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문화 답사
한반도 the Korean Peninsula
[한반도 중남부 선사유적 답사기] 나를 살게 하는 죽음
<한반도 중남부 선사유적 답사기>
나를 살리는 죽음
2024.09.15.최수정
죽음을 사유하는 삶
돌이켜보면 지난 시즌 인문세의 인류학 주제는 ‘죽음’이었다. 『빙하 이후』 급변한 자연 환경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호모 사피엔스가 어떻게 생활 수단을 바꾸고 적응하는지 보았다. 호모 사피엔스의 적응은 환경에 대한 적응이기도 했지만, 죽음에 대한 적응이었다. 자신들이 죽지 않기 위해 그들이 먹어야 하는 생명을 어떻게 죽음으로 이끌 것인가를 사유하며 도구를 발달시켰다. 죽음을 먹고 살아가며 자신 또한 언젠가는 죽어야 하는 존재로서, 죽음에 대한 부담감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끝없이 사유하는 행로를 보여주었다. 인류 도구 발달의 역사는 복잡하고 다양한 생명의 순환 한가운데에 있는 불가사의한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처럼 보였다.
또한 조몬 답사 유적지에서 본 것은 죽음의 공포를 해결하기 위해 협력하는 ‘공동체’가 필요했고, 그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장례의례가 발달한 것처럼 보였다. 정주 생활이 길어지며 고대인들의 무덤과 장례의식이 점점 거대해지는 이유가 죽음의 공포를 ‘협력’으로 해결하기 위해서인 것처럼 생각되기도 했다. 누군가의 죽음에 직면했을 때 협력을 통해 즉각적이고 적절한 대응하기 위해 죽음을 대비한 도구와 의례를 발달시켰던 것이 아닐까.
고대인의 죽음을 보고 그들과 함께 죽음에 대해 사유하면서 어쩌면 인류의 문화는 죽음에 저항하고 죽음을 극복하기 위한 추진력으로 발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에 대한 사유가 인류를 다른 동물보다 더 복잡하고 다채로운 존재로 만들었고, 그것과 대응되는 삶의 연합을 다양하게 만들어 냈던 것은 확실해 보인다. 그러나 죽음을 일상적으로 사유하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의 차이가 무엇이길래 이런 역동성을 만드는 것일까. 죽음을 사유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고대인의 죽음을 찾아 나선 이번 답사에서 나는 그 실마리를 얻을 수 있었을까.
조몬 정신
나카자와 신이치·사카모토 류이치, 조혜영 옮김, 「『縄文聖地巡禮』의 부분요약 (인문공간세종)」에서 나카자와 신이치는 조몬 유적 답사를 ‘순례’로 표현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순례’란 영혼의 원향(原鄕)으로 돌아갔다 온다는 것인데, 원향이란 삶과 죽음이 함께 있던 곳이다. 우리는 그 원향의 정신이 가장 잘 남아 있다고 여겨지는 일본 조몬 유적지를 답사하려고 했지만, 일본의 지진예보 등으로 방향을 국내로 돌렸다. 답사란 익숙한 곳을 떠나 먼 곳으로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여행이다. 이것은 마치 나카자와 신이치가 말했던 ‘순례‘와 닮았다. 일상적 삶을 떠나 잠시 작은 죽음 체험 같은 길을 나선다. 삶과 죽음의 운동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일본 조몬 답사를 위한 사전 공부에서 우리는 ‘환상열석’이라는 취락 형태를 보았다. ‘산 자의 주거지가 죽은 자를 위한 묘지를 한가운데 두고 감싸 안는 듯한 형태로 형성되었으며, 그곳에서의 일상생활은 항상 죽음의 입회하에 영위되었다. 집은 정면이 광장을 향하도록 만들어진 화상취락의 형태였다.’ (「조몬 답사 자료집」(인문공간세종), 70쪽) 조몬시대 사람들은 일상을 언제나 죽음과 함께 살고 있었다. 그들에게 일상 자체가 순례였다. 이렇게 일상 자체를 죽음을 사유하며 살던 사람들은 삶의 터전 자체가 순례의 장소였기 때문에 일부러 몸을 움직여 순례를 떠나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그러나 일상을 삶과 죽음의 순례의 과정이라고 생각하던 사람들이 조몬 후기나 말기에 이른 ‘고레카와 석기시대’는 더이상 거주 공간에 시신을 묻지 않는다. 이전까지 같은 공간에 중첩되어 있던 산 자의 영역과 죽은 자의 영역이 어느 순간에 분리가 일어난다. 묘지가 취락 중앙의 광장에서 외곽으로 옮겨지고, 산 자의 세계와 죽은 자의 세계가 점차 분리되기 시작한다.((「조몬 답사 자료집」(인문공간세종), 70~71쪽)
나카자와 신이치는 장기간의 정주생활로 사람들이 점차 취락의 안과 밖을 나누어 생각하게 되고, 이는 또한 삶과 죽음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사고체계와 연관된다고 말했다. (나카자와 신이치, 김옥희 옮김, 『신의 발명』, 동아시아)
하지만 이때까지도 나는 조몬인들이 죽음의 공간이 생활터에서 멀어지게 되는 것을 의식하고 있었다고 느꼈다. 죽음의 공간이 삶의 공간과 분리되면서 다양한 제사·의례가 증가하는 모습이 보이고, 제의 유물의 토우와 토기의 광범위한 양식적 다양성을 바탕으로 죽음을 기억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부산 동삼동 패총
조몬인들이 끝까지 놓지 않으려 했던 죽음에 대한 사유를 우리는 어느 순간 놓아버렸다. 죽음은 더이상 우리의 일상과 함께 하지 않으며 일상에서 멀어질수록 좋은 것으로 여겨진다. 조몬 답사를 위해 조몬 정신이라는 것을 배우면서 우리는 그것이 죽음과 함께 하는 정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본 조몬 유적지 답사를 계획하던 우리는 미리 공부한 유적지와 유물을 볼 수 없었지만, 사전 공부를 바탕으로 국내 선사유적에서 조몬정신의 의미를 발견하고 싶었다. 조몬 정신이란 삶과 함께 죽음을 사유하는 일이었음을 알기 때문에 국내에 남아 있는 고대인들의 죽음관의 흔적을 찾아 나섰다.
국내 첫 선사유적 답사지는 <동삼동 패총 전시관>이었다. 해안가를 중심으로 생활했던 고대인에게 조개는 중요한 식량자원이었다. 바닷물이 밀려난 질척한 개펄에서 조개를 캐는 고대인을 떠올려본다. 조개의 살 속에는 약간의 진흙도 들어있다. 당연히 고대인들은 조개가 진흙을 먹고 산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또한 이미 죽은 조개가 자신의 속을 진흙으로 가득 채우고 묻혀 있는 모습도 보았을 것이다. 이런 모습을 보고 고대인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개펄이 조개가 사는 곳이기도 죽어 묻히는 곳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조개무덤, 패총은 고대인이 식량으로 채취하여 먹고 버린 조개껍질이 오랜 시간 동안 쌓여 만들어진 유적이다. 무덤처럼 쌓인 모습 때문에 조개무덤 혹은 조개무지라고도 불린다. 그곳에는 조개껍질 뿐만 아니라, 토기의 파편, 동물의 뼈, 심지어 사람의 뼈가 나오기도 한다. 현대인이 즉각적으로 쓰레기장이라고 떠올리는 그곳에서 사람의 유골이 나왔다는 사실이 매우 놀랍다. 고대인이 쓰레기장에 사람의 유골을 내던지듯이 버렸을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다.
서기 8,000년에서 4,000년 사이에 형성되었다고 추정되는 <동삼동 패총 전시관>에서 나온 조개껍질에 구멍을 뚫어 사람의 얼굴형상을 만든 유물을 보며 나는 『빙하 이후』에서 서기전 10,000년 어느 날 고대인들이 어른들의 두개골에 회를 발라 가면을 만들던 모습(『빙하 이후』, 80쪽)이 떠올랐다. 그들은 두개골에 하얗고 고운 회를 입힌 다음 붉게 칠하고 조개로 눈을 장식한 후 두개골을 집안에 놓는다. 조개껍질로 사람의 얼굴을 만든 사람들과 두개골을 진흙과 조개로 장식하던 사람들이 직접적으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이들에게는 진흙과 조개껍질에 대한 공통된 인식이 있었을 것만 같다.
『빙하 이후』에서는 이것이 죽은 조상에 대한 의식이 있었다는 증거로 설명되는데, 동삼동 패총 전시관>의 조개껍질 가면 또한 실제 크기가 작아서 직접 사람의 가면으로 썼다기보다 의례용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된다. 왜 하필 사람 얼굴 모양일까. 조개껍질 가면으로 누군가의 얼굴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그것이 조상의 얼굴을 표현하고 싶었다면, 그들에게 패총은 단지 쓰레기 더미가 될 수 없다.
흙으로 연결된 세계
『빙하 이후』에서 조몬인들은 저장 구덩이에 도토리를 저장한다. 이는 겨울을 나기 위한 방편이기도 하지만 쓴맛을 제거하려는 이유이기도 하다. 「조몬 문화 답사 자료집」(인문공간세종)에 의하면 조몬인들의 식생은 떫은맛 처리가 필요한 칠엽수 열매가 주를 이룬다. 매일 먹어야 하는 식재료와 함께 흙의 성질을 생각했던 고대인들에게 흙이란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던 것과는 아주 다른 물질이었을 것이다. 그들에게 흙이란 어떤 변용을 일으키는 힘을 담고 있는 주술적 물질이었을지 모른다.
그 흙으로 토기를 만든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진흙에서 캐낸 조개의 뼈는 부서져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 동물과 사람의 뼈도 마찬가지다. 고대인들에게 흙이란 그들을 먹이고 살리고, 삶을 창조하고, 죽음을 받아들이는 순환의 고리로 생각하며 어떤 신비한 힘을 느꼈다.
그 흙으로 사람의 얼굴을 의인화한 것 같은 토우와 토기를 빚으며 그들은 그 형상에서 잠시 살아 돌아온 듯한 조상을 본다. 눈앞에 드러난 조상의 형상을 통해 산 자들의 소망을 빌고 축성을 바란다. 흙과 함께 돌아온 조상의 얼굴은 삶과 죽음을 연결하고, 공동체를 연결한다.
패총에서 발견된 토기는 대부분 ‘부서져’ 발견된다. 세월과 기후변화로 저절로 부서진 것이 아니라, 일부러 부서트린 흔적이 있다. 로베르 에르츠의『죽음과 오른손』에 의하면, 시체가 부패하면서 나온 액체를 토기 그릇에 받아놓고, 이 단지를 이차 장례식 때 깨뜨린다. 그 파편을 모아 뼛조각들과 함께 최종적으로 매장하는 관습을 따른다.(『죽음과 오른손』,14쪽) 토기는 단순히 음식을 담기 위한 용도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시체를 토기에 저장하기도 하고, 담아서 묻기도 한다. 의례를 위한 토기, 삶과 죽음을 사유하기 위한 토기를 만들고 깨부수며 그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사람이 흙을 통해 먹고 살고, 흙이 사람을 먹는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조상의 살과 피가 섞인 흙으로 토기를 만들고 그것을 다시 깨트리는 의례를 통해 잠시 진흙형상으로 구체화되고 실체화된 죽은 자들이 산 자들의 의례에 참석한다. 그 순간 삶과 죽음은 하나가 된다. 그러나 의례가 끝나면 두 세계의 사람들은 각기 자기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형체 없던 흙이 형체를 갖는 것을 보고 죽음은 하나의 존재 형식이 다른 존재 형식으로 이행하는 일임을 생각한다.
죽음과 조상숭배
인류는 끊임없이 ‘죽음’을 기억하고 죽음과 함께 살았다. 생명에게 죽음보다 위험한 상황이 있을 수 있을까. 언제 닥칠지 모르는 죽음을 일상화한다는 것은 급변하는 환경에 차별적 반응을 가능하게 하고, 어떤 변화에도 민첩한 적응력을 보이게 했다. 존재의 예측불가능성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대조적이면서도 상호보완적‘인 것들에 관심을 갖고 배타성을 멀리했다.
그들은 죽음을 사유하기 위해 제일 먼저 조상을 떠올렸다. 여기서 함께 살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더이상 숨을 쉬지 않을 때의 두려움과 상실감을 극복하기 위해 그들은 다른 세계의 가능성을 사유했다. 이쪽이 있다면 저쪽도 있을 것이다. 이쪽과 저쪽은 상호 보완적으로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고대인들은 죽음을 통해 저쪽으로 건너간 조상을 통해 죽음이 재생되어 되돌아오는 힘을 보았다.
고대인들의 토기를 만들어 조상숭배 의례를 치르고 흙 속에 무덤을 만들어 재생과 풍요를 기원했던 것은 삶의 연속성에 기댄 믿음의 표현이었다. 흙을 만지면서 저절로 조상들의 살아온 시간을 되새긴다. 그들이 살아서 했던 행동과 말을 떠올리고 그것을 토기에 담아 형상을 만든다. 삶과 죽음을 모두 창조하는 흙의 잠재적 가능성 속에 생명의 연속성이 있다고 믿었다. 기꺼이 흩어지고 모아지고 단단해지며 깨지는 흙의 유연한 형태가 사람들에게 죽음의 공포와 두려움에 대한 불안을 달래주었다. 눈앞에서 과감하게 부서지는 토기의 형상을 기억하고 때가 되면 부서져 되돌아가는 흙의 순환으로 위로하며 죽음으로 인한 불안과 약해진 심신을 극복했다.
나를 구성하는 죽음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달의 이면』에서 저자는 일본식 사고는 ‘주체를 구심점으로 파악’(51쪽)한다고 했다. 일본식 사고는 주체를 과정의 끝에 놓으며 주체는 언제나 마지막으로 현실을 재발견하는 위치에 놓이게 된다는 것이다. 주체가 외부에서부터 구성되는 방식은 자기 자신을 도착점에 놓는 사고방식이 사회의 역동성을 만든다고 했다.
인류 최초의 도구는 돌로 만들어졌다. 주먹도끼를 만들던 구석기인들은 원형질의 돌에서 박편을 떼어내며 형태를 만든다. 처음부터 만들고자 하는 도구의 형태를 구상하면서 다듬어 가는 것이다. 돌뿐만 아니라 단단한 뼈로 만든 도구도 마찬가지다. 견고한 물질을 흐름을 따라 자르거나 깎아서 부분을 덜어내며 작업한다. 그러다 점점 인류의 생활 방식이 복잡해짐에 따라 서로 다른 성질의 재료를 덧붙이고 조합하며 도구의 복합성도 늘려갔다. 그리고 마침내 흙으로 토기를 만드는 조몬, 신석기인들은 재료를 덧붙이며 형태를 만들었다. 부드러운 물질로 견고한 형상을 만들고 새로운 무늬를 배치하며 역동성을 창조한다. 돌에서 흙으로 재료가 바뀌면서 새로운 물질에 적응하고 천천히 모티프를 연합해 나가는 능력이 커졌다. 강하고 단단한 돌보다 흙이라는 재료가 즉흥적 영감을 이끌어내기가 쉬웠던 것일까. 수십만 년 동안 이어져 왔던 인류의 석기가 토기로 변하는 과정에서 인류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보이지 않던 세계가 멀리서부터 자기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끼며 자기와 세계 사이의 어떤 복잡한 관계를 떠올리지 않았을까.
토기를 만들었던 고대인도 어느 날 갑자기 진흙으로 도구를 만들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새로운 창조의 원리나 방향성은 다양하고 복잡한 연속성에서 온다고 했다. 그 안에는 시험하고 시도하며 실패하는 중에 죽어간 수많은 존재들의 연속이 있었다. 고대인들은 이런 연속성을 조상과 함께 사유했다.
죽음의 대한 의례가 축소되고, 조상에 대한 감사와 연속성도 고대인처럼 느끼지 못하는 우리는 답사를 떠났다. 답사를 떠나는 우리 일상은 죽음과 멀어져 있었다. 우리는 일상에서 죽음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죽음을 사유하기 위해 살던 곳을 잠시 떠나 보려 했다. 언제나 삶이 우선이고, 삶이 절대화되어 있는 곳을 벗어나 보는 것이다. 현대인에게 죽음이란 이제 삶과 함께 사유되고 함께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죽음은 함부로 발설하면 불길한 것으로 왜곡되어 있다.
죽음과 함께 살기 위해 죽음을 찾아 떠난 답사라는 생각에서, 나는 자기라는 존재의 구성을 나로부터 시작하는 것과 멀리서부터 구성되어오는 것으로서의 ‘나’로 생각하는 것의 차이를 생각해봤다. ‘나’라는 존재가 나의 바깥이 만들어 주는 존재라는 생각은 외부의 조합에 의해 달라지는 토기를 떠올리게 한다. 나의 일상을 위해 누군가의 죽음이 덧붙여진다. 나의 가장 먼 외부의 존재로부터 조성되어 가는 내가 있다. 그 나의 삶을 위해 멀리서부터 다가온 수많은 죽음을 기억하는 것은, 나를 살게 하는 힘이 내 것이 아님을 알게 한다. 나의 삶에 새겨진 다양한 무늬는 누군가의 죽음이 남긴 흔적이다. 매 순간 나는 누군가의 죽음을 덧붙이며 새로운 삶을 다채롭게 만들어 갈 수 있다. 죽음을 사유한다는 것은 나를 살게 하는 외부의 힘을 느끼는 일이다. 나를 살게 하는 존재들을 만나러 떠나는 일이다.
수정샘의 글 잘 읽었습니다! 결론 부분이 좋네요. 그런데 제목과 연결되는 내용이 추가 되거나 제목을 좀 더 설명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중간중간 반복되는 내용들이 섞어 있어 서론, 본론, 결론에 쓸 이야기들을 약간 재구성하여 배치하면 어떨까 합니다. 조상숭배와 같은 단락은 토기 설명 부분에 녹여 하나의 단락으로 만들어도 좋을 것 같구요. 죽음을 사유한다는 것과 나를 살게 하는 힘의 연결이 조금 더 설명되면 좋겠습니다. 홧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