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문화 답사
한반도 the Korean Peninsula
[동물원 답사기] 동물원에 가자!
이번 답사는 동물원이다! 우리는 유인원을 만나러 서울대공원 동물원에 다녀왔다. 프란스 드 발의 『원숭이와 초밥 요리사』에서 만난 유인원들은 타자에게 배우며 축적된 삶의 데이터로 그들만의 문화를 만들었고 그것은 곧 생존전략이 되었다. 그에 따르면 동물들도 인간과 다르지 않게 무리 속에서 소속감을 느끼고 싶어하고 적응하며 살고 싶어한다. 나는 살면서 직접 유인원들이 어떻게 사는지 직접 목격한 기억이 거의 없다. 봤다고 해도 그들의 행동을 주의 깊게 관찰해본 적 없기 때문에 이번 동물원 답사는 특별한 시간이 될 것만 같았다. 이전에 못보았던 무엇이 보일까? 혹시 그들 행동에 의미를 알아챌 수 있을까? 친구들 사이에서 어떻게 소통할까? 유인원들과의 만남을 기다리는 날이 오다니 참 재미있다. 전혀 생각해보지 않은 생명체 유인원과의 만남이 기대되지 않을 수 없었다.
방구석 오랑우탄 놀이터
처음 유인원관으로 들어가자마자 혼자 방에서 놀고 있는 유리창 너머 오랑우탄을 보았다. 이 친구는 팔 길이가 키보다 길고 팔 힘도 무척 세다고 한다. 갈색 털, 튀어나온 입, 눈을 보고 있으면 주름진 피부 뒤에 사람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수컷은 양볼에 지방층이 있다는 걸로 봐서는 지금 내 앞에 있는 오랑우탄은 암컷이다. 나뭇잎, 과일, 씨를 먹고 주로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같은 열대산림에서 산다고 한다. 원래 살던 곳의 기후와 다른 이곳에서 오랑우탄은 다른 괴로움은 없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방에는 놀이기구로 보이는 굵은 매듭이 천정에 매달려 바닥까지 늘어져 있었다. 지푸라기가 사방에 널려져 있었고 오랑우탄 몸의 반 정도 되는 파란 플라스틱 통과 이불이 바닥에 놓여 있었다. 가운데는 야외로 통하는 출입구가 있었다. 한쪽 구석을 보니 테이블 위에 이불이 여러 겹 쌓여있었다. 오랑우탄은 좀 걸어가 파란통을 들고 뒤집어 보고 다시 내려놓았다. 곧이어 이불을 뒤집어 쓰고 나를 향해 걸어왔다. 이때 나는 사실 좀 기뻤다. 나에게 친밀감을 느끼는 건가? 공주병이라고 해도 괜찮다.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나와 오랑우탄은 서로를 향해 앉아 있었다. 우리는 각자 관심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나는 연신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나와 눈이 마주치지 않았다. 이내 천정에 매달린 매듭으로 자리를 옮기더니 손가락을 넣고 뭔가를 찾는다. 오랑우탄 손에는 호두가 있었던 것 같다. 호두 안 열매만 빼먹는다. 바닥에 널린 마른 똥은 똥이 아니라 오랑우탄의 사료라고 한다. 그러고는 이불장에 가서 이불을 다 끌어내리고는 사료를 찾는다. 사료하나 찾아서 다시 유리창 앞으로 온 오랑우탄은 플라스틱 물병을 손에 쥐고 입에 물고 돌려 뚜껑을 따 물을 마신다. 물병 입구는 작고, 오랑우탄의 입도 손도 크지만 물을 마실 때 한방울도 흘리지 않는다.
서커스단 출신 고릴라
외부에서 놀고 있는 재롱둥이 고릴라를 만났다. 나는 처음 이 친구를 볼 때 이미 오랑우탄과 조우한 뒤라서 오랑우탄과 생김이 다르다고 느꼈다. 비슷하게만 보였던 유인원들의 생김새의 차이를 발견하다니 속으로 내심 기분이 좋았다. 다시 한번 보면 진짜 얼굴에 나 고릴라라고 씌여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생김새는 약간 무섭고 킹콩을 연상시키는 카리스마가 무섭게도 느껴지지만 사실 그는 친구들이 싸우면 그 사이에 끼어들어 싸움을 말리는 평화주의자라고 한다. 또한 채식주의자이고 달팽이나 개미도 잘 먹는다고 한다. 소를 때려잡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사람 겉모습으로만 판단하면 안된다는 말이 있는데 고릴라들도 다르지 않다.
재롱둥이 고릴라가 날리는 손키스에 사람들이 환호했다. 고릴라는 이런 행동을 마구잡이로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사람들은 언제나 고릴라가 손키스를 날려줄지 기다리고 기다렸다. 그리고 나좀 봐달라는 눈빛도 보냈을 것이다. 그는 아무래도 서커스 출신일 것 같다고 최옥현 선생님이 말했다. 멋진 쇼맨쉽을 보니 훌륭한 선생님께 배운 것 같기도 하다. 고릴라는 가만히 사람들을 응시하다가 자신이 내킬 때 손키스를 날리는데 사람들의 뜨거운 반응을 그도 아는 것 같았다.
용자 침팬지
침팬지들은 오랑우탄처럼 팔이 길지만 대조적으로 몸은 날씬하다. 얼마나 날쌘지 구름다리를 긴 팔로 성큼성큼 짚어서 건넌다. 멀리에서 보았기 때문에 얼굴 생김새를 살피지는 못했다. 더 놀라운 것은 그 높이가 상당히 높아 보이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여유롭게 건너간다. 용자가 따로 없다. 이곳 침팬지들은 높은 곳을 좋아하는 것 같다. 세 마리의 침팬지 모두 높은 곳에서 먹이를 받고, 거기서 먹는다. 한참을 그 위에서 노는 것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저 위를 싫어하거나 두려워하는 침팬지도 있을까? 그렇다면 그들 사이에서 어울려 놓기 어렵지 않을까? 혹은 무섭고 두려워도 참고 올라가는 것은 아닐까? 그래야 친구들하고 재미있게 놀 수 있으니까 말이다.
프란스 드 발에 따르면 유인원 사회에서 모방은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침팬지는 집단 지향적이라 동료와 똑같이 행동하고 싶어한다고 했다. 그가 책에 인용한 볼프강 쾰러의 관찰 기록에는 모방하는 침팬지들을 잘 그려놓았다. 기둥을 돌며 장난을 치던 두 마리 침팬지의 동작이 규칙화되자 다른 침팬지들이 한 마리, 두 마리 참여한다. 무리가 된 그들은 일렬로 기둥 둘레를 여러번 행진하고 걷는 방법에도 패턴을 만든다. 그들은 서로 템포를 유지하려고 애쓰면서 고개를 흔들고 놀이를 즐긴다. 모방은 어떤 보수를 바래서 하는 일이 아니라 무리에 소속되어 놀고 싶어 하는 일이다. 어떤 모방은 동물 행동에 습관화로 이어지고 결국 하나의 문화를 만든다.
우리가 본다고 해도 결코 포착하지 못한 그들의 문화는 무엇일까? 알 수 없겠지만 잠깐 그들과의 만남으로 그것을 알고자 하는 것은 욕심일지도 모른다. 나는 또 오랑우탄, 고릴라, 침팬지를 만나러 동물원에 가고 싶다. 한 번 더 보고 또 보면 좀 더 뭔가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프란스 드 발은 우리의 관점을 깨는 건 어렵다고 말한다. 인간의 문화가 우리 삶에 켜켜이 쌓여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물의 행동을 관찰하는 입장에 서본다면 내가 어떤 위치에서 대상을 바라보는지 나를 파악하는 일은 가능하지 않을까? 익숙한 일상에서는 어렵다. 그러니 낯선 존재들이 반기는 동물원으로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