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문화 답사
한반도 the Korean Peninsula
[동물원 답사기] 유인원은 기술자
유인원을 만나러 서울대공원 동물원에 다녀왔다. 프란스 드 발의 『원숭이와 초밥 요리사』에서 만난 유인원들은 인간과 다르지 않게 무리 속에서 소속감을 느끼고 싶어하고 적응하며 살고 싶어한다. 우리가 만날 유인원들은 어떤 모습을 하고 살고 있을까? 나는 살면서 직접 유인원들이 어떻게 사는지 직접 목격한 기억이 거의 없다. 봤다고 해도 그들의 행동을 주의 깊게 관찰해본 적 없기 때문에 이번 동물원 답사는 특별한 시간이 될 것만 같았다. 소개팅을 하는 것도 아닌데 유인원관을 들어서며 마음이 설레었다.
보라 손은 야무져
처음 유인원관으로 들어가자마자 유리창 너머 오랑우탄을 만났다. 이 동물원에는 오랑우탄 암컷 보라, 수컷 보석이 커플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방에는 오랑우탄이 친구 없이 혼자 놀고 있었고 출구로 보이는 외부 놀이터에도 다른 오랑우탄은 안 보였다. 수컷이 양볼에 지방층이 있다는 걸로 봐서 내가 만난 오랑우탄은 암컷 보라다. 오랑우탄들은 팔 길이가 키보다 길고 팔 힘도 무척 세다고 한다. 이친구들은 갈색 털과 튀어나온 입, 착해 보이는 눈망울을 가졌다. 눈을 보고 있으면 마치 주름진 피부 뒤로 사람이 있을 것 같은 착각도 들었다.
처음 내 눈에 보인 오랑우탄의 실내 공간은 좀 지져분해 보였다. 이불이 아무렇게나 펼쳐져 있고, 물통이 나뒹굴고, 천정에는 뭔가 늘어져 있다. 뭔가 제자리에 있어야 할 것들이 엉망으로 널부러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런 생각은 곧 사라졌다. 보라는 연신 노는 듯 움직였는데 이불을 덮어쓰고 걸어다니고, 플라스틱 물통을 들었다 놨다 하고, 천정에 매달린 굵은 매듭에서 간식을 꺼내느라고 집중했다. 아! 이곳은 장남감 가득한 놀이 공간이다.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관찰하는 나를 향해 보라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걸어왔다. 이때 나는 사실 좀 기뻤다. 나에게 친밀감을 느끼는 건가?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나와 보라는 서로를 향해 앉아 있었다. 나는 연신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나와 눈을 맞추지 않았다. 이내 천정에 매달린 매듭으로 자리를 옮기더니 손가락을 넣고 뭔가를 찾는다. 그녀의 손에는 호두가 있었던 것 같다. 호두 안 열매만 빼먹는다. 그 큰 손으로 이렇게 섬세한 행동이 가능하다니 놀랐는데 그 다음 행동은 더욱 놀랍다. 다시 유리창 앞으로 온 보라는 앉아서 플라스틱 물병을 손에 쥐고 뚜껑쪽은 입에 물고 돌린다. 바로 뚜껑이 열리고 물을 마시는데 한방울의 물도 흘리지 않았다. 야무진 보라는 빨래를 빨아 두 손으로 물기를 짜내기도 하고, 보따리 매듭을 꽁꽁 묶어놔도 풀 수 있다고 한다. 보라는 이런 기술을 누구 보고 배웠을까? 어떤 기술은 태어나기 전부터 유전자로 전해지고 어떤 기술은 친구들로부터, 어떤 기술은 스스로 터득했을 것이다.
고리나의 애교 기술
유인원관 실내를 통과해 관람로를 따라가니 유인원의 외부 놀이터가 보였다. 이번에는 매력적인 고릴라에게 눈길이 갔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우리나라에는 고릴라가 한 마리만 남아 있다고 한다. 국제적으로 1급 멸종위기종이라니 우린 귀한 분을 영접한 것이었다. 고릴라의 이름은 고리나, 암컷이고 40대 후반 나랑 동갑내기(?)다. 고릴라의 수명이 30~40년인 것에 비하면 고리나는 할머니라고 할 수도 있겠다. 영장류 중 가장 덩치가 큰 동물인 고릴라는 키는 인간과 비슷하지만 몸무게가 최대 300kg에 육박하고 근육질 몸매에 힘이 세다고 한다. 멀리서 보아 그녀의 눈빛까지 볼 수 없었지만 검은색의 털 때문인지 킹콩을 연상시켜서인지 약간 무서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내문에 따르면 내 생각과 다르게 고릴라는 친구들이 싸우면 그 사이에 끼어들어 싸움을 말리는 평화주의자라고 한다.
관람객들은 유리창 너머로 집 앞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고리나를 볼 수 있었다. 집 건물과 마당 사이에 낮게 돌담이 보이고, 풀들이 자란 마당에 진짜인지 모형인지 모를 대형 그루터기가 있다. 사이즈가 엄청 큰 걸로 봐서는 왠지 모형이 아닐까 싶다. 마당 가운데에는 나무를 엮어 만든 놀이기구에 고리나가 앉아 있었다. 이 정글짐처럼 생긴 놀이기구는 3층으로 오랑우탄 보라가 간식을 찾느라 매달렸던 굵은 매듭과 같은 매듭이 달려있었다. 매듭은 유인원들의 전용 놀잇감인가보다. 고리나가 놀이기구를 신나게 오가면 좋겠는데 가만히 한 곳에 앉아 있는 것은 노령으로 인한 체력 문제거나 마음의 문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리나는 두 남자친구의 죽음으로 인한 우울증을 앓았었다고 한다. 무리 생활을 하는 고릴라가 혼자 산다고하니 안스러운 마음도 들었다.
걱정도 잠시 고리나는 활발하게 활동하지는 않았지만 가만히 앉아서 때때로 손키스를 날려주었다. 수줍음이 많다고 들었는데 사실 애교쟁이였다. 사람들은 고리나의 손키스에 환호했다. 고리나는 이런 행동을 마구잡이로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사람들은 언제즘 고리나가 손키스를 날려주려나 하고 기다리는 것 같았고, 나 좀 봐달라는 눈빛도 보냈을 것이다. 최옥현 선생님은 고리나를 보면서 아무래도 서커스 출신일 것 같다고 말했다. 멋진 쇼맨쉽을 보니 훌륭한 선생님께 배운 것 같기도 하다. 고리나는 가만히 사람들을 응시하다가 자신이 내킬 때 손키스를 훅훅 날리는데 사람들의 뜨거운 반응을 아는 것 같았다.
아자는 구름다리 건너기 선수
고리나 집 바로 옆에는 침패지 가족이 놀고 있었다. 아빠 침팬지 용용이와 엄마 침팬지 쥬디, 남매 침팬지 까미, 아자까지 가족 구성원이 넷이라는데 우리가 관람하는 동안에는 셋뿐이었다. 한 마리는 실내에서 관람객하고 놀고 있는 것일까? 침팬지들은 다른 유인원들처럼 팔이 길지만 대조적으로 몸은 날씬하다. 몸이 늘씬하고 근육질이라는 것은 멀리서도 알 수 있다. 사진으로 보았을 때 오랑우탄이나 고릴라보다는 털은 적은 것 같고 귀가 크다. 인간 종(種)과 마지막으로 분류된 동물이라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이라더니 피부색이 인간과 비슷한 살색이 보인다.
동물원을 다 돌아보지 않았지만 가장 재미있는 놀이터를 가진 집이 바로 아자네 집이 아닐까 싶다. 침팬지들의 공간에는 24m의 거대한 타워가 있다. 정말로 높아서 관람객들이 다 목을 위로 최대한 젖히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처음엔 세 마리가 각각 떨어져서 노는 것 같더니 어느 순간 같은 곳으로 모였다. 높은 것은 그들에게 문제가 되는 일이 아닌 것 같았다. 아마 타워가 위로 두 배, 세 배 더 높아도 아자네 식구들은 겁을 내기는 커녕 더 신나게 놀았을 것 같았다.
아자네 가족들은 모두 얼마나 날쌘지 저 높은 곳에서 긴 팔로 매달려 성큼성큼 건넌다. 그래서 침팬지들은 날씬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팔 힘이 무척 세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두 팔로 높은 곳에서 구름다리를 건너는 걸 보니 겁이 없어도 너무 없는 거 아닌가 싶었다. 아니 겁이 없는 게 아니라 그 자체를 즐기고 좋아하는 것 같다. 세 마리의 침팬지 모두 사육사가 높은 곳으로 던져주는 먹이를 받고, 거기서 먹는다. 프란스 드 발은 어린 침팬지가 어른의 삶의 기술을 관찰하고 배우면서 자신의 기술도 익혀간다고 했었다. 저 타워에 아자와 까미가 있다면 그들은 엄마 아빠로부터 배워 국가대표급 구름다리 건너기 선수가 되었을 것이다.
프란스 드 발에 따르면 유인원 사회에서 모방은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침팬지는 집단 지향적이라 동료와 똑같이 행동하고 싶어한다고 했다. 그가 책에 인용한 볼프강 쾰러의 관찰 기록에는 모방하는 침팬지들을 잘 그려놓았다. 기둥을 돌며 장난을 치던 두 마리 침팬지의 동작이 규칙화되자 다른 침팬지들이 한 마리, 두 마리 참여한다. 무리가 된 그들은 일렬로 기둥 둘레를 여러번 행진하고 걷는 방법에도 패턴을 만든다. 그들은 서로 템포를 유지하려고 애쓰면서 고개를 흔들고 놀이를 즐긴다. 유인원들에게 따라하기는 어떤 보수를 바라서 하는 일이 아니라 무리에 소속되어 놀고 싶어 하는 일이다. 살아가기 위해 취하는 전략이다.
유인원관 중간 개코 원숭이 사육장에는 정말 많은 개체들이 그룹을 지어 몰려다녔다. 동네는 싸우고, 쫓아가고, 도망가고, 안아주고, 등을 긁어주는 여러 그룹들로 북적북적 분주했다. 그들은 순간순간 서로가 서로에게 배우면서 삶의 기술을 터득했을 것이다. 오랑우탄 보라, 고릴라 고리나도 같이 등 긁어주고, 보따리 푸는 법 알려주고, 손키스 날리기를 알려준 친구가 있었겠지? 지금 생각하니 조용하게 지내고 있을 그들이 왠지 짠하게 느껴진다. 아자네는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아직 있으니 다행이다.
이번 답사를 통해 본 유인원들은 저마다 사는 기술을 갖고 있었다. 그들이 인간과 다르지 않음을 인류학 책을 읽고 동물원 답사를 다녀오며 내내 말하고 생각하지만, 동물이 인간보다 하등하다는 생각은 아직 나의 무의식에 잠들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프란스 드 발은 섬세한 관찰과 감정이입으로 다른 문화를 이해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인간과 공통 조상을 가진 유인원들의 몸짓에 놀라지 않고 자연스레 이해할 수 있으면 좋겠다. 또 동물원에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