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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 탐구생활》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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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을 알릴레오] 카누 타기

작성자
기헌
작성일
2025-02-18 07:14
조회
46

 

과학자 헬렌 체르스키에게 바다를 탐구하는 길은 뜻밖의 일이었다. 3개의 물리학 학위를 받고 수백 권의 과학책과 기사를 읽고 강연을 들어온 그의 인생에서 해양물리학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던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영국 북부에서 얼음처럼 차가운 북해와 황량한 회색빛 아일랜드해를 보며 자란 그에게 바다는 특별히 매력적인 곳은 아니었다. 하지만 관심 밖의 영역이었던 바다에 대한 지식을 흡수하면 할수록 바다야말로 가장 방대한 과학 이야기를 품고 있는 곳임을 알게 되었다. 해양 지식의 심연에 발을 내디딘 헬렌은 놀란 마음을 억누르면서 닥치는 대로 글을 읽고 스쿠버다이빙을 배우고 해양학회의 강연에 눈을 크게 뜨고 귀를 쫑긋 세우며 바다를 탐구하는데 몰두했다. 하지만 바다의 물리 엔진에 대한 발견이 곧바로 바다에 깃든 문화를 발견하기까지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바다에 대한 관심은 그를 곧 아우트리거 카누의 세계로 이끌었다. 런던에 처음 방문한 그는 템스강 하구에서 아우트리거 카누를 타는 사람들의 모임, 태평양 카누 클럽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헬렌에게 그들이 얼핏 정신 나간 사람들처럼 느껴졌던 것은 차갑고 탁한 바다를 들어간다는 것이 납득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들이 타는 것은 따뜻한 적도 태평양에서 타는 카누였다. 그럼에도 그들이 굳이 그 바다로 들어가는 이유가 있을 것이었다. 알 수 없는 카누의 세계였지만 사람들을 싸늘한 바다로 끌어당길 만큼 매력이 대단하다면 자신도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중에 헬렌은 자신의 생각이 옳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카누를 타면서 과학 시간에 배우지 못한 바다의 전통과 문화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바다를 알고자 한다면 일단 바다로 들어가야 한다. 그가 카누를 시작한다고 바다로 들어간 지 1년 정도 지나 노 젓기에 많은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카누와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아우트리거 카누는 모든 행위에 하와이 문화가 녹아 있다. 카누는 실용적인 목적으로 설계된 단순한 물리적 물체가 아니다. 카누를 제작하고 운반하고 관리하는 것, 카누에서 노를 젓는 것, 카누의 모든 면이 팀워크의 상징이다. 팀워크가 하와이 섬나라들을 하나로 묶는다. 팀워크는 하와이어로 오하나ohana’라고 하는데, 넓은 의미에서 가족 그리고 카누에 탄 사람들을 돌보는 행동이다. 카누 항해를 시작하기 전에 사람들이 먼저 하는 일이 있다. 바다로 나아가기에 앞서 모든 선원들과 큰 원을 그리고 서서 손을 맞잡는다. 원의 의미는 카누를 타고 노를 젓는 모든 사람 사이의 상호 의존성을 떠올리게 하는 상징이다. 카누의 리더가 나서서 원로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하늘과 바다와 땅 사이에 존재하는 그들의 위치와 항해의 원칙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들에게 항해의 원칙은 노를 젓는 기술이 아니라 카누 선원 간의 유대감이다. 팀워크가 잘 이루어져야 항해가 원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카누 클럽에서는 모든 이를 환대하고 존중하며 카누 가족으로서 구성원을 포용한다. 누군가가 도움을 필요로 할 때는 먼저 나서서 돕고 다양성을 수용했다. 자연 앞에서 인간은 모든 경우를 수긍할 수밖에 없다. 어떤 사람에 대해, 어떤 날씨에 대해, 어떤 파도에 대해서도 결정을 우리의 몫이 아니다. 다만 어떻게 항해해 나아갈 것인지가 중요한 문제다. 항해를 무사히 마치려면 노련한 기술은 물론 날씨와 바다 상황이 좋은 행운도 따라야 한다. 중요한 점은 항해에 성공하든 실패하든 팀원이 함께 보내는 시간과 여정을 통해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이다.

헬렌이 묘사하는 카누 타기를 읽고 있으니 보조배에 탄 것처럼 배로 밀려 들어오는 바닷물과 출렁이는 파도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헬렌이 탄 카누 팀원들은 여섯 번째 좌석에 앉은 키잡이의 준비 신호를 듣는다. 팀원은 노를 들어올려 공중에서 마지막 정적의 순간이 되면 잠시 후 이무아Imua!” ‘앞으로 나아가자라는 구령과 함께 일시에 모든 노가 물속으로 들어가 항해를 시작한다. 파도가 밑에서 밀려와 카누 앞부분이 해수면 위로 불쑥 올라갈 때면 앞의 선원은 이따금 공중에서 노를 휘젓는다. 그다음 카누 앞부분이 해수면에 부딪히며 발생한 물보라가 카누를 덮칠 때면, 노를 물속으로 더욱 깊숙이 밀어 넣는다. 보조 배는 거친 파도를 맞으면서도 안전하게 떠 있다. 카누는 파도 덕분에 훨씬 안전해진다. 카누를 앞으로 미는 노 6개와 키잡이(여섯 번째 좌석 뒤에 있다)의 조종술을 바탕으로 카누가 바다에 밀착해 한 몸이 되기 때문이다.

교대는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먼저 보조 배의 선원들이 배 뒤쪽에서 바다로 뛰어내린다. 그리고 일렬로 줄지어 선헤엄을 치며 카누를 기다린다. 다가온 카누의 선원들이 노를 놓고 바다로 뛰어내리면, 보조 배의 선원들이 바닷물 밖으로 몸을 빼고 카누에 탑승한다. 이는 드넓은 바다에서 하기에 그렇게 우아하지 않은 과정이지만 모두가 개의치 않고 카누에 타자마자 노를 젓는다. 그래야 항해가 시작될 수 있다.

카누는 파도와 바람을 타고 달린다. 키잡이와 카누 맨 앞에 앉는 정조수는 모두 경험이 풍부한 하와이 출신 선원이다. 이들이 카누를 타는 이유는 단 하나다. 인간과 카누와 바다가 조화되며 잠재력이 정점에 이를 때 1시간 내내 아드레날린이 넘쳐흐르는 기쁨을 만끽하기 위해서다. 카누가 기울어질 때마다 하와이인들은 전진, 전진, 전진을 미친 듯 외친다. 인간 엔진은 파도와 함께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질주한다. 열광적인 환호성과 순수한 기쁨은 다시 전진해 다음 파도와 만나자는 외침으로 바뀐다. 사람들은 파도와 또 다른 파도에 완전히 집중했다. 집중력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고된 육체적 노력은 바다와 함께 카누를 타는 동안 완전히 잊힌다. 물과 노가 연결되는 느낌을 받는다. 기상 조건이 다소 불리할 때는 순풍 구간의 기억으로 나머지 구간을 버티며 목적지에 도착한다.

노는 카누와 바다를 하나로 묶고, 자신과 바다 표면에 밀착시켜 바다의 에너지를 공유하게 한다. 바다와 하나가 된 덕분에 자연과 함께하는 아름다운 경험에서 절대적 기쁨과 활력을 듬뿍 보상받는다. 헬렌은 노를 통해 바다를 느낄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것은 과학이 주지 못한 연결 고리였다. 이제 그에게 바다는 물리적으로 작동하는 하나의 엔진을 넘어섰다. 하늘과 땅과 연결된 바다는 인간이 맞서는 상대가 아니라 잠재력을 경험하는 곳이었다. 목적지까지 1시간씩 교대로 노를 저으며 이제 그곳에 가까워졌음을 깨달았을 때 느껴지는 감정은 어떤 것일까. 정말 궁금했다.

헤 모쿠 헤 와아, 헤 와아 헤 모쿠He moku he wa’a, he wa’a moku.”이는 카누는 섬이고 섬은 카누다라는 의미다. 광활한 태평양 한가운데 자리한 작은 섬의 주민들은 이 구절을 완벽히 이해한다. 섬에서 번영을 누리고 싶은 사람에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타인에게 협력하고 친절하게 대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팀워크가 무너지면 아무도 득을 보지 못하고 모두 해를 입는다. 카누도 마찬가지다. 이웃 섬으로 노를 저어 건너가려면, 카누에 탄 모든 사람이 행복하고 서로 돕는 강한 팀을 이루어야 한다. 일단 카누에 타면 더는 갈 곳도 없고 문제에서 도망칠 수도 없다. 솔직하고 정중하게 문제와 마주해야 한다. 카누가 목적지에 안전히 도착하려면 모든 사람이 제 역할을 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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