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인류학
[반구대 후기] 살리고 살리는 기도
살리고 살리는 기도
울산 반구대에는 돌에 새겨놓은 7000년 전 인류의 마음이 남겨져 있다. 이번 답사의 주제가 ‘기도하는 마음’인 만큼 나는 이곳에서 고래를 사냥하고, 그림을 그린 사람들이 어떤 마음으로 기도했을지 생각해야 했다. 그동안 나에게 기도란 무릎 꿇고 하늘에 계신 유일신을 향해 개인적인 바람을 고백하고 도와달라 청하는 것이었는데, 답사 자료에 따르면 반구대에 그려진 그림은 내가 알던 기도와는 많이 다른 듯하다. 지난주 일요일에 청주 문의면에 자리한 동화사라는 절을 잠시 지났는데, 소원나무에 잎사귀를 형상화한 금색 플라스틱이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저마다 적은 기도가 한치의 틀림도 없이 개인의 행복에 대한 내용이었고 그 바람들이 매우 강렬하게 느껴졌다. 구체적으로는 ‘돈벼락 맞게 해주세요, 승진하게 해주세요, 건강하게 해주세요’ 이런 내용들이다. 나도 나의 복을 기도하는 것 외에 다른 기도는 생각해본 적 없는 듯하다. 타인의 복을 간절히 바란 적이 언제였는지 나에게 되물어 본다. 공부하면서 나는 혼자서 살 수 없고 나만 보는 삶을 고집하는 일은, 고립되어 건강을 해치는 일이 되는 걸 배웠지만 생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당연했던 기도의 이면을 볼 수 있는 이 답사가 기다려지지 않을 수 없었다.
기도하던 사람들이 그린 암각화는 어떤 모습일까? 답사팀에서 찾은 반구대 암각화는 멀리서 망원경으로 관찰이 가능하다. 하지만 우리가 찾은 오전 시간은 그마저도 여의치 않다. 암각화 형태와 위치상 햇볕이 뉘엿뉘엿 지는 오후 시간에 훨씬 잘 보인다고 한다. 다행히 근처에 자리한 암각화 박물관에서 먼저 암각화 모델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우리는 이날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암각화 두 작품을 관찰할 수 있었는데, 두 암각화는 그려진 내용이 다르고 느껴지는 역동성도 다르다. 반구대 암각화는 역동적인 고래가 주로 그려져 있는데 형태상으로는 수증기를 내뿜는 고래, 아기 고래를 업은 엄마 고래, 점프하는 고래, 등에 작살을 맞은 고래가 있는가 하면 종류로는 흰수염고래, 혹등고래, 귀신고래, 범고래 등이 보인다. 꼬리의 방향, 허리의 곡선 등은 고래들의 움직임을 상상하는데 충분했다. 다양한 고래를 포함해 호랑이, 족제비, 물소, 사슴 등 동물상과 사람의 형상도 볼 수 있었다. 한 사람이 그린 것이 아니라 세대에서 세대로 내려오며 여러 명이 그렸을 것이라 추측한다. 반면 천전리 각석은 동물의 표현이 정적이다. 마주보는 사슴, 사냥꾼이나 반인반수의 모습도 있고, 특징적으로는 동심원 · 나선형 · 마름모 같은 기하학무늬가 주로 그려져 있다. 천전리 각석에는 반구대에 없는 문자가 남아있는데 이는 신라 시대의 흔적이라고 한다. 가는 선 그림이 많이 발견되는데 이는 금속도구가 사용되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암각화 앞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은 무엇을 어떻게 기도했을까? 반구대 암각화에서 고래잡이 과정(탐색–사냥–인양–해체)을 단계별로 표현하고 있다. 포경의 모든 과정에서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 과정을 내밀하게 알 수는 없지만 누군가 고래를 발견하면 큰 소리의 신호를 보내고 신호를 들은 동료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작살을 들거나 배를 모는 등 손에 자신의 도구를 잡고 총력을 다하는 집중력을 보였을 것이다. 고래의 죽음은 고래잡이꾼과 그들의 가족들을 먹이고 입히고 살리 방식으로 순환하여 세상에 기여했을 것이다. 이러한 숭고한 과정을 돌에 한 땀 한 땀 천천히 새기며 표현하는 일이 곧 기도였다면, 고래잡이꾼에게 기도는 생명의 순환과 재생을 잊지 않기 위한 노력이었을 것이다. 내가 보기에 반구대와 천전리 암각화에서 가장 이상했던 부분은 그림들이 겹쳐져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그림 그릴 때를 상상해보자. 아이들이 스케치북을 다 썼으니 새로 사달라고 할 때 안쓰고 남은 페이지는 없는지 한장 한장 넘기며 확인했었다. 페이지 한켠에 작게 그린 경우에는 종이가 좀 아깝다 싶었지만 새로운 그림을 그리기에는 적당하지 않겠다 싶어 넘어가곤 했었다. 하지만 이 암각화들을 보니 ‘왜 겹쳐서 그린거지?’라는 질문과 동시에 ‘나는 왜 그린데 또 그리는게 이상하게 느껴졌지?’라는 질문이 떠올랐다. 이러한 질문을 품은 나는 달님의 자료집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발견했다.
전호태 선생님은 반구대 암각화의 예술가들은 앞 그림을 훼손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천전리 기하무늬 예술가들은 동물 그림 훼손에 별다른 의식이 없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기하무늬를 새긴 이들의 생업이 이미 농업으로 전환되었기 때문이다. (「기도는 손으로 하는 일」, 「울산 반구대 암각화 답사 자료집」, 인문공간세종)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암각화가 다른 그림들과 겹쳐져 있는 것은 동일하지만 전자는 훼손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보인다는 것이다. 두 간극의 원인을 농업의 출현에서 찾을 수 있다. 이번 인류학 <빙하 이후> 시즌에서 우리는 여러 차례 수렵채집민과 농경민의 생활상과 사고방식을 엿보았다. 공부를 리마인드 하면서 두 암각화 예술가들의 마음을 알아보고 싶어졌다.
인용문에 의하면 농경은 사람들이 다른 것을 보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그 이유를 천천히 알아보자. 구석기 수렵채집에서 발전적인 생활 양식은 신석기를 농경으로 안내했다고 교과서에서 배웠지만, 스티븐 마이든의 『빙하 이후』에 따르면 전혀 그렇지 않다. 기원전 6500년 중석기로 불리는 시기, 유럽의 레펜스키비르 수렵채집민들의 삶을 들여다보자. 사람들은 숲이 주는 풍요로움을 알았다. 붉은사슴과 멧돼지, 수달과 비버, 오리와 기러기를 사냥하고 기후에 따라 살기 좋은 곳에 캠프를 만들었다. 기후가 바뀌면 살기 좋은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생활을 하다가 여름철 물고기가 많은 곳에서 떠날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된다. 정주하는 수렵채집민들은 손으로 만들 수 있는 것도 많았다. 화살과 뿔로 만든 작살, 그물추, 바구니, 갈판, 갈돌 같은 것을 만들고 버섯, 견과류, 베리와 씨앗 같은 다양하고 풍부한 식량을 얻었다. 이들의 삶은 강 주변에서 이루어진다. 강은 식량의 원천이자 도로이자 탄생과 죽음의 통로를 상징하기도 했다. 상류로 올라오는 물고기들을 보면서 다시 태어남을 상상했다. 삶은 곧 죽음과 다르지 않음은 외우지 않아도 나고 자라면서 자연스레 몸으로 체득되는 감각 같은 것이었다. 사람들은 의례와 종교로 물과 바람, 태양과 별의 움직임 놓치지 않고 우주의 조건을 더 잘 파악하고자 했다. 나는 이전 그림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고 그렸을 반구대 암각화 예술가들의 마음에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욕망보다는 그림이 그려지는 돌은 곧 하나의 우주로서 바라보기 때문에 다른 레이어를 쓸 뿐 타인의 기도에 침범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듯 느껴졌다.
그렇다면 중요한 농경의 출현은 무엇이 달라졌기에 암각화에서 차이를 보여주었을까? 『빙하 이후』에서 놀랐던 내용 중 하나는 수렵채집민들이 결코 농경을 좋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속적인 식량 공급이 안정감을 줄 것 같지만 네아 니코메데이아 마을에서 수렵채집민의 눈에 비친 농경민은 고생을 자초하는 지혜롭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아이고 어른이고 할 것 없이 먹고 산다고 저 정도로 고생을 해야 하나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수렵채집민의 배를 채우는 것은 지식이었지, 노동이 아니었다’.(같은 책, 221쪽) 수렵채집민의 세대 변화와 교역으로 이제 농경은 천천히 인류의 삶에 자리잡게 된다. 농경민은 자연을 길들이고 압도하고 바꾸려고 시도하는 사람이다. 재배종 단일화가 일으킨 소용돌이는 무척 거세게 느껴진다. 다른 것을 상상하기 어렵게 만드는 생각 방식은 울타리를 만들었고, 다양한 갈래로 흩어져서 문제가 발생한다. 제임스 C.스콧의 『농경의 배신(길들이기, 정착생활, 국가의 기원에 관한 대항서사)』에서 구석기 수렵채집민보다 신석기 농경민은 전염병에 취약했음을 배웠다. 유전성이 단일화된 신석기인들에게 전염병의 일격은 한 마을을 몰살시킬 수 있을 정도로 강력했다. 또한 하나의 길만 있다는 생각은 이분법을 작동시키고 울타리 안과 밖의 경계가 선명해진다. 곧 나와 타자의 관계도 같은 양상을 띠게 된다.
반구대 암각화 연구가 전호태 선생님께서 천전리 암각화의 겹친 그림이 앞선 그림에 훼손 여부를 의식하지 않았다는 말씀에 대해 생각해본다. 예술가들의 선악이나 양심을 따지자는 것은 아니다. 또한 천전리 암각화는 모두 농경 이후에 그려진 것은 아니다. 다만 겹쳐진 그림의 양상에 따라 당시 예술가들의 마음을 상상해보고 싶었다. 두 작품을 비교해보면 반구대 암각화에 비해 천전리 암각화가 그림이 훨씬 많고 더 겹쳐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농경 이후 다른 것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 단일화할 수 있다는 생각, 드러내야 하는 나의 욕망이 사람들을 사로잡았음을 천전리 암각화에서 엿볼 수 있었다. 이곳에서 신께 드리는 기도는 자기 욕망의 실현일 것이다.
오랫동안 나의 기도는 나의 바람과 관계되는 것이었다. 공부하면서 이런 기도가 떠오를 때면 스스로 그 마음을 누르곤 했었다. 하지만 이제 다른 기도를 해보고 싶다. 반구대 예술가처럼 재생과 순환을 상상한다는 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아직 더 풀지 못했다. 하지만 왠지 그들처럼 기도할 수 있다면 나는 건강해질 것 같다. 이 건강은 내 신체를 넘어서는 것이다. 자기로 점철되지 않는 다양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생각과 행동에서 나오는 활력이다. 이제 쓰레기통으로 가야 하는 스케치북에 심폐소생술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반구대 암각화 원경_국가유산진흥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