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문화 답사
한반도 the Korean Peninsula
[한반도 중남부 선사유적 답사기] 무엇을 어떻게 전할 것인가
무엇을 어떻게 전할 것인가
우리가 유적이나 박물관 답사를 가는 이유는 유물이 내뿜는 아우라를 직접 보거나 현장의 공기나 분위기를 실감하기 위함이다. 도록이나 자료집에 나오는 그림이나 사진으로는 그 크기나 모양을 실물처럼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물관에 만들어져 있는 재현물은 어떨까? 실제로 발굴된 유물과 달리 고고학 자료의 고증을 통해 만들어진다. 재현물을 보면서 우리는 당시를 좀 더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다. 특히 무문자사회의 재현물은 관찰자로 하여금 유물의 의미를 해석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말하자면 박물관의 재현물은 선사인이 남긴 유물을 우리에게 전하는 번역인 것이다.
나는 이번 답사에 자료로 쓸 『조몬 성지 순례』의 부분 번역을 맡게 되었다. 번역을 해 갈수록 어떤 의미로 읽고 어떻게 전할 것인가의 고민이 늘어갔는데, 『조몬 성지 순례』에서 나카자와 신이치는 대칭성을 잃어버린 우리 세계에서 ‘무엇을 어떻게 전하고 만들어 갈 것인가’의 힌트가 조몬에 있다고 말한다. 무문자 사회이면서 국가 이전의 사회로부터 무엇을 읽고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 이번 답사에서 마을 전체나 생활 모습 등의 재현물을 통해 구석기와 신석기시대의 생활을 전하는 번역을 떠올려 보기로 했다.
재현물로 전달하기
부산 <동삼동 패총 전시관>에는 신석기시대 ‘동삼동 패총 사람들의 1년’을 재현해 두었는데, 원시 농경과 수렵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잡은 생선을 말리고, 요리를 하고 조개팔찌와 도구를 제작하고 움집도 만든다. 인상적인 것은 “쓰레기 버리는 모습”이라고 명명된 부분이었는데 쓰레기를 버리는 곳이 마을의 가장자리에 있었다. 작은 마을을 상징적인 여러 모습들로 나열하다보니 마지막으로 밀려난 것일까, 쓰레기와 같은 더러운 것은 되도록 멀리하려는 현대의 사고방식으로 배치한 것일까? 그때도 먹고 난 조개껍질과 동물의 뼈 등을 쓰레기라고 여겼을까?
단양 <수양개 선사유물 전시관>에는 구석기시대 생활상이 재현되어 있었다. 수렵과 채집을 하는 사람들은 고개를 숙이고 각자의 일에 열중하고 있는데, 돌을 깨어 주먹도끼를 만들고 있는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은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이마에 깊은 주름이 있었다. 당시 사람들도 저만큼 늙을 때까지 살았을까? 나무 열매를 따는 남자 옆에는 작은 남자아이가 서 있었고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여자인 듯 엉클어진 긴 머리카락을 아래로 늘어뜨리고 상체를 숙인 사람이 바닥에 떨어진 열매를 줍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재현물에서 아이는 별로 보지 못했던 것 같다. 주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여주고 있었는데, 아이들은 어디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었던 걸까? 유일하게 표현된 아이는 아빠로 보이는 남자와 엄마로 보이는 여자 가까이에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현대의 핵가족인 듯 했는데, 구석기시대에는 핵가족은커녕 가족이라는 구분보다는 부족 공동체의 생활방식을 갖고 있지 않았을까? 신석기시대 ‘쓰레기장’의 위치나 쓰레기라는 표현, 그리고 구석기시대 핵가족의 모습에 나는 의문이 생겼다. 우리의 상식선에서 단순하게 제작된 재현물은 아닌지, 정확한 고증을 통한 재현물인지, 보이는 대로 믿어도 될지 의심스러웠다.
왜곡 없이 전달하기
조몬시대는 일본의 독자적인 시대구분으로 기원전 13000년부터 3000년 정도까지의 시기를 말한다. 조몬시대 이전에는 구석기시대였고 이후는 벼농사 농경문화인 야요이시대였다. 조몬시대는 아직 농경을 하지 않는 수렵채집의 시대였으나 토기를 사용하여 정주를 시작하면서 무덤을 만들고 여러 도구를 만들어 제사의례를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조몬 사람들은 무덤을 마을 밖에 두고 생과 사를 순환시키고 성과 속을 구분하여 제의를 지냈는데 이때 주로 사용된 것으로 여겨지는 유적이 환상열석이다. 『조몬 성지 순례』에서 나카자와 신이치는 환상열석에 단차가 있는 것으로 미루어 권력을 가진 유력자가 있었지만 국가의 탄생으로 가지 않은 것 같다고 말한다. 국가에 저항하며 생명과 관련된 증여로 움직이는 세계, 대칭성이 살아있는 세계가 바로 조몬이라는 것이다.
사카모토 류이치는 ‘조몬’을 단순히 구석기와 야요이시대 사이의 시기로 지칭함으로써 거기에 담긴 다양하고 복합적인 의미가 마치 필터를 끼운 듯 가려져서 보이지 않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는 다른 지역에서 신석기시대가 열리는 동안 조몬인들은 모노컬처, 즉 단일 재배를 하지 않았고 국가의 형태로 가지도 않았기에 우리의 역사가 필연적으로 국가가 되어야 했던 것은 아닐 거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조몬을 국가 형태 이전의 한 시기로 분류해버리면 당시 선주민의 사고방식이나 잠재력 등은 지워지고 단순히 국가가 되기 위한 준비 단계로 여겨지게 된다. 다시 말해 비선형적인 요소는 감춰지고 우리에게 익숙한 선형적인 요소로만 읽히게 된다는 것이다.
어떤 글을 번역하여 독자에게 전달하는 일은 나의 렌즈를 통해 이야기를 전하는 일이다. 이때 나의 렌즈 필터로 인한 왜곡 없이 전달하는 것은 가능할까? 이번에 나는 자료를 번역하면서 단어와 단어의 연결만으로는 문장을 매끄럽게 이어나갈 수 없음에 자주 부딪혔다. 내가 알고 있는 단어라고 해도 그 외의 뜻은 없는지, 또 다른 의미로 해석한다면 어떤 내용으로 읽힐 수 있는지 고민하는 지점이 많았다. 예를 들어 “피의 부정(不淨)을 기피하는 일본의 미의식”이 “수렵민의 감성이 아니고 벼농사적인 백(白)을 중요시하는 감성”이라고 말하는 부분이 있는데 여기서 백(白)을 결백이나 순백 또는 순수라고 해야 할지, 그냥 백이라고 해야 할지, 벼농사적인 백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없어서 곤란했다. ‘벼농사적인 백’이 모노컬처를 향한 순결이라 여겨 그것만을 향해 나아가는 것으로 해석한다면 그것이 바로 선형적(linear) 사고방식일 것이다. 반면 수렵민의 감성이란 비선형적(non-linear) 사고방식이라고 대립되는데, 여기서 linear가 어떤 것인지 정확하게 전달하는 일은 쉽지 않다. 오역이든 무지든, 공부를 아무리 많이 한다고 해도 나의 렌즈 필터를 통과하며 생긴 왜곡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보다 입체적인 해석이 가능하도록 전할 수 있을까?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답사에서 유물을 볼 때 유물보다 그 옆에 설명된 글을 먼저 읽고 그것 위주로만 관찰하는 습관은, 글이 주는 정보를 그대로 집어넣는 지식 축적에 불과하다. 지금 알고 있는 상식에 비추어 전시관의 재현물을 보면서 질문 없이 받아들이는 부분도 마찬가지다. 술술 읽히는 책처럼 아무 의심도 없이 지나치는 것들은 우리를 보이는 대로만 믿게 만든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사고의 균열이, 조금 더 넓은 시야를 갖게 해 준다. 무문자사회이기 때문에 기록이 아니라 남아있는 유물로만 추측하고 그려봐야 하기에 우리는 그 당시를 제대로 알기 어렵다. 하지만 반대로 글자로 전하지 않기 때문에 더 다양한 것들을 상상할 수 있지 않을까? 무문자 사회의 유물 속에는 표현되지 않은 많은 것이 담겨 있음을 염두에 두고 바라보아야 한다.
무문자 사회를 설명하고 전달할 때 왜곡은 필연적이듯, 번역도 어느 정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단선적인 사고를 하면서 전하는 말과 입체적 사고를 하면서 전하는 말은 분명 다를 것이라 생각한다. 보이는 것만 전달하는 것과 보이는 것 너머에 보이지 않는 것까지 생각하고 전달하는 것은 다각도의 사유를 불러일으킨다. 무문자 사회의 유물을 보고 다양한 상상으로 해석하듯, 번역에도 글의 표면적인 해석뿐 아니라 다양한 시각으로 해석하고 전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것은 인류 초창기의 대칭적 사고, 즉 조몬 사람들처럼 삶에서 죽음을 생각하고 죽음에서 삶을 생각하듯 보이지 않는 것의 의미를 찾아내는 일이다.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는 선형적 사고를 벗어나, 우리 세계에서 터부시되고 숨겨진 의미들을 찾는 일이 대칭적 사고가 아닐까? 이번 답사를 통해 나는 보이는 대로 받아들이며 지식을 축적하는 일보다 중요한 것은 더 다양하고 입체적인 방식으로 바라보고 상상하며, 보이는 것 너머를 볼 수 있도록 시야를 넓히는 일임을 배웠다. 그것은 어떻게 이 세계를 바라볼까의 문제이면서 어떻게 전할 것인가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참고문헌 :
「조몬 문화 답사 자료집」(인문공간세종)
「한반도 중남부 선사유적 답사 자료집」(인문공간세종)
나카자와 신이치·사카모토 류이치, 조혜영 옮김,「『繩文聖地巡禮』의 부분 요약」(인문공간세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