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학 탐구생활》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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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와 겐지] 경계가 허물어지는 곳
미야자와 겐지/2024.11.22/손유나
경계가 허물어지는 곳
우리네 삶은 흑과 백, 옳음과 그름을 명명백백하게 드러내어 보여주지 않는다. 참인 줄 알았던 것이 거짓이었고, 허튼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 귀한 가치를 지닌 것이었으며, 때로는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진실을 알게 되고, 어쩌면 영원히 모른 채 잊히고 만다. 우리는 혼탁한 세상에서 살아가며 자주 오류와 마주한다.
미야자와 겐지의 동화에서 등장하는 이기리스의 해안은 우리가 사는 세상과 같이 사물의 경계가 허물어져 혼탁하게 섞이는 곳이다. 강줄기는 동쪽에서 출발해 서쪽으로, 산악지대를 가로질러 해안가로 보이는 곳에 다다르고, 사루가이시 강과 기타카미 강, 두 강이 만나는 지점에서 약간 하류에 위치했다. 주인공은 이 기타카미 강의 상류에서 살다 여름방학의 농장실습 기간에 하류에 있는 이기리스의 해안에 방문하면서 대척점에 있는 것들이 서로 섞였다는 느낌을 준다.
동시에 이기리스의 해안에서는 본질과 감각적으로 체험 사이의 차이로 사물의 식별이 불분명해진다. 강의 지형은 해안을 닮았고, 물결이 크게 일면 파도치는 듯 보여 바다처럼 느껴진다. 강변에 드러난 푸르스름한 응회질 이암은 햇빛 속에서 새하얗게 보이기에, 이 주변을 걷노라면 정말로 영국의 백악 해안을 걷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렇게 감각적으로 느껴지는 현실 앞에서 호수와 바다의 정의 크게 중요하지 않은 듯하다. 또한 1백만 년 전 먼 옛날 사람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간 속에서는 한때 바다였고, 그리하여 조개껍질 화석과 같은 바다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기에 바다라고 부르는 것이 어느 시점에서는 나름 타당하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이 강을 배경으로 나오는 일화도 하나 같이 불분명하고 보통의 생각과 다르다. 말을 탄 군인들이 강을 건너올 것이라 예상했지만 군인들은 오지 않았고, 어딘가 모자라 보이는 사람이 쇠지렛대를 들고 해안가를 어슬렁거린다. 하얀 화산재층에 크기 5척이나 되는 무언가의 발자국이 발견되고, 바위를 낫으로 베려는 학생들이 등장하는 등 알 수 없는 일투성이다.
하지만 이 혼탁함 속에서 주인공은 학교에서 수업을 하고, 누에를 치고, 농사를 지으면서 현실을 살아간다. 그리고 이 혼탁한 세상에서 가장 필요한, 자신의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분별력을 갖추게 된다. 하지만 혼탁함 속에서 본질을 파악하는 현명함은 그저 얻어지지 않는다. 깨달음에는 바늘로 찔리는 듯한 고통이 따라온다.
주인공은 어리석어 보였던 사람과 대화를 하면서, 사실은 쇠지렛대로 바위나 찌르는 허튼 짓을 하는 사람이 사실은 긴 안목으로 위험을 대비하고 있던 속깊은 사람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 남자는 누군가 물에 빠지지는 않을까 걱정스러워서 다른 용무가 있는 척 살펴보고 있었고, 바위를 쇠지렛대로 찔렀던 것은 사실은 구조를 위한 부표의 추로 사용할 수 있을까 살펴보는 중이었던 것이다. 깨달음의 순간은 매우 부끄럽고 고통스럽다. 주인공은 “바늘로 찔리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맨몸으로 학생들과 함께 하얀 바위 위에 서 있었는데, 마치 태양의 하얀 햇살에 야단을 맞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213)” 라고 표현한다.
주인공은 마지막에 보리타작을 할 계획이다. 보리타작은 까끄라기가 몸속으로 들어와 따끔따끔하므로 무척 괴로운 작업이고, 누군가는 농사일 중에서 가장 하기 싫은 일이라 말하지만, 주인공은 어떻게든 즐겁게 하려고 한다는 의지를 표명한다.
이 이야기는 보이는 것과 본질은 다를 수 있으니 측면을 두루 살피는 분별력을 갖춰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이기리스 해안이, 해안처럼 보이지만 해안이 아닌 것처럼, 하지만 사실은 먼 과거에는 해안이었으니 완전히 틀린 말이 아니라는 사실처럼, 수상쩍은 사람이 사실은 속 싶은 사람이었다는 진실처럼 말이다. 이 분별력은 그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고통 속에서 얻어지는 것이니 고통 뒤에 숨겨진 커다란 가치를 깨달을 필요성도 함께 알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