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학 탐구생활》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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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을 나눌레오] 먹는다는 것
인류학을 나눌레오(9) / 먹는다는 것(1) / 2024.11.04. / 진진
먹는다는 것
주제문 : 나는 먹음으로써 세상과 연결된다.
글의 취지와 의의 : 효율이 최고의 덕목인 시대에 단 몇 분이면 뱃속으로 사라지고 말 음식에 시간과 공을 들이는 일은 참 무의미하고 허무하게 느껴진다. 삶의 근간이 되는 먹는 일이 뒷전으로 밀려나 버린 지금의 상황이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든다. 먹는 일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보자.
서론 – 양극단에 선 먹거리
본론 – 생명의 근간으로서의 먹기
내 입으로 들어오기까지
내 항문으로 나가고 나서
어디까지가 나고 어디까지가 너?
잘 먹고 잘 싸기
결론 – 먹는 즐거움
양극단에 선 먹거리
무겁게 장을 보고 서툰 요리 실력으로 몇 시간씩 식사를 준비해 놓으면 불과 몇 분 안에 식탁 위의 음식들은 뱃속으로 사라지고 만다. 누군가는 힘들게 음식을 해도 사람들이 맛있게 먹어주기만 하면 그렇게 보람되고 뿌듯할 수가 없다는데, 나는 몇 시간을 서서 조리한 음식이 금새 사라져버리는 걸 보면 그렇게 허무할 수가 없다. 내 새끼 입에 밥이 들어가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르다는데 나는 모성이 없는 걸까, 아니면 나밖에 모르고 이기적이어서 그런 걸까. 몇 년 전 코로나로 집합 금지 명령이 내려져 온 가족이 집에 옹기종이 모여 끼니를 해결해야 했을 때는 진짜 ‘돌밥 돌밥’(밥하고 돌아서면 또 밥하고, 돌아서면 또 밥하는 상황을 이르는 신조어)의 일상이 그렇게 암울할 수가 없었다.
알약 한 알로 먹는 걸 해결할 수는 없을까? 말 그대로 ‘먹고’ 사는 일이 참 고되다고 생각될 때는, 먹는 즐거움은 둘째로 하고 먹거리를 준비해야 하는 입장에서 나도 모르게 그런 바람이 문득문득 올라온다. 알약 몇 알을 가족들의 입에 털어 넣어주고 끼니를 해결하면 좋겠다고 말이다. 식탁 위에 쌓여가는 건강보조식품들을 보면 그럴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도 같다. 식사대용 쉐이크로 끼니를 대신하고 단백질 쉐이크로 몸의 근육도 우락부락 키우는 걸 흔하게 볼 수 있고, 어느 집이나 영양보충제 한두 개쯤은 기본으로 먹고 있는 것 같으니 말이다. 밀키트나 반조리식품, 패스트푸드, 배달음식 등으로 끼니를 간편하게 해결하는 요즈음의 식문화도 먹는 일에 들이는 시간을 줄이고자 하는 사람들의 경향을 보여준다.
반면에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나 유튜브에서는 먹방이나 맛집 투어, 요리 경연 프로그램 등이 인기다. sns에서도 음식 사진은 단골로 등장하고, sns 제철음식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날 정도로 먹는 일은 즐거움, 삶의 낙(樂)의 하나로 사람들에게 각광받고 있다. 이처럼 먹는 일은 쾌락의 측면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면서도 그 일의 가치에 있어서는 무시되고 경외시되는 양 극단에 있다. 먹는 일은 어쩌다 이런 두 얼굴을 가지게 되었을까. 넘쳐나는 먹거리의 풍요로움 속에서 나는 먹는다는 것을 뭐라고 생각하고 있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과연 먹는다는 것의 의미는 뭘까 하고 말이다.
생명의 근간으로서의 먹기
인간은 누구나 먹어야 살 수 있다. 인간뿐만 아니라 살아 있는 존재라면 모두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먹는 일은 생명의 근원이 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