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학 탐구생활》 편집실
답사 가고 글을 쓰고!
[인류학을 나눌레오] 올릴레오 다음은 나눌레오!
올릴레오 다음은 나눌레오
2024.09.30. 이기헌
◎ 주제문 : 공통의 감각을 갖는 공간을 만들자
◎ 글의 취지와 의의 : 온라인 공간을 만들고 사용하면서 느낀점을 써보자. 공동체적인 홈페이지가 되려면 어떤 생각을 더 할 수 있을까?
인문세가 온라인 새집을 지었다. 지난 7월까지 4년 동안 지냈던 정들었던 네이버 카페 공간에서 이사하여 새로운 거처를 마련한 것이다. 한창 네이버 카페에서 공부할 때는 글 쓰는 신데렐라가 되어 자정이 되기 전 숙제를 올리기 위해 너도 나도 달렸다. 종이 치기 직전, 최신글 목록은 순식간에 방금 올라온 숙제로 가득 찼다. 이때 우리의 정체성은 글을 쓰고 올리는데 집중되어 있었다. 네이버 카페는 금방 익힐 수 있는 간편한 사용법 덕분에 회원들이 쉽게 사용법을 익히고 글을 올리는데 무리가 없었다. 카페지기(관리자)는 카페의 첫 화면인 대문 사진을 답사 사진, 세미나 카드 뉴스, 범고래 사진, 박물관 유물 사진 등 인문세와 관련된 사진으로 자주 바꾸었다. 처음에는 그 의미를 모르고 개인 취향에 맞는 사진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네이버 카페의 정형화된 구조에서 인문세의 색깔을 표현을 위한 카페지기의 노력이었다. 카페는 글을 올리기엔 최고였지만 한눈에 ‘인류학을 공부하는 곳이구나!’ 이런 느낌을 담기에는 대문 사진으로는 한계는 있었다.
인문세 홈페이지가 필요하다고 이야기가 나온 건 1, 2년 즈음 된 것 같다. 올라온 숙제들이 카페 메인 페이지에서 빨리 사라지는 점이 아쉬웠고, 인류학 공부에 필요한 방대한 자료와 정보들을 우리의 필요에 맞게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차일피일 미루던 새집 짓기가 이번 봄 구체화 되었다. 새로운 집을 짓는다니 왠지 인문세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는 느낌이었다. 먼저 우리는 주변에 문의하여 다른 공동체 홈페이지를 만드셨던 분과 연락을 취했다. 집을 지어줄 전문가 섭외가 우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만남을 요청하는 문자를 보내고, 어떤 홈페이지를 만들지 전문가와 상의할 내용을 고민했다. 전문가는 따로 만나지 않고도 일을 진행할 수 있음을 알려왔다. 문득 전문가에게 맡길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원하는 스타일의 집을 지어야 한다면 어설퍼도 일단 우리 손으로 직접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무얼 아는지, 모르는지도 모르는데 어떤 집을 지어달라고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전문가에게 원하는 바를 설명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일단 직접 해보고 뭘 모르는지 알게 된다면 그때는 전문가와 상의할 수 있게 되리라.
인류학 세미나에서 읽은 버나드 루도프스키의 『건축가 없는 건축』은 자연의 변덕과 지형의 도전을 받아들이는 세계의 낡은 토속 건축물들에서 공동체성을 본다. 그가 소개하는 모든 건축들은 세상 유일무이한 모양과 기능을 가진다. 사용하는 사람들에 맞추어 깎고 다듬은 예술품처럼 그들만의 색깔을 느낄 수 있다. 그가 공동체적 건축에 대해 인용한 말이 인상적이다. ‘소수의 지식인이나 전문가가 일으킨 것이 아니라, 공통된 체험을 바탕으로 공통된 문화유산을 가진 모든 구성원의 자연발생적이고 계속적인 활동에 의해서 생산된 공동체적 예술’(버나드 루도프스키, 김미선 옮김, 『건축가 없는 건축』(스페이스타임), 15쪽). 그렇다. 우리의 필요와 정체성이 드러나는 공간을 만들려면 인문세를 잘 모르는 전문가의 손길에 의존하기보다 서투른 기술이라도 어떻게 글을 나눌지 우리 스스로 고민하고 다듬어 보는 게 좋겠다. 왜냐하면 인문세가 무엇이 필요하고, 어떤 조건에 놓여있는지 가장 잘 아는 건 바로 우리이기 때문이다.
인류학 학인이 만드는 공간
인문세 전공과목은 인류학이다. 인류학은 인류의 삶의 궤적을 따라 그들의 생각 방식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멀고 먼 구석기 인류부터 국가를 거부했던 인류, 농경을 시작했던 인류, 야만인의 모습을 한 인류 등 다양한 인류를 만나다보면 당연한 내 생각을 다르게 해볼 수 있다. 모르는 것을 알게 되는 차원하고는 조금 다르다. 단단한 나의 앎에 약간 균열이 생기는 느낌이 더 적절한 표현인 것 같다. 인류학 공부로 끊임없이 편협함에서 한 발 떨어져보는 실험을 한다. 그렇다면 인류학 공부를 하는 우리들에게 어떤 홈페이지가 필요할까? 4월 어느 날, 이런 질문을 들고 스텝들이 서울 베어하우스에 모였다. 오선민 선생님이 전체 뼈대를 이룰 메뉴 구조를 생각해 왔고, 그것을 기본으로 하여 의견을 나누었다. 회의 바로 전에 선인류학 특강 세미나가 진행되었었는데 이 시간에 참석했던 선생님들도 남아서 힘을 보태주었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카페에서 어떤 것을 가져올지, 인류학 공동체로서 어떤 메뉴명으로 통일감이 만들지, 상위 메뉴 아래 어떤 하위 메뉴가 들어가야 하는지, 접속할 때 처음 뜨는 페이지는 무엇이 어떤 구성으로 배치되어야 우리의 정체성을 드러내기에 좋을지 등을 상상력을 발휘했다.
예술가인 정혜숙 선생님은 홈페이지에 상단에 붙일 인문세의 상징 범고래를 디자인해준다고 했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뭔가 되어 가는 듯하니 집 만들 자리에 초석이 하나씩 하나씩 마련되는 것 같았다. 직접적으로 홈페이지 제작에 참여한 것은 아니지만, 홈페이지를 사용하면서 어떤 점이 불편하거나 수정을 원할 때는 반가운 제보가 들어온다. 미처 생각지 못한 이 아이디어는 공간을 더 다듬어준다. 이종은 선생님은 네이버 검색창에 ‘인문세’라고 검색하는데 왜 홈페이지가 안뜨냐는 질문을 해왔다. 이 키워드로 검색하면 가수 이문세의 압도적인 정보들이 표시된다. 몇십 년 가수 생활을 한 그 사람의 검색 횟수를 따라가는 건 불가능하다. 네이버는 AI가 자동으로 검색이 많은 순으로 표시하는 반면 다행히 구글은 홈페이지를 등록하는 기능이 있다. 야호! 구글에서 ‘인문세’ 또는 ‘인문공간세종’이라고 검색하면 이제 우리의 홈페이지가 검색 결과에 당당히 표시된다. 유튜브, 페이스북도 함께. 이게 뭐라고 기분이 참 좋다. 필요를 생각하는 사람들의 참여로 홈페이지는 계속 수정을 거듭한다. 공간의 필요를 생각한다는 것은 이곳이 어떻게 작동되는지 관심을 가질 때 가능한 일이다.
어떻게 나눌 것인가(다듬기)
네이버 카페 공간을 사용할 때나 홈페이지를 만든 지금이나 우리는 여전히 글을 쓰는 사람들이다. 정해진 마감시간에 글을 올리느라 그 시간에는 분주하다. 그렇다면 무엇이 달라졌을까? 메인페이지에 최신글 목록을 길게 25라인으로 출력했다. 글을 좀 더 머무르게 하고 싶어 40라인으로 바꿀까 싶기도 하다. 언제든 우리의 필요에 맞추어 변경할 수 있다. 글을 쓰는 우리에게 가장 의미있는 작업은 연재 공간을 마련한 것이다. 아하이즘으로 삶의 심오함을 가르쳐주시는 비교종교학자 오강남 선생님, 임진왜란을 연구하시고 우리에게 조선통신사와 일본 철학을 강의해주시는 허남린 선생님, 인연이 곧 스승이라며 배움을 소개하시는 이연숙 선생님의 연재 코너를 만들었다. 영어 강독팀과 일본어 강독팀의 매주 성실하게 번역한 글, 일본과 스웨덴에 사는 해외 특파원의 사는 이야기, 인문세의 전공 인류학 탐구할레오까지 연재가 진행중이다. 이 역시 언제든 다른 연재 코너가 마련이 가능하다.
가장 중요한 메뉴는 단연 인류학이다. 마음, 신체, 예술, 기술 등으로 인류학을 구분했다. (인류를 바라볼 때 … 여기는 더 생각해보겠습니다.) 인류학 답사 메뉴를 대륙별로 만들었다. 아직은 우리가 직접 두 발로 간 곳은 한반도와 아시아(일본)이지만 아메리카, 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 게시판에도 직접 다녀온 답사기가 올라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메뉴를 만들어 두었다.
매달 인문세에 오고가는 마음을 정리한 글 ‘선물 이야기’를 한쪽에 자리시켰고, 우리가 자주 찾는 국립중앙박물관, 전곡선사박물관, 공주 석장리 박물관 배너를 달았다. 박물관 소식에 좀 더 빠르게 접근하기 위함이고 홈페이지에 방문한 회원들이 박물관에도 들려보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다. 얼마전 전곡선사박물관에 방문했을 때 어느 선생님은 박물관 입구를 지키는 직원분께 우리의 홈페이지를 열어서 이 배너를 자랑했다고 한다. 그분은 큰 관심이 없는 눈치였지만 우리가 스스로 뭔가 만들어 간다는 것은 의미있게 다가온다.
보이지 않는 이면에 대한 생각
인류학 공부는 눈으로 보고 당장 확인할 수 있는 공부가 아니다. 지금 내 눈앞에 없는 것에 대한 끊임없는 상상이 필요하다. 답사가면 박물관에서 하던 말을 줄이고 각자 유물들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 상상하기에 바쁘다. 눈으로 본다고 말할 수 없고 오히려 마음으로 본다고 해야 맞을 것 같다. 역사 속에 놓인 유물, 그 주변에서 유물을 다루며 살던 사람들 또 그들의 마음, 그때의 날씨와 환경 등 우리는 보이지 않는 이면을 보기 위해 우리는 애쓴다. 물론 잘 보이지 않지만 박물관에 가는 횟수가 잦아질수록 그 상상 속으로 접속하기 좀 더 수월해지는 것을 느낀다. 인류학에서 잘 본다는 것은 그 이면까지 알아채는 것이다. 고전 영화 『프랑켄슈타인』에서 모두가 흉칙한 괴수를 보자마자 뜨악했지만 그를 제대로 볼 수 있는 것은 숲속에 살던 눈 앞이 보이지 않던 노인이다. 노인은 더듬더듬 손으로 괴수를 보았고 무서운 외모에 가려진 그의 가녀린 마음까지 보았다. 이번 홈페이지 작업에서 나는 비슷한 경험을 했다. 보여지는 것에 집중하느라 보이지 않는 영역을 놓치고 있었음을 느꼈다.
회원들의 입장을 고려하여 페이지를 표시해야 했는데, 가령 홈페이지 방문자는 모든 게시판을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로그인 여부에 따라서 글을 쓸 수 있는 권한이 주어져야 했고, 로그인한 회원의 경우 자기 글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거나, 스텝의 경우에는 다른 글에 대한 수정 권한, 스텝 게시판에 접근 권한을 줄 필요가 있었다. 방문자의 역할이 다르고, 역할마다 다른 권한이 주어져야 했는데 처음엔 오직 ‘방문자’만 생각했다. 각자의 관점에서 홈페이지를 바라보았을 때 어떤 기능을 더하고 빼야 하는지 생각하려면 직접 그 역할이 되어 홈페이지에 접근해야 했기에 나는 로그인 아이디가 네 개나 된다. 여기까지 생각이 끝이 아니었다. 세미나 신청은 공지사항에 댓글로 달아야 하는데 네이버 카페를 사용할 때 보다는 뭔가 신청 댓글의 속도가 많이 느려졌음을 느꼈다. ‘세미나 신청자’의 입장이 되는 일을 깜빡했다. 신청하는 사람으로서는 로그인이라는 절차가 무척 번거로운 문턱이 되었을 것이다. 홈페이지에 모든 글은 로그인 후에 가능하도록 설정했는데, 사용자의 입장에서 세미나 신청 만큼은 문턱을 낮추어 드나들기 간단한게 좋다. 이후 공지사항 댓글은 누구나 바로 쓸 수 있도록 변경했다. 집짓기 작업에서 눈에 보여지는 것은 빙산의 일각이었음을 느꼈다.
전문가가 만든 홈페이지에 비하면 기술적으로는 부족함을 느낀다. 잘 만든 홈페이지를 보면 나는 가끔 그 기능을 복붙하고 싶다. 생각한대로 구현이 어려울 때는 전문가에게 맡겼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국립중앙박물관《인디언으로 알던 사람들》전시회에서 보았던 북미 인디언들의 다양한 집들은 전문가에게 맡기지 않고도 자신들의 필요와 조건을 반영하여 매력적인 건축을 하지 않았던가. 아마 그들은 이사하는 만큼 인간애가 깃든 건축 전문가가 되었을 것이다. 지금 처음 집짓기를 해보았는데 처음부터 다시 짓는다면 왠지 더 잘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사실 지금 집짓기가 끝난 것은 아니다. 늘 다양한 문제들이 발견된다. 예를 들면 게시판 글쓰기 상자에 기본 글자 크기가 12인데 좀 작다. 이 크기는 노안이 시작된 나에게는 작게 보인다. 아마 책을 많이 보는 다른 회원들도 같은 어려움을 느끼지 않을까 싶다. 사용자를 위해 조금 더 키워보려는데 수정이 쉽지 않다. 아무도 모를 어쩌면 아주 작은 이 작업이 나에게는 중요한 미션이다. 잘 보이지 않는 작은 일이 중요한 미션이라니 정말 건축가라도 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