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로 건너뛰기

 

 

《인류학 탐구생활》 편집실

답사 가고 글을 쓰고!

 

[인류학을 나눌레오] 먹는다, 세상과의 연결

작성자
진진
작성일
2024-12-17 05:02
조회
71

인류학을 나눌레오(9) / 먹는다는 것(7) / 2024.12.16. / 진진

 

먹는다, 세상과의 연결

 

주제문 : 나는 먹음으로써 세상과 연결된다.

글의 취지와 의의 : 맛있게 먹고 배부르게 먹고 몸에 좋은 것을 먹는다. 티비를 봐도 온통 먹는 방송이고 우리는 정말 열심히 먹는다. 그런데 먹거리와 나는 뭔가 끊어진 느낌이다. 후지하라 다쓰시의 먹는다와 먹거리의 재정의를 통해 어떻게 먹어야 세상과 연결될 수 있는지 생각해보자.

 

서론 연결이 끊어진 먹음

본론 싸는 게 먹는 일

생명을 먹는다

썩을 것을 먹는다

관계를 먹는다

결론 달라진 먹는 모습

연결이 끊어진 먹음

망고를 사러 온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망고를 집어 들고 망고의 상태가 괜찮은지 이리저리 살펴보며 무게는 어느 정도 되는지 가격은 얼마인지를 농부에게 확인한다. 다른 사람 또한 망고를 집어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다 한입 베어 물어 맛을 본다. 천천히 망고를 음미하며 그는 농부에게 이 망고가 어떻게 키워졌는지 어떤 색다름이 있는지를 묻는다. 언젠가 들었던 오래전부터 인도에 전해지는 이야기다. 이 일화의 출처나 교훈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첫 번째의 사람에게서 내가 장바구니 가득 장을 볼 때 식료품을 고르는 모습과 외식을 할 때 식당을 고르는 모습 들이 오버랩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과 내 건강을 생각하고, 얼마나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는지 먹는 데 번거롭지는 않은지, 다른 제품이나 식당에 비해 가격이나 양이 적당한지 따져서 먹을 것을 고른다. 나는 이렇게 식재료를 고르고 음식을 먹으며 똑똑하게 먹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내 입을 즐겁게 해주고 배를 채워줄 음식들은 냉장고와 찬장에 차곡차곡 쌓여갔고, 내 기억에서 잊혀져 유통기간을 넘긴 음식들은 어느 날 쓰레기통으로 가득 담겨져 버려지기를 반복했다. 나는 먹거리를 대하는 내 태도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나는 얽혀 있는 이 고리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야 할지 알 수 없는 답답한 마음으로 먹거리를 마주하게 됐다. 보통은 그 목 메이는 마음도 잊고 음식들을 내 입속으로 잘도 들여 넣었지만, 냉장고와 찬장에 쌓여가는 음식들과 먹다 남겨지고 때를 놓쳐 버려지는 음식들을 볼 때마다 다시금 불편함이 올라왔다.

인간에게, 생명에게 중요한 먹거리가 어쩌다 이렇게 마구 담겨져 구석에 처박히는 신세가 돼버렸을까.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 됐을까. 이런 문제를 품고 있던 중에 나는 인문세의 기술인류학 세미나에서 전쟁과 농업(후지하라 다쓰시 지음, 최연희 옮김, 따비)을 읽게 되었다. 나는 이 책의 먹는다는 행위와 먹거리의 재정의를 통해 먹는 것에 대해 근원적으로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내게 먹는다는 행위는 내 개인에게 국한된 일이었다. 먹는다는 일은 내 입의 쾌락과 내 배부름, 내 몸의 건강을 위해서 먹거리를 집어넣는 일이었고, 내가 먹는 것은 그 목적을 만족시켜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이 책의 저자 후지하라는 먹는다는 행위를 배설하는 행위까지 확장한다. 그래서 그에게 식사란 나를 먹이는 일이기도 하지만 자연의 생명들을 먹이기도 하다. 먹거리 또한 그런 차원에서 고려되어야 한다. 먹는 행위는 나, 너라는 개체의 먹음이나 생명유지가 아니라 자연 전체의 먹음과 생명의 수준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일이라고 그는 말한다. 내가 먹는 일이 어째서 자연의 생명들에까지 연결되고, 먹거리가 왜 생명임을 기억해야 하는지 들어보자.

 

싸는 게 먹는 일

후지하라는 어느 날 산오징어를 먹으며, 그 오징어가 언제 사체가 되는 걸까 먹는 행위가 단순히 음식을 입에 넣기만 하면 끝나는 일일까 하고 질문을 던지게 된다. 이 경험으로부터 그는 먹는다는 것범위를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그는 먹는다는 행위를 음식물이 입으로 들어가 소화기관을 통과해서 항문으로 배설되는 일로 보자고 한다. 그처럼 생각하면 먹는다는 게 내 몸으로 먹거리를 들여 넣는 일이 아니라, 먹거리가 내 몸을 통과해서 항문 밖으로 나가는 일이 된다.

내가 먹은 것은 소화관을 거쳐 똥오줌이 되어 밖으로 나간다. 먹는다는 행위가 내 몸 안에서 끝난다고 생각했는데, 바깥으로 똥오줌을 내보내는 일까지 연결된다니 먹은 후에 벌어질 일을 내 몸이 아닌 외부의 차원에서 생각하게 된다. 내가 먹은 것은 나를 불리는 일에서 끝나버리지 않고 똥오줌이 되어 세상으로 나와 자연의 자양분이 된다. 또 그것을 먹고 자란 자연의 생명체들은 언젠가 또 다른 생명의 먹이나 나의 먹거리가 된다. 돌고 도는 연결고리 속에 일부분으로 내 몸의 관들이 자연의 생명들을 연결시켜준다. 먹는다는 일은 이렇게 중단이 없이 생명과 생명을, 생태계 전체를 연결시켜주며 자연에 먹거리를 제공한다. 내가 이것저것 골고루 잘 연결시켜줘야, 다르게 말해 내가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골고루 잘 먹어야 자연도 풍성한 밥상을 받을 수 있게 된다.

내가 먹는 것은 곧 자연이 먹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나만 잘 먹어서 될 일이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앞집에 사는 꼬마도, 먹방 유투버 쯔양도, 가난으로 굶주리는 지구 반대편의 사람들도, 지구온난화로 먹이가 줄어든 북극곰도 잘 먹고 잘 싸야 할 텐데 하고 걱정이 된다. 누구는 잘 먹고 누구는 못 먹고, 어딘가는 넘쳐나고 어딘가는 곯아간다면 자연의 생태계에도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후지하라가 먹는 행위를 이렇게까지 확장하는 것은 왜일까? 책에서 이에 대해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나는 그 이유를 그가 먹거리체계를 비판하는 데서 생각해보려고 한다. 지금의 먹거리체계에서 식품회사는 사람들이 구입만 해주면 그만이다. 그게 사람들의 입으로 들어가든 말든, 들어간 후에 어떤 피해가 오든 식품회사는 관심이 없다. 지금의 먹거리시스템은 식품 판매에만 혈안이 되어 맹렬히 내달리게 한다. 그는 이 책의 머리말에서 시스템은 한 번 작동하면 멈추기도 어렵고 그 안에서는 시스템의 문제를 인식하기도 어렵다고 했다. 그는 이런 시스템의 문제를 먹는 행위를 확장시키는 데서 풀어보려고 하는 것이다.

 

생명을 먹는다

그렇다면 무엇을 먹어야 잘 먹는 걸까 하는 질문이 뒤따라온다. 후지하라는 먹거리의 특징으로 자연성, 비내구성, 정신의존성을 든다. 그는 지금의 먹거리가 이런 특징을 잃고 단순한 물건이 되었다며 안타까워 한다. 그가 먹거리를 이렇게 정의하는 데는 이 상품으로서의 먹거리를 비판하는 지점과 연결되어 있다. 우리가 먹는 것들은 한때 자연의 생명이었다는 감각이 제거되어 단순한 상품으로 둔갑했고, 멀리 많은 사람들이 소비할 수 있도록 유통되기에 잘 썩지 않도록 가공되고, 종교나 가족 등 공동체에 의한 규제로부터 먹거리의 선택은 자유로워졌다.

비린내 나는 어시장에 가고 누린내 나는 축산시장에 가야지만 생선을 사고 고기를 살 수 있을 때가 있었다. 어릴 때 어머니를 따라 나섰던 시장엘 가면 내 눈앞에서 고등어의 머리가 두 동강이 나고 정육점에는 도살된 돼지의 몸이 쫙 벌려진 채로 걸려 있었다. 지금은 어떤가. 자반고등어는 가시까지 손질되고 심지어는 이미 초벌이 되어 전자레인지에 돌리기만 하면 먹을 수 있게 나온다. 육고기도 마찬가지다. 마트에 가면 고기는 부위별로 잘 손질이 돼 팩에 그램 수별로 담겨 있고, 아이들의 최애 메뉴 치킨은 주문만 하면 조리된 채로 바로 배달이 된다. 이처럼 내가 일상적으로 먹는 것들에는 그것이 생명이라는 감각이 거의 없다. 그것이 한때는 나처럼 자연의 한 존재로 살아 숨쉬는 것이었으며, 내 식탁 위에 놓여지기 위해 뽑히고 잡히고 죽여졌다는 것을 나의 거의 생각하지 못하고 그것들을 먹는다. 그렇기에 먹으면서 나는 배부르다, 맛있다 외에는 어떤 감정의 동요도 겪지 않는다.

처음 살아 있는 꽃게를 사서 꽃게탕을 끓였던 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수산시장에 가서 싱싱하고 살이 꽉 찬 꽃게를 골라 와서 고무장갑을 끼고 조심조심 게를 솔로 문질러 닦고 게딱지를 뒤집고 다리를 자르면서 나는 연신 게한테 미안하다고 말했었다. 물론 그전에 꽃게탕을 먹고 게장을 먹으며, 그 게가 한때는 바닷속을 유영하던 살아 있는 생명이었음을 몰랐던 건 아니다. 하지만 시장에서 가서 살아 있는 꽃게를 직접 고르고 내 손으로 그 생을 마감시키는 경험은 내 안에 이전과는 다른 감정을 일으켰다. 내가 먹기 위해서 네가 죽어야 하는 것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에, 나는 원래도 게를 좋아하지만 그날은 특히 꽃게살과 국물을 더 열심히 맛있게, 남김없이 먹었다.

농학자 고이즈미의 산골 체험 에세이 사냥꾼의 고기는 썩지 않는다(고이즈미 다케오 지음, 박현석 옮김)에서 그의 친구 사냥꾼 욧상은 멧돼지를 사냥할 때마다 미안하다, 용서해주게라고 말한다. 그런 마음으로 잡은 멧돼지기에 대충 먹고 함부로 버릴 수가 없다. 그는 멧돼지의 가죽, 고기, 내장, 뼈까지 하나도 버리지 않고 이용하며, 자신이 잡은 멧돼지들에게 법명까지 지어 올린다. 자신의 손으로 직접 잡아 해체하면서도 그것이 자신과 다름없는 생명임을, 그리고 그 무게가 자신과 다르지 않기에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마음에 새기고 있었던 것이다.

 

썩을 것을 먹는다

성능 좋은 냉장고와 길어진 식품의 유통기간으로 집에는 항상 식재료와 먹거리들이 쌓여 있다. 지금 당장 재난이 일어난다 해도 온가족이 냉장고와 찬장을 구석구석 파먹으면 한 달은 족히 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럼에도 나는 적어도 이삼일에 한 번은 장을 보고 외식을 한다. 몇 년째 계속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냉동실의 정체를 알 수 없는 봉지들과 유통기간이 지난 채 구석으로 밀려나 있는 각종 가공식품과 조미료들은 언젠가 음식물 쓰레기통으로 내던져질 것이다. 이쯤 되니 냉장고와 방부제 등으로 늘어난 유통기한이 과연 득인가 독인가 싶다. 마치 그것들이 언제고 구입할 때의 상태로 유지될 것처럼 생각하게 되니 말이다.

내가 먹거리로 사 놓은 것들 중에 상하기 쉬운 것들이 얼마나 있나 생각해본다. 자연 그대로의 상태일수록 빨리 상하는 것일 테고, 아무래도 식품회사를 통해 가공된 것들은 보관을 좀 오래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집 식탁 위에는 절대 썩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식품이 있다. 바로 건강기능식품이다. 현대인의 대부분은 이런 건강식품에 영양섭취나 건강증진을 많이 의존하고 있다. 건강식품도 물론 자연의 생명으로부터 왔을지 모르고 유통기한도 있긴 하겠지만, 후지하라가 이 식품들을 먹거리로 취급해줬을까를 생각해보면 쉽게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다.

 

관계를 먹는다

후지하라가 먹거리가 상품이 돼버린 현실을 걱정했듯이 나는 인도의 이야기에서 첫 번째 사람처럼 물건을 고르듯이 먹거리를 대하고 골랐다. 그것이 한때는 생명이었던 것으로 자연으로부터 오거나 누군가의 손에 의해 길러지고 운반되어 내 식탁 위에 놓이게 됐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그 과정들이 내 삶과 너무 멀어지게 되고 동떨어져 있어 떠올려보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었다.

인문세에서 기술인류학을 함께 공부하는 김유리 선생님께서 올 봄에 직접 농사지으신 보리를, 가을에는 쌀을 보내주셨다. 얼마 전 오선민 선생님의 북토크에는 김동운 선생님께서 직접 농사지어 첫 수확하신 곶감과 사과를 보내주셨다. 나는 김유리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보리와 쌀로 밥을 해먹으며 가족들에게 이게 얼마나 귀한 건지 연신 얘기를 했고, 그 밥은 마트에서 산 쌀과 잡곡으로 한 밥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김동운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곶감과 사과도 그랬다. 보리와 쌀, 곶감과 사과가 맛있어서도 그랬지만 그것이 어떻게 자라 내 식탁 위에 놓여졌을지를 그려볼 수 있었기에, 그 과정에 나와 함께 공부한 친구의 얼굴이 떠올려지고, 그들의 노고와 그 수확을 나눠준 데에 대한 감사함이 더해져 더 그랬을 것이다.

 

세상과의 연결

욧상처럼 직접 사냥을 해서 먹거리를 구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매번 살아 있는 생물을 사서 죽이는 과정을 거쳐 요리를 할 수도 없고, 모든 식재료를 친구로부터 구할 수도 없는 현실에서 나는 무엇을 어떻게 먹어야 할까. 앞의 인도 이야기에서 두 번째 사람은 농부에게 이 망고를 어떻게 키웠는지, 이 망고가 다른 것들과 어떻게 다른지를 질문하고 망고를 음미했다. 그처럼 소고기를 사고 치킨을 사먹어 보면 어떨까. 내가 고르는 팩에 담긴 소가 어느 농장에서 어떤 사료를 먹여서 키운 소인지 정육점 아저씨 이야기를 들어보고, 내가 좋아하는 교촌치킨의 닭은 어느 양계장에서 어떻게 키워졌는지를 한번 알아봐야겠다.

내가 먹는 것이 세상 밖으로 나와 자연의 먹거리로 들어가고, 내 식탁 위에 놓인 먹거리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를 알게 된 이상 나는 먹을 때마다 세상의 많은 생명들과 연결되어 있음을 감각하게 되지 않을까.

전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