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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인류학

 

 

[반구대] 무엇을 위한 도구인가 : 신체

작성자
박수니
작성일
2024-07-22 17:57
조회
182

인류학답사 / 울산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숙제 에세이 2024715일 강박순

 

무엇을 위한 도구인가 : 신체

 

무더운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6월에 <인문 공간 세종팀>의 선생님들과 함께 답사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답사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항상 들뜬 기분이 있는 설렘이라고 해야 할까. 학창시절에 수학여행이라는 이름 아래 무조건 반강제적으로 참석해야 했다.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학교의 규칙에 따라 가야 했다면, 반면에 성인이 돼서 답사 여행은 내가 공부한 것을 직접 보고, 체험하는 데 있다. 그래서 이것은 주체적이다. 주체적으로 책을 읽고, 공부하고, 답사라는 체험은 무엇일까? 내 신체의 모든 부분을 깨어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내 신체의 감각을 깨우기 위해서는 걸을수 있는 두발로 설 수 있어야 한다. 시작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 울산 남구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에서 찾아보자.

 

돌에 새긴다는 것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암각화 박물관이었다. 이곳 방문 하기 전에 스티븐 마이든 빙하 이후을 지난 6개월 동안 공부했다. 수렵 채집인의 무문자 사회는 공부하기 어려웠다. 왜냐하면 역사적인 기록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았고, 남아 있다고 해도 드물게 있기 때문이거니와 예를 들어 매머드 멸종의 주장 혹은 추측만 할 뿐이다. 정답은 정해져 있지 않았지만, 이럴 수도 저럴 수도 각자 나름의 상상력의 나래를 펼칠 수가 있는 매력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암각화 박물관에 들어갔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거대한 판에 그림들이 있었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니 동물 형상이였다. 사슴, 토끼, 고래, 물개, 호랑이, 족제비 등참으로 다양한 육지 동물, 해양 동물이 그려졌다. 그려졌다기보다는 새긴 것이다. 시대적 흐름은 7,000년의 신석기 시대로 본다. 이 당시의 주변에는 농경 생산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으며, 돌에 새겨진 그림 상들이 고래인 점이 많았다. 즉 울산 지역은 어로가 주된 생산 활동이라고 볼 수 있다. 이들은 왜 돌에 그림을 새겼을까? 설명서에 따르면, 기록뿐 아니라 샤먼적 활동이다. 암벽화에 돌을 새긴다는 것은 아무나 참여해서 새길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이 세상과 저세상을 연결할 수 있는 거대한 힘을 가진 존재만이 샤먼으로서 새길수 있는 주술적인 영역이다.

당시 돌에 기록하고, 새긴다는 것은 분명 주술성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왜 하필 수많은 동물 가운데에서도 고래 그림이 많은 것일까? 고래 형상을 새긴 것은 1가지 종류가 아니었다. 반구대 암각화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오늘날 보기 힘든 희귀종 고래까지 다양하다.

범고래, 북방간수염고래, 돌쇠고래, 귀신고래, 향고래, 상괭이, 흑등고래 최소 7종 고래형상이 새겨졌다. 주변에 그만큼 고래가 많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많은 고래가 있다는 것은 그만큼 풍족한 생활을 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당연히 선사인들에게 거대한 고래를 잡기 위해서는 배를 다룰 줄 알아야 했으며, 이곳의 바닷가는 낯설고 힘든 곳이 아니라, 집 앞마당에 있는 수영장 느낌이었을 만큼 친숙하지 않았을까. 거대한 고래를 잡기 위해서는 못해도 부족 집단이 움직여야 했다. 최소 못해도 20명 이상의 인원이 참여했다.

암각화 형상에는 고래를 탐색하고, 사냥하고, 인양하고, 해체하는 작업까지 섬세하게 나와 있다.

혼자서는 절대로 저렇게 큰 고래를 사냥할 수 없다. 큰 고래를 사냥하기 위해서는 날씨가 가장 중요했을 것이다. 큰 고래 사냥은 자주 일어나지 않았으며, 자칫했으면 수많은 선사인들의 목숨까지 잃은 경우가 있을 것이다. 갑작스럽게 바닷바람이 강하게 불어서 배가 전복이 된다든지, 혹은 작살로 고래를 사냥하다가 그물에 걸려서 고래가 바닷속 깊은 속에 들어갈 때 딸려 들여갔을 수도 있고, 위험한 경우가 여기저기 많았을 것이다. 이렇게 위험한 일이 생기지 않게 생기는 힘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돌에 새기는 신체의 움직임

암벽화에 그림을 새길 때 그것을 바로 보고 그리진 않는다. 지금까지 경험을 통해서 봐왔던 기억을 불러올 것이다. 예를 들면 고래를 작살로 사냥할 때, 고래를 잡아 와서 해체했을 때 말이다. 그런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 다음에 거대한 돌덩어리에 고래 그림을 새겼을 것이다. 당시 청동기시대도 아니었고, 수렵채집의 무문자 사회에서 돌로 새긴다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돌에서 돌로 새긴 것일까? 아니면 잡은 고래의 뼈를 이용해서 새긴 것일까? 어떤 방식으로 새겼는지는 궁금하기도 하다.

 

나는 테크닉을 효과적인 전통적인 행위라고 부릅니다. 테크닉은 전통적이고 효과적이여야 합니다……몸이야말로 인간의 최초이자 가장 자연스러운 도구이다. 더 정확하게 말해서, 도구는 물론이거니와 몸은 인간 최초의 가장 자연스러운 테크닉 대상이자 수단입니다.”(저자: 마르셀모스, 몸 테크닉P87.)

 

거대한 바위 앞에서 선사인들이 분명 한 손에는 돌을 갈아서 만든 돌도끼 같은 들었을 것이다. 돌도끼와 선사인들의 손이 만났을 때, 그 행위는 무엇을 의미 했을까? 마르셀 모스 전집 몸 테크닉에서도 몸이야말로 인간의 최초이자 가장 자연스러운 도구라고 하지 않았던가. 몸도 도구이고, 돌에 새기려고 선사인이 들고 있는 것도 도구이다. 둘다 자연의 거대한 힘 앞에서는 도구에 불과하다. “내가 자연의 도구이다. 혹은 수단이다라는 질문 앞에서 인간 중심주의가 작동되는 것은 아닐까?

 

도구와 도구 사이를 연결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인간의 태도와 감각이다. 그 안에는 이 주술적이면서도 성스러운 힘도 있을 뿐만 아니라 기도와 감사하는 마음이 들어 있다. 그 마음속에는 부족들의 고래잡이 하러 나갈 때 무사히 잘 사냥하고 무사 귀환하게 해주세요!”라는 기도문이다. 몸도 도구이고, 돌도 도구이면 이것을 연결하는 정화된 의식적인 감각이 필요하다. 이렇게 새긴다는 행위는 의례적, 주술적인 것이다. 이런 행위는 어떤 목적, 이익같은 탐욕이 들어오지 않는다. 수렵 채집 사회에서는 개별, 개체성 보다는 단체성, 부족성의 성격을 띄고 있다. 그래서 이런 의례적인 제의는 나 혼자 독단적으로 할수 있는게 아니다. 부족 전체가 회의를 걸쳐서 심사숙고해서 제의를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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