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인류학
[반구대 후기] 문화, 자연과 관계 맺는 방식
나는 제사나 차례를 지낼 때 홍동백서 등 음식이 놓이는 위치와 방향, 음식의 개수 그리고 제사를 지내는 순서와 방법을 옛날부터 그랬으니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어서가 아닌 지켜야만 하는 관례로만 생각했었다. 북어 머리를 어디에 두든 과일을 몇 개 올리든 그게 죽은 사람에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결국 제사라는 것은 산 사람들이 모여서 죽은 사람을 떠올리며 생각하고 밥 한 끼 먹는다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스티브 마이든의 『빙하시대』를 읽고 라스코 동굴의 벽화를 보면서 제사와 같은 의례가 아무 의미도 없이 형식만을 고집하는 게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레비스트로스에 따르면 문화는 획득하는 것이며 그것도 핵심적 획득이다. 지식을 집적하여 총체화하고 지난 경험들을 이용하는 것이 문화의 조건 자체라고 그는 말한다.(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조르주 샤르보니에, 류재화 옮김, 『레비스트로스의 말』 (마음산책), 41쪽) 문화가 핵심적 지식과 경험의 집합이라면 제사라는 의례를 포함하여 타인에게 인사를 건네거나 밥을 먹는 방식 같은 일상에서 의식하지 않고 이루어지는 우리가 예의라고 부르는 것도 오랫동안 축적된 지식과 경험의 산물이지 않을까. 이런 산물은 우리의 몸으로 나타난다. 우리가 어떤 행위를 할 때의 몸을 사용하는 방식은 사회적으로 형성된 특이성에 해당하는 것으로 순전히 심리적이며 개인적인 매커니즘의 산물이 아니기 때문이다.(마르셀 모스, 박정호 옮김, 『몸 테크닉』 (파이돈), 79쪽)
몸을 통해 표현되는 문화 중 가장 오래된 형태는 그림을 그리는 일이었을 것이다. 20,000년전 우리의 인류는 동물을 사냥하고 그 뼈를 이용해 도구도 만드는데 그치지 않고 동굴에 그림을 그렸다.(스티브 마이든, 성춘택 옮김, 『빙하이후』 (사회평론아카데미), 22쪽) 우리의 선조들은 사냥하는 동물을 포함하여 그들의 지식과 경험을 기록했다. 스티브 마이든은 벽화를 컴퓨터처럼 정보를 저장하는 장치로 보았다. 그래서 그림을 그리는 행위, 신화와 종교 의례를 정보의 습득과 소통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간주했다. (같은 책, 193쪽) 그런데 남겨진 그림들을 보니 나는 다른 생각이 들었다.
바위에 그려진 고래
우리나라에는 동굴 벽화가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울산 반구대에 서기 7,000년 전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암각화가 있다. 반구대 암각화는 대곡리와 천전리 두 곳의 바위에 주로 그려졌다. 대곡리 암각화에는 약 300여개의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그림은 고래이다. 식별할 수 있는 고래만 50마리가 넘고 그 종류만 하더라고 8개 이상으로 다양한 종류의 고래가 바위에 새겨졌다. 반구대는 울산 태화강의 자류인 대곡천 중류에 있어서 현재 바다와 약 26km 떨어져 있다. 그러나 7000년 전에는 빙하가 녹아 해수면이 높아져서 현재 반구대 근처 굴화리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다, 그 당시 반구대에 살던 사람들은 바다에서 고래를 잡으며 살았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대곡리 암벽에 그려진 고래 그림 때문이다. 그 그림에는 고래를 사냥해 본 사람만이 그릴 수 있는 고래의 외형과 생태적 특성들이 잘 나타나 있다. 암벽에는 북방긴수염고래, 혹동고래, 돌쇠고래, 향고래, 귀신고래, 범고래, 상괭이 등 다양한 고래가 있다. 북방긴수염고래는 앞 지느라미가 하나는 앞에, 하나는 뒤에 그리고 등에서 나오는 듯한 물의 높이가 하나는 높고 하나는 낮게 3마리의 고래로 그려져서 있다. 이 고래들을 연결해서 보면 앞 지느러미를 앞뒤로 움직이며 등 위로 솟은 물이 솟구치고 가라앉는 모습이 마치 바다를 헤엄치는 것 같다.(고래는 물을 뿜는 게 아니라 숨을 내쉬면 고래 몸속의 따뜻한 공기가 밖으로 나와 찬 공기와 만나서 물줄기처럼 보이는 것이다.) 배에 긴 주름이 있고 가슴지느러미가 다른 고래에 비해 매우 긴 혹동고래는 다른 고래들과 달리 머리가 아래를 향한 채 새겨져 있는데, 물 위로 뛰어올랐다가 다시 떨어지는 혹등고래의 브리징하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주름의 길이가 짧고 개수가 적은 귀신고래도 외형적 특징이 매우 선명하게 포착되어 있다.
사람들은 고래 지느러미 크기는 어떤지, 어디에 붙어있는지, 배는 어떤 색깔이고 어떤 모양인지, 꼬리는 어떻게 움직이고 어떻게 헤엄치는지 이빨은 없는지 무엇을 먹는지 어디로 헤엄치는지 오랫동안 유심히 보았다. 그러면서 각각의 고래들의 특징들이 가장 잘 포착된 순간을 이미지로 기억해 암벽에 새겼을 것이다. 그려진 모양만으로 7,0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어떤 고래인지 정확히 구별할 수 있다니 정말 신기하다. 이뿐만이 아니다. 고래는 포유동물이라 새끼 고래는 물속에서만 살 수 없다. 물 밖으로 나와 숨을 쉬어야 하는데, 이런 고래의 특성이 어미 고래가 등 위에 새끼 고래를 태우고 있는 모습으로 새겨져 있다. 고래가 어떻게 사는지도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몸길이가 18m에 이르고 체중이 수십톤이 나가는 고래를 어떻게 사냥했을까? 대곡리 암벽에는 고래 사냥을 하는 일련의 과정이 묘사되어 있다. 일단 고래의 출현은 고래 주위에 모여든 새들 무리로 파악한다. 고래는 소음에 민감하므로 조용히 배를 몰아 고래에 가까이 다가가서 고래의 진로를 예측하면서 배에서 작살을 던질 적당한 위치와 거리를 기다렸다다. 고래가 사람들이 예측하는 방향으로 오면 다행이지만 그런 경우는 드물었을 테고 오더라도 떼로 오는 경우 어떤 고래를 잡을지 선택하느라 순간을 지나치기 쉬웠으리라. 작살을 던질 때에도 힘있게 고래에 꽂혀야 했기에 고래 사냥은 쉽지 않았다. 수많은 기다림과 순간의 작살 던지기로 잡힌 고래를 사람들은 부구를 이용하여 해변가로 인양한다. 고래를 같이 사냥을 나온 사람들은 모두 함께 모래 위로 인양된 고래를 해체한다. 고래 껍질과 살은 나눠 먹고 수염은 바구니를 만드는 재료로 기름은 부을 밝힐 때 사용하고 뼈는 집을 만들고 사냥 도구를 만들거나 썰매의 날 등으로 사용했다. 고래 한 마리는 어디 하나 버려지지 않고 사람들을 먹이고 입히고 생활하게 하는 공간과 도구를 만드는데 사용되었다. 고래는 사람들에게 아낌없는 자신을 내주는 존재였다.
존재의 만남
사람들은 자신이 생활하는 자연환경에서 수렵하고 채집할 수 있는 동물과 식물들과 관계를 맺는다. 북미 대평원에서 들소 떼를 쫓아 이동하며 들소를 사냥하는 쇼쇼니족은 바닥이 원형인 텐트를 치는 천막에 들소 떼와 말을 타고 들소를 사냥하는 모습을 그렸다.(『우리가 인디언으로 알던 사람들』 (국립중앙박물관), 43쪽) 알래스카 원주민인 푸느크 사람들은 상아나 나무로 만든 작살촉과 작살 부속구에 그들이 사냥하는 동물을 암시하는 날개, 입, 눈, 콧구멍을 그렸다.(같은 책, 97쪽) 울산 반구대 근처에 사람들은 바위에 그들이 사냥하던 고래 그림을 그렸다. 바위나 동물의 뼈나 상아로 만든 도구에 사람들은 그들이 사냥하는 동물, 즉 그들의 생존과 뗄 수 없는 존재들의 모습을 남겼다. 사냥감의 모습을 동굴 벽과 바위면 그리고 사냥하는 도구에 그리고 새기는 행위는 동물의 영혼에 존경을 표하고 사냥의 성공을 기원하는 의미였다.(같은 책, 96쪽)
바위에 홈을 파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그들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몸을 사용하여 춤을 추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직물을 직조할 때 우리는 그 대상에 마음을 온전히 집중한다. 몸을 쓴다는 것은 나의 존재를 관계를 맺고 있는 대상에 온전히 포개는 행위이다. 몸을 쓰면서 마음을 집중할 때 과거나 미래에 대한 생각과 그 생각에 불러일으키거나 달라붙어 있는 감정에 빠지지 않는다. 단단한 암벽에 그보다 더 단단한 도구로 흔적을 남길 때 나바호 여인이 ‘신과 대화’하는 마음으로 직조를 하듯이 나쁜 생각을 할 수 없다.(오선민, 『울산 답사 자료집』, 2쪽) 잘못하면 암벽 대신 그림을 새기는 사람의 손가락을 내리칠 수도 있다. 암벽에 그림을 새기는 순간에 나의 존재는 현존하며 그림의 대상인 고래와 만난다. 고래 사냥은 지금–여기에서 존재를 만날 때만 이루어지며 사냥은 그렇게 하는 거라고 바위의 새겨진 고래는 우리에게 알려준다.
관계성의 발견
울산 반구대 답사 때 암각화를 설명해주셨던 이정걸 해설사는 오전에는 그림을 알아볼 수 없고 오후 3시 정도가 되어야 그림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고 하셨다. 암벽에 홈을 파서 형태를 새겨 넣는 암각화는 아무 때나 아무 위치에서나 볼 수 있는 2차원의 그림이 아니다. 암벽에 해가 적절한 각도에서 비추지 않으면, 해가 만들어주는 밝음과 그림자 없이는 그림을 볼 수 없다. 해와 적절히 관계를 맺을 때 암각화 자체도 존재하게 된다. 암각화에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과 고래뿐만 아니라 해와 바람 같은 자연과의 관계성도 들어있다.
돌에는 지구가 탄생한 순간부터 현재까지의 시간이 내재하여 있으며 그 단단함은 앞으로도 계속될 거라는 영속성의 상상력을 우리에게 불러일으킨다. 울산 대곡리 암벽에 고래 그림을 남긴 선조들이 우리에게 남기고 싶었던 것은 고래를 어떻게 잡고 해체하고 분배하는 정보지가 아니라 고래와 어떻게 나아가 자연과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 알려주는 문화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