고 전달하는 사람의 렌즈 필터를 통해 왜곡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을 읽고 보는 사람은 비선형의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다. 표현된 것 너머에 표현되지 않은 것을 바라보는 것이 바로 비선형적인 사고이다.

답사에서 만나는 유물을 볼 때 유물보다 그 옆에 설명된 글을 먼저 읽고 그것 위주로 들여다 보는 습관은, 글이 주는 정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지식 축적에 불과하다. 무문자 사회의 유물을 보고 무엇을 생각해야 할지, 표현되지 않은 것에서 어떤 것을 봐야 할지를 생각하는 것이 바로 인류학적, 대칭적 사고이다. 이번 답사를 통해 나는 보이는 대로 받아들이며 지식을 축적하는 일보다 중요한 것은 더 다양하고 입체적인 방식으로 바라보고 상상하며, 보이는 것 너머를 볼 수 있도록 시야를 넓히는 일임을 배웠다. 그것은 어떻게 이 세계를 받아들일까의 문제이면서 어떻게 전할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참고문헌 :

조몬 문화 답사 자료집(인문공간세종)

한반도 중남부 선사유적 답사 자료집(인문공간세종)

나카자와 신이치·사카모토 류이치, 조혜영 옮김,「『繩文聖地巡禮의 부분 요약(인문공간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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