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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 탐구생활》 편집실

답사 가고 글을 쓰고!

 

[인류학을 알릴레오] 파도를 타다

작성자
기헌
작성일
2025-02-11 07:30
조회
44

2025.02.11

파도를 타다

이기헌

 

 

주제문 : 배우는 사이에서 호흡을 맞추는 것은 멈추지 않는 공부다

글의 취지와 의의 : 일단 카누에 타면 알 수 없는 파도에도 나아가야 한다. 목표를 향해 전진하기 위해 노를 젓는다. 서로는 서로의 노에 의지한다.

 

새학기가 시작되었다. 매년 맞이하는 새학기는 한 해를 시작한다는 점과 곧 다가올 따뜻한 봄 때문에 왠지 더 설레고 기다려진다. 하지만 이번 새학기는 다른 때와 다르게 마음이 무거웠다. 내가 속한 공동체에서 사람들 사이에서 잘 섞여 공부와 맡은 역할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비슷한 질문들이 내 안에 차오를 때 헬른 체르스키의 블루 머신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은 인류학 해양 시즌 첫 책으로 크고 작은 다양한 바다의 움직임을 꼼꼼하고 정밀하게 보여주기도 하고,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너른 시야를 필요로 한다. 나는 그가 바다를 배우는 법을 보면서 내 질문들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저자가 바다를 연구하는 방법은 인상적이다. 과학자인 그가 실험을 하고 논문을 쓰는 것만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바다를 직접 경험하는 것이었다. 그는 주기적으로 스킨스쿠버 자격증을 취득하고 카누를 배우는 방식으로 바다에 가까워졌다. 하와이 원주민들 사이에 섞여서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6인용 카누에서 노를 젓는다. 거침없이 바다를 향해 전진하는 카누. 쉬지 않고 노를 저으며 리듬을 놓치지 않는 동료. 서로가 서로를 떠받치고 있다는 책임감과 멋진 팀웍을 보여주는 그들이 항해하는 모습에서, 나 역시 공동체에서 같은 목표를 향해 섞이고 나아가는 사이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해보고 싶었다.

 

다양성과 유대

헬른 체르스키는 카누를 시작하고 1년 정도 지나 노젓기에 맣은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카누와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는 바다로 나아가기에 앞서 모든 선원들과 큰 원을 그리고 서서 손을 맞잡는다. 원의 의미는 카누를 타고 노를 젓는 모든 사람 사이의 상호 의존성을 떠올리게 하는 상징이다. 카누의 리더가 나서서 원로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하늘과 바다와 땅 사이에 존재하는 그들의 위치와 항해의 원칙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들에게 항해의 원칙은 노를 젓는 기술이 아니라 카누 선원 간의 유대감이다. 그가 속한 카누 클럽에서는 모든 이를 환대하고 존중하며 카누 가족으로서 구성원을 포용한다. 또 누군가가 도움을 필요로 할 때는 먼저 나서서 돕고 다양성을 수용한다고 말한다. 서로 간의 긴밀한 유대와 신뢰는 나와 다른 타인에 대해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것부터라는 말처럼 들렸다.

공부하는 사이, 배우는 사이 아니 모든 사이에서 나 아닌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중요하다. 문득 몸도 마음도 생각도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무엇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싶었다.

 

성공과 실패는 같은 말

항해 중인 카누를 보면서 어떻게하면 모든 파도를 넘어 목표 지점까지 도달할 것인가 궁금했다. 항해를 무사히 마치려면 노련한 기술은 물론 날씨와 바다 상황이 좋은 행운도 따라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헬른 체르스키가 하는 말이 반전이다. 그에게 항해에서 중요한 점은 항해에 성공하든 실패하든 서로가 함께 보내는 시간과 여정을 통해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나는 기술을 잘 습득하면 어떤 파도에도 뒤집히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카누를 잘타는 방법을 배우면 멋진 결론에 도달하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항해에 나선 사람들은 그런 생각을 했을 것 같지 않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에서 어떤 파도, 어떤 암초의 위험을 늘 마음에 염두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것 뿐이었다.

 

역할

90km에 달하는 카누 항해에서 6명이 노를 젓고, 나머지 6명은 보조 배에 탑승하여 하루 종일 1시간 마다 교대로 노를 젓는다. 교대는 보조 배의 선원들이 배 뒤쪽에서 바다로 뛰어내리고, 일렬로 줄지어 먼저 헤엄을 쳐 카누를 기다린다. 다가온 카누의 선원들이 노를 놓고 바다로 뛰어내리면, 보조 배의 선원들이 카누에 탑승한다. 구성원들은 카누에 타자마자 기계처럼 노를 젓는다. 노를 저을 때 앞사람이 오른쪽에서 노를 저으면, 뒷사람은 왼쪽에서 노를 젓는다. 그리고 일정한 횟수가 되면 그 위치를 바꾼다. 노의 위치를 바꾸는 일은 누구하나 빠짐없이 동시에 이루어진다. 영상에서 찾아본 카누 타기는 마치 흐트러짐없이 똑같이 리듬을 타는 댄서들의 춤처럼 느껴졌다. 카누에는 맨 앞에 앉는 정조수와 맨 뒤 키잡이가 있다. 책에서 나오는 하와이 출신 정조수와 키잡이는 인간과 카누와 바다가 조화되며 잠재력이 정점에 이를 때 1시간 내내 아드레날린이 넘쳐흐르는 기쁨을 만끽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우리의 인문세가 큰 카누라면 세미나를 작은 카누라고 생각해보았다. 최근 여러 카누가 출항했다. 해양 인류학팀, 종교 인류학팀, 동화 인류학팀 그 외에 작은 모임들도 열렸다. 곧 나는 자연학팀 카누를 출항해야 한다. 주제를 잡고 관련 책을 찾았다.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주문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는데 여러 권 중에 한 권이 주제에 맞을 것 같았다.

(카누 여기저기 다 타고 싶은데, 구성원으로 책임을 다할 수가 없다면?)

 

배우는 사이에서 어떻게 파도를 타면 좋을까?

우리의 목표는 닿을지 모르는 그곳을 향해 열심히 노를 젓는 것은 아닐까?

매번 다른 파도. 놓치면 다시 호흡을 맞추는 것뿐. 읽고 쓰고 호흡을 맞추어가자. 멋진 항로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 그렇게까지 노를 젓고 싶은 것은 아닌데 부담이 될 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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