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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인류학

 

 

[반구대 답사기 수정] 기도, 자연과 조응하려는 마음의 수련

작성자
보나
작성일
2024-07-31 17:46
조회
179

기도, 자연과 조응하려는 마음의 수련

 

오늘도 나는 기도를 한다. 밤하늘에 달을 보며 나와 가족, 지인의 건강을 기원하고, 반짝이는 별을 보며 사랑하는 사람들의 소원을 떠올려 보기도 한다. 소원은 구체적일수록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는데, 그런 측면에서라면 나의 소원은 헛된 소망일 수도 있겠다. 나는 기도를 떠올리면 두 손을 마주 비비며 천지신명(天地神明)께 기도하는 여인의 모습과 자식의 무탈함과 성취를 바라며 108, 3,000배를 올리는 부모님의 모습이 떠오른다. 자식이 부모의 입장이 된 뒤에야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려볼 수 있다더니. 궂은 날씨에도 고된 훈련을 이겨내며 꿈을 향해 매진하는 자식들의 무탈함을 기원하며 기도하는 마음에 대해 생각해본다.

달님의 설명에 의하면 바위에 그림을 새기는 선사시대 인류나 북미 원주민 나바호족의 직조공들은 그림을 새기는 바위 앞이나 실을 직조하는 베틀 앞에서 경건한 마음을 가졌다. 신성한 힘이 자신의 몸을 관통하도록 하는 일에 자기를 내던지는 행위를 하는 샤먼들이 신성한 사람들과의 대화에 집중해야 했을 때, 끊임없이 나쁜 생각을 몰아내기 위해 애쓰며 밤마다 바위로 나아갔다는 것이다. 이때 나쁜 생각이란, 개인이 일상에서 부딪치면서 겪고 느끼는 일화들이자 사심 있는 관점을 말한다. 그렇다면 아이들의 무탈을 기원하는 개인의 속된 소망은 이루어질 수 없는 헛된 기대에 불과한 것일까? 아이들의 행보에 따로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없어 세상의 신들에게 그들의 무탈함을 기원하는 부모의 기도가 속되다고 여겨지진 않는다.

인문세 인류학팀은 스티븐 마이든의 빙하 이후를 중심으로 유적과 유물을 통해 선사시대 사람들의 생활상을 그려보는 고고학적 탐사를 진행 중이다. 우리는 공부의 일환으로 대략 7000년 전에 제작된 걸로 추정되는 암각화를 만나기 위해 울산 대곡리 반구대 답사를 다녀왔다. 서기전 20.000년 최후빙하극성기와 이후에 이어진 지구온난화의 극심한 기후 변화는 인류의 생존을 위협했고, 현생 인류는 이에 맞서 새로운 삶의 방식을 모색하며 살아야 했다.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었던 거대한 흐름에 맞서 살아온 선사시대 사람들도 지금의 우리처럼 기도를 했다. 암각화는 자신이 관계 맺고 살던 미지의 대상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만물을 총체적으로 통찰하려는 선사인들의 노력과 공경의 마음이 새겨진 기도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변화하는 자연을 공경하며 이와 조응하려는 의지와 노력, 마음의 수련을 기도라고 부른다.

, 이제 자연의 모든 것에서 신성함을 느끼며 이와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낮에는 어부로, 밤에는 고래를 새기는 삶의 예술가로 살아온 선사시대 사람들의 암각화를 좀 더 살펴보자. 거대한 자연의 힘과 조응하기 위해 단단한 돌에 거듭하여 암각화를 새기며 자신의 도구와 삶의 방식을 창발하며 살아왔던 조상들의 마음에 한발 다가설 수 있을지 모르니 말이다.

 

울산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앞에서

울산암각화박물관의 자료에 따르면 반구대 암각화는 약 7000년 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울산 울주군 대곡리 태화강 상류의 지류 하천인 반구천의 절벽에 있다. 반구대에서 하류 약 0.7km 지점에 위치한 너비 약 8m, 높이 약 4.5m 규모의 암각화에는 다양한 고래와 거북, 상어 등의 바다동물과 호랑이, 사슴, 멧돼지 등의 육지동물, 선사시대 사람들의 사냥과 어로의 모습 등 총 312점의 그림이 새겨져 있다. 바위에 새겨진 암각화에서 단연 눈에 띄는 것은 가장 많이 표현된 다양한 종류의 고래였다. 숨을 쉴 때 수증기를 뿜으며 함께 헤엄치는 북방긴수염고래에서 새끼를 업고 유영하는 귀신고래와 배의 주름을 자세히 표현한 혹등고래, 가슴지느러미가 유달리 큰 향고래 등 다양한 고래의 특징을 세세하게 묘사했다. 이와 더불어 배와 작살, 부구를 이용해 고래잡이를 하는 장면도 상세하게 표현되어 있는데, 고래 주위에 모여든 새의 모습을 그려 고래의 출현을 탐지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든지, 부구를 이용해 고래를 인양하는 장면 등의 묘사를 보면 선사시대 울산 연안에서 실제로 고래잡이를 하고 살았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울산 연안의 선사시대 사람들은 바다에서 바다동물을 잡고, 숲에서 육지동물을 잡는 것을 생업으로 삼았다. 선사시대 사람들은 변화하는 기후와 자연환경에 맞서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자연물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탐구해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왜 굳이 단단한 돌에 시간과 공을 들여 그들의 모습과 생활상을 새겨야 했을까? 빙하 이후스티븐 마이든에 의하면 혹독한 환경에서 빙하시대 수렵채집민의 생존 열쇠는 정보였다. 그들은 만물의 모습과 생태를 적극적으로 관찰하며 변화하는 조건에 따라 새로운 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하며 지식을 수집했으며, 친구와 친척, 다른 부족을 만나 정보를 공유하며 살아왔다. 그들은 주기적 회합을 통해 혼인하고 물자와 식량을 교환하고 새로운 도구 제작 기법과 기술을 가르치고 배우며 사회적 유대를 유지했다. 수렵채집민들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주변의 동식물을 이용해 생계를 이어 왔지만, 그들을 단지 착취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수렵채집민들은 사냥꾼의 화살과 작살에 맞아 생명을 포기한 사냥감의 죽음으로 자신이 생명을 이어갈 수 있음에 감사하며, 그들의 영혼이 함께 있음을 잊지 않았다. 마이든에 의하면 수렵채집민의 이러한 세계관 속에서 정보의 습득과 소통을 유지하기 위해 현생 인류의 예술, 신화, 종교 의례가 발전해왔다. 주기적 회합과 의례를 수행하는 동안 사람들은 생각과 경험을 나누고 주변 동식물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배울 기회를 갖기 때문이다. 아마도 울산 반구대도 이러한 회합과 의례의 장소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울산 연안의 사람들에게 거친 파도를 헤치며 유영하는 고래의 거대한 힘은 두려움의 대상이자 자신의 모든 것을 사람들에게 내어주는 경외의 대상이었다. 울산 연안에 거주하던 우리의 조상들은 두려움에 좌절하지 않고, 고마움 또한 잊지 않기 위해 늘 자연 세계를 섬세하게 느끼며 이해하기 위해 애쓰며 일상을 꾸려왔다. 이들은 고래와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경험과 정보, 삶의 애환을 나누기 위해 신성한 장소인 반구대에 모였다. 그리고 그 마음을 기억하기 위해 간절함을 담아 손에 쥐어지는 작은 돌로 거대한 바위에 새기고 또 새겼다. 낯선 세계에 벽을 쌓거나 외면하지 않고 이해해보려는 선조들의 용기와 간절함, 그에 따른 기쁨과 슬픔의 노랫소리가 잠시나마 들려오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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