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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문화 답사

한반도 the Korean Peninsula

 

{한반도 중남부의 선사유적 답사기 수정] 답사, 대칭성을 찾아서

작성자
보나
작성일
2024-09-25 23:00
조회
62

답사, 대칭성을 찾아서

 

잃어버린 대칭적 사고

인문공간세종의 학인들은 우주를 느끼고, 인류를 관찰하고, 배움을 나누자!’라는 모토와 함께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답사를 하며 인류학을 공부하고 있다. 인류학 공부는 만물의 얽힘과 관계성을 탐구하며 인간 중심주의’, ‘나 중심주의라는 인식의 한계와 편협함을 깨닫게 해주는 수련법이다. 이러한 수련 과정에서 배움이 무르익는다면 이전에는 몰랐던 잠재력을 발견하거나 활동 역량이 증대되어 반복되는 일상에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며 살아갈 가능성이 열리기도 한다. 더욱이 답사는 이분법적 사고에 갇힌 우리에게 잠시나마 이질적인 것의 연결성을 체감하며 대칭성을 모색해보는 실험의 장이다. 그동안의 인문세의 답사 경험(제주도, 북해도)을 통해 답사는 공부와 일상이 분리된 나에게 책을 읽고 글쓰기 하는 것만이 공부가 아니며 책을 읽고 글쓰기를 통해 조금씩 체화된다는 사실을 동시에 깨닫게 해주는 코스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답사는 잃어버린 대칭적 사고를 경험하게 해주는 일종의 통과의례와 같다.

그런데 이러한 답사를 배움의 장으로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요구되는 조건이 있다. 구간을 통과할 수 있는 기초 체력은 물론이거니와 공부의 밀도를 높이기 위한 사전 세미나, 예기치 못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꼼꼼한 계획과 유연함,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 리듬을 맞추려는 노력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 구간을 잘 통과한다면 공부의 성취와 함께 학인들 간의 연대감이나 공동체의 소속감을 높일 수 있지만, 수많은 돌발상황과 체력적 한계, 구성원 간의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오히려 공동체의 기반이 흔들릴 정도의 역효과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대칭성은 개인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산업사회의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는 빈부격차와 성차별 등의 양극화와 인간중심주의가 극대화된 결과 벌어진 환경 오염과 훼손은 현대의 절대적 비대칭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뿐인가 이렇게 멀리 가지 않아도 공부와 일상, 일과 놀이, 남성과 여성, 이상과 현실, ()과 속() 등의 분리로 범주의 우열을 가리며 무기력과 외로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도처에 보인다. 올해 봄 건강 악화로 체력이 떨어진 이후에 답사 일정을 잘 소화할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얼추 건강이 회복되었다고 생각되어 세미나에 복귀해 반장을 맡았는데, 체력이 떨어지니 마음이 약해졌고 동학들에게 폐만 끼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위대한 자연의 힘에 경의를 가지는 동시에 그 힘에 압도되지 않고 대칭성을 발휘해 독특한 문화를 발전시킨 조몬 문화의 지혜를 배우고 싶었다. 평소보다 체력을 요하는 빡빡한 일정에 겁이 났지만, 건강을 위해서라도 체력적 한계를 가늠하고 싶었다. 그리고 인문세의 스텝 활동과 세미나 반장의 역할, 새로운 공부 방식을 모색해야 할 필요를 절감하며 답사에 나섰다.

 

대칭성이 필요해

이러한 개인적 바람과 기우는 자연의 힘 앞에 한없이 무력해졌다. 자연의 힘은 얼마나 거대하고 변화무쌍한지, 꽤 긴 시간에 걸쳐 계획하고 준비해온 조몬 유적지 답사 일정은 일본의 지진 여파로 한반도 중남부의 선사유적지 답사로 전면 변경되었다. 자료집을 준비하고, 사전 세미나에 참여하면서 조몬 문화탐방 기회에 기대가 높았던 터라 아쉬운 마음이 컸지만, 스텝 회의를 거쳐 기후변화와 함께 달라진 조건에 적응하기 위한 결단을 내리게 되었다. 답사를 떠나기 전 공부의 밀도를 높이기 위해서 그리고 예기치 못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스텝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만반의 준비를 한다. 이러한 노력은 새로운 답사 일정을 조정하고 그 일정을 수행하는데 어김없이 드러나는데, 이번 한반도 선사유적 답사에서도 그러했다.

답사반장님을 필두로 한 답사 원정대는 한반도로 눈을 돌려 답사 일정을 짜기 위해 정보 수집에 나섰고, 불과 며칠 만에 새로운 답사지와 자료집, 숙박 문제까지 고려하며 준비를 마쳤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계획이 수정되는 과정에서 여기저기 빈틈이 생겼다. 지진의 여파로 일본에 가야할지 말아야 할지를 고민하던 학인들은 그 고민이 가시기도 전에 변동된 플랜B의 답사 소식에 우왕좌왕했다. 답사를 주도적으로 준비하는 입장과 계획된 답사를 따라야 하는 입장 차이가 발생했다. 나는 답사를 주도적으로 준비하는 일을 맡지 않았지만, 숙소 예약 문제에 잠깐 손가락을 담그고, 답사 자료집 정리하기에 잠시 발가락을 담갔던 경험만으로도 답사 일정을 새로 짜는데 얼마나 노고가 클지 짐작할 수 있었다. 촉박한 시간에 일정을 준비하시는 스텝 선생님들의 노고를 아는데도 불구하고 출발 날짜가 임박하니 마음이 급해졌다. 비행기표는 언제 취소해야 하는지? 답사 출발지가 부산이라고 하던데 어디에서 몇 시에 모이는지 일정을 모르니 기차표 예매도 걱정되었다. 준비하시는 분들께 질문을 드리자니 짐을 더 얹게 되지 않을까 싶어 일정을 묻기가 주저되었다.

성급한 일반화의 논리겠지만 희한하게도 마음이 급하면 갑자기 아이가 아프거나 급한 일들이 한꺼번에 몰아치는 경우가 많다고 느껴진다. 변수에 대한 불안감과 버거움, 얼른 일을 해결해야 한다는 조급함은 시야를 좁히고 마음을 더 편협하게 만들었다. 사태를 총체적으로 보지 못하게 하는 불안함이라는 감정의 치달음에 생명체의 본질상 밖으로 향하던 감각과 마음은 심리적 방어기제의 작동으로 단절되어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믿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동체에 갈등이 생기면 자신과 반목하는 상대에 대한 서운함과 자신에 대한 실망감에 불만이 쌓인다. 그리고 이때 서로의 입장을 이해해보려는 구성원 간의 노력이 없다면 공동체의 결속과 연대감은 흔들리고 위계와 착취, 소외가 발생하는 국가성이 강화된다. 제임스 C. 스콧은 농경의 배신에서 국가성(stateness)이란 제도적 연속체로 왕, 전문화된 관료, 사회적 위계, 기념비적 중심, 도시 성벽, 조세 및 분배 체계가 갖추어진 하나의 정치체로 이러한 특징들이 더 많으냐 더 적으냐에 대한 판단’(48)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국가성은 나와 타자, 주체와 객체, 자연과 문화, 문명과 야만으로 구분하는 이분법이라는 단절적 사고에서 기인한다. 자연을 통제와 이용의 대상으로 여기며 관계하는 비대칭적 사고에서 국가에 대항하며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모순적인 것을 아우르려는 대칭적 사고의 회복이 여러모로 절실할 때다.

 

과학적 사고와 신화적 사고

현대인은 이분법적 사고에 갇혀 인간이 자연의 일부임을 인식하지 못하고 나와 타자, 주체와 객체, ()과 속(), 삶과 죽음등을 명확하게 구분하며 자연과 비대칭적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있다. 나카자와 신이치·사카모토 류이치, 조혜영 옮김, 「『縄文聖地巡禮의 부분요약 (인문공간세종)에 의하면 이러한 비대칭성은 자연의 어떤 대상이든 심지어 인간의 마음 영역까지 동일한 척도인 화폐로 환산할 수 있으며 물건대 물건으로 등가교환이 가능하다는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의 사고방식 때문이다. 존재의 다양성과 차이를 배제한 채 모든 것을 화폐로 환산하여 등가교환하고 정보와 가치가 이동하는 시스템의 형성은 이러한 사고방식을 공고히 다졌다. 이는 국가가 생겨나기 이전의 물건을 줄 때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인간의 마음에 관계되는 요소를 서로 주고받았던 증여의 경제 원리는 잊은 채 등가교환의 원리만이 상식으로 작동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단절적 사고방식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이해득실을 따지지 않고 베푸는 자연의 선의조차 어리석은 행위로 여겨진다.

대칭성의 인류학의 나카자와 신이치에 의하면 이러한 사태는 이질적이며 모순된 것은 양립할 수 없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의 모순율(矛盾律)의 법칙에 의해 적당히 넘기려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분법에 지배당한 인간의 편협한 사고법으로 인한 가치관의 대립이 원인이라고 생각했던 문제가 적당히 넘기려는 경향이 강한 사고법 때문이라니! 흔히 공생의 표준이라고 배웠던 공동체 구성원간의 합의 모델이 비대칭적 사고에서 기인한 방식이었다니 놀라움을 감출 수 없다. 문화적 차이로 인한 다름과 다양성을 지각할 때 생각을 끝까지 밀고 가봐야 한다는 달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이에 나카자와 신이치는 현대인들의 비대칭성을 합리주의에 기반한 과학적 사고로 대칭성을 신화적 사고로 구분한다. 이러한 과학적 사고와 신화적 사고는 모두 이진논리를 도구로 삼아 반복하며 복잡한 사고를 수행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런데 과학적 사고가 이진논리를 사용해서 모순되는 두 항은 양립할 수 없음을 강조하며 이질성을 배제한다면, 신화적 사고도 이진논리를 사용하기 때문에 이항 사이에는 분명한 비대칭적 관계가 성립되지만, 이질적인 두 항에서 연관성을 발견하는 대칭성의 원리Principle of Symmetry’를 작동시켜 모순된 것을 끌어안는 사고법이라는 차이가 있다. 모순된 것을 자기 안에 끌어안는 현생인류의 신화적 사고는 현실이 요구하는 비대칭성과 신화적 사고의 대칭성 사이에 균형을 맞추기 위한 일종의 타협안을 제시한 것이다. 인지고고학에 의하면 현생인류의 지적 능력은 3만여 년 전에 일어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때 대뇌조직의 비약적인 변화 이후로 본질적인 변화도 진화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다양성을 존중하기 위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질성을 배제시키지 않고 이해해보려는 호모 사피엔스의 지혜와 노력에 감동이 몰려온다. 그리고 이러한 대칭성이 호모사피엔스인 현대인에게도 무의식에 잠재되어 있다니 자부심이 차오른다.

대칭성을 찾으려는 시도

역사의 시대구분에 의하면 수렵, 채집, 유목을 하고 뗀석기를 사용하는 구석기시대와 농경, 목축, 정주 하며 간석기를 사용하는 시대를 신석기시대라고 말한다. 이러한 시대구분에는 가축을 우리에 가두어 길들이고, 단일작물을 재배하며 자원의 축적을 기반으로 한 인구의 증가와 제도의 발전, 국가의 형성이 문명의 척도가 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상식에 이의를 제기하는 문화가 있다. 수렵·채집을 하며 유목 생활을 하던 구석기와 농경·목축을 하며 정주하는 신석기와 달리 조몬 문화는 변화하는 자연에 적응하기 위해 수렵·채집, 어로를 하며 정주했지만, 잉여를 축적하지 않았다. 자연의 위대함에 경의를 표했지만, 자연물을 세심하게 관찰하며 인간의 생존을 위한 도구로 이용했다. 다만 자연을 가능하면 훼손하지 않는 방식으로 필요한 만큼 사용하려는 노력은 조몬인들의 유물과 유적 곳곳에 드러난다. 시장에서 파는 고기와 과일과 채소를 사서 먹는 우리네 일상에 비해 수렵민은 다른 생명을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살아갈 수 없음을 매일 자각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살기 위해 반드시 타자를 죽여야 한다는 사실은 인류에게 어떤 마음을 품게 했을까? 조몬인들은 다른 생명의 살과 피가 나의 몸을 이루며, 그들의 뼈가 다시 다른 생명을 죽이는 도구로 이용해 자신의 삶이 존속될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느꼈을 것이다.

다시 답사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갑작스레 변경된 인문세의 답사 일정에는 평소와는 달리 빈틈이 드러났다. 계획을 차질 없이 진행하고 이러한 구멍을 메우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한 발 더 먼저, 많이 움직이는 노력이 요구된다. 그리고 그 움직임을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내가 누리는 답사의 모든 순간이 누군가의 노력으로 이루어짐을 알게 된다. 동학들의 편의를 위해 강평샘과 기헌샘은 각자의 붕붕이와 함께 먼 길, 긴 시간을 달려 답사지에 하루 전날 도착했고 여행 내내 고단한 몸을 이끌고 기꺼이 운전대에 앉았다. 달님과 다른 스텝 원정대들은 어떠한가? 답사 자료집의 최종 정리를 맡은 수정샘은 각 조가 취합한 답사 자료를 편집하기 위해 새로운 사진 편집 기술을 익히며 100페이지에 달하는 한 권의 자료집을 완성했다. 뿐인가 달님과 함께 답사지를 미리 방문하며 학인들의 공부에 도움이 되는 선의를 베푸셨다. 진진샘은 어떠한가? 강평샘과 함께 답사 계획에서부터 전체 회계, 안내, 답사기 독려와 함께 답사의 시작과 끝을 조망하며 일정에 변동되는 조건에 유연하고 기민하게 대처하기 위해 한발 먼저 움직이셨다. 갑작스럽게 변경된 답사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선생님들의 선의와 노고로 인해 한반도 중남부의 선사유적 답사는 약간의 의견차가 있었지만 한 명의 낙오도 없이 무탈히 진행되었다. 대칭성의 원리를 마구 작동시켜 상상력을 발휘해보았을 때, 답사가 포함된 다음 학기 인류학 세미나에 답사 멤버들이 다시 모인 걸 보니 제법 성공적이었다고 자평할 수 있겠다.^^

 

볶음밥, 너와 나의 연결고리<김해 봉황동 유적 패총 전시관>

이번 답사 여행에서 잃어버린 대칭성을 찾으려는 답사 원정대 노력의 상징물을 나는 볶음밥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답사 대장님은 모든 행위가 그러하듯 먹는 것에도 진심이다. 답사에 함께하는 동학들이 공부를 잘하기 위해서는 잘 자고 잘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신다. 덕분에 답사하는 내내 우리는 다양한 음식을 넉넉하게 잘 먹었다. 그런데 식사를 하다보니 우리에겐 11인분의 양이 적당하지 않아 음식이 남는 경우가 생겼다. 더욱이 이번 답사에는 초등학생인 성하가 동행했다. 강평샘은 매끼 메뉴 선정에 심혈을 기울이셨지만 김해 박물관 답사를 마치고 먹는 저녁 메뉴는 성하가 정한 중국 요리점이 선택되었다. 테이블당 인원수를 고려해서 쟁반짜장, 짬뽕, 볶음밥, 탕수육을 주문했는데 쟁반짜장의 양이 얼마나 많은지 끊임없이 쏟아져 나와 배를 가라앉힌 소금이 나오는 맷돌을 경험한 기분이었다. 고스란히 남은 볶음밥은 보냉백에 담겨 다음 날 아침에 먹기로 했다.

우리의 볶음밥은 어디로 갔을까? 다음 날 아침 상황이 여의치않아 우리의 볶음밥은 김해를 떠나 울진 장승포를 거쳐 덕구 온천 331호실에서 하룻밤을 묶고 답사의 무탈함을 기원하는 제사상에 올랐다가 쓰레기함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김해 봉황동 선사유적지에는 패총이 있다. 한반도 중남부 선사유적 답사 자료집(인문공간세종)에 의하면 패총이란 과거 인류가 식량으로 채취하여 먹고 버린 조개껍질이 오랜 기간 쌓여 만들어진 유적으로 마치 무덤처럼 쌓였다 해서 조개무지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러한 조개무지는 신석기시대 사람들이 바다 자원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면서 출현하는데, 우리나라에는 8,000년 전 무렵부터 패총이 만들어져 신석기시대 전 기간에 걸쳐 나타난다고 한다.

자료집에 따르면 김해 봉황동 유적은 우리나라 남부지방의 1~4세기경 당시의 생활모습을 짐작할 수 있는 유적이다. 봉황동 패총에서 출토된 토기, , 뿔도구, 석기, 가락바퀴, 불탄 싼(탄화미), 중국 화폐인 화천, 동물뼈 등의 유물로 1~4세기 무렵 김해 봉황동에 살던 선사인들이 적갈색이나 회청색의 토기와 사슴뿔이나 뼈로 만든 칼자루를 사용했음을 짐작해볼 수 있다. 불탄 쌀로 짐작하건대 농경 재배가 시작되었고, 중국 신()나라의 왕망이 기원전 14년에 만든 화폐인 화천의 발견으로 유적이 형성된 연대와 중국과의 왕래가 진행되었음을 짐작해볼 수 있다. 이번 답사에 방문한 패총은 <부산 동삼동패총>도 있다. 동삼동패총은 남해안지역 신석기문화의 특징과 변천 과정을 이해하는 데 많은 정보를 제공하며, 이른 시기부터 해양 활동을 통해 일본 규슈지역까지 교류했음을 보여주는 유적이다. 신석기시대가 시작되는 약 12,000년 전은 빙하기가 끝나고 후빙기로 접어들면서 구석기시대에 비해 기후가 급속히 따듯해진다.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서 정착 생활을 하고 식물 채집, 사냥, 어로를 통해 식량을 확보하였다. 우리는 동삼동패총에서 출토된 사슴, 멧돼지, , 다랑어, 강치, 고래 등의 뼈와 유물을 통해 신석기시대의 자연환경과 생업활동을 짐작해본다.

 

유적지를 답사하고 유물을 살펴보면서 흥미로운 점이 두 가지 있다. 첫째, 부산의 동상동패총은 지금도 바닷가에 위치하고 있고, 지금도 바닷가 항만에 컨테이너 박스들과 높은 크레인이 가득해 교역이 활발히 진행 중임을 알 수 있었다. 김해 봉황동은 상황이 조금 다르다. 1~3세기경의 김해만의 지도와 현재 지형도를 비교해보면 해안선의 경계가 확연히 다름을 확인할 수 있다. 1~3세기경의 김해만은 지금의 유적지와 달리 바다에 인접해 있었기에 중국과의 교류가 진행되었다는 추측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주변의 밭과 언덕, 평지에 구성된 현재의 집터와 창고들 유적지의 모습으로는 조개무지와 조개무지에서 발견된 중국의 화폐인 화천이 없었다면 중국과의 교역 상황을 짐작해보기 어려웠을 것이다. 둘째, 답사 자료집을 정리하면서 제일 많이 반복해서 사용한 단어가 짐작하다라는 말이다. 짐작하다라는 말은 정확한 상황과 사실을 알 수 없지만, 자신이 아는 정보를 바탕으로 분석하고 종합한 내용을 서술하다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이번 답사를 마치고 안다는 것이 무얼까?’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우리가 감각하고 인식하는 것이 자신이 아는 것의 전부일텐데. 우리는 과연 누군가를 혹은 자연물을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러한 마음은 잠시뿐 우리는 여전히 일상적으로 사태와 사물의 단면만을 보고 쉽게 판단한다. 오랜 시간이 흘러 덕구 온천 근처에서 플라스틱 그릇에 담긴 볶음밥이 발견된다면 뭐라고 짐작해볼지 궁금해진다. 볶음밥의 흔적을 가지고 강평샘의 답사대원 성하를 위한 대칭성을 찾으려는 노력을 짐작할 수 있을까? 레비스트로스는달의 이면에서 문화는 원래 공통의 척도가 없다고 말한다. 우리가 죽음의 순간이 올 때까지 대칭성을 공부한다고 할지라도 아마도 타자의 뜻을 모두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자신의 자연의 일부에 속함을 아는 학인이라면 낯선 것에 익숙해지기 위해 기꺼이 한 걸음씩, 한 걸음만 더 내딛여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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