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문화 답사
한반도 the Korean Peninsula
[한반도 중남부 선사유적 답사기] 붉은 빛깔에 담긴 대칭성
이번 답사의 주제는 ‘잃어버린 대칭성을 찾아서’다. 『곰에서 왕으로』의 나카자와 신이치는 원시사회 신화이야기에서 발견되는 대칭성을 소개한다. 신화에는 인간과 자연 사이에 균형을 깨는 사건이 벌어지면 그 불균형을 다시 회복하여 대칭을 유지하기 위해 누군가는 노력한다. 모든 존재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가기 때문에 어딘가 대칭성이 깨지면 다른 쪽도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작년 북해도 답사팀은 자연을 섬기는 일본의 아이누족을 공부하고 그들의 민속 마을을 방문했었다. 자연을 섬기는 그들은 전통적으로, 사냥을 위해 숲에 들어갈 때 신께 감사의 기도를 올린다. 주요 단백질 공급원인 연어가 아무리 많이 강을 거슬러 올라와도 필요한 만큼만 취한다. 먹고 남은 연어의 가죽으로 신발을 만들고 옷을 만들어 입을 정도로 자연에게서 받은 것은 남김없이 활용한다. 대칭성 사회는 순환하며 서로를 살린다. 금방 찢어져 쓸모없을 것 같은 물고기 가죽이 한땀 한땀 정성 들여 다시 살아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이번 답사를 떠나 과거의 그림자에서 숨은 대칭성을 알아볼 수 있을지 궁금했다.
답사팀은 유적지별 식생, 의례, 죽음, 토기(유물) 등 각자 맡은 영역을 정리하여 자료집을 만들었다. 나는 이 작업을 하며 한 유물이 눈에 띄었다. 고레카와 석기시대 유적지에서 발견된 옻칠한 붉은 나무 그릇이었다. 처음엔 ‘2천 년 넘은 시간, 습지에 잠겨있었음에도 어째서 훼손의 정도를 거의 느낄 수 없을까’라는 질문이 들었다. 신석기 조몬인들은 옻을 다루는 기술을 가지고 있던 것이다. 우수한 기술력의 감탄도 잠시, 나의 질문은 옻칠의 색에 머물렀다. 옻칠은 까다롭게 수액을 채취하고 독성 제거가 선행되어야 한다. 여러번 정제한 수액에 자연에서 얻은 색소를 첨가하여 색을 만들고 덧칠을 거듭하면, 외부의 영향으로부터 안전하게 본래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옻그릇이 된다. 그런데 어째서 다른 색이 아닌 붉은색을 선택했을까? 찾은 자료상으로는 이곳에서 다른 색을 띤 옻칠 그릇은 보지 못했다. 그렇다면 붉은색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 것만 같았다. 우리도 장례식에 갈 때 애도의 의미로 되도록 무채색 옷을 입고 진한 화장을 자제한다. 아이 생일상에 나쁜 기운을 쫓고 건강을 기원한다는 의미로 빨간 수수팥떡을 올린다. 우리는 색깔에 의미를 담는다. 오래전부터 인류는 색에 의미를 담고 있었음을 이번 답사를 통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전승되고 중단된 빛
답사팀은 <국립 김해 박물관>에서 신석기 붉은칠토기와 청동기 붉은간토기를 볼 수 있었다. 청동기시대의 붉은간토기는 앞선 신석기시대에서 계승된 것이다. 붉은간토기는 주로 제의용으로 사용되었으며, 일반 살림살이로 사용하던 토기와 차별되는 아름다운 형태와 색으로 유추하여 부와 권력의 상징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붉은간토기는 무덤의 껴묻거리로 우리나라 곳곳에서 발견되었다. 질 좋은 바탕흙에 붉은 안료를 개어 발라 윤을 내는 방식으로 정성스럽게 만들었다고 한다. 각각의 토기들은 모양도 조금씩 다르고, 붉음의 정도가 약간씩 달라 보인다. 현재 <국립 진주 박물관>에서 VR방식으로 운영중인 ‘빛 × 색 = 홍도 × 채도’ 전시회(https://embed.360vrmuseum.com/showcase/mqfqVkRjiGm)에 따르면 붉은간토기의 모양은 지역별로 특징을 갖는다. 낙동강중상류와 동남해안에서 발견된 토기는 주로 목이 긴 편이다. 남강에서 출토된 토기는 아가리가 바깥쪽으로 ‘C’자로 꺾였고 목이 짧고 둥근바닥을 가졌다. <국립 김해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 중에서 경남해안에서 발견된 토기들은 목이 아가리로 갈수록 좁아지는 것이 특징이다. 붉은간토기는 황토와 가깝거나 그보다 진하고 혹은 그보다 흐리다. 아마 그때의 날씨나 말리는 시간 다듬는 정도 준비한 재료 등 상황에 따라 그리고 당면한 필요에 따라 다른 모양 다른 색으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동안 박물관에서 보았던 토기를 떠올려보면 선사시대는 주로 붉은색 토기가 많다. 고려 시대는 청자의 푸른빛, 조선 시대에는 달처럼 하얀빛을 띠는 자기가 많다. 예술품이나 일상에 사용한 생활품도 시대별 색의 흐름은 크게 다르지 않다. 유물의 구분상 토기와 자기는 굽는 온도에 따른다. 선사인은 야외 장작더미에서 토기를 소성하였기에 내구성이 약한 반면 가마에서 구워내는 자기는 높은 온도에서 구워져 유리질화되어 내구성이 강하다. 역사적으로 붉은간토기는 청동기시대와 함께 그 자취를 감추고 긴 목을 가진 검은간토기로 대체된다고 한다. 청동기 이후 자기로 이어지는 토기의 역사에서 붉은색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확연하게 비중이 적어졌음을 알 수 있다. 어느 학자는 자신의 논문에서 붉은간토기의 색에는 특별한 의미가 없다고 말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신석기인은 진흙을 구우면 단단하게 변한다는 것을 알았다. 흙의 성분에서 붉은색을 내고, 불의 그을음으로 검은색이 나타나는 것도 알았다. 몇 천 년이 지난 청동기에는 다른 색 토기도 있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붉은간토기가 전승되었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보인다.
피와 생명
살아있는 우리 몸에서 피는 강렬한 붉은 색을 띤다. 심장에서 펌프질하여 온몸을 계속 돌면서 순환한다. 그러니 붉은 피는 곧 생(生)이다. 심장이 멈추었을 때 피는 그 색을 잃는다. 죽음은 어둡고 흑색이다. 사냥하며 살았던 선사인들에게도 ‘생과 사’가 붉음과 흑의 빛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국립 진주 박물관>에서 ‘빛 × 색 = 홍도 × 채도’ VR전시회에서도 토기의 붉은색은 생명의 상징이자 주술과 벽사의 의미를 갖는다고 설명한다. 구석기인들이 죽은 사람에게 붉은 피가 다시 돌아 생명을 얻길 바랐던 흔적이 연천군 <전곡 선사 박물관>에 있다. 이탈리아 리구리아 아레네 칸디데Arene Candide 동굴에서 발견된 어린 소년의 재현된 무덤으로, 독특한 점은 인골이 붉게 물들어 있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마치 피가 돌고 살이 곧 돋아 오를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든다. 주검 위로 뿌린 붉은색의 정체는 산화철이 섞인 흙으로 시신에 뿌리기 위해 일부러 멀리 가서 구해왔다고 안내되어 있다. 오래전 인류가 죽음 근처에서 붉은색을 정성스럽게 다루고 가져다둔 이유는 다시 살아날 생명을 상징하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부산 가덕도 장항 신석기 유적에서 인골과 함께 묻힌 붉은색 안료가 발견되었다. 망자를 죽음의 세계로 보내지만 다시 돌아올 것을 생각할 때 핏빛의 붉은색만큼 생명력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색이 또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프랑스 라스코 동굴이나 스페인 알타미라 동굴에서도 붉은색을 특별하게 생각한 구석기 인류를 만날 수 있다. 샤먼 의식인지 사냥을 나서기 전 제의인지 잘 알 수는 없지만, 구석기 인류는 이 깊은 동굴에서 그림을 그렸다. 알타미라에 그려진 들소는 목탄을 이용해 검정색으로 밑그림을 그리고 산화철을 이용해 붉은색으로 살아있는 듯 표현했다. 먹고 먹히는 관계 속에서 역동적인 동물들의 뜨겁고 신성한 피가 느껴지는 듯하다. 흙에 섞인 철이 산소와 만나면 붉게 변하는 것은 자연의 원리이지만 선사인들이 사방에 붉은 흙이 가득하거나 색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사용했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일부러 생명력을 표현하기 위해 정성 들였으리라 생각되었다. 붉게 타는 불을 사용했던 인류는 자신을 먹여 살리는 붉은 피의 희생물을 보았다. 또 붉은 태양빛이 내리쬐는 그 아래에서 근원적인 생명의 힘을 느꼈을 것이다. 붉은색은 대칭적 세계의 투영이다.
오늘날 삶과 죽음은 극과 극으로 멀리 있고, 완벽하게 단절된 세계처럼 느껴진다. 조금 이상한 경우도 있다. 사회적 기준에 맞추어 살다보니 살아있지만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거나, 무언가를 욕망하거나 쌓아둘 때는 이 삶이 영원할 것처럼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선사인들의 생(生)을 상상하자니 그 스케일을 가늠할 수 없다. 그들에게 두 세계는 다르지 않고 순환하며 하나의 원을 이루는 듯하다. 생명이 언젠가 세계로 다시 돌아온다는 선사인들의 사고방식을 상상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들은 두 세계가 이어져 있다고 애써 생각한 게 아니라 너무나 자연스럽게 세계를 인식하지 않았을까? 붉색을 사용한 것도 그렇다. 애써서 이 색을 가까이 두었다기보다는 세계에 대한 그들의 인식이 자연스럽게 붉은색 가까이서 살도록 유도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해보인다. 나에게 과학적 원리, 구성된 성분으로만 보였던 ‘붉은색’이 다른 세계를 여는 버튼이 된 것 같다. 그렇다면 다음 답사에서 어떤 버튼을 누르게 될지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