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인류학
[빙하이후] 유목에서 정주로
유목에서 정주로
수렵채집민들에게 이주는 필연적 선택이었다. 사냥감이 먹이를 따라 이동하듯이 인간도 사냥감을 따라 이동했다. 그래서 계절에 따라 거주지를 옮기는 방식은 수렵채집민들에게 자연스러웠다. 늘 이동을 염두했기에 집을 짓는 재료도 자연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나무와 동물의 뼈와 가죽 등이었다. 기후가 온난해지면서 동물과 식물 자원이 풍부하고도 다양해지는 곳에서 사람들은 좀 더 오랜 기간 머물게 된다. 임시 야영지가 정주하는 마을도 점진적으로 전환된다. 그러나 수럽채진민들이 곡물을 재배하고 가축을 사육하는 방식의 삶을 살지는 않는다. 『빙하 이후』의 저자 스티븐 마이든은 수렵채집민이 으로 이전하지 않고 완전한 농경민이 물에 대한 접근성이 좋은 지역으로 찾아왔을 거라고 말한다(스티븐 마이든, 성춘택 옮김, 『빙하 이후』 (사회평론아카데미), 515쪽).
정주의 흔적은 다양한 면에서 발견할 수 있다. 첫째, 집의 형태와 집을 짓는 재료가 달라진다. 수렵채집민들은 짧은 시간을 집을 지을 수 있는 재료를 사용하고 형태도 움막이나 텐트였으며 별도로 집을 만들지 않고 동굴에서 살았다. 반면 정주인들은 흙으로 벽돌을 만들어 네모난 형태의 여러 방이 딸린 집을 지었다.(같은 책, 503쪽) 진흙과 겨 또는 지푸라기를 섞어 흙이 마른 후에도 부서지지 않게 벽돌 형태로 말려 차곡차곡 쌓아 벽을 세웠다. 재료를 준비하고 집을 만드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정주의 또 다른 흔적은 무덤의 발견이다. 집의 하부에 구덩이를 파고 무덤을 만들어 죽은자와 산자가 한집에 사는 것이 흔했다. 인구가 늘어나자 공동묘지를 만들기도 했다.
도구는 수렵채집민의 도구와 비슷했다. 메르가르 건축물에서 발견된 도구는 화살촉이나 돌날로 만든 칼, 가죽 무두질에 쓰는 긁개와 밀개 같은 석기로 서기 7000년 인더스 강 유역에서 살고 있던 수렵민들의 도구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두 지역 사람들 모두 강변에서 구할 수 있는 규암 자갈돌로 도구를 만들고 그 지역 동물을 사냥하였기 때문이다. 서기전 5500년에는 목화를 심고 서기전 4000년이 되면 진흙과 벼로 인장을 만들었다.
정주하던 메르가르 사람들은 외부 사람들과 교역을 한다. 그들은 곡식과 동물을 흑요석과 조개(무려 500km 남쪽의 해안에서 온) 등으로 바꾼다. 주변에서 흔히 구할 수 없는 교역을 통해서만 가질 수 있는 물품이 생기면서 사적 소유와 부라는 새로운 문화가 등장했음을 인장의 발견으로 확인할 수 있다.(같은 책, 506쪽~50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