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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문화 답사

북아메리카 North America

 

[국중박인디언] 주먹을 불끈 쥐고 재창조를 향해

작성자
남연아
작성일
2024-07-15 20:34
조회
227


주먹을 불끈 쥐고 재창조를 향해


국립 중앙 박물관에 <우리가 인디언으로 알던 사람들> 전시와 <메소포타미아>전시에 참석했습니다. 북아메리카 원주민은 멀리 있던 존재였는데 <향모를 땋으며>를 읽으며 자연을 스승으로 섬기며 감사하는 마음은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저자 키미러는 원주민의 세계에서 인간은 삶의 경험이 적은 ‘창조의 동생’으로 다른 종들에게서 가르침을 배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책을 통해 원주민의 세계관에 입장했고, 원주민들의 예술품을 직접 볼 수 있는 이 전시가 너무 기다려졌습니다.

달님의 강의는 ‘아파치족의 기도’를 낭송으로 시작했습니다. 인디언들은 무문자 사회이고, 자기 주체성과 자의식이 약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아의 연속성이 없어 분열적이고 관계적입니다. 이 관계 속에서 복수의 주인공이 존재합니다. 반면 <메소포타미아> 는 BC6500-BC4000의 문명이고, 세계 최초의 문자가 출현했습니다. <길가메시 서사시>는 길가메시가 영생을 얻기 위한 여정입니다. 주인공이 주체적인 경험을 하면서 서사에 응집력이 있습니다. 원주민 문화가 분열적이면, 문자 사회는 편집적이고 하나의 척도가 작동합니다. 자기중심적 사고가 작동하고, 소유와 소속에 대한 욕망이 커집니다.


크기에서 보는 욕망

두 전시에서 가장 큰 차이는 크기였습니다. 전시에 들어갔을 때 보았던 티피(천막)는 전시 중간에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티피를 한 바퀴 돌아보니 마음이 경건해집니다. 자신들이 사냥한 들소로 만든 집, 그 위에 말을 타고 들소를 사냥하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자신의 경험을 집에 그리는 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자신의 경험을 기억하고 들소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였을까요? 또한 작은 티피 모형은 아이들이 티피를 설치해 보는 교육자료이자 장난감이었다고 합니다. 큰 모형과 똑같이 그림도 그려져 있습니다. 자연, 삶, 생활, 놀이가 함께 어우러집니다.




반면 메소포타미아 전시에서 점토판은 너무 작아서 깜짝 놀랐습니다. 예전에 길가메시 서사시 점토판을 인터넷에서 보았을 때 적어도 1m 정도는 되는 큰 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막상 실제로 보니 10cm 정도의 한 손에 쏙 쥘 수 있는 크기였습니다. 그 작은 판 위에 빽빽한 쌀알 같은 글씨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현대의 스마트 폰은 한 손에 온 정보와 세계를 쥐고 싶다는 욕망을 자극하는데 점토판으로부터 시작된 인간의 소유에 대한 욕망인지 추측해 봅니다.


먹고, 입고, 숭배하라

인디언 전시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말갖춤이었습니다. 영거 드라이아이스기(12,900-11,700년)에 베링해 육교를 거쳐 인간이 미대륙에 있던 말 사냥을 하면서 말은 멸종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만 천년이 지나 스페인 정복자들에 의해 17세기에 북아메리카에 말이 전파되었습니다. 말을 가축화하면서 원주민들도 ‘기동력’을 갖게 되었는데요. 이제 원주민들은 말에 물건을 옮기고, 말을 타고 들소 사냥을 하고, 백인들에 맞서 싸웠습니다. 말과 살면서 인디언들은 ‘유목적’ 원주민으로 변화했습니다. (이현우 우리가 인디언으로 알던 사람들 60쪽)

전시장에서 보았던 모형 말 위에 아기 요람, 말 꾸미개, 머리 장식 보관통, 안장과 발거리, 깔개 등등 많은 것들이 얹혀 있었습니다. 영상에서 실제 말에 이런저런 장신구들이 끊임없이 씌워졌죠. 말갖춤은 유라시아 대륙에서 천 년 이상 발전해 왔지만, 원주민들은 백 년 만에 이 모든 것들을 발명했다고 합니다. 이른 시간 안에 발명할 수 있었던 이유는 스페인 말갖춤을 모방 생산하거나, 자기화해서 사용했기 때문이죠.

도록에 보니 인간의 몸처럼 말에도 표식을 그려 넣었다고 합니다. 눈에는 말의 감각을 강화해달라고 하얀색 동그라미가 있었고, 말 가슴에 흰색 작은 동그라미는 ‘적에게 우박이 떨어지길 기원’한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전투에서 성공하기 위해 파란색 손바닥도 찍혀 있습니다. 말은 단순히 이동 수단이 아니라, 인간이자 신으로서 숭배합니다. 현대 시대에 자연과 동물을 보호의 관점으로 생각합니다. 보호라는 것도 인간 중심적인 욕망일 수 있습니다. 원주민의 세계관에서 자연과 동물이 인간을 보호해 줍니다. 동물 덕분에 그들은 자고, 입고, 먹을 수 있습니다. 그들은 자연을 숭배합니다.

정말 영원한 것은?

점토판에 남겨진 기록은 채무 기록과 한 영웅의 서사시입니다. 길가메시가 영생을 욕망했던 것처럼 메소포타미아 점토판은 5천 년 동안 살아남았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욕망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수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인간은 죽음을 두려워하고, 영원히 살고 싶어 합니다. 이제 아무도 점토판은 쓰지 않지만, 우리의 서사는 여전히 동어반복같이 느껴집니다.

반면 원주민의 전시품들은 19세기 이후의 비교적 최근 것들입니다. 왜냐하면 예술품의 재료는 자연으로 모두 돌아갔기 때문입니다. 원주민들은 할머니의 할머니로부터 기억된 방법으로 작품과 생활품들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연에서 얻은 지혜로 작품을 만들고 다시 자연으로 내보내는 지혜를 터득했습니다.

원주민의 문예 부흥기를 맞은 건 1970년대 미국 정부가 동화 정책으로 원주민이 영어를 배우게 되었고, 그때 독자의 폭이 넓어졌다고 합니다. 무문자의 문화는 문자를 통해 퍼져나갔다는 아이러니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적의 언어로 우리는 우리의 진실을 이야기하고 이 힘든 시절 우리를 노래하고 또 기억한답니다.’ 그들은 영어라는 적의 언어를 재창조하면서 전 세계에 새로운 방향을 보여줍니다. 16세기 스페인의 기마병에 혼비백산했던 원주민들은 백 년 만에 말을 원주민들 삶의 방식으로 재창조했고, 나바호의 직물에서도 미국 국기를 짜며 관광객을 위해 담요를 재창조했습니다. 어떠한 것도 재창조할 수 있는 원주민의 힘은 지구 반대편까지 밝은 빛을 비춰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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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7-15 23:21

    파일의 형태가 아니면 출력 후 검토할 수가 없답니다. 파일로도 부탁드려요.


    • 2024-07-16 08:07

      파일 업로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