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학 탐구생활》 편집실
답사 가고 글을 쓰고!
[인류학을 나눌레오] 인류학을 알릴레오(최종)
집을 보면 살고 있는 사람이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어떻게 살고 싶어 하는지 알게 된다. 올해 인문세는 집을 지었다. 온라인 집, 홈페이지에 우리의 색깔을 담기 위해 같이 고민하며 뚝딱뚝딱 만들어갔다. 마음과 다르게 계획대로 안 되고 좌충우돌하는 과정을 겪어야 했지만 일단 입주할 정도로 만들고 나니 뿌듯했다. 우리는 본격적으로 ‘인류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라는 정체성을 집에 담기 위해 부족의 상징인 범고래를 대문에 달고, 메뉴를 바꾸어 가며 실내 인테리어를 해나갔다. 우리가 무엇을 배우고, 어디를 가고, 어떤 관계를 맺고 싶은지 살림살이 배치하듯이 메뉴, 게시판, 아이콘 등 항목들을 자리 배치하느라 고심했다.
지난여름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우리가 인디언으로 알던 사람들》에서 다양한 북미 원주민들의 색깔이 담긴 집들이 인상적이었다. 우리도 곧 집을 지어야 하는데 이 사람들은 어떤 집을 어떻게 짓고 살아가는지 궁금했다. 전시회 공간 가운데 텐트 같은 아주 큰 집이 배치되어 있었는데, 이 집은 대평원에 살던 원주민들이 짓는 ‘티피Tipi’라는 집으로 계절의 변화에 따라 또는 들소 떼를 쫓아 이동하기 위해 폈다 접기에 쉽도록 만들어졌다. 집을 뒤덮고 있는 들소 가죽에는 누가 봐도 ‘아 들소를 사냥하는 사람들이구나’ 하고 알 수 있을 정도로 사냥하고 전쟁하는 모습이 알록달록하고 디테일하게 그려져 있다. 그들은 자연의 섭리를 따르고, 역동적으로 살아가는 부족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우리 홈페이지도 우리의 색깔을 잘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북동부 지역에서 사는 이퀘로이 족의 집은 폈다 접었다가 쉬운 티피에 비해 한 곳에서 오래 머물며 사용할 것 같았다. 김밥처럼 긴 ‘롱하우스Long House’를 만들기 위해 어린나무를 구부려 돔 모양 지붕을 만들고, 나무껍질을 묶어서 건물 전체를 뒤덮는다. 집 내부에는 중앙통로를 만들고 양쪽 옆면을 따라 칸막이를 나누었다. 모계 대가족을 형성하는 핵가족 식구들이 각각의 칸에 살고 그들과 직접 마주 보는 가족과 가운데 불을 공유했다. 집에 공유와 호혜의 윤리를 담은 이퀘로이 족은 롱하우스 사람들이라고도 불린다. 그렇다면 우리 집에는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인류학 공부를 어떻게 배치할 수 있을까. 우리가 추구하는 것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 그때 내 머릿속은 집 짓는 생각으로 꽉 차 있었다.
공간의 고유한 색깔은 머무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전시회를 다녀오고 몇 달이 지난 지금 우리는 새로 입주한 홈페이지에서 우리의 공부와 활동으로 우리를 표현한다. 숙제를 올리고, 스승님과 친구들의 연재글을 올린다. 돌아다니며 사진도 찍어 올리고 세미나 공지와 공지를 부각시킬 배너를 단다. 우리 손으로 만들고 가꾸는 홈페이지에는 우리가 추구하는 공부 방식이 깃들어 있다. 처음부터 지금의 모습을 계획한 것은 아니고, 계속 공부하는 와중에 정해졌다. 우리의 필요가 달라지면서 거기에 맞는 색깔을 찾게 되었다. 자신이 머무는 공간에 정체성을 담는 것은 내가 누구인지, 어떻게 살지를 중단 없이 생각하는 일이다. 끊임없는 전개와 생성을 통해 달라져 온 우리의 정체성을 소개하고 싶다.
올릴레오에서 알릴레오로
인문세의 짧고도 긴 역사를 돌아보면 처음 우리는 집도 없었다. 동네 카페에서 책 읽기를 좋아하는 세 명이 모여 시작되었다는 전설을 들었다. 그러다 사람들이 더 왔으면 하는 바람으로 네이버 카페에 온라인 소통 공간을 마련했다. 유명한 철학자를 공부해야 할 것 같아서 철학 카테고리를 만들고, 자연학 공부도 필요할 것 같아서 자연학도 만들어 넣었다. 네이버 카페는 급한 대로 방이 필요하면 방을 만들고 마루가 필요하면 마루를 까는 식으로 그때그때 공간을 바로 만들어 썼다. 카테고리는 공부 영역이 확장되는 만큼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늘어갔다.
한창 네이버 카페에 사람이 모이자 우리는 좀 더 안정적인 관계를 원하게 되었고, 시간 맞추어 올리는 숙제가 약속이 되었다. 다른 생각을 하게 만들고, 재미있어서 발을 동동 구르게 만드는 글들은 좀 더 오래 카페 게시판에 걸려있으면 좋을 텐데 네이버 카페 목록에서 금방 사라지니 아쉬웠다. 글을 어떻게 더 나눌 수 있을까 궁리하다 숙제를 모아서 『시작도 끝도 없는 숙제의 길』이라는 문집을 만들게 되었지만, 이 문집은 1호를 끝으로 더 이상 빛을 보지 못했다. 우리는 곧 인류학책을 보고, 박물관을 답사하고 《인류학 탐구생활》이라는 잡지를 발간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인류학책을 읽고 글을 쓰다보면 내가 어떤 관점으로 세상을 보는지 조금 느낌이 올 때가 있다. 같이 공부하는 친구라도 각자 자신만의 관점을 장착하고 있기 때문에 글이 다채롭다. 우리는 최근 동물원을 답사하고 각자 관람 후기를 썼는데, 재미있게도 내가 본 유인원과 최수정 선생님이 본 유인원은 전혀 다른 존재처럼 쓰여졌다. 같은 것을 보고도 전혀 다르게 느낀 것이다. 하지만 인류학은 관점에 대해 옳다, 그르다 평가하거나 겨루는 공부가 아니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다른 사람의 생각이 그럴 수 있다는 걸 발견하는 게 전부다. 정답이 없으니 어디로든 씩씩하게 생각을 열어간다. 답사하며 우리의 보폭이 커지는 만큼 쓰는 숙제도 함께 많아졌다. 딱 2년 전 숙제를 모아서 만들었던 《인류학 탐구생활》은 곧 묵직한 5호로 발간될 예정이다.
으쌰으쌰해서 같이 책 보고 답사하며 정신없이 돌아다녔는데, 우리는 어느새 예전과 멀리 떨어져 다른 길에 서 있다. 우리는 본격적으로 인류학을 공부하는 사이가 되었고 자연스럽게 인류학을 알리는 사람들이 되고 싶어졌다. 여전히 글을 쓰고 올리는 일이 중요한 우리에게 네이버 카페는 인류학을 알리는 사람들을 표현하기에는 여러 가지로 부족함이 있었다. 정형화된 카페 틀은 우리가 활용하기에는 가시적으로도 실용적으로도 한계가 있었다. 글을 잡아둘 수 없고, 카테고리 형식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도 없고, 원하는 동영상이나 이미지를 원하는 곳에 달아두기도 어려웠다. 우리를 잘 표현해줄 홈페이지에 대한 필요를 느꼈다.
걷다보면 나타나는 다음 스테이지
인문세 홈페이지가 필요하다고 이야기가 나온 건 1, 2년 즈음 되었지만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집짓기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먼저 우리는 주변에 문의하여 온라인 집을 지어줄 전문가를 섭외했다. 어떤 홈페이지를 만들지 전문가와 상의하려는데 어떤 집을 어떻게 지어달라고 구체적인 표현이 안 되었다. 홈페이지를 수정할 때마다 전문가에게 의지해야 하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왠지 잘 모르겠지만 나는 문득 전문가에게 맡길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우리가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길을 가고 싶은지 우리가 제일 잘 알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번듯한 집이 아니라 ‘인류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을 잘 보여주는 집이었다. 이런 생각 끝에 어쩌면 무모할지도 모를 집짓기 프로젝트는 일단 시작되었다.
처음 공부를 시작할 때, 우리가 답사를 간다거나 홈페이지를 만든다거나 그런 생각을 한 건 아니다. 지금의 우리는 네이버 카페를 통해 걷던 길목을 돌아 다른 국면을 맞이했다. 인류학을 좀 더 잘해보자는 마음이 온라인 집짓기 프로젝트로 이끌었다. 4월 어느 날, 우리는 어떤 홈페이지를 만들지 회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어떤 메뉴명들로 통일감을 만들지, 상위 카테고리 아래에 어떤 항목을 추가할지, 얼굴과 같은 메인페이지는 어떤 구성으로 무엇을 배치해야 우리의 정체성을 드러내기에 좋을지 등 상상력을 동원해서 홈페이지를 구상했다. 우리의 공부를 어떻게 정리하고 배치할지 진짜 상상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벽돌을 쌓는 것처럼 차곡차곡 일이 되어가는 것 같았다.
우리가 범고래 부족임을 상징하기 위해 홈페이지 대문 맨 위에 마크를 달았다. 우리는 재빠르고, 편식 없고, 진취적이고 능동적인 활동성을 범고래를 통해 상기한다. 다른 생각을 모색하는 사람들이라는 인문세 소개 코너를 만들고, 공간을 닦고 쓸고 다듬고 움직이게 하는 스텝 소개 코너도 만들었다. 그런데 알고 시작한 게 아니라 책 보고, 영상 보고 배우면서 하다 보니 작업 속도가 생각보다 너무 느려 전문가에게 맡길 걸 그랬나 후회도 들었다. 평소 해야 할 일들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홈페이지에 집중한다는 게 쉽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의 필요와 정체성이 드러나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전문가의 손길에 의존하기보다, 서투른 기술로 한발 한발 걷더라도 우리 스스로 고민한 건 좋은 선택이었다.
어쩌다 마주친 비전
올해 7월 첫 날, 몇 가지 아쉬움을 남긴 채 인문세 자체 제작 ‘인류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의 집’이 드디어 공개되었다. 축하 받고 싶은 마음, 집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새벽 일찍 떡집에 예약해둔 시루떡을 찾아 세종연구실, 서울캠프 베어하우스 이웃에 돌렸다. 홈페이지를 오픈하면 작업이 끝나는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많은 보수 작업으로 분주한 시간을 보냈다.
홈페이지에서 우리가 어떤 공부를 어떻게 하는지 가장 잘 나타내는 지표는 뼈대가 되는 카테고리이다. 카테고리를 만들고도 잘 안 맞아서 바꾸고 또 바꾸었다. <인류학 공부> 카테고리는 어떤 관점으로 인류를 관찰하는지에 따라 마음, 신체, 기술, 문화, 예술로 나누어보았다. <인류 문화 답사> 카테고리는 처음에 구석기, 신석기로 하위 메뉴를 만들었었다. 하지만 숙제를 하고, 글을 올리려다보니 두 범주로 분류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선사시대 인류가 버린 조개껍데기가 쌓여 이루어진 퇴적층을 패총(조개무지)이라고 부르는데, 우리가 답사 가서 보았던 패총에는 맨 아래층부터 맨 위층까지 여러 시대가 층층이 쌓여 있다. 어떤 시대로 명확히 구분할 수 없는 유적이었다. 또 울산 신석기 반구대 답사에서 만난 백악기 공룡 발자국은 신석기에도 구석기에도 해당되지 않았다. 그제야 우리는 답사를 시간이 아닌 지역으로 나누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세상은 보는 각도와 방향에 따라 다른 관점, 다양한 수준으로 포착할 수 있다. 작고 사소하지만 해보지 않았으면 몰랐을 일들을 조금씩 발견했다.
지금 <인류 문화 답사> 카테고리 하위에는 한반도, 아시아, 북아메리카, 남아메리카, 유럽, 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 항목이 들어가 있다. 남아메리카, 유럽, 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 각 항목을 열어보면 페이지는 지금 텅 비어있다. 하지만 빈 페이지를 가진 그 항목들은 우리의 가능성 같은 것이고, 언젠가 가볼 수 있겠지 하는 기대와 바람 같은 것이다. 아메리카 최초 인류 정착지가 미국 클로비스(Clovis)가 아니라 칠레 몬테베르데(Monte Verde)라며 학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던 친치후아피(Chincihuapi) 강변에 서보고 싶다. 얼룩무늬 말을 그려놓은 프랑스 페슈 메를(Pech Merle) 동굴 안에서 신석기인들이 섬겼던 신을 상상해보고 싶다. 신석기 오스트레일리아 아넘랜드(Arnhem Land)에서 빙하가 녹으면서 차오르는 해수면으로 급격한 변화를 겪었던 사람들의 삶이 궁금하다. 인류학 책에서 보았던 아프리카에 도곤족이 여전히 살고 있다는데 만나면 반가울까? 아니면 겁이 날까? 네모난 가면을 쓴 그들 사이에서 그들이 무엇을 향해 춤추고 노래하는지 가까이서 바라보고 싶다. 그들의 흙집에, 신성한 공간에 발 디뎌보고 싶다. 다른 생각을 좋아하는 사람들로 공부하고 답사 다니다보니 이런 꿈도 꿔보게 된다.
홈페이지 하단에는 우리가 자주 찾는 단체, 연결되고 싶은 단체 배너를 달았다. 국립중앙박물관, 전곡선사박물관, 공주 석장리박물관과 그린피스, 생명다양성재단으로도 연결을 만들었다. 그쪽에서는 아직 잘 모르지만 언젠가 우리의 존재가 알려질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는 연결되고 싶은 더 많은 관계를 상상할 수 있다. 얼마 전 전곡선사박물관에 방문했을 때, 어느 선생님은 박물관 입구를 지키는 직원에게 인문세 홈페이지에 박물관의 배너를 보여주며 우리가 선사시대에 관심이 많아 이 박물관에 연결되고 싶은 마음임을 전달했다. 앞으로 우리는 어떤 길로 연결될까? 지금 우리는 네이버 카페에서 올릴레오 모드로 공부할 때는 상상하지 못한 인류학을 알릴레오 모드가 되었다.
우리는 인류학책을 읽고, 글을 써서 다른 생각, 다른 관점을 발견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다르다는 것을 계속 생각하다보면 내가 어떤 위치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지 알게 된다. 기존에 갖고 있던 상식에 균열이 생기기도 하고, 다른 생각에 대해 비판 보다 이해의 폭이 넓어지기도 한다. 분노가 줄고 착해지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처음부터 이런 사람이 되자는 목적도 아니었지만 이미 우리는 다른 생각을 찾아다니고 있다.
한 땀 한 땀 작업한 온라인 집에는 우리의 정체성, 우리가 어떤 가치를 추구하고 어떤 방식으로 공부하고 사는지 드러나 있다. 홈페이지를 통해 인류학 공부를 더 많이 나누고 알리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홈페이지에 추가 공사와 정비 작업이 계속되어야 한다. 어제는 새로운 세미나가 계획되어 <동화 인류 연구회> 카테고리 아래에 <동화 작가들 – 한강> 메뉴를 추가했고, 오늘은 세미나 신청 댓글 시스템을 고쳐달라는 AS 요청이 있었다. 인문세 홈페이지는 계속해서 변화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다음 스테이지에서는 어떤 공간을 꾸리고 어떤 정체성을 고민하게 될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