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학 탐구생활》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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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을 나눌레오] 노동의 의미
2025. 1월 글바다
노동의 의미
2024.12.16. 최수정
주제문: 노동은 인간을 생산한다.
글의 취지: 야생의 노동과 현대 노동의 차이로 인간성과 노동의 관계를 생각해보자.
나에게 노동이란 먹고 살기 위해서 하는 행위다. 많은 사람들은 살기 위해 돈을 필요로 하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해야 한다. 돈 없이는 사회적 삶도 없으며 사실상 생존이 불가능하다. 설혹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부가적으로 돈이 따라 오는 경우도 있지만, 그 또한 수입이 없다면 오래 하기 힘들다.
노동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돈이 충분하면 노동을 그만둘 것이고, 노동할 시간에 다른 것을 하며 자유롭게 살고 싶어 한다. ‘노동’이 자신을 속박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는 노동을 하며 행복을 느끼지 않고, 노동이 오히려 삶을 고통스럽게 한다는 생각이 깔려있다.
그러나 조르주 바타유 『라스코 혹은 예술의 탄생』에 의하면 인류 초기 야생의 노동은 ‘사유’의 방식이었다고 한다. 돌을 이용해 무기를 만들던 석기 시대인들의 “노동은 미리 앞서서, 곧 다가올 시간 속에, 아직은 존재하지 않지만, 곧 만들어질 어떤 사물[대상]의 자리를 잡아놓았고, 노동은 순전히 이런 목적에서 발생하였다”(조르주 바타유, 차지연 옮김, 『라스코 혹은 예술의 탄생』, workroom, 51쪽)고 했다.
노동이 인간의 사유 활동의 연장으로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활동이었다는 것이다. 나는 이와 관련된 예를 인류학 시간에 읽었던 『서태평양의 항해자들』에서 발견했다. 『서태평양의 항해자들』 트로브리안드인들은 식용작물을 얻는데 필요 이상의 노동을 하여 잉여를 생산한다. 그들의 노동은 많은 부분이 실용적이기보다는 ‘심미적 측면’에 투입된다. 밭을 깨끗하게 하고 산뜻하게 보이도록 만들고, 깔끔하고 튼튼한 울타리를 치며 강하고 큰 나무 지지대를 설치하는 등 밭을 보기 좋게 가꾸는데 많은 시간과 노동을 바친다. 비실용적 요소들이 오직 장식과 주술적인 목적으로 사용되는 모습도 보인다.
트로브리안인들에게 일과 노력은 그 자체가 목적처럼 보인다. 어떻게 하면 잘해볼지 고민하는 일에 끝이 없다. 노동을 통해 자연물의 질을 향상시키고 미적 아름다움을 더하는데 긍지를 느끼는 모습에서 ‘노동’이란 무엇인가라는 생각에 머물렀다.
과잉생산된 잉여물은 다른 사람을 주며 그들이 원하는 것은 부의 축적이 아니라 명성이다. 실용적인 의미에서는 이익을 챙기지 못한다 하더라도, 경작자는 그의 경작 규모와 수확의 양과 질적인 면을 통하여 직접적이고 상황에 맞는 굉장한 칭찬과 명성을 얻는다. 그 위세와 명성을 위해 노동한다.
이들의 노동은 내가 생각하고 있던 노동과 너무도 다른 모습이다. 이들은 매우 복잡한 사회적·전통적 성격의 동기에 이끌려 일을 한다. 그들은 눈앞의 이익추구에만 급급하거나, 실용적 목적의 달성만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 그들이 노동을 통해 만들어낸 잉여는 사적으로 소유되지 않고, 축적되지 않는다. 노동으로 생산한 생산물은 많은 사람들과 공유되고 그 공유의 범위가 자연까지다.
트로브리안드인들의 노동은 처음부터 관계에 대한 사유로 시작된다. 내 힘으로 생산된 생산물을 누구와 나누고 어떻게 쓰일지 생각하며 시작된다.
무용한 노동, 야생의 노동
인간이 노동을 통해 생산해야 할 것이 유용하고 실용적인 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고귀하고 즐거운 일, 자신의 고유성을 조직해나가는 활동
트로브리안드인들의 심미적 생산을 위한 노동은 예술의 행위를 닮았다.
실용적 노동
현대의 노동의 목적은 돈이다. 수단을 목적으로 삼으면서 오히려 노동으로 고통받고 있다. 돈은 내가 소유하고, 나를 위한 과시용품을 구입하는데 사용한다.
생산된 인간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