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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인류학

 

 

[반구대 후기]공경하는 마음

작성자
강평
작성일
2024-07-15 17:24
조회
224

울산 반구대 답사(1)/240716/강평

공경하는 마음

 

지식, 기술, 그리고 기도

<빙하 이후>에 등장하는 구석기인들은 자연을 통제, 관리하려는 현대인들과 달리 자연과 함께 살아가고 자연을 공경한다. 공경이라면 상대를 스스로와는 다른 특별한, ‘감히넘볼 수 없는 존재로 생각하는 태도로, ‘공경함께와 양립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해왔다. 하지만 나는 울산 반구대 암각화를 보고, 자연과 함께하며 자연을 공경하는 구석기인들을 상상하게 되었다. 자연을 공경하는 태도는 잘 알고’, ‘함부로 대하지 않고’, ‘감사하는 것으로 표현되었다.

암각화가 그려진 시기는 대략 기원전 7,000년 경이다. 한반도 역사의 시작은 기원전 2,000년 단군신화 고조선이다. 환웅()이 마늘, 쑥을 먹으며 100일을 동굴에서 인내하기 5,000년도 더 전에 이 땅에 살던 사람들은 어떤 모습일까? 그들은 놀라운 흔적을 남겼다. 울산 암각화는 그들이, 무려 고래사냥을 하던 어부였음을 보여준다. 고래사냥이라니. 고래는 바다에 살고 엄청나게 크고 빠르고 힘이 세다. 고래를 잡으려면 일단 바다로 나가고, 그러려면 배를 만들고, 배를 타고, 고래의 생태를 이해하고 고래를 유인하고 작살과 그물로 잡는 완벽한 협력이 필요하고, 잡은 고래를 부위별로 해체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수준의 해부학적 지식이 있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을 기원전 7,000년에 했다고? <빙하 이후>을 읽으며 구석기인들이 주먹도끼 만드는 과정의 인내심, 집중력, 시도와 동물을 해체한 뒤 뽑은 힘줄로 만든 실로 바느질을 해서 옷을 만드는 과정이 놀라웠다. 지루해만 보이는 과정 내내 집중하는 이 힘이 뭔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선사시대 사람들, 못하는 게 무엇인가 싶을 정도로 자연에 대한 지식, 기술, 여기에 예술 점수까지 100점을 드리고 싶다.

선사시대 사람들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일단 자연을 잘 알아야 했다. 태양, , 시간이 영글어내는 열매, 잎을 따 먹으며 신비와 감사함을 느꼈을 것이다. 먹으면 그 자리에 다시 생기는 열매, , 마셔도 줄어들지 않는 강물과 달리 땅의 들소, 바다의 고래를 잡는 것은 한 생명이 없어지는 일이었다. 하지만 살아가기 위해서는 잡아서 먹어야 했다. 들소, 고래는 크고 힘세고 빨라서 한 인간의 힘으로는 포획하기는 불가능하다. 이 싸움은 생명과 생명들이 목숨을 내놓고 벌이는 위험한, 승부에 가까웠을 것이다. 승부를 벌이기 전에 많이 연구, 시뮬레이션하고 필요한 준비와 연습을, 매우 많이 했을 것이다. 정보를 수집하고 연습을 하는 것 이외에도 잡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어딘가에, 절실하게 기도했을 것이다. 사냥은 부득이할 때, 최소한으로 벌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선사인들은 포획에 성공했을 때 훌륭한 싸움을 벌였던 라이벌에게 경건한 마음으로 몸을 부위별로 해체하고 빠짐없이 이용하는 것으로 공경과 감사의 마음을 가졌을 것이다.

 

절실함에 대하여

기도는 절실할 때 하고, 기도에는 형식이 있다. 시끄러운 음악을 틀어두고, 밥을 먹으며, 담배를 피면서 할 수는 없다. 하다 못해 세수라도 하고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숨을 고르고 온 마음을 집중해야 한다. 사람의 키 높이보다 높은 곳까지 암각화가 있는 것을 보면 사다리와, 사다리를 잡아줄 사람도 필요했을 것이다. 캄캄한 밤, 달빛과 촛불이 바위를 비추고,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낭랑하게 바위에 그림을 새기는 예술가의 마음은 어땠을까. 수평면에 대낮 햇빛이 아니라 수직면에, 사다리에 올라가 굳이 캄캄한 밤에 달빛, 촛불을 켠 것은 일상과는 구별되는, 경건함을 위한 공간이었을 것이다. 대곡리 암각화 이후 들른 경주 골굴암도 가파른 곳은 거의 35도가 넘는 경사도로 조심스레, 한참을 올라가야 하는 곳에 불상이 벽에 새겨져 있었다. 일부러 힘들고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곳에서 작업을 했다기보다 그 정도의 간절함으로 경건함과 절실함을 표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곳에 가기도 어렵고 가서 작업을 할 수 있는 시간도 한정되다는 것은 한편으로 아주 지리할 수도 있는 시간이 소요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적어도 목표를 위한, 지리한 시간이라는 생각으로는 일을 이어갈 수 없었을 것 같다.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전부이지 않았을까 싶다.

선사인들은 고래를 잡고 싶은 소망과 감사함을 암각화로 새겼다. 암각화의 공간과 때를 상상해본다. 울퉁불퉁 표면이 거친 바위들 가운데, 암각화를 그리라고 어디서 떨어진 것처럼, 마치 두부를 칼로 잘라 놓은 것처럼 매끈한 바위 캠버스 표면 위였다. 표면의 윗면은 돌출된 경사면으로 결과적으로 캠버스를 물과 바람의 작용을 최소한으로 받을 수 있도록 보호하고 있었다. 우리가 답사를 간 시간은 육안으로는 보기 어려워 망원경으로 봤지만 해설사분의 설명에 따르면 오후면 햇빛이 옆으로 비치면서 음영을 만들어내어 아주 잘 보인다고 한다.

울산 대곡리 암각화에는 고래가 그려져 있다. 내 눈에는 다 같은 고래 그림이지만 범고래, 귀신 고래, 북방긴수염고래 등 10여종의 엄연히 다른 고래라고 한다. 울산에서 고래잡이 어부로 활동했던 분의 인터뷰에 따르면 암각화는 고래의 종류별 특징을 아주 잘 표현했다고 한다. 고래 업계(?)에서는 이 암각화는 고래를 아주 잘 아는 사람이 새겼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어느 고고학자의 제자가 질문을 하러 오면서 손수 주먹 도끼를 만들어온 일화를 소개한 것을 본 적이 있다. 전곡리 선사 박물관장님도 박물관 유튜브를 통해 주먹 도끼를 손수 만드셨다. 박물관 학예사들은 직접 돌칼로 고기를 해부하거나 불을 피우고 장작을 때서 고기를 굽는 시연을 해보기도 했다. 석장리 유적을 발굴한 손보기 박사님은 매일 학생들과 조심스레 솔로 닦아가며 발굴한 유적을 기록한 일지를 남기셨다. 국립중앙박물관 메소포타미아전에서는 고고학자가 인장을 만들고 찍는 것을 시연하는 비디오가 재생된다. 고고학은 선사인들의 흔적을 찾고 해석하는 학문으로서 시간과 정성을 하염없이 들이는 일이다. 갑갑하고 지루해 하는 마음으로는 선사인들의 세계에 다가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한반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이 대략 기원전 4만년이라고 한다.

 

더 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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