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학 탐구생활》 편집실
답사 가고 글을 쓰고!
[인류학을 나눌레오] 어울림을 짓는 건축가
◎ 주제문 : 필요와 조건을 생각하는 집을 만들자
◎ 글의 취지와 의의 : 온라인 공간을 만들고 사용하면서 느낀점을 써보자. 공동체적인 홈페이지가 되려면 어떤 생각을 더 할 수 있을까?
홈페이지가 왜 필요한가? 구현하고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 사용하면서 보완할 점은 무엇인가?
4년 전 인문세 네이버 카페가 만들어졌다. 회원이 한 명 두 명씩 늘어나더니 나중에는 500명에 가까워졌다. 세미나에 직접 참여하는 인원은 훨씬 적었지만 글을 보러 오는 회원이 있다는 사실로도 든든했다. 카페 관리자였던 오선민 선생님은 카페의 첫 화면인 대문 사진을 답사 사진, 세미나 카드 뉴스, 범고래 사진, 박물관 유물 사진 등 인문세와 관련된 사진으로 자주 바꾸었다. 네이버 카페의 정형화된 구조에서 인문세의 색깔을 표현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일 것이다. 한창 네이버 카페에서 공부할 때는 ‘글 쓰는 신데렐라’가 우리의 정체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자정이 되기 전 호박마차를 향해 달려가는 신데렐라처럼 우리도 숙제 마감 시간인 밤 12시에 글을 올리기 위해 달렸다. 정말로 카페에는 ‘기다려요. 같이 가요!’ 기필코 호박마차를 타야 한다는 소리 없는 아우성이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 네이버 카페는 금방 익힐 수 있는 간편한 사용법 덕분에 회원들이 쉽게 익히고 글을 올리고 나눌 수 있었다. 스마트폰으로 확인하는 카페 앱도 한몫했는데 앱이 알림 기능은 신청 댓글에 바로바로 응답할 수 있다는 강력한 장점이 있었다.
이렇게 4년 동안 잘 지낸 집에서 우리는 이사했다. 네이버 카페에서는 이제 우리의 필요를 충족시킬 조건을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짐만 옮기는 이사가 아니라 집을 지어서 이사 가는 프로젝트다. 건축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다양한 경우의 수를 검토할 필요가 있었고 시작할 때 생각하지 못했던 상황이 거듭되어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온라인이긴 해도 우리에게 멋진 집이 생겼으니 주변에 시루떡을 돌리며 기념했다. 우리의 힘으로 공간을 건축했다는 기쁜 마음과 코드에 오류가 생겨 무너질까 하는 걱정이 교차했다.
생활에 대한 통찰력
인문세 홈페이지가 필요하다고 이야기가 나온 건 1, 2년 즈음 된 것 같다. 오선민 선생님은 종종 올라온 숙제들이 카페 메인 페이지에서 빨리 내려가는 점을 아쉬워했고 글들을 오래 걸어두고 싶다고 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네이버 카페로 공부하고 숙제를 나누는데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믿음직한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시스템인 만큼 개인 정보 관리에 안전하고, 무료에 한정 없는 용량, 스마트폰 앱 연동과 알림 서비스 등 모든 기능에 만족했다. 이미 적응된 온라인 집에서 다른 집으로 이사 가는 불편을 감수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이후에도 홈페이지를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실행에 옮겨지지는 않았다. 시간이 지나는 만큼 우리는 네이버 카페 사용에 적응했고 다른 공간을 상상하기란 더 어려워졌다. 그러던 중 올해 드디어 선생님이 아쉬워했던 부분과 더불어 여러 의견을 취합해 본격적으로 홈페이지 만들기가 구체화 되었다. 생각해보면 네이버 카페는 안정감과 편리함이라는 큰 장점도 있지만 공간의 색깔을 표현하기란 어려운 점이 있다. 아파트처럼 1층 집부터 맨 위층 집까지 침실, 거실, 주방, 세탁실 등이 일률적으로 같은 라인에 위치하고 거기에 맞게 가구, 가전도 비슷한 자리를 차지한다. 붕어빵 틀에서 찍어낸 똑같은 붕어빵처럼 말이다.
버나드 루도프스키의 『건축가 없는 건축』은 자연의 변덕과 지형의 도전을 받아들이는 세계의 낡은 토속 건축물들에서 공동체성을 본다. 여기서 말하는 공동체성은 인간의 범주를 넘어 자연, 문화, 종교적 차원까지 확장하여 생각해야 한다. 그가 소개하는 모든 건축들은 세상 유일무이한 모양과 기능을 가진다. 사용하는 사람들에 맞추어 깎고 다듬은 예술품처럼 그들만의 색깔을 느낄 수 있다. 버나드 루도프스키는 이 건축물을 만든 사람들에게서 생활에 대한 특별한 통찰력을 발견한다. 아프리카에서는 결이 부드러운 바오밥 나무의 속을 파내 집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오밥 나무는 담수의 능력을 가지고 있어 물이 귀한 이 지역에서 더없이 좋은 집이다. 스페인 갈리시아 지방에는 오레오horreo라는 곡물 창고가 있다. 긴 기둥 위에 교회를 연상시키는 이 건축은, 창고에 저장된 곡물에 경이를 갖는 농민들의 종교적 세계가 반영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버나드 루도프스키가 말하는 생활에 대한 통찰력은 거창한 깨달음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필요를 고민할 때 나의 조건과 상황에 맞게 고려하는 것이고, 그에 어울리게 정성껏 공간을 깎고 다듬고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인문세 홈페이지는 필요와 조건을 고민하며 만들어갔다. 메인페이지에 최신글 목록을 길게 25라인으로 출력했다. 글을 좀 더 머무르게 하고 싶어 40라인으로 바꿀까 싶기도 하다. 아무래도 최신글 목록에서 내려가면 클릭되는 횟수가 준다. 글 입장에서는 좀 더 읽히기를 바랄 것 같기도 하다. 아하이즘으로 삶의 심오함을 가르쳐주시는 비교종교학자 오강남 선생님, 임진왜란을 연구하시고 우리에게 조선통신사와 일본 철학을 강의해주시는 허남린 선생님, 인연이 곧 스승이라며 배움을 소개하시는 이연숙 선생님의 연재 코너를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영어 강독팀과 일본어 강독팀의 번역, 일본과 스웨덴에 사는 해외 특파원의 사는 이야기, 인류학 알리는 글까지 연재 코너를 마련했다. 인류학 공동체답게 인류학을 마음, 신체, 기술, 예술, 동화로 나누어 별도의 방을 만들었다. 매달 인문세에 오고가는 마음을 정리한 글 ‘선물 이야기’를 한쪽에 자리시켰고, 우리가 자주 찾는 박물관 배너를 달았다. 박물관 소식에 좀 더 빠르게 접근하기 위함이고 홈페이지에 방문한 회원들이 박물관에도 들려보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다.
필요를 생각하는 사람
올봄 새로운 집을 짓는다니 왠지 인문세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는 느낌이었다. 먼저 우리는 주변에 문의하여 다른 공동체 홈페이지를 만드셨던 분과 연락을 취했다. 집을 지어줄 전문가 섭외가 우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만남을 요청하는 문자를 보내고, 어떤 홈페이지를 만들지 전문가와 상의할 내용을 고민했다. 전문가는 따로 만나지 않고도 일을 진행할 수 있음을 알려왔다. 문득 전문가에게 맡길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원하는 스타일의 집을 지어야 한다면 어설퍼도 일단 우리 손으로 직접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내가 무얼 아는지, 모르는지도 모르는데 어떤 집을 지어달라고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전문가에게 원하는 바를 설명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일단 직접 해보고 뭘 모르는지 알게 된다면 그때는 전문가와 상의할 수 있게 되리라. 같은 맥락에서 버나드 루도프스키가 공동체적 건축에 대해 인용한 말이 인상적이다. ‘소수의 지식인이나 전문가가 일으킨 것이 아니라, 공통된 체험을 바탕으로 공통된 문화유산을 가진 모든 구성원의 자연발생적이고 계속적인 활동에 의해서 생산된 공동체적 예술’(버나드 루도프스키, 김미선 옮김, 『건축가 없는 건축』(스페이스타임), 15쪽). 그렇다. 우리의 필요와 정체성이 드러나는 공간을 만들려면 인문세를 잘 모르는 전문가의 손길에 의존하기보다 서투른 기술이지만 우리 스스로가 고민하고 다듬어야 한다.
서울 캠프 베어하우스에서 오프라인 세미나가 있던 4월 어느 날, 스텝들은 함께 모여서 홈페이지를 어떻게 만들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장 관심을 보인 오선민 선생님이 전체 뼈대를 이룰 메뉴 구조를 생각해 왔고, 그것을 기본으로 하여 의견을 나누었다. 회의 바로 전에 세미나가 진행되었었는데 이 시간에 참석했던 선생님들도 남아서 힘을 보태주었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카페에서 어떤 것을 가져올지, 어떤 메뉴명이 통일감이 있는지, 상위 메뉴 아래 어떤 하위 메뉴가 들어가야 하는지, 접속할 때 처음 뜨는 페이지는 무엇이 어떤 구성으로 배치되면 좋을지 등을 상상력을 발휘했다. 주로 메뉴 구성과 첫 페이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세미나를 알릴 공지사항과 최신글, 연재글, 유튜브 알림 등 어떻게 화면을 채우면 좋을지 생각했다. 예술가인 정혜숙 선생님은 홈페이지에 상단에 붙일 인문세의 상징 범고래를 디자인해준다고 했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뭔가 되어 가는 듯하니 집 만들 자리에 초석이 하나씩 하나씩 마련되는 것 같았다.
직접적으로 홈페이지 제작에 참여한 것은 아니지만, 홈페이지를 사용하면서 어떤 점이 불편하거나 수정을 원할 때는 반가운 제보가 들어온다. 미처 생각지 못한 이 아이디어는 공간을 더 다듬어준다. 이종은 선생님은 네이버 검색창에 ‘인문세’라고 검색하는데 왜 홈페이지가 안뜨냐는 질문을 해왔다. 이 키워드로 검색하면 가수 이문세의 압도적인 정보들이 표시된다. 몇십 년 가수 생활을 한 그 사람의 검색 횟수를 따라가는 건 불가능하다. 네이버는 AI가 자동으로 검색이 많은 순으로 표시하는 반면 다행히 구글은 홈페이지를 등록하는 기능이 있다. 야호! 구글에서 ‘인문세’ 또는 ‘인문공간세종’이라고 검색하면 이제 우리의 홈페이지가 검색 결과에 당당히 표시된다. 유튜브, 페이스북도 함께. 이게 뭐라고 기분이 참 좋다. 필요를 생각하는 사람들의 참여로 홈페이지는 계속 수정을 거듭한다. 공간의 필요를 생각한다는 것은 이곳이 어떻게 작동되는지 관심을 가질 때 가능한 일이다.
놓쳐버린 관점
이번 작업을 하면서 나는 보여지는 것에 집중하느라 보이지 않는 영역을 놓치고 있었음을 느꼈다. 회원들의 입장을 고려하여 페이지를 표시해야 했는데, 가령 홈페이지 방문자는 모든 게시판을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로그인 여부에 따라서 글을 쓸 수 있는 권한이 주어져야 했고, 로그인한 회원의 경우 자기 글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거나, 스텝의 경우에는 다른 글에 대한 수정 권한, 스텝 게시판에 접근 권한을 줄 필요가 있었다. 방문자의 역할이 다르고, 역할마다 다른 권한이 주어져야 했는데 처음엔 오직 ‘방문자’만 생각했다. 각자의 관점에서 홈페이지를 바라보았을 때 어떤 기능을 더하고 빼야 하는지 생각하려면 직접 그 역할이 되어 홈페이지에 접근해야 했기에 나는 로그인 아이디가 네 개나 된다. 여기까지 생각이 끝이 아니었다. 세미나 신청은 공지사항에 댓글로 달아야 하는데 네이버 카페를 사용할 때 보다는 뭔가 신청 댓글의 속도가 많이 느려졌음을 느꼈다. ‘세미나 신청자’의 입장이 되는 일을 깜빡했다. 신청하는 사람으로서는 로그인이라는 절차가 무척 번거로운 문턱이 되었을 것이다. 홈페이지에 모든 글은 로그인 후에 가능하도록 설정했는데, 사용자의 입장에서 세미나 신청 만큼은 문턱을 낮추어 드나들기 간단한게 좋다. 이후 공지사항 댓글은 누구나 바로 쓸 수 있도록 변경했다. 집짓기 작업에서 눈에 보여지는 것은 빙산의 일각이었음을 느꼈다.
버나드 루도프스키는 전통 건축에 내포하고 있는 ‘인간애humaneness’를 본다. 그가 보기에 건축물이 단순히 비바람을 피하거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한다. 오늘날 건축을 진행하는 주체가 대기업인 경우, 경제적인 논리가 우선되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다. 그렇기때문에 빠르고 간단하게 단일한 형태의 아파트가 빽빽하게 들어선 것도 당연한 결과다. 내 집, 우리 공동체의 공간을 스스로 짓는다면 어떨까? 공간을 사용할 사람들이 어떤 필요를 느끼는지, 내게 주어진 조건은 어떠한지 스스로 상황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점에서 나는 루도프스키가 말한 인간애를 해석할 때 단지 인간에 대한 사랑이라고 말하기엔 부족함을 느낀다. 1세기 전 스페인에는 소도시 전체 거리를 따라 아케이드Acades라는 건축(도로)이 있었다. 영구적인 지붕을 가진 이 도로는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에게는 차양막이 되고, 광장에 모인 사람들에게는 토론장이 되는 건축이다. 통일감있는 구조는 도시의 공동체성이 잘 드러나는 듯하다. 루도프스키가 말한 인간애라는 것은 만들 때부터 이곳을 사용할 시민들의 다양한 필요에 대한 깊은 고민이 만드는 어울림 같은 것이 아닐까.
끝나지 않는 작업
사실 전문가가 만든 홈페이지에 비하면 기술적으로는 부족함을 느낀다. 잘 만든 홈페이지를 보면 나는 가끔 그 기능을 복붙하고 싶다. 생각한대로 구현이 어려울 때는 전문가에게 맡겼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국립중앙박물관《인디언으로 알던 사람들》전시회에서 보았던 북미 인디언들의 다양한 집들은 전문가에게 맡기지 않고도 자신들의 필요와 조건을 반영하여 매력적인 건축을 하지 않았던가. 아마 그들은 이사하는 만큼 인간애가 깃든 건축 전문가가 되었을 것이다. 지금 처음 집짓기를 해보았는데 처음부터 다시 짓는다면 왠지 더 잘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사실 지금 집짓기가 끝난 것은 아니다. 늘 다양한 문제들이 발견된다. 게시판 글쓰기 상자에 기본 글자 크기가 12인데 좀 작다. 이 크기는 노안이 시작된 나에게는 개미처럼 작게 보인다. 아마 책을 많이 보는 다른 회원들도 같은 어려움을 느끼지 않을까싶다. 14가 적당해서 바꾸고 싶어서 이 파일 저 파일 들여다보고 짐작 가는 코드를 고쳐보고 안되서 인터넷 검색을 해서 해봐도 도저히 찾기가 어렵다. 어제도 한 시간 동안 이렇게 저렇게 고쳐 보았는데 안된다. 더이상 시간을 쓸 수 없어서 중단했다. 이게 벌써 다섯 번째다. 글자 크기 조금 고치는 건데 어디 숨었는지 찾을 길이 없다. 잘 보이지 않는 작은 일이 중요한 미션이라니 정말 건축가라도 된 듯하다.
월별 일정표와 방문 통계를 걸어야 하고, 게시판 폰트도 추가해야 하고, 곳곳에 디자인 수정이 필요하다. 이런 일들을 다 마치더라도 끝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필요와 조건을 고민하는 우리의 집짓기 프로젝트는 완료가 아니라 계속 진행 중이다.
글 전체의 주제문을 명시적으로 밝히고 시작하십시오. 글바다 형식에 맞춰주세요.
주제문을 밝히고 시작! 수정하였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