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학 탐구생활》 편집실
답사 가고 글을 쓰고!
[인류학을 나눌레오]선으로서의 배우기
선으로서의 배우기
인문공간세종에서는 인류학을 공부한다. 이번 시즌 인류학 세미나에서는 빙하 이후 인류가 걸어간 길을 따라갔다. 주교재 『빙하 이후』(스티븐 마이든 지음, 성춘택 옮김, 사회평론아카데미)와 몇 권의 참고도서를 읽으며 공부했고, 중간 중간 인류가 남긴 흔적을 찾아 답사를 떠나고 거기에서 떠오른 생각거리를 글로 쓰기도 했다.
사실 『빙하 이후』를 읽으며 가장 많이 든 생각은 돌을 깨서 도구를 만들고, 돌과 나무를 엮어 만든 창으로 사슴을 잡고, 동물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고, 나무를 잘라 엮어 집을 짓고, 열매를 따먹고 어로로 생계를 이어가는, 구석기 신석기의 사람 사는 이야기를 어디다 써먹으려고 배우고 있는 걸까 였다. 나는 나중에 내 집을 지을 계획도 없고, 옷을 만들어 입을 생각은 꿈에도 없으며, 남들이 캠핑에 빠져 산으로 바다로 떠날 때도 내 집이 최고라며 문명과 동떨어진 생활을 시도도 안 했다. 아무 쓸 데도 없는 야생의 생활상을 시간 내서 읽고, 거기에서 생각거리를 찾고 배움을 가져가야 한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빙하 이후』를 따라 서아시아에서부터 유럽, 아메리카, 오스트레일리아, 아시아를 여행하며 만난 인류의 생활 모습은 그때와는 너무나도 달라진 환경에 그 구체적인 감각을 떠올리기 어려웠지만, 방식 차이일 뿐이지 먹고산다는 일이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음에 마치 옛날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흥미로웠다. 딱 거기까지였다. 읽을 때는 각 대륙의 이런 저런 유적지의 다른 생활상을 재밌게 읽었는데, 과제를 하려고 컴퓨터 앞에 앉아 나는 한참을 한 자도 못 쓰고,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다. 방대하게 펼쳐진 유적지들의 비슷하고도 다른 생활상과 상상하기 어려운 야생의 생활을 할 때의 감각은 내 머릿속에서 전혀 그러모아지지도, 그들과 같은 방식으로 생각이 떠올려지지도 않았다.
이번 시즌 네 번에 걸쳐 진행된 답사도 비슷했다. 오선민 선생님과 이기헌 선생님이 준비해주신 자료집을 읽으면 이런 관점에서 유물을 볼 수 있구나, 이곳의 지질이 이렇게 형성되었구나 하는 앎을 얻을 수 있었지만, 박물관의 유물이나 답사지를 둘러봐도 정리되지 않는 이런저런 생각들만 부유할 뿐 자료집을 통해 갖게 된 관점과 정보는 사방으로 뻗어가기만 하고 하나로 모아지지가 않았다. 답사기를 써내야 하는 시한이 다가오면 여러 유물들이 머릿속에서 스쳐지나가고, 정말 생각지도 않았던 유물을 붙들고 애초에 계획하지도 않았던 방향으로 글을 써내게 된다.
책을 읽으면 뭘 얻게 될 거라고 기대했길래 나는 이번 시즌 『빙하 이후』를 공부하며 왜 이 공부가 무력하다고 느끼고, 『빙하 이후』를 읽고 생각거리를 가져가는 데 어려움을 느낀 걸까? 그래도 오선민 선생님이 이끌어주시는 대로 책을 읽고 과제를 하고, 답사를 따라가고 답사기를 써내고, 에세이도 쓰면서 정말 나는 이번 시즌 인류학에서 배운 게 없는 걸까? 나는 이에 대한 답을 인문세 특강으로 만난 팀 잉골드의 <선인류학>으로 풀어보려고 한다. 선인류학자 팀 잉골드는 생명을 선으로 정의하고 세상을 선의 뒤얽히는 생성의 공간으로 바라보았다. 내가 지금껏 배움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빙하 이후에서 내가 배운 것은 무엇인지, 덩이론에 반대하는 팀 잉골드의 선학(線學)의 도움을 받아 이해해보자.
덩이 말고 선
먼저 선인류학이란 뭘까. 팀 잉골드는 자신의 저서 『라인스』에서 균사체를 생명의 전형으로 삼고자 했다. 균사체는 내부와 외부가 없고 그 모습이 덩이로 형태화되지 않고, 균사체의 선들은 온갖 방향으로 뻗어가며 주변에 침투한다. 그는 생명을 외부와 구별되는 명확한 경계가 있는 덩이의 형태가 아닌, 덩이와 선의 조합으로 보고자 한다. 그는 생명을 덩이로 봐라봐서는 각 개체들이 서로 얽혀드는 사회적인 삶을 설명할 수 없다고 한다. 그에게 삶이란 서로 상호침투하는 동적인 이미지다. 너와 나를 구분하고 서로의 경계가 중첩될 수 없는 ‘덩이의 세계’에는 ‘상호침투하는 삶’이 존재할 수 없다.
생명을 덩이가 아닌 선의 얽힘으로 바라볼 때 달라지는 것을 뭘까? 덩이는 다른 덩이들과 함께 할 때 자신의 영역을 지키거나 서로를 무화시키는 방식으로 존재하지만, ‘선으로서의 삶the life of lines’은 주위의 생명과 사물, 온갖 것들을 붙잡기도, 쓸고 지나가기도, 침투해서 빠져나가기도 하며 서로 뒤얽힌다. 삶이란 이렇게 쉼 없이 움직이고 서로 연결되는 선의 뒤얽힘이다. 이때 선은 눈에 보이는 것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그는 대기, 날씨, 분위기와 같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것들까지도 선으로서의 생명으로 끌어온다.
생명을 덩이와 선의 조합으로 정의하게 되면 배움의 이미지도 달라진다. 덩이는 배움에 있어 주체와 대상, 즉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 배움의 목적과 배워야 할 것이 명확히 정해져 있다. 덩이에게 잘 배운다는 것은 자신의 자리에서 이미 정해져 있는 이것들을 잘 수행하는 것이다. 하지만 선은 이 모든 것들이 선재해 있지 않다. 선은 누구에게나 선생님이 될 수 있으며, 누구에게서나 배울 수 있고, 배워야 할 것이 따로 없으며 어떤 것으로부터도 배울 수 있다. 선에게 잘 배운다는 것은 자신이 배운 것을 통해 세상과 얼마나 다양하게 접속하느냐에 달려 있다.
누가 가르치고 누가 배우는가
내가 『빙하 이후』를 공부하며 느꼈던 어려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스티븐 마이든은 존 러복이라는 가상 인물을 여행자로 내세워 시간여행을 하게 하지만, 모든 이야기를 그에게 의존해 이끌어가지 않는다. 존 러복을 바라보는 스티븐 마이든이 있고, 존 러복이 바라보는 빙하 이후의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 빙하 이후의 생활상을 뒷받침하는 유물들과 그 유물들을 발굴하고 그로부터 당시의 생활상을 유추하고 그려내는 수많은 고고학자들 또한 등장한다. 하나의 유적지에도 여러 관점이 있고 시간적으로 중층되어 묘사되고 설명된다.
이 책에서 화자는 너무나 많이 등장했고 나는 누구를 따라가고 누가 말하는 이야기를 들어야 할지 갈팡질팡했다. 게다가 그들은 대단한 업적이 있는 사람들도 아니었고, 이미 자신의 연구가 뒤집혔거나 아직은 아니더라도 언제 뒤집힐지도 모르는 이들이었다. 나는 그래도 이 사람만은 믿을 수 있지 않을까 하며 스티븐 마이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찾아내려고 애를 썼지만,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하게 드러내기보다 유물을 통해 유추한 당시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구체적으로 묘사할 뿐이었다.
같은 책을 읽고 갈피를 못 잡는 나와는 달리, 학인들이 준비해온 과제와 세미나 시간에 오선민 선생님이 공유해주시는 자료들, 책의 행간을 풀어주는 설명은 내게 그야말로 좋은 선생님이되었다.
어떻게 배워야 할까
존 러복은 여러 대륙의 유적지를 돌며 사람들과 생활하지만 그의 여행은 인류의 이동경로를 시간 순서대로 따라가지도, 시간의 흐름이 정속적으로 흘러가지도 않는다. 다시 말해 그의 여행에 직선적 경로는 없다. 각 대륙의 여행은 서기전 20,000년 이후 최후빙하극성기에서 시작해 본격적인 정착 농경이 이루어지는 시점에서 여행이 끝난다는 큰 방향만 있을 뿐이다.
고대의 유적지와 그 유물들을 발굴하고, 그로부터 유적지의 연대를 측정하고 당시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유추하고 주장을 펴내는 고고학자들은 모두 자신의 견해가 미래의 다른 학자들에 의해 반박되기도 하고 발달된 과학적 증명 방법에 의해 주장이 뒤집히기도 한다. 이 책에서 스티븐 마이든이 그려내는 당시의 생활상도 새로운 유적지가 발굴되거나 증명법이 발달하면 언제든 번복될 여지가 있다. 나는 수만 년 동안 인류가 남긴 유적들 중 겨우 10분의 1도 안 될지도 모르고, 언젠가는 다시 뒤집어지고 번복될지도 모르는 확실하지도 않은 연구를 수년의 시간을 들여 하는 데에 마음 한편에 ‘굳이’ ‘왜’ 라는 질문과 함께, 이 책에서 스티븐 마이든이 묘사하는 사람들의 생활도 언제든 바뀔지 모르고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문에 굳이 왜 이걸 공부해야 하냐는 마음이 들었다.
무엇을 배워야 할까
나는 그들의 모습에서 수렵채집민의 생활은 이렇고, 농경 생활은 저렇다는 특징을 발견하고 계속 구분하려고 했다. 자연 환경에서도 평야, 산악, 열대우림, 계곡, 사막과 같이 내가 지형으로 가르고 그 각각에 따라 생활상이 이렇게 저렇게 달라진다고 분류하고자 했다. 그렇지만 계곡이나 산악 지대라 해도 위도에 따라 또 강수량이 얼마나 되느냐, 바람의 방향, 토양에 따라서도 동식물의 생태가 달랐고, 평야도 그 기후나 동식물의 생태, 주변의 교역 등에 따라 주거의 형태가 비슷하기도 하고 달라지기도 했다.
서기전 20,000년 이후의 최후빙하극성기부터 서기전 12,700~10,800년의 최후빙하기의 빙간기, 다시 기온이 떨어지고 건조해진 서기전 10,800~9,600년의 영거드라이어스기, 이후의 온난해진 홀로세의 기후 변화는 지구 자연환경의 변화의 바탕에 있다. 스티븐 마이든은 요동치는 기후 변화에 따라 변화하는 자연환경, 그리고 그에 반응하고 적응하는 인간의 다양한 생활상을 수렴하고 정리하기보다 쫙~ 펼쳐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