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인류학
[반구대 답사] 중첩된 세계
7000년 전 인류가 돌에 새긴 마음을 탐구하러 울산 반구대 답사를 다녀왔다.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래사냥 암각화가 그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세계 어느 곳보다 고래 개체수가 많이 그려진 곳이라고 알려져 있다. 암각이 새겨진 바위는 너비 약 8m, 높이는 약 4m 크기의 평평한 벽면으로 암각화는 상단에 돌출된 암벽들의 그림자에 가려져 오후 4시 전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지리적으로는 울산 태화강 상류의 지류 하천인 대곡천 중류에 위치하고 있다.
반구대에 새겨진 그림은 고래와 해양동물을 포함하여 사슴, 호랑이, 족제비, 물소 등과 어로에 생활의 흔적을 유추할 수 있는 그물, 작살 등 약 300여점이다. 조사하는 기준에 따라 그 수는 달라지기도 한다. 고래 그림이 잘 알려진 곳인 만큼 고래의 움직임이 다양하게 표현되어 있다. 수증기를 내뿜는 고래, 아기 고래를 업은 엄마 고래, 점프하는 고래, 등에 작살을 맞은 고래가 있는가 하면 종류로는 흰수염고래, 혹등고래, 귀신고래, 범고래 등이 보인다. 이 그림들은 한 날 그려진 것은 아니고 세대를 이어 그렸다고 한다. 나는 그림을 그릴 때 이미 그림이 그려진 도화지에는 그림을 그리지 않을 것 같은데 반구대 암각화는 여러 그림층이 겹쳐져 있다. 오래전 인류는 그린 곳에 또 그리고, 또 그렸을까? 이곳에 끌리는 어떤 이유가 있었을까? 달님의 강의 자료에 따르면 선사인들의 암각화는 정보 저장이나 샤머니즘적 목적에서 기인했다. 그리고 장 클로트의 인용문에 따르면 ‘선사인들이 동굴 안에서 증식의 바램을 담아 영험한 바위에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다양한 동물 형상을 중첩시켜서 표현함으로써 기도했을 것으로 본다.’(「기도는 손으로 하는 일」, 「울산 반구대 암각화 답사 자료집」, 1쪽, 인문공간세종)고 했다.
반구대 고래 그림은 고래 사냥꾼들이 그렸을 것이다. 그물과 작살의 섬세한 표현이나 포경의 과정을 그려놓은 것으로 봐서 그렇게 추측된다. 선사인들에게 자연은 곧 신이었다. 반구대는 언제든 그림을 그릴 수 있을지는 몰라도 특별히 해가 허락한 시간이 되어야 그림이 잘 표현된다. 평평하고 넓은 이곳의 암벽은 땅과 바다를 담기에 좋은 도화지였을 것이다. 단단한 석기로 쪼거나 긁어서 면으로 새기거나, 동물의 특징을 살린 윤곽을 선이나 점으로 새겼다. 그들은 신성한 돌에 천천히 염원을 그려나갔다. 반구대 해설사님 말씀으로는 고래 그림들이 섬세하고 역동적이라고 하는데 공감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서 암각화 사진을 인쇄하여 따라 그려보았다. 그려보니 작살을 맞은 고래의 꼬리가 휘어지고, 거꾸로 점프하는 흑등고래를 상상하기에 좋았다. 석기로 암벽에 고래의 곡선을 표현하는 일이 많이 까다로운 작업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암각화를 세로로 크게 세 등분하면 왼쪽은 해양동물이, 오른쪽은 육지동물이 주로 그려져 있다. 가운데는 해양동물과 육지동물이 함께 그려져 있다. 중간 사냥꾼, 샤먼의 모습도 있다. 해양동물은 대부분 위쪽으로 향해 헤엄치며 나아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그림이 그려진 시기에 따라 4단계 또는 5단계로 구분하고 있다. 그려진 곳에 세대를 걸쳐 또 그림을 그린 이유에 대해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