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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문화 답사

북아메리카 North America

 

[국중박인디언] 카치나 인형, 맨얼굴의 코샤레

작성자
유나
작성일
2024-07-24 17:04
조회
165

인류학 답사 / 우리가 인디언으로 알던 사람들 에세이 / 2024.07.24 / 손유나

 

카치나 인형, 맨얼굴의 코샤레

 

명태에 하얀 실타래나 베를 감아 천장이나 문에 매달아 놓은 식당을 드물게 보게 되면 나는 아직 옛 문화가 명맥을 이어가는 모습에 기쁘다. 명태와 하얀 실타래를 대들보에 매다는 행위는 집안의 길흉화복을 관장하는 성주신을 모시는 의식이다. 집안의 최고신인 성주신 외에도 부엌을 돌보는 조왕신, 변소를 지키는 측신 등 여러 가택신이 있지만, 이 자비로운 신들을 기억하는 기리는 의식을 하는 집은 극히 드물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우리나라 신화의 상당 부분이 소실되었고 신을 모시는 의례 또한 같은 운명을 맞이했다.

태평양을 건너 저 먼 지역의 북미 원주민들도 자신의 문화를 지키기 어려운 상황을 맞닥뜨렸다. 19세기 정착지를 둘러싼 싸움에서의 패배하여 강제로 삶의 터전을 떠나야 했고 미개한 문화라는 조롱과 멸시를 받았다. 북미 원주민의 전통도 상당수 소실되고 의미를 잃어버렸지만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그 맥이 끊어지지 않았고, 다시금 회복하는 문화의 태동을 국립중앙 박물관에서 전시된 <우리가 인디언이라고 알던 사람들>에서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무엇이 북미 원주민이 어려웠던 시기를 견디고 다시 살아날 힘을 간직하게 해주었는지 궁금했는데 자비로운 신의 형상을 본따 만든 카치나 인형에서 그 힘을 보았다.

 

카치나 인형은 현재 애리조나 북동부에 있는 호피 푸에블로족의 전통 인형이다. 북미 원주민은 모든 것에 영혼이 깃들어 있다 생각했다. 호피족도 생명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만물과 교감하고 감사하며 살았다. 카치나 인형은 이 영적인 존재들을 상징한다. 전시회에서는 자비로운 영혼의 존재라고 소개하는데 종류는 무려 400여 종이 넘는다고 한다. 카치나 인형은 미루나무 뿌리로 몸통을 조각하고, 직물, 깃털, 조개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여 제작한다. 인형에는 각 존재를 나타내는 특징이 동물 발자국, 새 발자국, 식물, 깃털 등으로 표현된다. 크기는 다양하네 보통 손바닥을 넘지 않는 작은 크기로 만든다. 카치나 인형은 아버지나 삼촌과 같은 집안의 남자 어른이 소녀에게 바르게 자라길 바라는 마음으로 선물하거나 카치나 의식 때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카치나 인형은 아이가 갖고 노는 것이 아니라 벽에 걸어두는 신성한 인형이다. 아이는 카치나 인형을 보며 만물에 깃든 영적인 존재를 느끼고, 교감하며, 세상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마음을 배웠다.

 

그중 눈길을 끌었던 카치나 인형은 광대 모양 카치나 코샤레이다. 검은색과 흰색이 교차하는 가로줄 무늬 옷을 입고, 머리에는 양 갈래 뿔이 있는 모자를 썼다. 모자의 뿔 가장자리에는 옥수수 껍질을 붙인다. 허리춤에 가리개를 두르고, 신발을 신고 있다. 눈과 입은 주위에 두꺼운 검은색 원이 그려져 있는데, 이 눈매와 입가의 모양이 우는 듯 웃는 듯 미묘한 느낌을 준다. 전시된 1900년경 코샤레는 심술궂은 표정으로 허리춤에 주먹을 꼭 쥐고 있다. 1980년 경의 작품은 구부러진 막대기를 지팡이처럼 짚고 거들먹거리는 젊은이의 모습이다. 작가의 이름이 소개된 걸로 보아 실제 사용하기보다는 작품으로서 만든 것 같다.

코샤레는 카치나 의식에서 풍자와 해학, 우스꽝스러운 행동으로 교훈을 주는 이중적인 역할을 한다. 광대라고 해서 어리석고 다른 이들이 업신여길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카치나 의식에서 코샤레의 역할은 다른 누군가 지정해 주지 않는다고 한다. 코샤레 역을 맡은 사람은 그 역할이 자신을 불렀기 때문에코샤레 역을 맡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 태도로 미루어 보아 카치나에서 코샤레가 지닌 존경과 두려움을 한 몸에 받고, 친근한 동시에 경원시되는 이중적인 독특함을 짐작할 수 있다.

 

현대의 카치나로 <나를 지키기 위해 해야만 하는 일들> 광대가 눈길을 끌었다. 제목과 모습이 쉽게 연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엇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 하는 걸까? 코샤레가 쓴 모자의 뿔 한쪽이 부러져 금방이라도 떨어져 나갈 것 같다. 더 자세히 보면 모자의 뿔에 옥수수 껍질도 보이지 않는다. 코샤레의 모자 뿔에서 뻗어나 온 옥수수 껍질은 다산과 곡물의 수확을 상징하는 호피족의 생명력 자체이다. 이 코샤레는 신성과 생명력을 일부 잃어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래서일까. 자신을 지켜보는 관람객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없이 듯 두 눈을 한 곳에 집중하고, 기도하듯 발을 모으고 앉아 신중하게 바늘귀에 실을 꿰는 모습에서 간절함이 느껴진다. 옆에서 보면 코샤레의 복잡한 감정을 더 잘 볼 수 있다. 두려움, 회한, 슬픔과 온갖 복잡한 감정들이 스치고 그 모두를 수용하겠다는 의연함도 보인다.

땅과 모든 걸음걸음에서 생명과 감사를 느꼈던 북미 원주민은 뿌리내렸던 토양에서 강제로 분리되었다. 자신들의 영적인 존재가 쇠하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던 경험은 그들에게 큰 상처로 남았을 것이다. 웃기고, 비꼬고, 풍자와 해학을 담당하는 코샤레가 진지하게 실을 꿰고 있는 모습, 상처를 회복하고자 하는 마음을 숨기지 않는 간절함은 지켜보는 나에게까지 큰 울림을 준다. 다행히 바늘귀에 실이 들어가 있는 모습에서 문화의 맥이 이어지고 회복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증거로 전시장에서 전통을 잇는 토기, 바구니, 덮개 등을 볼 수 있었다.

전시회에서 코샤레 외의 다른 카치나 인형들도 만날 수 있었다. 구체적인 이미지로 형상화할 수 있는 영적인 존재의 이미지와 인형은 어린 아이들이 쉽게 친근함을 느끼고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들의 문화적 정신을 유지할 수 있도록 큰 도움을 주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성주신, 조왕신, 측신 등 집안을 수호하는 가택신의 모습도 친숙한 이미지로 우리 곁에 남아있었다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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