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문화 답사
한반도 the Korean Peninsula
[동물원 답사기] 본능과 문화
동물원 답사기/24.11.4/최옥현
본능과 문화
주제문 : 동물의 본성은 집단의 문화를 공유하는 속에서 발현된다.
어른들과 함께 동물원에 갔다! 인문공간세종 화요인류학팀의 동물원 답사에 따라나섰기 때문이다. 연아 선생님의 딸인 바다를 제외하고는 모두 어른이었다. 어른들과 동물원은 처음이다. 어른들끼리 모여 미술관이나 영화관은 가면서 왜 동물원을 갈 생각은 한 번도 못해봤을까? 동물원은 항상 아이들을 데리고 교육겸 놀이겸 가는 곳이었다. 내 옆에 자식들이 없으니 자유롭게 동물원을 즐겼다.
망토개코원숭이의 가부장적인 무리생활
동물원을 돌면서 제일 눈에 띈 것은 망토개코원숭이(이하 망토원숭이)의 붉은 엉덩이였다. 붉은 엉덩이 부분만 털이 없었다. 털이 없이 붉은 살결이 드러나 있는데 그 부분으로 땅에 앉는다. 털이 없어 연약해 보이는데 저렇게 바닥에 앉아도 될까? 오히려 엉덩이의 굳은 살 때문에 경사진 높은 바위에서 살 수 있다고 한다. 엉덩이의 털을 없애서 바위와의 마찰력을 높인 놈들이 더 잘 살아남은 것이다.
사육장 옆에는 망토원숭이들의 사진이 붙어 있다. 사진 제목은 ‘가지 많은 망토네, 바람 잘 날 없다’이다. ‘서열 1위 수컷, 나이 많고 이빨 부러졌지만 그래도 지위 있는 수컷, 별일 아닌 것에도 소리지르며 편들어주길 바라는 암컷, 엉덩이가 부푼 암컷은 인기쟁이’ 등 재미있게 망토원숭이의 개체 성격과 무리 문화가 표현되어 있었다.
나는 망토원숭이의 고향이 궁금해졌고 그들은 동물원 밖에서는 어떤 삶을 살까 궁금해졌다. 동물원에 갇혀서 쓰지 못하는 본능의 유전자에는 어떤 능력이 장착되어 있을까? 그래서 유투브 영상을 찾아보았다.
망토원숭이는 아프리카 지역에 사는데 강변, 해변, 사막지대, 고산지대 등에 무리를 지어 산다. 서열 1위 수컷이 4-5마리의 암컷을 관리하면서 교미하고 새끼를 낳는다. 서열 1위 수컷만이 암컷과 교미할 수 있다. 이런 혜택을 받는 이유는 서열 1위의 수컷이 무리를 보호하는 리더이기 때문이다. 포식자들이 나타날 때 가장 앞에서 싸우고, 먹이활동을 할 때 위험 상황을 파악해가면서 무리를 이끌어간다. 망토원숭이와 5년을 함께 생활한 동물학자는 자신은 절대로 망토원숭이의 암컷으로 태어나지 않겠다고 말한다. 암컷이 다른 수컷에게 잠깐 눈길이라도 주면 암컷은 서열 1위의 수컷에게 얻어 맞는다. 강력한 가부장적 사회를 이루고 있고 이런 식의 무리생활이 그들의 생존력을 높였을 것이다. 어린 망토원숭이들은 친구들과 놀이로서 싸우면서 논다. 그래서 포식자들이 나타나면 구성원들이 모두 함께 인해전술로 포식자를 쫓아낸다.
해변에서 먹이활동을 하는 망토원숭이는 인간들이 사는 마을을 지나 해변으로 향한다. 망토원숭이들이 해변으로 가는 길에 도로를 건너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아슬아슬하다. 배고픈 표범이 망토원숭이의 새끼를 노린다. 하지만 가장 큰 적은 인간이었다. 망토원숭이가 1년 중 5개월 정도는 야자나무 열매를 먹고 사는데 인간은 야자나무 잎을 채취해 간다. 망토원숭이가 부족민의 삶을 방훼한 것인지 망토원숭이에게 총을 쏘는 부족민들도 있었다. 같은 땅의 수확물을 놓고 경쟁한 탓일 것이다.
동물원에 있는 망토원숭이들은 의식주를 제공 받고, 다치면 치료를 받을 수 있고, 표범과 싸울 일이 없고, 인간과 먹이를 두고 경쟁하거나 도로를 건널 일이 없다. 안전하게 사는 일이 행복일까? 아니면 위험하지만 자신의 본성과 무리의 문화를 따르며 사는 것이 행복일까?(우리 인간 또한 노인들을 부양하면서 ‘안전’을 위해 병원에 모시기도 한다) 동물원에서 사는 일은 수만 년간의 시간이 만들어온 빼곡한 유전자 정보를 못 쓰고 묵혀두는 일처럼 보인다. 그래도 망토원숭이들은 좁은 공간에 포식자가 없지만 자신의 습성대로 1위 수컷의 뒤를 따르면서 사육장을 분주히 빙빙 돌고 있었다. 영상 정보에 따르면 먹이와 물을 찾아가기 위해 망토원숭이들은 늘 움직이고 있었는데 비슷한 활동의 일환으로 동물원 안에서도 늘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았다. 동물원 안은 1위 수컷의 리더쉽이 필요 없는 환경인데도 말이다.
동물원에서 나고 자란 동물들
야생이 반드시 동물들에게 파라다이스만은 아닐 것이다. 야생에서 자연스럽게 멸종되는 동물들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동물원에서 낳아지고 자란 동물들은 새끼를 키우지 못하고 짝짓기를 하지 못한다. 우리는 모성과 짝짓기의 유전자는 가장 기본적인 본성이라 학습 없이도 발현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엄마 하마의 보살핌을 받아보지 못한 동물원 태생의 하마는 새끼 하마를 물에 데리고 들어갔다가 익사시키고, 동물원 태생의 엄마 침팬지는 자신이 낳은 자식을 보고도 공격성을 드러낸다. 동물원 태생의 수컷과 암컷 고릴라는 짝짓기하는 방법을 모르고 같이 노는 방법도 몰라서 한 공간에서 대면대면한다. 아무래도 동물원이라는 환경이 몸집이 큰 동물들을 여러 마리 키우기 어렵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발생하는 것 같다.
엄마의 보호와 교육을 받지 못하는 새끼들은 동물복지사들이 키운다. 그래서 새끼들은 사람을 어미라고 생각한다. 어미에게 3년 이상 붙어서 떨어질 줄 모르는 아기 침팬지는 무리 문화를 계속 배우게 되지만 동물복지사에게 붙어 떨어질 줄 모르는 아기 침팬지는 아무 것도 배울 수 없다. 계속되는 악순환이다. 본능은 타고난 것이지만 집단의 사회생활 속에서 문화적 경험이 없으면 쉽게 발현되지 못한다.
이 시험 결과는, 생존 전술은 태어날 때부터 입력돼 있고 본능적이라고 보는 통념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베르베트원숭이의 경우, 동료들이 내는 경계음을 무시했다간 살아남을 수가 없다. 이처럼 중대한 반응 체계는 타자를 관찰함으로써 전해진다. 이는 유전 정보에 의거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 과정이다.(『원숭이와 초밥 요리사』, p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