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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인류학


 

[마음 인류학 에세이] 연결하다, 알아차리기 기술

작성자
보나
작성일
2024-12-21 20:01
조회
88

연결하다, 알아차리기 기술

 

시대의 키워드를 알아차리다

이번 시즌 마음의 인류학에서는 무문자 사회의 사람들이 자연과 연결되기 위해 집단의 편향된 사고체계에 의한 모순을 조정하는 토테미즘방식을 배웠다. TV 프로그램에서도 끊어진 관계를 다시 이어가거나, 새로운 관계를 맺기 위한 커플 연결 프로그램들이 성행하는 것을 보니 연결하다는 지금도 시대의 중요한 키워드인 것 같다. 부족, 대가족이 해체되어 핵가족과 딩크족(Double income, No kids), 1인 가구가 성행하는 등 집단의 형태가 바뀌었는데도 연결하다는 왜 시대를 불문한 주요 키워드인 걸까? 시대적 상황과 조건에 따라 살아가는 방식은 다르지만 어쩌면 우리에게는 미처 파악하지 못한 어떤 공통의 내재적 사고가 무의식중에 반영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혼자가 좋아라거나 무리가 낫지라는 판단은 모두 존재를 개체적으로 파악하기보다 사회적 관계 속에서 파악했을 때 성립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작금의 현상인 단절과 고립은 시대의 욕망(소유욕)에 사로잡혀 이러한 관계성을 감각하지 못해서 나타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신의 욕망과 삶의 방식이 양극화되어 있는 우리에겐 만물의 연결성을 알아차릴 섬세한 감각의 회복이 절실하다.

레비스트로스는 야생의 사고에서 효율을 높이기 위한 문명인의 사고와는 다른 길들여지지 않은 상태의 사고를 야생의 사고라고 말한다. 효율성을 기준으로 작동하는 과학적 인식이 지배하는 기술산업사회는 소외와 착취로 유지되고 있으므로 그 기준에 적합하지 못하면 모두 배제된다. 이에 반해 야생의 사고를 기반으로 한 토테미즘(신화적 사고, 주술, 구체의 과학)은 이항대립을 분석 도구로 삼지만, 인과율에 의한 결정론인 과학과 서로 대립하기 보다 포괄하는 사고체계다. 이는 야생의 사고가 보편성과 특수성의 양방향의 극한까지 진행되며 자연과 문화 그 양극 사이에 위치하는 어떠한 분야도 해체하든가 재통합하는 조종 능력을 보유하려고 하는 목적의 광대함 때문이다. 자연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야 했던 원시사회 사람들은 그들에게 직접 쓸모가 없는 부분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이며 경험적, 감각적 직관을 활용해 철저하게 관찰했다. 그들에게 자연은 단지 지배의 대상이라기보다 인간의 생존과 연관된 중요하고 친숙한 협력대상이었다. 무문자 사회 사람들은 이처럼 자연과 문화의 상보성을 고려해 자연적으로 다르지만, 문화적으로 같다고 간주하고 종적인 차원에선 같지만, 상징적으로 다르게 만드는 사고체계를 기반으로 고유한 문화를 발전시켜왔다. 이들에게 연결하기란 서로 무관한 대상으로 자연을 인식하며 단순히 자연과 문화를 잇는 행위가 아닌,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대상까지 연관되어 있다고 여기는 순간의 알아차리기다.

사태를 하나의 원인과 결과로 파악하는 일대일 대응 방식이 아니라 여러모로 모색해볼 수 있는 토테미즘은 자신을 단독적 개체라고 생각하는 우리에게 연결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 줄 것 같다. 단순히 같은 것끼리 묶거나 다른 것과 이어주는 연결과 달리 자연현상을 기호 형태로 받아들여 이해와 해독이 요구되며 다양성이 창출되어 관계의 지평을 넓히는 무문자 사회의 사고체계를 좀 더 살펴보자.

무문자 사회의 분류체계

우리가 원시적이라고 일컫는 야생의 사고는 질서에 대한 요구에 기초를 두고 있다. 과학에 길들여진 우리에게 야생의 사고가 낯선 사고체계임에도 불구하고 이해될 수 있는 이유는 모두 이러한 공통성이 있기 때문이다. 철저한 관찰, 관계나 연관성 있는 것끼리 분류하는 조직화에 대한 요청은 무질서를 없애기 위한 공통적 욕구이지만, 주술이 감각적 직관에 시선을 집중시키는데 반해 과학은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는 데에 목적을 둔다. 주술에 의한 결정론적 진리는 감각적 직관으로 포착된 것이 포함되기 때문에 사태의 인과를 일대일로 대응하는 과학에 비해 포괄적이다.

무문자 사회 사람들의 이러한 분류체계는 자연과의 필연적 관계를 세우기 위한 구분의 필요에서 나온 것이다. 차이를 구별짓는 이러한 분류체계는 우리에게 기준이 주어지는 동시에 내용 전달을 위한 형식을 갖추게 되었다는 것으로 기호를 해독하는 하나의 틀로 사용된다. 이러한 체계는 처음에는 무엇인지 불분명하던 것을 알아볼 수 있게 되며, 기호로 메시지를 전달하고, 받아들인 메시지를 다시 다른 코드로 변환하거나 스스로의 체계로 재구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연하다.

토템은 동물, 식물 등 특정한 대상의 상징을 기호화하는 것으로, 자연의 개체를 종 차원에서 일반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 토템적 표현은 자연적 요소에 의해 만들어진 체계에서 문화적 요소에 의해서 만들어진 체계로 이행하거나 그 반대의 경우로 이행할 수 있는 부호를 말한다. 토테미즘이 성행했던 사회에서 하나의 사건은 필연적 관계의 응측된 표현이자 인과의 그물인 복합체로 인식된다. 이에 레비스트로스는 토테미즘을 각양각색의 원소로 된 혼합물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집합체로 존재하는 사고의 틀은 집합을 분해하고 다시 조립하며 구조적으로 재배치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사건의 구성 요소들은 파괴할 수 없는 부속품으로 사용되어 목적도 되고 수단으로 쓰이게 되므로 소외가 일어나지 않는다. 이러한 면에서 토테미즘은 자연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살아야 했던 원시사회에서 자연과의 상보성을 고려해 인간 고유의 문화를 발전시켜온 관계적 사고 틀이다.

 

토테미즘의 특징

토테미즘은 이항 대립의 논리 체계로 종을 분류하고 통합하며 보편화와 특수화의 두 방향으로 작용한다. 이는 또한 논리구조에 그치지 않고 윤리적인 기초가 되며, 공시태(共時態)와 통시태(通時態)를 동시에 내재하고 있다는 특징을 가진다. 그러므로 토템적 분류법은 보편성과 특수성, 추상과 구체를 서로 연결해주는 동시에 분류하고자 하는 속성의 극한까지 갈 수 있는 무한한 확장 능력을 가진다. 이러한 분류가 정지하는 것은 장애가 생기거나 분류 기능이 마비되어 멈추는 것이 아니라 갈 곳까지 간 연후에 정지하는 것으로 야생의 사고는 본질적으로 좌절을 모른다. 토테미즘은 한쪽에서는 분류가 불가능해서 오직 명명(命名)만이 가능한 특수성과 개별화의 방향으로, 다른 쪽에서는 부족의 경계를 뛰어넘어 보편성과 추상의 방향으로 확장된다. 이는 사회학적 면에 있어서 개인의 신분 규정과 집단의 확장까지 가능케 하므로 같은 토템을 가진 사람은 부족이 다르더라도 서로 친척 사이라고 여겨진다. 이러한 토템적 보편화는 부족의 경계를 뛰어넘어 최초의 국제사회적인 모습을 만들기도 했다.

레비스트로스에 의하면 토테미즘은 부족의 영토와 지리, 생물적 개별화에도 대응하며 신체 해부학적 면에도 투영될 수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아란다족에는 신들이 처음에는 손발도 없이 모두 하나로 합쳐져 있었는데, ‘망갈쿤제르쿤쟈신이 신들을 모두 떼어내어 하나하나의 형태로 만들어주었다는 신화가 있다. 또한 문명의 여러 기술과 육지의 네 집단과 물의 네 집단 2개의 집단으로 나뉘는 체계를 가르쳐주었고, 집단마다 영토를 갖게 했다는 신화가 있다. 각 씨족의 아이들이 토템의 변별적 특징을 나타내기 위해 독특한 머리 형태를 한다든지, 머리색이 옅은 아이는 토템 조상의 환생이라고 여기는 등 어린이의 신체적 차이도 토템적 양식으로 설명된다. 이처럼 무문자 사회에서 토테미즘은 논리 체계일 뿐만 아니라 씨족의 친족관계와 외혼제 등의 사회적 관계 및 선과 악, 질서와 혼란 같은 사회적, 도덕적 기초, 심리, 기질에까지 영향을 미치며 인간적 삶의 토태가 된다. 개인 및 집단의 궁극적 다양성으로 인해 기의(記意)될 수 없기 때문에 명명되는 개인명과 고유명사 또한 모두 토템 호칭에서 파생하며, 체계의 구성 부분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므로 토테미즘에서 독립된 자아나 개체, 주체란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토테미즘은 상호 간에 다른 여러 가지 분야를 도식 내에서 통합할 수 있기 때문에 여러 문화와 언어집단 사이의 관계가 통시적이고 공시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무문자 사회 사람들은 현대의 단선적 시간관에 비해 순환적이며 비시간적인 시간관을 갖는다. 그들에게 과거와 미래는 존재하지만, 서로를 반영한다는 점에서만 의미를 가지기 때문에 시간의 차원을 뛰어넘어 통시적으로 연결된다. 그들은 체험되는 체계로 현재를 살아간다. 만약 사회에 이주, 전쟁, 동맹 등의 커다란 변동이 발생해서 역사적 흐름을 배제하기 못하는 경우에, 역사를 내용 없는 형식으로 인정하며 사건과 구조 그 어느 쪽에도 기울지 않는 안전거리를 취하고 이를 통합할 수 있는 도식을 재구성하며 모순을 해결한다.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은 이러한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추링가churinga’의 도움을 받는다. 추링가는 양끝이 뾰족하거나 둥근 타원형의 돌이나 나무로 된 물체로 특정 조상의 육체를 나타내며, 대대로 조상의 환생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에게 부여된다. 추링가는 과거를 물적 존재로 현재화하여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일어난 사건의 화신으로, 무시간적 체계에 통시성의 빈곤화를 보충하기 위해 의미를 부여하는 장치다. 야생의 사고는 이처럼 형식의 유사성을 통해 역사를 분류체계에 끼워맞추는 것을 가능하게 해서 시공간을 끌어들이는 방식으로 통일된 체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

 

시각의 상호성

레비스트로스에 의하면 인류학자는 타 문화 사람들의 입장에 서서 그들의 의도를 사회 원리와 리듬 속에서 이해하며, 문화를 하나의 의미의 총체로 보는 민족지적 관점과 사려 깊은 태도가 필요하다. 토테미즘은 끊임없이 창발하는 우발적 조건과 상황에서도 분류하기를 그치지 않으며, 의미를 부여받은 모든 존재, 사물 혹은 특징들을 파괴할 수 없는 구성 요소로 파악해 분해하고 조립하며 구조적으로 재배치한다. 각자의 욕망과 필요에 따라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며 자리를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 모든 존재, 사물 혹은 특징들은 모두 우주의 질서 유지에 공헌하는 상보적 관계에 있기 때문에 성스럽다. 이는 각기 다른 영역에서 창발하는 정보를 계속 연결해 낼 수 있는 호모사피엔스의 인지 유동성과 살아 있는 것이라면 어느 하나도 배제시키지 않으려는 야생의 사고에서 기인한다.

레비스트로스에 의하면 우리는 신체적 거름망인 움벨트와 정신적 거름망이 사고체계를 통해 세상을 인식할 수 있다. 이때 사고는 창발하는 우연적 목표와 조건에 따라 구성된 사고체계에 따르기 때문에 편향적이며 주술적이다. 호모사피엔스라면 누구라도 이러한 구조화된 사고체계에 기초한 관점에 따라 세상을 파악한다는 점에서 절대적 옮음이란 존재할 수 없다. 야생의 사고는 이러한 우발적 필요와 우연적 조건에도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며 우연과 필연, 자연과 문화의 이분법을 넘어서서 사고하기 위한 포괄적 사고체계다. 이러한 야생의 사고는 분석적이면서 동시에 종합적이고자 하며 분류의 축을 중심으로 양방향의 극한까지 진행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그 양극 간의 조종 능력을 보유하려고 하는 목적의 광대함을 특이성으로 가진다. 그런데 이러한 야생의 사고는 그 범위가 한 집단의 영토보다 훨씬 넓게 미치며 극히 미세한 부분에 걸쳐 관여하기 때문에, 자연현상을 관찰하고 해석할 때 나타내는 원주민의 예리함을 이해하기 위한 특별한 감수성이 요구된다.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작거나 분명하게 표현되지 않는 자취에서 짐승이 지나간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 아메리카 인디언의 예리함은 우리에게도 존재한다. 우리가 자동차를 운전할 때 바퀴의 회전이나 엔진 속도의 변화, 상대 운전자의 눈빛을 통해 그 의도를 알아채고 추월하거나 상대방의 차를 피하는 등의 신속한 판단을 내리는 방법이 그것이다. 이러한 판단력은 지각이 예민해지고 잠재력이 연마되어 우리의 활용 수단과 위험을 무릅쓰고자 하는 용기가 증대했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런데 이러한 판단력은 다른 운전자와의 일련의 대화 가운데, 자기 의도와 같을 상대의 의도를 기호의 형태로 나타내게 되므로 불확정적이며 긴장성을 유발한다. 이는 아직 의미가 부여되지 않은, 아직 길들여지지 않은, 아직 현실화되지 않은 무수한 가능성들의 잠재태인 기호인 까닭에 긴장과 호기심이 촉발되며 서로의 이해와 해독이 요구된다. 연결하기란 이러한 긴장과 호기심으로부터 촉발되며 서로의 의도가 연관되어 있을거라고 여겨지는 순간들의 알아차림으로, 또 다른 행위를 유발한다.

인간과 세계가 서로 거울이 된다는 시각의 상호성”(321)은 어느 한쪽의 관점을 절대적으로 옳다고 여기지 않는 동시에 인간중심주의를 넘어서 또 다른 인간의 삶의 조건인 사물과 기계 문명의 세계에도 연결된다. 레비스트로스는 자연과 일련의 대화 중에 포착되는 이러한 시각의 상호성만이 야생의 사고의 속성과 능력을 가르쳐줄 수 있다고 말한다. 만물의 관계성 안에서 미묘하게 차이를 인식하고, 그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총체적인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려는 종합적 판단 기술인 토테미즘은 자연의 우발적 필요와 우연적 조건을 모두 고려해 필연성으로 의미화하며 새로운 관계를 창발한다. 우리는 시각의 상호성을 통해 상호적이고 비대립적인 만물의 다종의 얽힘을 알아차린다. 이러한 알아차림은 다시 세상과 어떻게 관계 맺고 살아야 할지를 숙고하게 되고, 이러한 숙고의 자세는 인식의 변화와 함께 다채로운 행위 양식으로 변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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