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학 탐구생활》 편집실
답사 가고 글을 쓰고!
[인류학을 나눌레오] 인류학 탐험단을 모집합니다
2024.10.13. 이기헌
◎ 주제문 : 정체성이 길을 열어준다.
◎ 글의 취지와 의의 : 우리는 인류학을 공부하고 공동체를 꾸려간다. 상황에 따라 새로운 방법이나 형식을 계속 적용하면서 할 수 있는 자기 일의 영역을 늘려가고 있다. 하지만 끝없이 확장하고자 하는 것이 목적은 아니다. 우리의 지금을 색깔로 선명하게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지금까지 공부하면서 우리는 색깔을 바꾸어왔고 내일 또 다른 색깔을 찾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우리의 색을 멋지게 뽐내고 싶다. 홈페이지는 그런 마음을 담은 우리의 시도이다.
인문공간세종의 전공과목은 인류학이다. 화요일에는 <마음 인류학>(우리에겐 일명 정통 인류학으로 불린다), 목요일에는 <동화 인류학>과 <기술 인류학>이 진행중이다. 이런 말을 하기는 좀 그럴지도 모르지만 이런 인류학 공부 공간은 어디에도 없으리라 자부한다. ‘인류학공간세종’이라고 공동체 이름을 바꿔도 될 정도로 학인들은 인류학을 열심히 공부한다. 우리는 대부분 모든 인류학 세미나에 참여하고 싶어하지만 숙제의 압박 때문에 각자 할 수 있는 만큼 듣고, 마음으로는 다른 인류학에 참여하는 학인들을 부러워한다. 날이면 날마다 오는 인류학책이 아닌데 이제 지나면 언제 그 책을 친구들과 같이 볼 수 있을까. 이렇게 재미있는 인류학 세미나에 신청 인원이 저조한 것은 좀 이해 불가다.
나는 인류학 공부가 마치 다른 세상을 탐험하는 공부처럼 느껴진다. 처음 배우는 공부가 주는 신비감 같은 것 때문만은 아니다. 인류학은 내 위치부터 시작한다. 내 위치가 어딘지 알아야 무엇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인류학책을 읽다보면 당연하게 생각했던 모든 것 너머에 다른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과 상상을 하게 만든다. 공신력 있는 교육기관의 교수님들이 유튜브를 통해 해석하는 인류학책과 인문세에서 배우는 인류학은 좀 다르다. 들어보면 그 차이를 알 수 있다. 우리는 책을 탐험하고 박물관을 탐험하는 세상 유일무이한 탐험단이다.
구전으로 전해지는 옛날이야기에 따르면 세종시 동네 카페에서 세 명이 인류학책을 읽으며 인문세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그러다가 더 많은 인원이 모여 오송에 있는 초등학교 앞, 가죽 공방 공간을 빌려 공부를 했다. 사람들이 더 왔으면 하는 바람으로 세종시에 연구실을 마련하고, 네이버 카페에 소통창구가 되어줄 공간을 마련했다. 한마디로 숙제를 올리고 나누기 위한 온라인 연구실이었다. 곧 우리는 인류학이 아니어도 니체, 스피노자, 이반 일리치 등 가리지 않고 좋다고 생각되는 세미나를 막 열게 되었다. 한창 네이버 카페에 정착하게 되니 우리는 안정적인 관계를 원하게 되었고, 시간에 맞추어 숙제를 올리게 되었다. 이때 우리의 정체성은 글을 쓰고 올리는데 집중되어 있었다.
계속 모색하는 길
사람들이 좀 더 모이자 네이버 카페는 공간은 조금 더 힘이 받는 것 같았다. 세미나가 조금 더 다양해졌고 숙제를 시간 맞춰 카페에 글을 올리는 건 공식적인 원칙이 되었다. 매일매일 올라오는 글들은 다음 날이면 곧 게시판 목록에서 사라졌다. 어제 올린 글을 좀 더 자랑하고 싶었는데…. 네이버 카페의 시스템 안에서 우리를 표현한다는 것은 마음처럼 잘 안되었다. 그래서 열심히 쓴 숙제를 모아서 『시작도 끝도 없는 숙제의 길 』(이하 시숙길) 라는 모음집을 만들게 되었다. 그때는 우리가 오타와 비문을 검토하고 엮어낸 이 작업이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시숙길은 1호를 끝으로 더이상 빛을 보지 못했다. 우리는 곧 다른 길을 찾았기 때문이다.
인류학책을 읽다가 화폐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실험하기 위해 대전 화폐박물관으로 답사를 갔다. 첫 답사에서 쓴 글은 모으니 『인류학 탐구생활』이라는 50여 페이지의 그럴싸한 잡지가 만들어졌다. 강한 인상을 주는 주황색 표지에는 남태평양 멜라네시아에서 부족 간 교역품으로 쓰인 조개껍질 팔찌 음왈리가 크게 인쇄되어 있다. 이때 우리는 팔찌를 넣을까, 목걸이를 넣을까, 고대 화폐를 넣을까 하며 잡지에 들어가는 사소한 것까지 얼마나 고민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앞으로 잡지를 몇 번이나 더 만들게 될지, 어떤 잡지를 만들게 될지 알 수 없었다. 스포하자면 우리는 지금 탐구생활 5호를 만들고 있다.
답사를 하며 우리의 보폭은 조금씩 커져 가는 것 같았다. 인류의 언어관을 공부하고자 최초로 문자를 사용한 국가를 전시한 국립중앙박물관 <메소포타미아 전(展)>에 다녀왔다. 설문대할망 신화가 전하는 풍경에 직접 서보고 싶어 제주도까지 건너갔다. 야생에서 필요와 조건에 대한 생각을 놓치지 않았던 아이누족의 마음을 관찰하고자 북해도행 비행기를 탔다. 올해 지진과 태풍이 우려되어 일본 아이모리 답사가 좌절되었는데, 지나고 생각해보니 우리가 씩씩하게 걸을 수 있었던 것은 용기만 있어서 될일은 아니었나보다. 보폭이 커지는 만큼 공부를 준비하고 쓰는 숙제도 함께 많아졌다. 4호까지 나온 잡지는 회를 거듭할수록 페이지가 늘어나더니 마지막 호는 136페이지가 되었다.
으쌰으쌰해서 같이 숙제하고 탐험하며 돌아다녔는데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우리는 예전과는 멀리 떨어져 다른 길로 접어드는 거 같았고, 하면 할수록 인류학 공부에 더 재미를 느끼게 되었다. 우리는 이제 본격적으로 인류학을 공부하는 사이가 되었다. 네이버 카페에서 인류학을 하는 사람들을 표현하기에는 여러가지로 부족함이 있었다. 정형화된 틀이라 보여주고 싶은 내용을 첫 페이지에 다 담아내기 어려웠고, 다른 관계와 연결을 알리기에도 게시판 리스트로 보여지는 한계 때문에 눈에 띄긴 어려웠다. 카페지기였던 오선민 선생님은 하루에도 몇 번씩 대문 사진을 바꾸었다. ‘어때? 우리 인류학 좀 공부하는 사람들이라고!’라며 알려주고 싶었던 그 마음을 이제 알 것 같다. 우리는 우리를 잘 표현해줄 홈페이지에 대한 필요를 느꼈다.
길목을 돌아 갖게 된 색깔
인문세 홈페이지가 필요하다고 이야기가 나온 건 1, 2년 즈음 되었지만 올해 본격적으로 집짓기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빨리 사라지는 글들을 붙잡고 싶었고, 인류학 공부에 필요한 방대한 자료와 정보들을 우리의 필요에 맞게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먼저 우리는 주변에 문의하여 온라인 집을 지어줄 전문가를 섭외했다. 어떤 홈페이지를 만들지 전문가와 상의하려는데 전문가에게 어떤 집을 어떻게 지어달라고 요구하기가 애매했다. 우리는 카멜레온처럼 언제 또 색을 바꿀지도 모르는데 그럴때마다 바뀌게 만들어 달라고 할 수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그때마다 전문가에게 번번이 다시 요청하기도 그렇다. 전문가에게 맡긴다고 해도 홈페이지를 사용하는 우리가 전체 구조에 대해 이해하고 있어야 했다. 우리의 집이니까. 나는 문득 전문가에게 맡길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집을 지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어떤 길을 가고 싶은지 제일 잘 알기 때문이다. 이렇게 어쩌면 무모할지도 모를 집짓기 프로젝트는 일단 시작되었다.
처음 공부를 시작할 때, 우리는 답사를 간다거나 홈페이지를 만든다거나 그런 생각을 한 건 아니다. 걷다보니 여기에 닿았지 이 길을 알고 걸었던 것은 아니다. 이제 우리는 네이버 카페를 통해 걷던 길목을 돌아 다른 국면을 맞이했다. 인류학을 열심히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온라인 집짓기 프로젝트로 이끌었다. 그렇다면 인류학 공부를 하는 우리들에게 어떤 홈페이지가 필요할까? 4월 어느 날, 이런 질문을 들고 스텝들이 서울 베어하우스에 모였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카페에서 어떤 것을 가져올지, 인류학 공동체로서 어떤 메뉴명으로 통일감이 만들지, 상위 메뉴 아래 어떤 하위 메뉴가 들어가야 하는지, 접속할 때 처음 뜨는 페이지는 무엇이 어떤 구성으로 배치되어야 우리의 정체성을 드러내기에 좋을지 등 상상력을 동원했다.
인류학 세미나에서 읽은 버나드 루도프스키의 『건축가 없는 건축』은 자연의 변덕과 지형의 도전을 받아들이는 세계의 낡은 토속 건축물들에서 공동체성을 본다. 그가 소개하는 모든 건축들은 세상 유일무이한 모양과 기능을 가진다. 사용하는 사람들에 맞추어 깎고 다듬은 예술품처럼 그들만의 색깔을 느낄 수 있다. 그가 공동체적 건축에 대해 인용한 말이 인상적이다. ‘소수의 지식인이나 전문가가 일으킨 것이 아니라, 공통된 체험을 바탕으로 공통된 문화유산을 가진 모든 구성원의 자연발생적이고 계속적인 활동에 의해서 생산된 공동체적 예술’(버나드 루도프스키, 김미선 옮김, 『건축가 없는 건축』(스페이스타임), 15쪽).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의 필요와 정체성이 드러나는 공간을 만들려면 전문가의 손길에 의존하기보다 서투른 기술이라도 우리 스스로 고민하는 건 좋은 선택이었다.
걷다 보니 보이는 것
인문세의 짧고도 긴 역사를 돌아보면 처음 우리는 집도 없었다. 이후 네이버 카페를 사용하는 동안 우리는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카테고리를 바로 만들었다. 이제 인류학하는 사람들을 제대로 알리기 위한 우리의 홈페이지가 만들어졌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과제들이 남아있지만 나름 뿌듯한 우리의 온라인 집이 얼추 완성되었다.
메뉴는 몇 번의 수정 끝에 결정되었다. 우리가 내세우고 싶은 것은 ‘인류학’인데 인류학을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부터 도대체 철학, 자연학을 어디에 어떻게 두어야 하냐는 질문까지. 홈페이지 방문하자마자 맨 먼저 보이기 때문에 메뉴를 정하는 일은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인류학 공부> 카테고리 안에는 어떤 관점으로 인류를 관찰하는지에 따라 마음, 신체, 기술, 문화, 예술로 나뉘어져 있다. 처음에는 언어 인류학도 있었지만 지금은 감추어 두었다.
우리에게 중요한 <인류 문화 답사> 카테고리는 처음에 구석기, 신석기로 하위 메뉴를 만들었었다. 하지만 이 두 개의 범주에 들지 않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 우리가 답사를 가며 보았던 패총에는 여러 시대가 다 걸쳐 있다. 맨 아래가 구석기라면 위층으로 갈수록 그 다음 시대가 층층이 쌓여있다. 그렇다면 패총을 어떤 메뉴로 넣어야 할까? 울산에 신석기 반구대 암각화 보러 가는 길에 있던 공룡 발자국은 어느 시대로 분류할 수 있을까? 우리는 고민 끝에 시기가 아닌 지역으로 나누었다. 지금 <인류 문화 답사> 하위에는 한반도, 아시아, 북아메리카, 남아메리카, 유럽, 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 항목이 들어가 있다.
남아메리카, 유럽, 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 게시판은 지금 텅 비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실 보이지 않는 우리의 바람이 가득 차 있다. 언젠가 꼭 가보고 싶다는 우리의 바람 말이다. 우리는 아프리카에 바오밥 나무의 속을 파낸 집을 보러 가고 싶고, 오스트레일리아 리오 핀투라스의 손바닥 동굴 벽화를 보러 가고 싶고, 영국에 있는 고인돌 닮은 스톤헨지도 보러 가고 싶다. 아프리카에 가서 도곤족을 만나면 너무 반가울까? 아니면 겁이 날까? 네모난 가면을 쓴 그들 사이에서 무엇을 향해 춤추고 노래하는지 가까이서 바라보고 싶다. 그들의 흙집에, 신성한 공간에 발을 디뎌보고 싶다. 홈페이지를 만들고 보니 우리는 우리가 무얼 하고 싶은지 보게 되기도 한다.
홈페이지 하단에는 인류학 단체에 어울리는 배너를 달았다. 국립중앙박물관, 전곡선사박물관, 공주 석장리박물관과 그린피스, 생명다양성재단으로도 연결을 만들었다. 그쪽은 아직 잘 모르지만 언젠가 우리의 존재가 알려질지도 모른다. 우리는 연결되고 싶은 더 많은 관계를 홈페이지에 실을 수 있다. 얼마전 전곡선사박물관에 방문했을 때 어느 선생님은 박물관 입구를 지키는 직원분께 태블릿으로 인문세 홈페이지를 보여주며 이 배너를 자랑했다. 직원분은 큰 관심이 없는 눈치였지만 나는 뿌듯함을 느낀다.
일상에서 인류학하기
나는 처음 인류학에 뜻을 품고 인문세에 온 것은 아니었다. 외부에서 오선민 선생님께 강의를 듣다가 같이 책 읽자는 말씀에 덥석 들어오게 되었다. 인류학책은 한국말인데도 이렇게 어려울 수가 있나 기절할 것 같았다. 다들 잘하는 것만 같은데 나만 쭈글쭈글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러면 손 놓고 집에 가면 되는데 나는 지금 3년째 인문세에서 인류학을 공부하고 있다. 공부는 1등부터 꼴등까지 줄 세우는 게 아닌데도 이런 기준은 자연스럽게 내 생각을 파고들었다. 처음 공부를 시작할 때 무조건 조용히 배우자고 다짐했었다. 그때의 다짐은 어디로 가고 글쓰기에 비교하고 징징거리는 나를 발견한다. 적어도 탐험단이라면 나는 왜 나만 못하냐고 물을 게 아니다. 이번 탐험은 생각처럼 잘 안되었네. 이번 탐험에는 뭐가 좀 잘 보이네. 그럼 다음에는 뭘 더 보게 될까? 어디를 가보면 좋을까? 어떤 생각을 해보면 좋을까?
인류학 탐험단은 계속 정답이 없는 길을 간다. 무얼 볼지 무얼 만날지 또 어떤 길목에서 다른 정체성을 찾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열심히 활동하던 네이버 카페에서 홈페이지로 이사하면서 나는 우리의 정체성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정체성은 우리가 지켜내고 추구하는 것처럼 보이고 한편으로는 인문세의 정체성에 밀려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것은 내가 공부를 하든 밥을 하든 어디에 서 있든 나를 어떤 사람으로 살게 할지, 내 하루에 어떤 마음을 쓰며 살지 검토하게 해주는 것이다. 그렇게 걷는 길에서 우리는 더 멋진 다음 비전을 보게 될 수밖에 없다.
전에 활동했던 네이버 카페에서 회원수는 500명이 넘었었다. 많은 회원이 유령 회원이었지만, 네이버 카페 앱을 통해서 틈틈이 사람들이 오고 가고 했기 때문에 카페는 활발한 편이었다. 홈페이지로 이사하고 네이버 카페에서 공부할 때보다는 방문자도 멤버수도 확연히 줄었다. 세미나 신청에 새로운 멤버 출현은 가뭄에 콩 나오듯 한다. 인류학 탐험단이 모집이 시급하다. 인류학이 궁금하고 새로운 비전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탐험단 합류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