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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인류학


 

[나의 순례기 쓰기] 글바다(1) – 내 안의 신성과 소통하기

작성자
윤정임
작성일
2025-02-20 18:01
조회
36

수요종교인류학 글바다(‘내 안의 신을 찾아서순례기 쓰기)

 

내 안의 신성과 소통하는 법 음악성의 회복일까?

2025.2.20.

신을 찾기 위해서 신이 뭔지 알아야 한다. 하지만 뭔지 모르겠다. 모르는 채로 찾는 것이 순례기인 걸까? 마지막에 도달할 곳이 어딘지 모르지만 일단 출발부터 한다. 신성을 영성과 같은 차원에서 쓰기로 한다. 영성은 무엇일까? 일단 물질적이지 않은 느낌이다. 물질을 초월한 세계, 자기도 초월한 세계, 그리하여 모든 천지만물과 연결감을 느끼고 소통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라 일단 이해한다. 다시 말해 에고의 개별성에서 벗어나 보편적인 존재로 상승하는 것이다.

저명한 종족음악학자 브루노 네틀은 음악을 언어영역 밖에 존재하는 인간의 소리의사소통이라 정의한다.”(노래하는 네안데르탈인, 스티븐 미슨, 뿌리와 이파리, 27) 언어영역 밖에서 의사소통하는 방법을 잊은지 오래인 느낌적인 느낌이 든다. 근래에 친구와 싸우면서 왜 싫은지 설명해 줘라는 내 요청에 친구는 몰라라고 답했다. 나는 말로 설명하고 그것을 이해하며 조율하는 것을 소통이라 생각했다. 사실 친구의 몸짓과 표정과 억양에서 부정적인 메시지가 충분했지만 그것이 언어로 지시되지 않으면 해석하지 못하는 것인가? ‘인간이 주고받는 의사소통의 65퍼센트는 말보다는 몸을 통해서 일어난다.’고 한다.(같은책, 224) 그런데 우리는 몸짓 언어를 해석하는 능력을 잃어버렸다. 그렇다면 언어로 하는 의사소통은 충분히 소통되는 걸까? 저마다 사용하는 언어의 개념과 감정과 맥락이 다르고 그것을 상대가 다 알 수 없기에 우리의 소통은 항상 어딘가 어긋나는 듯하다스티븐 미슨은 음악은 아무것도 지시하지 않는 의사소통체계다.”(같은책, ?)라 한다. 그럼 음악으로 하는 의사소통은 언어를 사용한 지시하는 의사소통의 어긋남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일까? 어떻게?


잠자고 있는 소통능력을 깨우는 법

초기인류들은 어떻게 의사소통을 했을까? 저자는 ‘Hmmmmm’이라는 의사소통체계를 제시한다. ‘전일적이고 다중적이고 조작적이고 음악적일 뿐 아니라, 미메시스적인 체계 중에 전일성과 음악성에 주목한다. 전일성을 회복하고 음악성을 회복한다면 조금은 영성에 가까워질 것 같다. 나는 왜 회복이라는 말을 쓰는 것일까? ‘회복이라는 단어는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초기 인류들이 사용했던 것이라면 나의 몸 어딘가에도 남아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잠자고 있는 것을 깨운다라는 표현으로 바꾸어본다.

 

=>초기 인류 사회에서 음성그루밍으로 함께 노래를 부르며 결속감을 다지고 털고르기를 받을 때와 똑같이 만족감과 기쁨을 느끼게 할 수 있다는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음악을 잘 즐기지 않고, 음악에 동반되는 몸의 동조현상에 무딘 느낌이다. 그것이 소통하지 못함과 연결되는 것 같다. 내 안의 신성을 찾는 것은 음악성을 깨우는 것이 관건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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