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인류학
[마음 인류학 에세이] 번역하다
번역하다
나는 <인문공간세종>의 영어 번역 코너에서 필리프 데스콜라의 『자연과 문화 너머』를 함께 번역하여 읽는 세미나를 담당했었다. 세미나 참여자들과 서문, 추천사를 포함해서 1장부터 3장의 앞부분까지 1년 10개월에 걸쳐 번역했다. 영어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일은 100여 쪽의 페이지를 무려 8번의 시즌에 걸쳐 세미나를 해야 할 만큼 오랜 시간이 걸렸고 힘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처음 세미나를 시작할 때는 6명이었는데 7번째 시즌부터는 3명만 함께 했다.
한 나라의 언어를 다른 나라의 언어로 바꾸는 번역은 영어 단어를 단순히 그 의미에 대응되는 한국말로 교체하는 일이 아니다. 문장의 내용은 그 문장을 구성하는 영어 단어가 뜻하는 바를 순서대로 결합해서 도출되지 않는다. Armchair anthropology는 안락의자 인류학으로 해석되지만, 안락의자의 역사적, 문화적 의미를 알아야 제대로 번역할 수 있다. 역사적인 의미를 이해하고 앞 문장과 단락에서 사용된 의미와 연관시키고 뒤의 나오는 내용을 통해 그 의미를 재확인해야 했다. 또한 영어 단어를 대체할 수 있는 한국어 단어의 선택에서도 의미들의 미묘한 차이를 감각해야 했다. 그렇게 구성된 번역문은 원문과 완벽하게 가깝다고 할 수 없는 제일 나은 선택들의 조합이었다.
『세계 끝의 버섯』에서 사쓰카 시호의 정의에 따르면 번역은 하나의 세계–만들기 프로젝트를 또 다른 세계–만들기 프로젝트에 끌어당기는 것이다(애나 로웬하웁트 칭, 『세계 끝의 버섯』, 노고운 옮김, 현실문화, 119쪽). 만들어 가는 과정 중에 있는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 가는 과정 중에 있는 또 다른 세계와 마주치게 하여 오염시키고 오염당하게 하는 것이 번역이다. 영어를 한국어로 바꾸는 언어적 번역에서 하나의 세계(영어)가 또 다른 세계(한국어)를 끌어당겨 둘 사이에 부분적인 조율이 일어난다. 조율과 오염이 번역의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난다면, 원작 또는 번역하고자 하는 대상과 100% 순도로 같게 번역되는 결과물은 없을 것이다. 번역이 원문의 의미를 동일하게 재현하는 일종의 복제품을 만드는 게 아니라면 번역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애나 칭의 『세계 끝의 버섯』을 통해 번역의 의미를 살펴보자.
표현을 재현하다
애나 칭은 어떤 프로젝트가 그 틀에 아무런 변화도 일으키지 않으면서 규모를 순조롭게 바꿀 수 있는 능력을 확장성(scalability)이라고 정의했다(같은 책, 81쪽). 상품이 만들어지고 그것이 화폐와 교환되는 방식이 자본주의의 틀이라 할 수 있다. 그 틀은 상품의 종류와 규모만 다를 뿐 전 세계 어디서나 통용되고 반복된다.
언어적 번역은 원문 그대로의 문장 구조에 따라 개별 단어의 표현을 그것에 대응하는 도착어(倒着語)로 바꾸는 일이다. 도착어로 바꿀 때 표현뿐 아니라 의미와 맥락을 옮겨야 한다. 언어는 역사적인 산물로 사회와 문화를 아우른 하나의 고유한 사고 체계이기 때문이다. 확장하는 방식의 언어적 번역은 원문의 텍스트를 어떤 도착어이든 상관없이 개별 단어의 뜻을 기준으로 가장 유사한 의미의 도착어로 교체하는 방식이지 않을까. 구*과 같은 온라인 번역기를 사용할 때 이런 번역을 보게 된다. 기본적인 문법 규칙을 고려하여 개별 단어와 구문을 도착어로 바꾼다. 최근 인공신경망 기반 번역기의 경우는 단어가 아닌 단락을 기준으로 문장의 맥락과 의미에 초점을 두고 번역하여 이전 버전보다 나아졌지만, 여전히 의미 전달이 어색하다.
확장적 번역은 출발어 중심으로 원문의 의미를 재현한다. 어떤 언어로 번역되든 도착어 고유의 문장 구성 방식이나 표현법 등이 고려되지 않은 채 출발어 중심으로 변환되어서 획일적이다. 원문이 출발어와 다른 토양에 옮겨졌으나 원문의 모습은 확정된 채 변하지 않는다. 플랜테이션 농장의 모습이 상상된다. 원작이 마치 풍경에서 홀로 자생했다는 듯이 옮겨진 토양이 어디든 단종화된 식물처럼 자라난다(같은 책, 397쪽 참고).
의미를 재현하다
글은 독자를 염두에 두어 쓴다는 점에서 일종의 대화이다. 대화할 때 우리는 화자가 사용하는 단어 하나하나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단어로 구성된 문장의 뜻과 여러 문장으로 구성된 의미 단위인 텍스트 전체를 이해하려 한다. 대화처럼 글의 번역에서 고려되어야 할 것은 텍스트의 의미가 다른 언어에서도 통하는가이다. 그런데 도착어 중심으로 도착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원문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번역이 잘된 번역일까?
1995년 개봉한 브래드 피트 주연 ‘가을의 전설‘ 영화의 원제는 ‘Legends of the Fall’이다. ‘Fall’은 작품 내 의미로 ‘하강, 몰락, 추락’을 의미하는데, 번역자는 ‘Fall’을 가을로 번역했다.
‘가을’로의 번역은 전쟁과 더불어 한 집안이 몰락하는 쓸쓸하고 처연한 분위기를 광활한 대자연의 계절을 배경 삼아 잘 묘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나무 위키, <가을의 전설> 참고).
원저자의 의도와는 다른 번역이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잘 살리고 작가의 메시지가 효과적으로 독자에게 전달되게 할 수도 있다. 표현적으로는 오역이지만, 작자가 작품을 통해 말하려고 했던 바가 잘 통하고, 작가가 느끼는 감정을 독자가 경험하게 한다는 점에서 잘못된 번역이라 할 수 없다. 표현은 오염되었지만, 의미는 오염되지 않았다.
번역자는 원문을 원어로 된 텍스트로 분석하여 이해하고 이것을 역어의 사고 체계의 구조로 변경하는 과정을 거친다. 단순한 기호의 전환이 아니고 변환된 인식 체계 내에서 텍스트를 재구성한다. 하나의 사고 체계를 해체하고 분해하여 다른 사고 체계로 재조립하므로 원래 모습을 재현하기는 불가능하다. 원작이 전달하려는 의미를 도착어의 세계에서 동일하게 구현하기도 어렵다. 원문의 표현을 오염시키든 의미를 오염시키든, 번역은 확정된 배치를 교란하여 불확정한 상태로 만든다. 불확정의 상태에서 잘된 번역과 잘못된 번역을 판단하기 어렵다.
자유를 수행하다
애나 칭에 따르면 원래의 맥락에서 뽑혀 나와 다른 맥락으로 재배치되는 것이 번역이다. 우리는 번역이라 할 때 언어적 번역을 주로 이야기하는데, 애나 칭은 이 책에서 버섯으로 번역을 설명한다. 송이버섯은 산업용 벌목으로 인해 폐허가 된 오리건주 숲에서 채집되어 구매인에게 팔린 후 상품으로 공급사슬에 재배치되고 일본에서 고가로 판매된다. 채집인의 숲에 대한 토착 지식과 전쟁 경험, 고국에서의 삶의 이야기와 마주친 송이버섯은 숲에서 뽑혀 나와 ‘상품사슬’(같은 책, 121쪽)로 재배치되면서 비자본주의적 가치에서 자본주의적 상품으로 번역된다.
송이버섯이 자라난 배치인 숲에서 뽑혀 나와 자본주의 세계로 번역될 때 연결이 이루어지는 구성요소인 채집인, 구매인, 그리고 현장 중개인은 버섯을 어떻게 번역했을까? 여러 인종의 채집인에게 버섯을 따는 행위는 ‘자유’라는 가치의 실현이었다. ‘자유’는 채집인마다 달랐다. 미엔인에게 버섯 채집은 도시 아파트 생활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 있는 고향 마을에서의 삶을 경험하게 하는 ‘자유’이다. 크메르계 채집인에게는 갱단의 폭력을 피해 성장할 수 있는 ‘자유’이다. 백인 베트남전쟁 참전용사에게 버섯은 전쟁의 기억을 자극해 제어할 수 없는 공황 발작을 일으키는 군중으로부터 벗어나는 ‘자유’를 제공한다. 그들에게 버섯 채집은 자본주의 체계 내에 있지만, 자본주의 바깥으로 이탈할 수 있게 하는 ‘자유’이다.
채집인의 송이버섯은 ‘오픈티켓’을 통해 판매된다. 오픈티켓은 채집인이 버섯을 판매하는 그 날 거래된 최고의 가격으로 버섯의 가격을 받는 방식을 말한다. 오픈티켓은 채집인과 구매인 모두의 자유 만들기와 자유 확인하기를 하나의 공연처럼 실천하는 장소이다. 버섯 가격은 버섯의 상품성도 있지만 다른 구매인과의 경쟁으로 정해진다. 최고의 버섯을 얻기 위해 상대방을 실수하도록 만드는 온갖 종류의 속임수가 벌어진다. 경쟁자로 하여금 가격을 너무 높게 올리게 하고 너무 많은 버섯을 구매해서 며칠간 문을 닫게 하기도 하고, 가격이 급등하면 구매인은 채집인을 보내 자신의 버섯을 다른 구매인에게 팔도록 시키기도 한다.
애나 칭은 이 모든 것이 ‘무례한 웃음소리’와 ‘거짓말쟁이라고 다그치는 소리’가 배경 음악으로 깔리는 경쟁이라는 공연에서 행해지는 연기이고 중요한 점은 드라마라고 말한다(같은 책, 153~154쪽). 오픈마켓에서 버섯과 돈이 거래되지만 정말 중요하게 교환되는 것은 자유이다. “예의범절, 노동, 재산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면서 마음에 드는 곳이라면 찾아갈 수 있는 자유, 채집인은 자신의 버섯을 어느 구매인에게나 가져갈 수 있고 구매인은 그 버섯을 어느 현장 중개인에게나 가져갈 수 있는 자유, 다른 구매인을 폐업하게 만들 수 있는 자유, 갑자기 떼돈을 벌거나 모든 것을 잃을 자유”(같은 책, 156쪽) 말이다, 참여자 모두가 ‘송이버섯’으로부터 번역한 각자의 ‘자유’를 실천하고 즐기고 기념하며 공연에 참여한다. 자유는 확정적으로 어디에 있는 게 아니라 번역하며 실천하는 행위 속에 감각적으로 확인된다.
오염시키며 조율하다
우리의 『자연과 문화 너머』 번역물은 아마도 오역이 그득한 엉망진창 그 자체일 것이다. 우리는 번역을 하는 과정에서 “이게 맞나? 잘 모르겠다.”를 연신 내뱉으며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한 세미나 시즌에는 고만고만한 영어 실력을 갖춘 우리와 다르게 출중한 영어 실력과 책에 나오는 철학사와 문화에 대해 남다른 지식을 갖춘 선생님이 합류하셨다. 우리는 그분을 스승처럼 생각하고 그분의 번역을 정답처럼 여겼다. 시즌이 끝나고 그분이 떠나자 우리는 다시 혼돈에 빠진 것 같았다. 정답지가 없는 상태에서 무언가를 만들어 가는 상황은 더디고 답답했다.
애나 칭은 “모임은 그 부분들의 합보다 더 큰 ‘사건’”(같은 책, 63쪽)으로 만드는 것은 오염이라고 한다. 패치들의 얽힘이 부분들의 합 이상이 됨은 다른 존재들과의 마주침에서 “의도치 않은 조율”(같은 책, 57쪽) 때문이다. ‘오픈티켓’에서 웃음과 다그치는 소리가 나는 사건이 생동감 넘치게 벌어지며 예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모임을 변형시킨다. 규정하기는 어렵지만 우연한 마주침으로 인해 배치의 패치들은 오염되고 조율된다.
데스콜라의 『자연과 문화 너머』는 우리의 번역과 마주치면서 오염되었다. 세미나에서 한 문장을 번역할 때, 대체할만한 한국어 단어의 선택에서 우리 각자는 다른 단어를 떠올렸다. 서로가 배치된 패치가 다르기에 각자의 이야기를 했지만, 책을 공통분모로 삼아 함께 협력했다. “잠재적인 분쟁과 오해로 가득 찬 불확실성”을 견디며 우리만의 오염된 배치를 생성했다. 그렇게 우리는 “불확정성의 공포 속에서도 아직 즐거움이 있음을 알게”(같은 쪽, 22쪽)하는 삶들을 발견하기 위해 번역이라는 행위를 실천했다.
번역으로 선물하다
자본주의의 상품으로 번역된 송이버섯은 일본에 와서 다시 선물로 번역된다. 일본에서 송이버섯은 주로 선물용으로 쓰인다. 말리노프스프키의 『서태평양의 항해자』들에 나오는 쿨라 교역에서 선물로 사용되는 조개 목걸이와 귀걸이는 화폐와 같은 일반적인 교환의 매개체도 아니고 자체적으로 흥미로운 특성을 지닌 것도 아니기에 특별히 유용한 물건은 아니다. 이 장신구는 오로지 쿨라에서 바이구아(귀중품)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가치가 있고 선물로서 관계와 명성을 만든다(같은 책, 226쪽). 송이버섯도 선물로서 관계와 명성을 만들기에 선물을 주는 사람의 연장이다(같은 책, 229쪽).
나는 책을 『세상 끝의 버섯』의 송이버섯에 비유하고 싶다. 책은 작가가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을 만큼 좋거나 도움이 될 만하다고 생각한 이야기를 엮어서 만든다. 책이라는 형식으로 조율된 이야기는 상품이 되어 가격이 매겨지고 중계 플랫폼에서 판매된다. 작가에게 책은 삶의 무수하고 다종한 마주침에서 창발된 기쁨, 슬픔, 고통과 같은 정서, ‘아하’하는 순간의 깨달음, 산책과 대화의 일시적 얽힘이다. 일시적 얽힘이 작가에게 뜯겨져 나와 책으로 번역된다. 독자는 그것을 구매하고 읽으며 또 다른 세계–만들기를 한다.
책이 원래 쓰인 언어와 다른 언어로 번역되면서 책은 선물이 된다. 책이 독자를 위해 써진 것이듯 번역 또한 혼자 읽기 위함이 아니다. 도착어를 사용하는 사람들과 함께 읽기 위해서 책은 번역된다. 번역가는 원저자와 번역된 책을 읽을 독자를 모두 생각하며 그 두 세계를 연결하고 독자와 관계를 만든다.
함께 번역하기는 서로에게 선물을 주는 행위이다. 번역의 결과물을 <인문공간세종> 홈페이지에 올리면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선물하기를 실천한다. 여러 해석이 가능하고 많은 시작이 잠복되어 있는 번역을 나에게, 서로에게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선물함으로써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기를 기대한다. 우리는 우리만의 번역을 계속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