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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 탐구생활》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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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와 겐지] 미야자와 겐지의 세계관

작성자
최수정
작성일
2024-11-22 22:53
조회
25

<미야자와 겐지의 세계관>

2024.11.22. 최수정

 

미야자와 겐지의 세계관

 

미야자와 겐지みやざわけんじ, 宮沢賢治, Miyazawa Kenji(1896.8.27.~1933.9.21.)

 

애니미즘과 미야자와 겐지

애니미즘은 만물에 영()이 깃들어 있다는 사고체계다. 자연현상이나 사물이 인간과 같은 영이 있어 살아 있다고 여긴다. 만물에 깃든 영()은 동등하지만 영이 깃든 사물에 따라 그 형태가 구별된다. 동등한 영으로 연결되어있는 인간과 사물은 하나처럼 가깝다. 그 가까운 사이에서 언제 어느 때나 동·식물과 사물에 있던 영이 나에게 깃들어 나의 존재 형태가 바뀐다.

미야자와 겐지는 이런 애니미즘을 바탕으로 동·식물과 사물에 인간과 같은 하나의 인격을 부여한다. 그의 동화세계는 언제나 사람과 동·식물 간의 동등함이 전제되어 있다. 인간과 동물이 서로 섞이고 합일되는 세계에서 사람과 동물의 친밀한 교감을 동화로 구현한다.

 

모든 존재는 형제다

미야자와 겐지는 살아 있는 존재는 모두 형제다라고 말했다. 그에게 당신은 사람과 동물, 식물, 광물을 모두 함유한다. 그가 생전 사비로 발간한 유일한 동화집주문이 많은 요리점서문에 그의 이런 세계관이 잘 나타나 있다. 이 글에서 그는 자신의 모든 글이 사람과 동물의 세계를 빛과 바람을 타고 오가며 숲과 들판에서 동물들로부터 이야기받아온것이라 말한다. 그의 수많은 이야기는 먼 북쪽의 몹시 추운 곳에서 바람에 실려 토막토막 날아왔습니다”(빙하쥐 모피), “이상한 엽서가 왔습니다”(도토리와 들고양이)라고 시작한다. 그에게 바람의 언어로 이야기를 전해주는 존재는 언제나 인간이란 존재를 넘어선 형제들이었다.

미야자와 겐지는봄과 아수라의 서시 첫 문장에서 는 실체가 아닌 하나의 현상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눈에 보이지 않고 붙잡을 수 없소리, 색채 또는 빛의 여러 감각 현상들조차 생명 현상으로서의 라는 뜻이다. 빛과 소리의 강도가 끊임없이 부딪히며 흔들리고 섞이면서 변화한다. 그가 태양의 환술이라 부르는 것처럼 이것은 마치 마술과 같다. ‘를 포함한 세계는 그 자체로 잠시도 머무르는 법이 없이 시시각각 다르게 변한다.

첼리스트 고슈의 주인공이 불청객 같이 느끼던 동물들에게서 자신도 모르게 음악의 기예를 배우고 나누듯이, 만물은 자신도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 서로가 서로를 통해 알고 배우고 변화해가는 도중이다. 그 도중에서 만물은 서로 먹고 먹히며 에너지를 교환한다. 그러나 삶을 위해 죽음이 필요한 세계에서 미야자와 겐지는 생명의 근본적인 번뇌, ‘육식의 딜레마에 끊임없이 고통스러워한다. 만물이 하나라는 세계 인식 속에서 생명을 먹어야 사는 존재로서의 고뇌는 쏙독새의 별이라는 작품에 잘 드러나 있다. 미야자와 겐지는 나를 위해 죽어가는 생명들 때문에 괴롭고 슬프다. 사람도 동물도 이 세계에서는 대등하고 평등하다는 그의 생명관에 배치되는 듯한 이 육식의 딜레마에서 미야자와 겐지의 깊은 아픔이 있다.

 

이하토브, 이상향

이하토브는 저자의 심상 속에 실재하는 일본 이와테현이다. 미야자와 겐지에게 이하토브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완전한 지혜를 구사하고, 어디까지나 생물의 일원이라는 겸허함을 토대로 살아 있는 것은 모두 형제라는 사상을 구현하는 곳이다. 그곳에서는 그 어떤 일도 가능하다. 자신을 열어 만물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마을을 가로질러 흐르는 강이 영국의 이기리스 해안이 되기도 하고, 구름을 타고 바람을 따라 북쪽으로 여행할 수도 있고, 태양의 환술 아래 튤립과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다.

그곳은 또한 미야자와 겐지가쏙독새의 별에서 보여주었던 육식의 딜레마가 해결될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그가나메토코 산의 곰이야기에서 말하려고 했던 것처럼 그곳은 만물의 자기희생이 바탕이 되는 곳이다. 곰이 인간에게 먹히고 인간이 곰에게 몸을 바치는 관계로 서로를 돌보는 곳이다. 나메토코 산의 곰이 사는 그 세계에서는 누가 인간이고 곰인지 누가 먹고 먹히는지 모르게 된다. 포식자와 피식자의 위치는 언제든 바뀔 수 있고, 절대적 우위에 있는 존재란 없다. 내가 누군가의 생명을 먹고 살았다면 언젠가는 내가 누군가의 생명을 먹일 수도 있다.

생명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나의 생명이 필요한 경우에는 비록 울면서라도 먹어도 된다. 그 대신 만약 필요한 생명이 나 자신이 되었을 때도 굳이 피하지 않는다”(미야자와 겐지 전집2, 박정임 옮김, 너머, 380)

베지테리안 대축전에서 복잡한 마음으로 채식과 육식의 논쟁을 이어가며 등장하는 대사의 한 부분처럼 그의 이상향은 기꺼운 자기희생이 가능해지는 곳이다. 그리고 그 이상향을 위해 만물이 서로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동화를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뒤섞인 마음으로 하나가 된다

미야자와 겐지는 사물을 바라볼 때 그 자체의 마음이 된다. 나와 사물의 경계가 흐려지며 뒤섞이는 경험을 동화로 형상화한다. 그래서 미야자와 겐지 동화가 한순간 불쑥 불어왔다 지나가는 바람처럼 오고 가는 방향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먹고 먹히는 존재들의 절대적인 방향이 고정되어 있지 않은 것처럼 그의 세계는 어지럽고 멀미가 난다. 사슴 춤의 기원에 등장하는 가주가 너무 열심히 사슴을 보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도 사슴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자신이 사슴인지 사람인지 구분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자신이 바람인지 오리나무인지 참억새인지 모르게 뒤섞여 함께 빙글빙글 돌고 있는 것처럼 느낀다. 알 듯 말 듯 모를 것 같은 교감으로 존재의 뒤섞임을 경험한다.

나와 세계가 하나가 되는 이런 경험의 순간이 미야자와 겐지에게 영감이 되어 다른 존재들의 목소리로 들린다. 그리고 그 목소리를 받아 적은 이야기가 그가 쓴 동화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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