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문화 답사
북아메리카 North America
[국중박 답사기]야생의 사고, 자신의 옳음을 의심하기
‘우리가 인디언으로 알던 사람들’을 관람하고
–야생의 사고. 자신의 옮음을 의심하기
인류의 편의로 발명된 제도는 이제 인간을 그들의 도구로 삼아 불멸을 꿈꾸고 있다. 제도에 예속된 현대인도 불멸을 소원하며 자신의 본성과 필요를 인식하지 못한 채 무기력하게 스스로를 착취하고 있다. 이러한 현대인의 사유 방식을 만물의 연결성을 기민하게 인식하는 ‘야생의 사고’와 대비해 노예제로 존속하는 국가성에 포획되어 생명력을 상실한 ‘제도적 사고’로 기술해 보겠다. 인문세에서 만물이 연결되어 있다는 북미 원주민들의 순환적 세계관과 야생의 사고를 고찰해보기 위해 진행된 《우리가 인디언으로 알던 사람들》 답사의 현장에서 박물관 곳곳에서 발견되는 ‘국가성stateness’에 혼란스러웠기 때문이다. 이는 나의 편견으로 인한 착각이었을까? 혹은 사태를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었을까? 제도에 길들여진 나는 나와 타자를 명징하게 구분하는 이분법적 사고에 귀속되어 이질성에 불쾌의 감각을 느끼며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우리는 당연하다고 느껴지는 이러한 감각과 관점 속에서 무엇을 놓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환경에서 어떻게 활력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야생의 사고와 국가성이 생생하게 대립하는 것으로 느껴져 멀미가 유발되었던 답사기를 따라가며 질문을 이어가 보자.
야생적 사고와 국가성
《우리가 인디언으로 알던 사람들》 전시회의 설명에 따르면 북미 원주민들은 북부의 춥고 기후와 남부의 건조한 기후, 초원이 펼쳐지거나 울창한 산림 지역에 따라 다채로운 언어와 문화를 지니며 살아왔다. 원주민들은 자신들이 살아가는 지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이용해 집을 짓고 생활해왔다. 북부의 빙하 지역에서는 얼음으로 만들어진 ‘이글루’라는 주거 형태에서 털옷을 입고, 수렵 생활을, 북서 해안의 온난습윤한 기후에서는 삼나무를 이용한 꽤 넓은 판잣집인 ‘플랭크 하우스에서’, 남서부의 사막이나 반건조 지역에서는 진흙과 지푸라기로 만든 ‘어도비’의 형태로, 초원지대에 ‘티피’라는 텐트의 주거 형태 등으로 생활해왔다. 이러한 다양한 방식의 문화에도 불구하고 북미 원주민들의 세상은 둥근 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안의 모든 만물이 연결되어 있다는 공통의 ‘원형 세계관’을 지니고 있었다. 이러한 만물의 연결성을 레비 스트로스는 ‘야생(savage)의 사고’라고 부른다.
달님의 설명에 따르면 이러한 야생의 사고는 ⓵일상의 장면을 구체적으로 떠올리는 구체의 과학, ⓶ 만물의 치우침 없는 공생성을 탐구하는 대칭성 모색, ⓷차이의 발견과 우주의 관계성을 통합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이와는 대조적인 ‘국가성stateness’은 무엇일까? 『농경의 배신』의 저자 제임스 C. 스콧에 의하면 “국가성이란 왕, 전문화된 관료, 사회적 위계, 기념비적 중심, 도시 성벽, 조세 및 분배 체계가 갖추어진 제도적 연속체”(전경훈 옮김, 제임스 C. 스콧, 『농경의 배신』(48쪽), 책과함께)이다. 그는 국가성을 국가성과 대비되어 보이는 야생적 사고와 제도적 사고의 양자택일의 문제로 선택할 일이 아니라, 이러한 조건이 더 많으냐 적으냐의 판단, 즉 정도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정의에는 국가는 ⓵여전히 곳곳에서 힘을 발휘하며 사람들을 길들이고 있다. ⓶자연발생적이 아니라 만들어진 제도이기 때문에, 제도의 기반을 흔들거나 해체해서 재조합할 수 있다. ⓷그 방식은 정도의 차이를 발견하고, 또 다른 차이를 만들어내는 작은 행위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다는 점이 내포되어 있다.
우리는 교과서에서 인류는 점진적 형태로 발전해 왔으며, 그나마 신석기 농업 혁명 이후로그나마 사람답게 살게 되었다고 배워왔다. 또한 부모님, 선생님 말씀과 정해진 매뉴얼대로 살아가기를 강요하는 획일적 교육 환경 속에서 당근과 채찍질을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왔다. 인류의 정착 공동체인 초기 국가는 전유할 수 있고, 측량할 수 있는 단일한 곡물 재배와 그 곡물을 관리하는 인적 자원을 늘리는 것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국가는 인구 집중화에 따른 전염병의 확산과 환경이 파괴되며 먹을 것이 부족해진 국민들은 조세, 부역, 징병을 못 견뎌 스스로 탈주하거나 반란을 일으키며 붕괴되는 내부적 구조의 취약성을 가졌다. 그러나 서구의 제국주의, 식민화와 함께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려는 목적으로 자연을 착취하며 그 몸집을 불려 온 형체 없는 권력 시스템은 문자의 기록과 함께 성문화되어 인류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필수조건이 되었다. 그리고 국가는 자신의 존속 수단인 인류에게 자연 세계를 자기가 좋아하는 형태로 조성할 수 있다고 끊임없이 주입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삶을 꾸려갈 수 있는 인간의 자율성을 빼앗고, 그와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며 파악불가능한 사람들을 야만인이라고 낙인찍었다. 그러므로 단일한 척도, 동일한 세계관, 동일한 문화 이외는 인정하지 않고, 배척하려는 획일성이 강하게 지배하는 기운이 팽배하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국가성이라 말할 수 있겠다.
북미 원주민들의 세계관
이러한 국가성이 지배하는 세계와는 사뭇 다른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북미 원주민들은 세상을 둥근 원을 이루고 그 안에서 사는 사람, 동물, 식물, 심지어 무생물까지도 모두 연결되어 있다고 인식하며, 어느 한쪽으로 치우침 없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삶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들은 자연을 가장 위대한 스승으로 여기며, 자연에서 무언가를 얻는 것을 선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순환적 세계관은 그들의 생활상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북미 원주민들의 세계관은 의식주에서부터 자연에서 얻은 재료와 자연에 영감을 얻어 그들의 방식으로 해석한 기하학적 무늬를 표현한 예술품, 다른 사람들과 다음 세대를 위해 필요 이상으로 자연을 취하지 않는 행위에서 드러나며, 공동체를 하나의 의식으로 연결시키는 춤과 의례를 통해 이어져 왔다.
전시관에 들어가서 처음 눈에 들어오는 부분은 ‘자연은 아이들에게 가장 큰 선생님’이라는 문구였다. 이 문구 옆에는 사슴 가죽으로 만들어진 요람과 아기를 위한 모카신이 전시되어 있으며, 그 뒤 벽면에 인간에게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태양과 달, 비, 산들바람의 아름다움을 배우기를 바라는 아파치족의 기도문이 적혀있다. 우리가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태양과 달, 비, 산들바람이 지친 인간을 회복시켜 주며 새로운 활력을 주는 아름다운 것임을 깨닫기를 바라는 기도문이었다. 기도문을 천천히 음미하며 뒤를 돌아보니 계절의 변화와 함께 달을 구분하는 원주민의 달력이 전시되어 있다. 위시람족에게 2월은 모닥불 주변에 어깨에 어깨를 기대는 달이고, 10월은 카누 타고 여행하는 달이다. 체로키족에게 3월은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달이며, 8월은 열매를 따서 말리는 달이다.
위시람족의 2월을 떠올려 본다. 위시람족 사람들은 아직은 가시지 않는 추위를 피하기 위해 모닥불 근처에 앉아 있다. 그들은 서로의 어깨에 기대어 무엇을 이야기했을까? 위쉬람족은 다른 계절에 비해 먹거리가 부족한 겨울에 대비하기 위해 주변의 동식물을 사냥하고 채집해 부족민들이 먹을 만큼의 음식을 비축해두었을 것이다. 겨울의 막바지인 2월에는 비축해둔 식량이 점점 바닥을 보이고 있으니 부족민들의 고민이 많아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추위가 지나면 따뜻한 봄바람이 불어온다는 순환적 세계관을 가진 북미 원주민들에게 모닥불과 어깨를 기댈 수 있는 부족민들의 온기 덕분에 마냥 춥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체로키족도 3월이 되면 따뜻한 봄바람과 개화하는 꽃들에 마음이 흔들리는가 보다. 이처럼 북미 원주민들은 세상을 관계 속에서 바라보았고, 이를 기반으로 가치관이나 관념이 형성되었다. 그들에게 자연은 인간의 삶과 따로 떼어 존재하거나 마냥 두려움을 자아내거나 이득을 취하기 위한 착취의 대상으로만 존재하지 않았다. 원주민들에게 자연은 인간과 더불어 살아가야 함을 가르쳐 주는 위대한 스승이었다.
아기를 위한 요람과 모카신
이러한 가치관이 제일 잘 드러나는 것이 나는 아기를 위한 요람과 모카신으로 보인다. 북미 원주민의 아기들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온몸으로 자연을 느끼며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사슴 가죽으로 만들어진 요람을 살펴보자. 세로 1m, 가로 30cm 정도의 카이오와족의 요람은 아이를 세워서 감싸는 모습을 보여주듯 세로로 세워져 전시되어 있었다. 요람의 뒷판은 단단한 나무 등으로 판판하게 만들어져 말에 매거나 수직으로 세울 수 있게 고정하는 역할을 해주었다. 그 판을 등뒤에 두고 아이를 감싸는 부분은 부드러운 천과 화려한 무늬와 매듭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이는 이동 중에 자연을 느끼되 차가움은 막고 요람에서의 이탈을 방지하기 위해 앞을 여밀 수 있게 꼼꼼한 그물 매듭으로 얼키설키 연결되어 있다. 흥미로운 부분은 발이 놓일 위치에 꼼꼼하게 엮어진 여러 가닥의 매듭 장식이다. 상상력을 발휘해봐도 어떤 용도와 쓸모에 의해 만들어진 부분 같아 보이지 않았다. 다만 말에 매어 이동한다는 점에 착안해서 말의 갈기를 표현한 것은 아닐까 짐작해본다. 이동을 도와줄 말에게 그와 닮은 모습으로 예술성을 가미해 그와의 어우러짐을 고려한 것을 아니었을까? ‘태워줘서 고마워~우리의 아이도 안전하게 잘 부탁해~’라는 마음과 함께 말이다.^^
모카신은 어떠한가? 어른 손바닥보다 조금 작아 보이는 크기의 모카신은 굳이 만져보지 않아도 무척 부드럽고 편해 보인다. 발등에 구슬로 꿰어 만든 장식은 어떠한가? 어른 새끼손톱의 20분의 1 정도의 크기의 구슬은 색깔을 일정하게 맞춰 가운데 원을 중심으로 역 사다리꼴의 모양으로 사방으로 확장되어 하나의 무늬를 이룬다. 4개의 방향으로 확장된 무늬는 직사각형과 역 사다리꼴의 모양으로 이뤄어져 있지만 마치 원처럼 보이며, 빙글빙글 돌아가는 바람개비가 연상된다. 무늬를 좀 더 자세히 보니 가운데 검은색의 구슬 8개가 두 줄의 직사각형 모양으로 꿰어져 있고 이를 중심으로 사방으로 사슴 가죽과 색이 유사한 구슬은 2개씩 수를 늘려가며 4줄로 꿰어져 있다. 사슴 가죽과 비슷한 색감과 한 줄씩 개수를 늘려간 구슬의 영향 때문인지 가운데 부분을 여러 번을 보아도 원처럼 보인다. 사방으로 뻗은 구술은 검은색 1줄, 짙은 초록색 3줄, 다시 검은색 1줄, 짙은 다홍색 3줄, 마지막에 검은색 1줄로 마무리되어있다. 신발의 전체 모양은 폭이 좁은 앞부분에 비해 발등 부분이 넓게 만들어져 있는데, 이 신을 만든 예술가는 그 부분을 놓치지 않는다. 발등을 덮은 끝부분에 가운데 장식보다는 작은 사이즈지만 가운데 장식된 구술의 배열과 같은 색상 패턴의 역방향으로 구슬 장식을 했다.
길이 15cm, 폭 7cm 가량의 작은 신발 하나에 들인 정성을 보아도 그들이 아기를 어떻게 대하고, 자연과 어떻게 관계 맺고 있는지 짐작해 볼 수 있다. 북미 원주민들은 자연의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음을 알고 있었고, 그들에게 존중과 공경의 마음을 담아 살아갔다. 전시회 도록에 의하면 모카신은 부족마다 만드는 스타일과 꾸며진 표식이 다르기 때문에 원주민들 사이에서는 신발을 보면 어느 부족 소속인지 알아볼 수 있다고 한다. 그들은 오늘날에도 행사가 있을 때 모카신을 신는다고 한다. 특히 11월을 ‘북미 원주민의 문화유산의 달’로 지정하여 이를 ‘모카신을 흔드는 시간’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북미 원주민들은 오늘날에도 미국, 캐나다 곳곳에서 부족의 고유한 문화에 자부심을 느끼며 전통을 계승하고 살아가고 있다.
전시회 관람과 국가성의 만남–감시와 통제
북미 원주민들의 세계관이 녹아있는 그들의 일상과 의례에 사용된 물건들을 보며 한껏 고양된 기분과 함께 등 뒤와 전시관 곳곳에서 느껴지는 시선이 있었다. 전시관의 입장 전에 우리는 전시회 관리를 맡은 직원의 안내와 설명을 들었다. 물을 비롯한 간식의 섭취를 금지하고, 다른 관람객들을 위해 너무 소란스럽지 않아야 하고, 영상은 찰영 가능한 곳에서만 찍어야 하는 등의 안내다. 유물을 보존해야 하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관람해야 하는 것이므로 당연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문제는 관람하면서 따라오는 시선이었다. 전시회 직원들은 관람객들이 그 룰을 지키지 않는지 예의 주시하며 전시회 곳곳에서 매의 눈으로 관람객들을 지켜보았다. 시선이 자뭇 따가웠지만 전시회의 쾌적한 관람을 위한 조치라 생각하며 인문세 선생님들과 의견을 주고 받으며 북미 원주민들의 유물에 다시 몰두했다.
알래스카 원주민의 사냥 도구인 작살과 손목 보호대를 관람하며 그들의 섬세한 기술에 혀를 내두르다 보니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나 보다. 전시회 직원이 소리를 조금 낮춰 달라고 말했다. 당연했다. 다른 분들께 혹시 방해가 된다면 소리를 줄여야 함은 마땅했다. 그때 마이크를 부착한 박물관 공식 해설사님이 등장했다. 공식 절차를 밟아 박물관에 인정받은 해설가님의 목소리는 전시관의 두런거리는 소리를 압도했다. 바로 옆에 있으면 귀가 먹먹할 정도였다. 직원에게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는다. 조금 의아했지만 다시 전시회에 집중해 보기로 했다. 알래스카의 바닷가에 사는 이누피액족의 의례용 외투는 정말 멋있었다. 바다코끼리와 오호츠크뿔쇠오리의 깃털과 장식으로 만들어진 옷이라는데, 외투 전체에 같은 간격으로 깃털이 장식된 모습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지금 바로 입고 나가도 찬탄을 받을 만한 예술성이 가미된 옷에 흠뻑 빠졌다. 그 모습이 궁금하여 전시물에 가까이 다가갔나 보다. 또 직원의 출동이다. 전시품에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안된다는 설명이다. 관람객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이 문제인 모양이다. 다리는 선 밖에 고정되어 있었지만, 상체를 선 안으로 기울인 게 문제가 되었나 보다. 여기서부터 더 이상 전시회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관람을 멈춘 채 전시관을 둘러봤다. 전시관 모퉁이마다 직원들이 대기 중이다. 누군가 유리관에 전시된 유물에 다가갈라치면 직원들은 움찔한다.
직원들의 각각의 얼굴은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눈초리가 따가웠달까? 그리고 북미 원주민들과의 교감은 끊어졌다. 직원들은 아마도 직업정신이 투철했을 것 같다.
미타쿠예 오야신(Mitakye Oyasin)을 음미하다–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