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문화 답사
북아메리카 North America
[국중박 인디언]나바호의 직조가 들려주는 이야기
국중박 인디언 답사(1) / 2024.07.24. / 진진
나바호의 직조가 들려주는 이야기
2024년 6월 18일부터 10월 9일까지 열리는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우리가 인디언으로 알던 사람들>에서 나는 북아메리카 나바호족의 직조 이야기에 매료되었다. 그들에게 직조는 자신들의 이야기이자 세상과의 연결이었다. 그들은 어린 시절부터 엄마나 할머니, 여성 친척들의 직조를 주의 깊게 살피고 그녀들이 풀어내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라왔다. 이야기는 이전 세대 나바호족 여성들로부터, 또 그 이야기는 그 이전 세대로부터 전해지며 이어졌고, 그들은 직조를 하며 그 속에 자신들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직조에는 선조들로부터 이어지는 이야기가 들어 있고 그 이야기는 조금씩 변화해 왔다. 그들에게 직조는 자신의 부족으로부터 뻗어 나와 있는 실의 가닥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와 다름없다.
직물을 짜는 모습을 떠올리면 우리는 보통 베틀 앞에서 씨실과 날실을 교차하는 작업만을 생각하게 된다. 한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손으로 이것저것 만드는 일을 좋아하는 나는 속으로 하루 종일 실을 끼우고 당기며 직조하는 그 일이 참 흥미롭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작업은 직조의 전체 과정에서 아주 일부에 불과했다. 베틀 앞에 앉기 위해 준비되어야 하는 과정이 지난할 뿐만 아니라, 직조를 배우고 만들어내는 데도 아주 긴 시간과 노고가 드는 까닭에 직조를 이어가려는 이들은 많지 않다고 한다. 전통적인 직조는 양털을 깎아 털을 빗어서 고르고 거기에서 실부터 잣아 내야 한다. 그리고 색을 내기 위해 자연에서 염료를 구해, 그 재료들로 실을 염색한다. 양을 키우는 일은 또 어떤가. 매일 그들을 데리고 나가 풀을 먹이고 길들이며 관리해야 털을 얻을 수 있다. 그들을 먹이고 보살피는 일부터 챙겨야 할 일들이 많을 것이다. 양을 키우고 길들이기 위한 여러 일부터 주변 식물에서 염료를 구하고 실을 염색하는 일 등, 이렇게 베틀 앞에 앉기까지 직조는 자신들과 주변의 자연을 연결하는 작업이다.
전시에서 보았던 영상에서, 한 여인이 베틀 앞에 앉아 날실 사이에 염색한 실들을 달리하며 끼워 넣는 일을 반복, 직물을 짜고 있었다. 단순히 옅은 황토색, 짙은 갈색, 검정등의 색들이 반복되는 가로 줄무늬의 직조물을 짜고 있겠거니 하며 무심히 영상을 바라보고 있는데, 그녀가 그 직조물에 담고 있는 것은 자신이 나고 자란 지역의 전경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내 눈에는 뜨거운 태양을 피할 만한 나무 한 그루도 보이지 않는 척박해만 보이는 땅을 아름답다고 표현했다. 나바호족이 살고 있는 북아메리카 남서부 지역은 건조한 사막 지역으로 흙먼지가 날리는 평원이 이어지고, 깊은 협곡들로 모래와 바위가 켜켜이 펼쳐져 있는 곳이다. 그러고 보니 단순히 줄무늬로만 보이던 직조물에서 그들이 살고 있는 자연이 보였다. 마치 우리나라의 산들이 첩첩이 이어져 있듯이, 그녀가 짜고 있는 직물에 북미 남서부 사막의 모래 언덕과 바위 협곡의 풍경이 담겨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배워온 직조로 그곳의 광막한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직조는 그녀가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이자, 그녀는 거기에 자신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그들에게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나바호족의 직조는 신이 준 선물이다. 그들의 직물은 최고의 교역품이었으며,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예술품으로 여겨진다. 전시에는 나바호족의 직물 여러 점이 전시되어 있었다. 나는 그 중 기학학적 무늬가 주를 이루는 다른 직물들과 달리, 전통 문양과 함께 기차와 교역소와 같은 이주민의 문화, 알파벳으로 보이는 문자가 밝고 화려한 색으로 짜인 직물이 눈에 들어왔다. 그 직물은 양털에서 실을 뽑아내고 자연물로 염색하는, 전통방식이 아닌 방법으로 만든 실을 사용하여 만들어졌다고 했다. 그 직물은 자신들의 삶을 변화시킨 철도와 교역소 같은 문물을 전통 문양과 함께 담아내며 이주민들에 의해 자연 환경이 훼손되어 더 이상 전통적인 방법을 고수할 수 없게 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양을 키우기 어려워진 환경에서 전통의 방식을 고집하기보다 다양한 색을 이용할 수 있는 현대의 조건을 적극 활용하며, 전통과 문명 사이에서 힘겹게 균형을 맞추며 현재를 살고 있는 그들의 이야기가 담긴 고유의 작품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들은 직조를 통해 과거와 현재를, 전통과 바깥세상을 연결하고 있다.
나바호족에게 직조는 세상과의 연결이자 그들이 살아오고 지금을 살아가는 스토리텔링이다. 예쁘고 화려하게만 보였던 나바호족의 직물이 전시를 관람하고는, 아름다운 하나의 세계로 다가왔다. 그들의 직조 안에는 자연과 우주와 교감해온 애잔하고도 따뜻한 수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마음을 조금이나마 갖게 된 감동적인 전시였다.
<전통적인 방식에서 벗어난 나바호족 덮개(Blanket)>
나바호족 장인(뉴멕시코주와 애리조나주)
1900년대 초반, 양모로 직조, 121.92* 74.93 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