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학 탐구생활》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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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을 나눌레오] 건축, 고민이 깃든 필요
올해 봄부터 인문세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공간을 건축한다는 것은 다양한 경우의 수를 검토할 필요가 있었고 시작할 때 생각하지 못했던 상황이 거듭되어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온라인이긴 해도 우리에게 멋진 집이 생겼으니 주변에 시루떡을 돌리며 기념했다. 우리의 힘으로 공간을 건축했다는 기쁜 마음과 코드에 오류가 생겨 무너질까 하는 걱정이 교차했다.
생활에 대한 통찰력
인문세 홈페이지가 필요하다고 이야기가 나온 건 1, 2년 즈음 된 것 같다. 오선민 선생님은 종종 올라온 숙제들이 카페 메인 페이지에서 빨리 내려가는 점을 아쉬워했고 글들을 오래 걸어두고 싶다고 했었다. 나는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네이버 카페로 공부하고 숙제를 나누는데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믿음직한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시스템인 만큼 개인 정보 관리에 안전하고, 무료에 한정 없는 용량, 스마트폰 앱 연동과 알림 서비스 등 모든 기능에 만족했다. 이미 적응된 온라인 집에서 다른 집으로 이사 가는 불편을 감수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이후에도 홈페이지를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실행에 옮겨지지는 않았다. 시간이 지나는 만큼 우리는 네이버 카페 사용에 적응했고 다른 공간을 상상하기란 더 어려워졌다. 그러던 중 올해 드디어 선생님이 아쉬워했던 부분과 더불어 여러 의견을 취합해 본격적으로 홈페이지 만들기가 구체화 되었다. 생각해보면 네이버 카페는 안정적이긴 했지만 건축물로 보자면 아파트와 비슷한 거였다. 1층 집부터 맨 위층 집까지 침실, 거실, 주방, 세탁실 등이 일률적으로 같은 라인에 위치하고 거기에 맞게 가구, 가전도 비슷한 자리를 차지한다. 붕어빵 틀에서 찍어낸 것처럼 똑같아서 그 공간만의 색깔을 표현하기란 어렵다.
버나드 루도프스키의 『건축가 없는 건축』은 자연의 변덕과 지형의 도전을 받아들이는 세계의 낡은 토속 건축물들에서 공동체성을 본다. 여기서 말하는 공동체성은 인간의 범주를 넘어 자연, 문화, 종교적 차원까지 확장하여 생각해야 한다. 그가 소개하는 모든 건축들은 세상 유일무이한 모양과 기능을 가진다. 사용하는 사람들에 맞추어 깎고 다듬은 예술품처럼 그들만의 컬러를 느낄 수 있다. 버나드 루도프스키는 이 건축물을 만든 사람들에게서 생활에 대한 특별한 통찰력을 발견한다. 아프리카에서는 결이 부드러운 바오밥 나무의 속을 파내 집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오밥 나무는 담수의 능력을 가지고 있어 물이 귀한 이 지역에서 더없이 좋은 집이다. 스페인 갈리시아 지방에는 오레오horreo라는 곡물 창고가 있다. 긴 기둥 위에 교회를 연상시키는 이 건축은, 창고에 저장된 곡물에 경이를 갖는 농민들의 종교적 세계가 반영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버나드 루도프스키가 말하는 생활에 대한 통찰력은 거창한 깨달음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조건과 상황에 맞게 고려하는 것이고 그에 어울리게 정성껏 공간을 깎고 다듬고 만들어 가는 것이다.
네이버 카페를 사용할 때 나는 우리의 조건을 파악하기 어려웠다. 아니 정확히는 그런 마음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우리의 글들이 리스트에서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도 크게 느끼지 못했고, 인문세가 어떤 공부를 하는 곳인지 남들이 바라보는 입장에서 생각해보지 않았다. 같이 공부하자며 세미나, 소모임 공지가 그렇게 올라오는데도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네이버 카페 사용에 어려움을 가장 많이 느끼는 사람은 카페를 관리했던 오선민 선생님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선생님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글을 올리거나, 올라온 글을 읽으면 그뿐이다. 한마디로 카페 게시판이 어떻게 구성되고 대문 사진에 무엇을 걸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 선생님이 매일, 어떤 날은 하루에도 몇 번씩 카페 대문 사진을 바꾸었던 것은 인문세가 어떤 공부를 하는 사람들의 모임인지 그 특별함을 작은 공간으로나마 계속 표현할 수밖에 없던 것이다. 똑같이 생긴 붕어빵에 볼터치라도 해서 어떻게든 인문세만의 색깔을 보여주려던 선생님의 고민이 깃든 노력(욕망?)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또 고민이 꼭 선생님만의 것도 아니었다. 관심과 고민을 갖는 사람은 조금 더 보게 된다.
서툰 손길들
새로운 집을 짓는다니 뭔가 인문세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는 느낌이었다. 먼저 우리는 주변에 문의하여 다른 공동체 홈페이지를 만드셨던 분과 연락을 취했다. 집을 지어줄 전문가 섭외가 우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만남을 요청하는 문자를 보내고, 어떤 홈페이지를 만들지 전문가와 상의할 내용을 고민했다. 전문가는 따로 만나지 않고도 일을 진행할 수 있음을 알려왔다. 문득 전문가에게 맡길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원하는 스타일의 집을 지어야 한다면 어설퍼도 일단 우리 손으로 직접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내가 무얼 아는지, 모르는지도 모르는데 어떤 집을 지어달라고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전문가에게 원하는 바를 설명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일단 직접 해보고 뭘 모르는지 알게 된다면 그때는 전문가와 상의할 수 있게 되리라. 같은 맥락에서 버나드 루도프스키가 공동체적 건축에 대해 인용한 말이 인상적이다. ‘소수의 지식인이나 전문가가 일으킨 것이 아니라, 공통된 체험을 바탕으로 공통된 문화유산을 가진 모든 구성원의 자연발생적이고 계속적인 활동에 의해서 생산된 공동체적 예술’(버나드 루도프스키, 김미선 옮김, 『건축가 없는 건축』(스페이스타임), 15쪽). 그렇다. 우리의 필요와 정체성이 드러나는 공간을 만들려면 인문세를 잘 모르는 전문가의 손길에 의존하기보다 서투른 기술이지만 우리 스스로가 고민하고 다듬어야 한다.
서울 캠프 베어하우스에서 오프라인 세미나가 있던 4월 어느 날, 스텝들은 함께 모여서 홈페이지를 어떻게 만들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역시 가장 관심을 보인 오선민 선생님이 전체 뼈대를 이룰 메뉴 구조를 생각해 왔고, 그것을 기본으로 하여 의견을 나누었다. 회의 바로 전에 세미나가 진행되었었는데 이 시간에 참석했던 선생님들도 함께 자리해서 힘을 보태주었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카페에서 어떤 것을 가져올지, 어떤 메뉴명이 통일감이 있는지, 상위 메뉴 아래 어떤 하위 메뉴가 들어가야 하는지, 접속할 때 처음 뜨는 페이지는 무엇이 어떤 구성으로 배치되면 좋을지 등을 상상력을 발휘했다. 주로 메뉴 구성과 첫 페이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세미나를 알릴 공지사항과 최신글, 연재글, 유튜브 알림 등 어떻게 화면을 채우면 좋을지 생각했다. 예술가인 정혜숙 선생님은 홈페이지에 상단에 붙일 인문세의 상징 범고래를 디자인해준다고 했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뭔가 되어 가는 듯하니 집 만들 자리에 초석이 하나씩 하나씩 마련되는 것 같았다. 나중에 구체화하면서 든 생각은 우리가 디자인적인 측면으로만 논의했다는 점이다. 의도적으로 그런건 아니지만 생각할 수 있는 범위가 한정적이라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직접적으로 홈페이지 제작 회의에 참여한 것은 아니지만 사용하면서 어떤 점이 불편하거나 수정을 원할 때는 제보가 들어온다. 미처 생각지 못한 제보 아이디어는 공간을 더 다듬어준다. 이종은 선생님은 네이버 검색창에 ‘인문세’라고 검색하는데 왜 홈페이지가 안뜨냐는 질문을 해왔다. 이 키워드로 검색하면 가수 이문세의 압도적인 정보들이 표시된다. 몇십 년 가수 생활을 한 그분의 검색 횟수 따라가는 건 불가능하다. 네이버는 자동으로 AI가 수집한 정보를 검색이 많은 순으로 표시하는 반면 다행히 구글은 홈페이지를 등록하는 기능이 있다. 구글에서 ‘인문세’ 또는 ‘인문공간세종’이라고 검색하면 이제 우리의 홈페이지가 검색 결과에 당당히 표시된다. 유튜브, 페이스북도 함께. 홈페이지 수정이 온라인 공간이 더 자리잡게 만들어주는 것 같아 모든 아이디어는 환영할 수밖에 없다.
끝나지 않는 작업
월별 일정표와 방문 통계를 걸어야 하고, 게시판 폰트도 추가해야 하고, 곳곳에 디자인 수정이 필요하다. 곳곳에 보수 공사가 필요하다. 이런 일들을 다 마치더라도 끝은 아니다. 우리의 공간 건축은 완료가 아니라 계속 진행중이다. 상황에 따라 바뀌어야 하기에 아마 이 집을 사용하는 한 그럴 것 같다.
집도 마찬가지다. 공간을 차지하는 가구나 생활 도구들이 내내 똑같은 위치에 있으면 물건이 쌓이고 정체된 느낌을 갖는다. 상황이 달라지면 뒤집어서 털어내고 정리한다.
놓쳐버린 관점
이번 작업을 하면서 나는 보여지는 것에 집중하느라 보이지 않는 영역을 놓치고 있었음을 느꼈다. 관리자의 입장, 회원의 입장, 스텝의 입장, 게스트의 입장 등 홈페이지를 사용하는 모두의 관점에서 생각해봐야 했다. 세미나 신청 댓글은 누구나 별도로 로그인하지 않고도 신청이 간편하도록 설정했어야 했다. 로그인하면 내가 쓴 글을 모아서 한 페이지에 표시해야 했다.
버나드 루도프스키는 전통 건축에 내포하고 있는 ‘인간애humaneness’를 본다. 그가 보기에 건축물이 단순히 비바람을 피하거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한다. (거리 풍경의 통일감, 토론장 역할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