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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인류학

 

 

[빙하 이후] 사적 예술 vs 공적 예술

작성자
재영
작성일
2024-07-01 18:11
조회
163

 

러복은 인도 빔베트카(Bhimbetka)’에 가서 서기전 8000년경에 그려진 것으로 확인되는 바위그림을 발견한다. 마이든은 빔베트카가 인도에서 가장 많은 바위그림이 있는 곳이라 소개한다. 확인된 개수만 무려 133개이고 이들 장소에서 발견된 그림의 흔적이 400개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러복의 눈을 빌어 묘사한 빔베트카(Bhimbetka)’ 암벽화에는 동물 그림은 물론이려니와 사냥 장면을 포함하여 보다 일상적인 장면이 더 많이 보이는 듯하다. 그간 간접 경험했던 선사시대 벽화의 주인공이 대부분 동물이었던 것과 다르다. 이 바위그림들에서 인간의 형상은 단순한 선만으로 표현되어 있으며 얼굴이나 몸의 생김새 자체보다 움직임이나 일종의 분위기등을 표현하는 것에 더 주력한 것으로 보인다. 마이든은 그러나 이 장면들이 신화인지, 실제 겪은 일을 기억하는 것인지, 희망을 표현한 것인지 알기는 힘들다고 말한다.

그리고 마이든은 데칸대학 마트팔의 주장을 소개하는데 그에 따르면 빔베트카 벽화에서는 다른 두 시기, 다른 두 주제가 발견된다. 첫 번째는 사냥과 채집이다. 뛰며 달리는 여러 종류의 동물과 함께 사슴, 멧돼지를 사냥하고 벌꿀을 채집하고 또 춤을 추고 북을 치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마트팔은 이 주제 즉 수렵과 채집은 연중 내내 혹은 일부 기간만 거주했던 수렵채집민이 남긴 것이라고 말한다. 다음 주제는 금속 칼과 방패로 무장했거나 말과 코끼리를 타고 있는 남자들의 모습이 보이고, 이 남자들이 전쟁을 하고 있거나 행진하기도 한다. 마트팔은 이 두 번째 주제의 그림은 비교적 최근 시기로 도시에 살던 군인을 보았던 사람들이 남겼다고 주장한다.

 

마트팔은 작품에 숨은 동기를 찾으려 한다. 빙하시대 유렵에 살던 화가와는 달리 빔베트가에서는 모든 이가 쉽게 볼 수 있는 곳에 그렸다. 사적 예술이 아니라 공공 예술인 셈이다. 동물과 사람도 영적이라기 보다 세속적인 모습이다. 마트팔에 따르면 벽화는 선사시대 사람들과 같이 산림 환경에 살고 있던 다양한 동물의 생활을 기록하고, 이곳 사람들의 경제 및 사회생활의 다양한 측면을 제시하고 있다. 빔베트카의 벽화에 대해 어떤 비전(秘傳)의 설명을 추구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빙하이후, 497)

 

특히 마트팔은 빔베트카 벽화가 동굴 깊숙이 들어가야만 볼 수 있었던 장소가 아니라 모든 이가 쉽게 볼 수 있는 비교적 열린 공간에 그려졌다는 것에 주목한다. 그러면서 이들의 벽화를 사적 예술이 아니라 공공 예술로 정의한다. 마트팔의 이 구분이 궁금했다. 마트팔의 주장에 따르면 프랑스 라스코 동굴 벽화의 경우 정보 저장소의 역할이든 혹은 의례와 의식의 장소나 성소이든,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동굴 깊숙한 곳에 그려졌으므로 라스코 동굴 벽화는 사적 예술에 해당한다.

마트팔이 말하는 사적에 대한 정의는 개인적인 감정이나 서사를 표현한다는 뜻이라기보다 현실 너머 영적인으로 해석해도 될까. 단지 눈앞에 보이는 현실 이면에 숨겨진 또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뜻으로 말이다. 혹은 그 결과를 보여주기 위한 그림이라기보다 그것을 표현하는 과정, 그 자체에 더 많은 의미가 있다고 보아도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과정을 통해 다른 존재로 변이가 되거나, 그 과정이 의례와 의식의 역할을 한다는 의미로써 말이다.

그렇다면 공적인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세속적인, 일상적인 모습 그대로를 기록하듯 즉 모두에게 객관적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그림, 그 이상도 아니라는 뜻일까. 이는 라스코 동굴 벽화를 정보 저장소로 해석했던 마이든 자신의 해석과 결을 같이 한다. 누구나 볼 수 있는 공공의 장소에 그려졌다는 것은 누구든 되도록 더 많은 사람이, 모두가 다 보고 알기를 바라는 마음, 나아가 집단 공동의 지식이나 정보 등 일종의 집단적 상식 차원에서 이것들을 알아야만 한다는 부족민의 의무가 함께 담겨있는 것일까? 흡사 지금의 주민 센터 알림판 같은 역할로 보아도 무방할지 궁금하다. 문자가 없었던 이 시기에 그림(예술)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공동의 기호나 언어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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