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문화 답사
북아메리카 North America
[국중박 인디언] 연결, 삶의 다른 이름
이번 전시회를 통해 북미 전역에 많은 인디언 부족이 흩어져 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시회 제목에서 암시하듯 ‘인디언’이라는 말은 북미 인디언을 통칭하는 말로 쓰이곤 하지만 이 말은 이곳이 인도라고 착각한 콜롬버스에 의해 잘못 알려진 이름이라고 한다. 하지만 북미 원주민들은 자신들의 고유한 부족명으로 불리기를 원한다고 말한다. 다양한 부족만큼 다양한 그들만의 문화를 엿볼 수 있는데 내게 가장 인상 깊은 것은 기후대별로 다르게 만들어진 원주민들의 집이었다.
북미 원주민은 다양한 거주 환경만큼이나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은 같았다. 세상은 둥그런 원을 이루고 그 안에서 사는 사람, 동물, 식물, 심지어 무생물까지도 모두 연결되어 있다고 본 것이다.(『우리가 인디언으로 알던 사람들Cultures and Histories of Indigenous People in North America』전시회 도록, 27쪽)
원주민들에게 삶의 공간은 하나의 커다란 원으로 그 안에서 모두 연결되어 있음을 사유했다. 최근 인터넷 집을 이사하고 보수 작업이 한창인 나에게 북미 원주민의 건축기술과 집의 의미는 나를 붙들었다. 원주민들이 집을 지을 때 재료는 거주하는 근방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이다. 우리가 익히 보았던 얼음집 이글루Igloo는 극지 빙하기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얼음을 다듬어 벽돌을 만드는데 이것을 쌓을 때 정확하게 판단해서 틈이 벌어지지 않도록 치밀함을 요구한다. 얼음 자체는 차갑지만 얼음이 머금은 수많은 공기 주머니는 열전달 속도를 늦추는 단열재 역할을 한다. 돔 형태는 세찬 바람이 약해지는 효과가 있다. 지붕을 어떻게 둥그런 구체로 만드는가는 잘 모르지만 대단한 기술자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모형이 전시된 어도비Adobe는 열대의 사막기후에서 만들어졌다. 진흙에 물과 짚을 섞어서 만드는데 그 비율이 얼마나 환상적인지 1,000년이 넘도록 쓰러지지 않는 집이 있다고 한다. 어도비Adobe는 전시회에서 보여주는 그 어떤 집들보다 창문, 문, 환기구 등 구멍이 제일 많아 보인다. 주로 나무나 짚으로 지어진 집들에 비해 바람이 들고 나가는 어려움을 많은 구멍으로 대신한 것 같다. 건축가들이 가진 기술력은 어느 한 날 알게 된 것은 아니다. 오랜 시간 차가운 바람, 뜨거운 지열에 적응하며 얻게 된 지혜일 것이다.
북미 원주민들의 지혜를 구체적으로 관찰할 수 있도록 커다란 천막집이 기다리고 있다. 바로 대평원에 살며 들소떼를 따라다녔던 원주민들의 티피라는 집인데 다섯 명은 여유있게 들어가서 누울 수 있을 것 같은 사이즈다. 천막은 평원에 많이 살았던 들소의 가죽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들소의 피부가 어떤 색인지 모르겠지만 천막은 하얗고 짱짱하게 느껴졌다. 이 짱짱한 건축의 외장재에는 역동성을 느끼게 하는 사냥꾼, 도망가는 동물 등 그들의 삶을 고스란히 새겨두었다. 꼭 기억하고 싶은 부족의 영광스러운 사건을 남기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키가 큰 나무 기둥 여러개를 아래는 넓게 펼치고 위는 하나로 머리 묶듯 묶었다. 우산살과 비슷한 모양이다. 만약 비가 온다면 물은 나무 기둥을 타고 바닥으로 내려갈 것 같다. 나무를 뼈대로 하여 그 위를 들소 가죽으로 덮었다. 몇 마리의 가죽을 엮어야 이 큰 집을 덮을 수 있을지 궁금했다. 천을 땅에 고정하기 위해 나무 말뚝이 천막을 둘러가면서 박혀있다. 문을 상징하는 한 가운데는 나무젓가락보다 긴 나무로 맞닿는 천과 천을 꼬여서 문을 닫아 둔 것처럼 보였다. 자주 들락날락해야 하는 아래쪽은 나무가 아닌 천 끈으로 쉽게 묶고 풀 수 있도록 만들었다. 하늘을 향해 열려있는 창문으로 반짝이는 별과 달을 보고 떠오른 아침 태양빛을 맞이했을 것이다. 이곳에서 혼자라는 생각은 들어올 틈이 없어 보인다. 티피 바로 옆에는 아주 작은 사이즈의 티피 모형이 있었는데 이동하며 살던 원주민들은 집을 조립하고 해체하는 일이 잦았기에 이 모형은 집짓기 교육자료로 쓰이기도 하고 아이들의 장난감이 되기도 했다.
자료에 따르면 티피를 여러 개 배치할 때 전체적으로 둥그런 모양을 갖추도록 했다. ‘티피의 둥근 바닥은 대지를 의미하고 가운데 세운 기둥은 땅과 하늘을 이어준다.’(같은 책, 38쪽) 만약 집을 사용하는 사람들만 생각했다면 굳이 크고 둥근 원형으로 대형을 만들 이유가 없다. 이것은 하나의 상징이다. 원주민들이 온 우주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계속 의식하고자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내가 나무라면 때가 되면 꽃을 피우고, 또 열매를 맺어야 하고 추운 계절이 오면 잎을 모조리 떨궈야 한다. 다시 따뜻한 계절이 오면 푸른 빛의 무성한 잎을 가져야 한다. 삶은 순환하는 자연과 다르지 않고 그 고리는 내가 맺고 싶다고 맺거나 끊고 싶다고 끊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곳에서 삶의 다른 이름은 ‘연결’이다. 나도 인문세 홈페이지를 이런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 책 보고 글 쓰고 답사 다니는 우리 서로가 연결되어 있음을 자연스럽게 생각할 수 있는 집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혼자 할 수 있는 작업은 아니다. 누군가는 와서 그림을 그려야 하고, 누군가는 와서 글을 써야한다. 또 누군가는 구멍난 곳을 찾아 수리 요청을 한다. 그렇게 생각하니 홈페이지 완성도를 떠나 이 공간을 꾸려가는 학인들은 이미 원 안에서 서로의 연결을 의식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나는 지금 줄줄이 기다리는 보수 작업에 얼른 달려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