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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인류학

 

 

[반구대 답사 후기] 전체 속 부분으로 기도하기

작성자
기헌
작성일
2024-07-31 17:56
조회
229

돌에 새긴 오래전 인류의 마음을 탐구하러 답사를 다녀왔다. 7000년 전 그들의 마음을 남겨둔 암벽은 울산 태화강 상류의 지류 하천인 대곡천 중류에 위치하고 있다. 대곡천은 백악기에 호수와 하천의 흐름으로 퇴적물이 쌓였고, 그 퇴적물들이 토양이 되고 침식되면서 깊은 골짜기가 만들어졌다. 긴 시간 차분하고 성실하게 움직인 자연 덕분에 구불구불한 물의 길은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유일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지니게 되었다. 자연의 섭리는 물의 길이 굽어지는 곳 가까이 암각화가 은밀하게 자리하게 했다. 물의 길을 품은 산은 반구대(盤龜臺)로 연고산에서 이어진 줄기가 이곳에서 기암괴석을 이룬다. 조선시대 읍지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이 산의 모습이 날쌘 말이 달리는 형상과 같고, 땅이 끝나는 곳까지 산이 높았다 낮았다를 반복하여 뻗어 있다고 표현한다. 그리고 그 끝에는 거북이가 엎드려 있는 모습이 서려있어 반구대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우리가 답사한 반구대 암각화는 높이 약 4.5m, 너비 약 8m 크기의 평평한 벽면이다. 상단에 돌출된 암벽들로 인해 암각화는 비를 피할 수 있고 낮 대부분은 그림자에 가려져 있다 오후 늦게 잠깐 그 속살을 보여준다. 세계적으로 암각화는 은밀하고 신성함이 느껴지는 동굴에 많이 그려지는데 이 반구대 암각화가 위치한 곳도 동굴과 다르지 않게 산과 강, 하늘의 가호 아래 비밀스럽게 놓여있는 듯 보였다. 강의 상류로 이동하면 인류의 마음을 새겨놓은 또 다른 곳이 있다. 천전리 명문 암각화가 새겨진 바위는 계곡물이 내려오는 곳에서 만날 수 있는데 이 바위는 높이 약 2.7m, 너비 약 9.5m의 사이즈로 평평하고, 위쪽이 앞으로 15°가량 기울어져 있어 비를 피하고 눈과 바람으로부터 보존이 수월했다.

반구대에 새겨진 그림은 고래와 사슴, 호랑이, 족제비, 물소 등과 어로에 생활의 흔적을 유추할 수 있는 배, 그물, 작살 등 약 300여점이다. 조사하는 기준에 따라 그 수는 달라지기도 한다. 고래 그림은 고래 종류에 따라 그들의 특징을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사실 나는 박물관이나 자료를 통해 고래 그림들을 보았을 때 섬세하다고 느끼진 못했다. 반구대 해설사님도 고래들이 섬세하고 역동적이라고 하셨기에 왜 공감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나중에 집에서 암각화 사진을 인쇄해서 따라 그려보니 작살 맞은 고래 꼬리의 휘어짐에서 그 의미를 알 것 같았다. 더군다나 선사인들은 이 그림을 돌로 새긴 것이다. 종이에 그림을 그릴 때 연필이냐 볼펜이냐에 따라서도 표현에 차이를 보이는데 돌로 암벽에 고래의 움직임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표현되었다는 것은 반박불가한 섬세함이다. 반구대에는 다양한 고래들이 표현되어 있다. 수증기를 내뿜는 고래, 아기 고래를 업은 엄마 고래, 점프하는 고래, 등에 작살을 맞은 고래가 있는가 하면 종류로는 흰수염고래, 혹등고래, 귀신고래, 범고래 등이 있었다. 이 그림들은 한 날 그려진 것은 아니고 세대를 이어 그렸다고 한다.

천전리에 새겨진 그림은 앞서 본 반구대에 없는 기하학무늬를 많이 발견할 수 있다. 또한 한 쌍으로 보이는 동물들, 그 외 사슴이나 물고기들을 볼 수 있는데 역동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하단부에는 신라시대의 것으로 알려진 한자들이 새겨져 있다. 이곳의 그림들은 다소 정신없고 산만한 느낌을 갖게했다. 여러 시대의 그림이라서 그렇다고 하기에는 반구대 암각화도 단일한 세대가 그린 것이 아니기에 이유가 되기에 무리가 있다. 반구대 암각화가 하나의 복합체라면 천전리 암각화는 다수의 단일체가 혼재되어있는 것 같았다. 두 곳 모두 그림을 중첩해서 그리기도 했는데, 중첩성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인문세 답사 자료집에서 인용한 장 클로트의 글에 따르면 선사인들이 동굴 안에서 증식의 바램을 담아 영험한 바위에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다양한 동물 형상을 중첩시켜서 표현함으로써 기도했을 것으로 본다.’(오선민, 기도는 손으로 하는 일, 울산 반구대 암각화 답사 자료집, 1, 인문공간세종)고 했다. 하늘과 땅, 물의 신성함이 흐르는 곳에서 기도하던 사람들의 마음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나는 그 차이를 알아보고 싶어졌다.

자기의 자리

반구대 암각화는 동물들의 섬세한 표현이나 포경의 과정을 그려놓은 것으로 봐서 고래 사냥꾼들이 그렸을 것으로 추측된다. 반구대는 언제든 그림을 그릴 수 있을지는 몰라도 특별히 해가 허락한 시간이 되어야 그림을 온전히 만날 수 있다. 흐릿하던 그림들이 신과 함께 그 모습을 드러내는 느낌을 받는다. 그렇다면 어둠이 찾아온 시간 사람들은 이곳에서 무엇을 볼 수 있을까? 암각화가 기도하는 마음이라면 돌에 새긴 섬세하고 역동적인 묘사는 압도적인 존재 신을 향하는 사냥꾼들의 경외심이다. 깜깜한 밤과 멈춤없이 흐르는 물소리 사이에서 눈을 감은 그들은 빛을 보고 신의 소리를 듣는다. 신 즉 자연의 섭리를 알았던 그들이 어떤 기도를 했는지는 그림의 내용에서 엿볼 수 있다.

반구대 암각화를 세로로 크게 세 등분하면 왼쪽은 주로 해양동물이, 오른쪽은 육지동물이 그려져 있다. 가운데는 해양동물과 육지동물이 함께 그려져 있다. 암각화의 왼쪽 부분을 바다라고 상상하게 한다. 맨 앞에 거북이들이 헤엄친다. 이어 고래들도 헤엄친다. 아직 스스로의 힘으로 물 위로 올라가기 어려운 새끼고래는 엄마 귀신고래 등에 올라타 있다. 자기 몸길이의 반이나 되는 작살에 맞아 꼬리가 휘어진 고래는 볼수록 아픔이 상상하게 되었다. 몸에 붙은 뭔가를 떼어려는지 공기를 마시려는지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점프하는 흑등고래의 힘을 느낀다. 셋이서 나란히 수증기를 내뿜는 북방긴수염고래들을 보고 있자니 냄비에서 끓는 팔팔 끓는 물이 수증기를 만들 듯 바다의 엄청난 장관이 상상되었다. 춤추는 샤먼들, 여러 명이 올라탄 고래잡이배, 창과 올가미를 든 사냥꾼들, 어떤 이유에서 인지 뛰는 사슴들 . 기도하는 암각화 화가들은 모든 그림을 단일한 존재로 그리지 않은 것 같았다. 절실한 그들의 마음은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경이로운 자연과 함께 생명들을 고스란히 드러내려고 했다. 반구대 암각화에서 기도하는 자는 전체 안에 부분인 자기를 굳이 드러낼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어쩌면 그것은 나쁜 생각이어서 애써 금지했을지도 모른다.

암각화는 중첩되어 표현되기도 했다. 프랑스 쇼베 동굴에는 여러 번 겹쳐진 말 그림이 있다. 이 말은 한 시대가 아닌 오랜 기간 중첩해서 마치 움직이는 듯한 모습으로 그렸다고 추정한다. 울산 암각화들은 쇼베의 중첩성과는 조금 다르게 생각해야 할 것 같았다. 왜냐하면 같은 내용을 중첩해서 애니메이션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존재들을 겹쳐서 표현했기 때문이다. 인문세 답사 자료집에서 인용한 전호태 선생님의 글에는 반구대 암각화의 예술가들은 앞 그림을 훼손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천전리 기하무늬 예술가들은 앞 그림 훼손에 별다른 의식이 없었다고 한다. 선생님의 의견이 맞는지 아닌지 알 수는 없지만, 내가 보기에 반구대 암각화가 하나의 작품처럼 느껴졌고, 천전리 명문 암각화가 다수의 단일한 작품들이 서로 자기를 드러내려는 것 같아 이 인용문과 함께 생각해보고 싶었다.

반구대 해양동물, 육지동물, 샤먼, 사람들이 중첩된 그림이 하나로 느껴졌던 이유는 이미 그려졌던 그림에 자기가 아닌 세계를 잇는 마음, 보이지 않는 활기를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사실 그 지점이 정확히 어디인지는 잘 모르겠다. 예술 작품에서 이유 모를 오묘함, 신비감을 느끼듯이 말이다. 반면 천전리 암각화에서 동물들은 활기를 잃은 듯 보였다. 자기의 명문을 반듯한 선으로 구분한 부분은 침범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표시 같고 전체의 조화를 깨는 느낌이었다. 그림들이 중첩되고, 동물상 위로 글자를 새긴 것도 내 그림이 중요하기 때문에 (전호태 선생님의 표현처럼) 앞 그림의 훼손이 중요하지 않아 보였다. 아마 내가 천전리에서 여러 작품들이 섞여 보이는 느낌을 받은 것은 이런 이유였을 것이다. 두 암각화의 차이가 자기의 자리가 다르다는 것을 느끼지만 중첩된 암각화 공부와 상상은 아직 많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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