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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인류학

 

 

[반구대 후기] 죽음 이후까지 삶을 확장하라

작성자
오켜니
작성일
2024-07-22 17:46
조회
175

죽음 이후까지 삶을 확장하라

 

최옥현

 

  625일 인문공간세종은 울산에서 기도하는 마음이라는 주제로 답사를 진행했다. 다들 새벽부터 서울, 부천, 용인, 세종에서 KTX를 타고 울산으로 모여들었고 기헌 선생님은 하루 미리 도착하여 일박을 하고 우리를 태우러 울산역으로 왔다. 나는 울산 방문이 처음인데 울산역에 내리니 초록의 낮은 산들이 포근하게 우리를 반겨주는 듯했다.

  이번 답사에서 제일 인상적인 곳은 문무대왕릉이었다. 내가 주목해서 알고 싶은 점은 삼국통일과 우리 땅에서 당의 군대를 몰아낸 그의 업적이 아니라 죽어서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는 그의 발원(發願)이다. 우리의 소망은 현생을 넘어서지 못한다. 그저 살아있는 동안 무탈하고 풍족하길 바란다. 죽음 이후의 나를 상정하여 어떤 기원을 해보지 않는다. 그는 죽어서 위엄이 느껴지는 봉분에서 숭상되기보다 용이 되어 이 땅을 지키길 발원하였다. 국경 수비의 의미가 아니라 이 땅의 모든 생명들이 전쟁에 휩싸이지 않고, 평화롭기를, 무탈하길 빌었다. 그의 커다란 자비심이 느껴진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화장하여 바다에 뿌리라고 유언을 했다. 그의 삶의 범위는 우리 것보다 훨씬 넓고 죽음 이후까지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에 관심이 갔다.

 

봉길대왕암 해변의 낯선 풍경들

 

  오전에 반구대 암각화를 보고 점심으로 언양불고기를 먹은 후(서울에서 언양불고기를 몇 번 먹어봤는데 언양이 울산에 위치한 지역임을 처음 알게 되었다) 시원한 냉 음료수를 한잔 씩 들이킨 후 문무대왕릉에 가기 위해 차에 올라탔다. 봉길대왕암 해변에 내리니 익숙하기도, 낯설기도 한 풍경이 펼쳐졌다. 그곳은 우리가 늘 보아왔던 바닷가였다. 그런데 해변 모레 사장에 비둘기들이 무리를 지어 있었다. 바닷가에는 갈매기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의구심이 생겼다. 그리고 해변의 주변 상가에 방생 고기 팝니다’, ‘기도방 대여등의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그 간판들은 이곳이 고기를 방생하고 샤먼(무당)들이 굿을 하며 기도를 하는 곳임을 알려 주었다. 법당과 예배당에서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으는 기도에 익숙해진 우리들에게 물고기를 방생하거나 굿을 하는 기도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그리고 비둘기들은 샤먼들이 차리는 차례상의 음식들을 먹기 위해 그곳에 모여 있었다. 그날 우리는 거기에서 직접 샤먼이 굿하는 모습을 볼 수는 없었다.

  또 한 가지 낯설었던 것은 문무대왕릉의 모습이었다. 그곳에는 바닷물이 자연적인 울타리 역할을 하고 있어서 인공적인 울타리가 없다.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가 없었다면 평범한 바닷가 바위일 뿐이다. 우리가 왕의 무덤에서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장식물(봉분과 숲, 무덤을 지키는 조각상 등)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이런 평범한 바위에 용이 되고자 한 문무대왕의 커다란 발원이 깃들어 이곳은 영발 좋은 기도처가 되고 있다.

 

대왕암, 이견대, 감은사

 

  문무대왕릉과 그곳을 정확히 바라보고 있는 이견대, 문무대왕의 사찰이라 불리는 감은사에 대해 알아보자. 문무대왕릉은 경주 양북면 봉길리 앞바다에 있는 자연 바위인데 문무왕의 유골을 안치한 곳이라 하여 대왕암이라고도 불린다. 가운데 남북으로 길게 뻗은 작은 바위(길이 3.7m, 2.06m)가 놓여져 있고(우리가 보는 해안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주변 사방으로 바위들이 감싸고 있다. KBS 다큐팀은 전문 교수들과 행한 조사에서 이 바위 밑에 어떠한 유물도 수장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결론을 냈다. 그저 문무대왕의 유골이 뿌려진 곳이다. 대왕암 안의 바닷물은 동쪽으로 들어와 서쪽으로 나가는 구조로 되어 있다. 해가 뜨고 지는 것처럼 서쪽 바위를 인공적으로 더 파서 물의 흐름이 동에서 서로 향하게 하였다. 남북으로 길게 놓인 바위는 외부에서 가져온 바위가 아닌 자연 바위로, 주변 바위에서 떨어져 나온 것을 남북으로 길게 놓았다고 전해진다.

  이견대는 대왕암이 바라다 보이는 해안에 지은 건물이다. 지금도 이곳에서 문무대왕 제사를 지낸다. 감은사를 지은 이듬해 문무왕 아들인 신문왕은 이곳에서 용을 만나 만파식적을 받았다. 자신의 아버지가 만파식적을 전해준 것이다. 만파식적은 거센 파도를 잠재우는 피리라는 뜻으로, 이 피리를 불면 적병을 물리치고 병을 낫게 하며 가뭄에는 비를 내리고 장마 때는 날이 개었으며 바람이 그치고 파도를 잦아들게 하였다고 한다. 만파식적 이야기에서도 문무대왕의 민중들을 향한 자비로운 마음을 느낄 수 있다. 이견대라는 명칭은 주역의 용이 하늘을 나니 대인을 만나는 것이 이롭다는 구절에서 따왔다고 한다.

  문무왕은 왜병의 침입을 막고자 감은사 자리에 절을 짓기 시작하였으나 완성을 보지 못하고 죽자 아들 신문왕이 뜻을 이어받아 682년에 창건하였다. 감은사 앞을 흐르는 대종천은 동쪽으로 흘러 바다에 합류하는데, 그 인근에 문무대왕릉이 있다. ‘그 아들 신문왕이 즉위하여 개요 2년에 (감은사 건립을) 마치니 금당의 문지방 돌 아래 동쪽으로 구멍을 내어 용이 사찰로 드나 들 수 있도록 하였다신문왕은 용이 된 자신의 아버지가 문무대왕암에서 감은사까지 올 수 있도록 사찰 아랫부분에 구멍을 내었다.

모두의 기도처

 

  우리가 생각하는 현대의 샤먼은 개인의 길흉화복을 대신 하늘에 빌어주는 사람이다. 길한 것과 복은 들어오게 하고, 화와 흉은 나가게 한다. 하지만 동화인류학 수업에서 만난 샤먼은 고대로부터 공동체의 사제였으며 마을 사람들이 여러 해를 통해 키운 인물이며 마을 공동의 이익을 비는 자였다. 우리의 삶이 개인으로 작아진 것처럼 샤먼의 활동 범위도 많이 작아졌다. 문무대왕릉 해변에 샤먼과 함께 간절한 기도를 바쳤을 그 누군가들은 자신들이 빌었던 소원을 성취했을까? 개인적인 소원의 차원을 넘어, 어떤 계시를 통해 더 넓은 깨달음에 이르렀을지도 궁금하다. 문무대왕은 어떤 메시지를 샤먼을 통해 전달하고 계실까?

  일반적으로 왕의 무덤은 그의 자손들이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가문의 영광을 비는 장소였다. 하지만 문무대왕은 죽어서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고자 했고 그의 커다란 발원이 그 자신을 조상신을 넘어 더 위대한 영으로 태어나게 했다. 그래서 우리는 왕의 무덤에 가면 구경을 하고, 문무대왕릉 앞에 와서는 두 손을 모아 기도를 한다. 어떠한 인공적 장식물도 거부한 문무대왕릉은 자연물 그 자체가 되었으며 그래서 더 큰 영이 되었다. 문무대왕릉은 모두의 기도처가 되었다.

  동화인류학의 애니미즘을 공부하지 않았다면 문무대왕과 관련한 이야기들을 훌륭한 왕에 대한 찬사와 숭배가 담긴 신화 정도로 생각했을 것이다. 애니미즘은 삶과 죽음을 연결하는 영의 존재를 상정하는데 그들의 상상력은 문무대왕 이야기를 내 현실로 가져오게 만든다. 그저 허구적이거나 역사적인 이야기가 아닌 우리도 죽음 이후까지를 삶으로 끌어오는 확장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낯선생각을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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