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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인류학

 

 

[길가메시 서시사] 길가메시 서사시와 그 맞은편

작성자
유나
작성일
2024-07-08 13:33
조회
170

빙하 인류학(24) / 길가메시 서사시 / 2024.07.09 / 손유나

 

길가메시 서사시와 그 맞은편

 

길가메시 서사시는 고대 영웅 신화로 도시 국가 우루크의 전설적인 왕 길가메시가 주인공이다. 길가메시는 폭정을 일삼고, 야생 인간 엔키두와 대결을 벌이고, 삼나무 숲을 지키는 신 훔바바를 죽이고 이쉬타르를 모욕하는 혈기 넘치는 자이다. 하지만 동료 엔키두의 어쩔 수 없는 죽음을 목격하고, 영생을 찾아 긴 여정을 떠난다. 하지만 여정의 끝에서 현자를 만나 결국 인간의 필멸을 받아들이는 대신 우루크의 성벽을 보며 위대하고 영원한 것은 인간이 아니라 인간의 업적이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길가메시 서사시는 당시 철학의 집대성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인간의 본질과 성장에 대한 통찰이 곳곳에 녹아 있어 현재까지도 유효한 교훈을 준다. 개인적으로는 연못에서 멱을 감다가 식물의 향내를 맡은 뱀이 불로초를 가져간 후, 주저앉아 있는 길가메시의 모습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길가메시가 피치 못할 사정으로 불로초를 지키지 못한 것도 아니고, 뱀이 어떤 악의를 가지고 빼앗아 간 것도 아니다. 어떤 의도가 없어도 안 되는 일은 그냥 안 되는 거라는 절망, 체념과 허탈함으로 주저앉아 있는 모습이 약하기 짝이 없는 인간의 본질을 보여주는 듯했다.

한데 이 서사시는 누가, 어디에서 노래했을까? 글의 줄거리를 벗어나 이 서사시의 배경으로 관심이 옮겨가자, 길가메시를 설명하는 이전까지와는 다른 단어가 눈에 띈다. , 성벽, 궁정문학, 문자, 학교, 필경사. 길가메시 서사시는 궁정에서 불렸고, 왕이 아들에게 주는 조언이 담겨 있다. 현자 우타나피쉬티는가 길가메시에게 해주는 조언이 그렇다. 우타나피쉬티는 길가메시에게 왕으로서 어떤 모습으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조언한다. 길가메시가 적힌 점토판은 국가 행정 업무에 복무하려는 필경사들이 학교에서 공부하며 남긴 흔적이다. 국가가 만들어내고 학습 도구로 사용되었던 문자와 석판은 오래도록 남아 있어 당시 문명이 사라진 한참 후에도 복원이 가능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애써 국가를 만들지 않고, 역사를 남기지 않았던 야생의 무리는 어떤 이야기를 전승했을지, 그 빈 자리가 눈에 들어온다. 예를 들어 폴 토템을 박물관으로 옮겨 영구히 보관하지 않고 자연에서 썩게 하여 영적으로 더 충만해짐을 기뻐했던 사람들은 어떤 이야기를 노래했을까? 길가메시가 마지막에 깨닫는 인간 업적의 위대함, 명예의 무한함을 칭송하는 모습은 그들에겐 굉장히 낯선 모습일 것이다. 스티븐 마이든의 <빙하 이후>와 제임스 스콧의 <농경의 배신>을 읽으면서 국가가 만들어낸 위대한 건축물들, 피라미드, 파르테논 신전, 만리장성 등에서 눈을 돌리니 다른 삶의 문화와 교훈이 있었을 자리가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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