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인류학
[마음 인류학 에세이] 보다
제다실(2)/강평/241216
동사 : 보다
우리가 같은 것을 보고 있을까?
독서 동아리 아직도 나가느냐 나에게 묻는 직장 동료들이 많다. 그건 해서 뭐 하냐고 추가 질문을 하는 사람도 더러 있다. 그냥 하는 질문이기도 하고, 굳이 답을 한다고 상대가 알까 싶어서 그냥 웃고 넘어간다. 그때 나의 마음 속 답은 ‘그냥’, ‘하다보니’였다. 그러다 요즘 점점 업무가 많아져서 쪼이는 상황이 자주 생기다보니,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새삼 묻게 된다. 나는 남들이 말하는 독서 동아리를 해서 뭘 하려고 이렇게 바쁘지? 그간 내가 쓴 에세이를 되돌아본다. 원시 부족, 고대 유물을 보며 나의 시선이 얼마나 갇혀 있는지, 주로 갇힌 곳이 실용과 목적인지 느끼는 내용이 많았다. 매번 사건의 배경, 내용은 조금씩 달랐지만 매번 나는 놀랐던 것 같다. 마치 처음 마주하는 사건인 것처럼. 그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일을 글로 풀어보느라 나름 괴롭기도, 즐겁기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풀었다고 생각했던 비슷한 문턱에 걸려 넘어지고 있다. 문제는 그렇게 간단히 풀리는 것이 아닌 것 같다. 계속 풀면 될 것 같은데 뭐가 문제일까. 처음에는 분명 책 읽는 것만으로 좋아서 ‘그냥’ 했는데, 왜 나는 ‘목적’을 찾게 되었을까. 시간이 경과되었기 때문일까. 이쯤 시간이 지났으니 더 많이 알고, 더 나은 내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라도 한 것일까.
애나 칭의 『세계 끝의 버섯』 중 “내 눈에는 흙과 가지만 앙상한 소나무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양동이와 막대기를 든 카오는 아무것도 없는 땅을 깊이 찌르더니 두툼한 버섯갓을 꺼냈다. 어떻게 이게 가능하지?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하지만 이제 그곳에 버섯이 있었다.”라는 문장이 있다. (41페이지) 저자에게는 보이지 않는 땅 밑 버섯을 어떻게 버섯 채집인 카오는 볼 수 있을까? 그 아무것도 없는 ‘땅 아래’에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애나 칭은 ‘숲바닥 아래에 있는 곰팡이 균체는 버섯을 생산하기 훨씬 전부터 뿌리와 무기질 토양을 한데 묶으면서 그물망과 실타래처럼 뻗어나간다’(10페이지)라고 한다.
익숙한 시선, 보이지 않는 장면
세미나 때면 나는 자주 그런 장면이 있었나? 그런 의미였나? 묻는다. 그 장면, 의미가 나에게 보이지 않는 이유는 다양하다. 사전 지식, 투입된 시간, 집중력 부족, 그리고 시선의 한계 등이다. 생소한 개념, 주제의 인류학은 그렇다 치자. 비교적 자주 접하는 영화나 소설은 좀 쉽지 않을까 싶었다. 예외는 없었다. 오선민 선생님의 신간 『미야자키 하야오와 일상의 애니미즘』을 통해, 내가 보지 못한 장면과 해석에 여러 번 놀랐다. 예를 들어 <마녀 배달부 키키>는 내 기억에 키키가 언덕에 누워 라디오를 듣고 있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오선민 선생님은 그 언덕에 바람이 부는데 그때 만물이 어떻게 의존하는지 사운드를 말씀하신다. 사운드? 나도 이 영화는 여러 번, 집중해서 보느라고 봤다. 하지만 사운드는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책을 읽고 키키의 언덕 장면부터 다시 봤다. 선생님의 설명대로 과연 하늘의 구름이 이동하고, 호수에는 잔물결이 만들어지고, 키키 주위의 꽃이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흔들렸다. 풀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 벌레 날갯짓 소리까지 런닝 타임도 꽤 길었다. 내가 지나쳐버린 장면에는 세상의 많은 플레이어들이 서로 의존하고 있었다. 누군가 말해주지 않았다면 몇 번을 재생했더라도, 아마 내 눈에는 언덕에서 라디오를 듣고 있는 주인공 키키 외 다른 존재들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으리라. 그럼 이 책을 계기로 주인공 아닌 존재들에게 시선이 더러 가기도 할까. 물론 그렇지 않다. 주인공 위주 사고의 토양은 그렇게 얕지 않다.
신간이 나오고 얼마 뒤 오선민 선생님의 한강 작가 『채식주의자』에 대한 동화 인류학적 해석 특강이 있었다. 책은 구성, 내용 면에서 어렵기도 하고 재미도 있었다. 특강을 듣고 나는 소설의 여러 장면을 책을 펼쳐 다시 읽어보았다. 여러 장면을 지나쳐버리고 주인공, 줄거리 위주로 책을 읽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의를 듣고 나서 마지막 연작 ‘나무 불꽃’의 화자인 인혜의 아들 지우가 비로소 보였다. 지우는 인혜 삶의 조건이자 인혜의 애정과 책임에 대한 자세를 보여주는 중요한 인물이었다. 책을 읽고는 인혜를 많이 아픈 동생 영혜, 경악할만한 짓을 한 남편, 돌봐야 할 아들, 꾸려가야 할 화장품 가게 때문에 고군분투하는 인물로 요약했던 것 같다. 1부 끝에 영혜가 자해를 할 때 아이들이 그 장면을 보고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던 것도, 북새통이 된 장면에서 내가 놓쳐버린 장면이었다. 마녀 배달부 키키를 보면서도 아무리 마녀라도 객지 생활을 하면 다 그때는 힘든 것이라고 생각해서인지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나는 키키만 주로 생각났다. 오선민 선생님의 책을 읽고서야 비로소 어두운 2층 방, 우울한 키키의 얼굴이 들어왔다. 나는 만연된 가정 폭력과 사회 초년생의 고생담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 장면들이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