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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인류학


 

수요종교인류학 글바다(4) 텅 빈 공간, 가득 찬 공간

작성자
coolyule
작성일
2025-03-13 17:58
조회
29

수요종교인류학 글바다(‘내 안의 신을 찾아서’ 순례기 쓰기) 2025-3-13 김유리

 

 

텅 빈 공간, 가득 찬 공간

 

 

주제문 : 신성한 장소의 토폴로지가 있다.

취지 : 초월적 존재들과의 접촉이 일어나는 장소를 찾아본다.

 

두 종류의 초월자

초월이란 뛰어 넘는다는 뜻이다. 초월자는 인간의 영역을 뛰어 넘은 자를 의미한다. 그런 존재들은 초감각적이고 초자연적이어서 인간의 능력으로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존재다. 그런데 그런 초월자적 존재들은 어디에 있는가?

초월자적 존재들은 삼라만상에 깃들어 있다. 그렇지만, 만물에 깃든 ‘영력’을 인간이 어떻게 알아볼 수가 있단 말인가? 인류에게는 기운을 감지하는 영 능력이 있는 것 같기는 하다. 그렇지 않다면 대체 어떻게 조짐을 감지하고 직관을 사용할 수 있겠는가?

감지된 영력을 표현하는 방식은 엄청나게 다양할 것이다. 정령들, 요괴들, 유령, 토착신들, 요정, 괴물 등등. 나카자와 신이치는 일본에서 사용되는 神이라는 한자어의 심층에는 고유의 신들이 왕성한 생명력을 유지한 채 살아 있다고 한다.(『신의 발명』, 18쪽) 자연 현상과 결합된 구체적인 이미지를 가진 정령들에서부터 신사에 모셔진 좀 더 다듬어진 형태의 신들까지 다신적이고 만신적인 신들의 세계를 이루고 있다.

신이라는 한자어 심층에 살아 있는 여러 신들을 크리스트교를 통해 전해진 유일신과 구분하여 스피리트라고 부른다. 유일신도 원래 스피리트의 세계에 속해 있었으나 이탈해 나갔다. 일신교의 신은 인간과 모든 신들을 초월한다고 간주된다. 유일신은 세계를 창조하고 질서를 부여하며, 고도의 추상성을 가진다.

일신교의 신은 신들의 세계의 ‘왕’이 되었다. 왕과 국가의 발생이 인류의 사회에 불가역적인 변화를 초래했듯이, 일신교적인 사고법은 다신교적 사고법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회, 경제, 과학의 시스템을 만들어간다. 나카자와 신이치는 스피리트적 사고를 통해 현대 세계의 위기의 본질을 이해하는 “독자적인 삶과 사고방식”을 키워가고 싶어 한다.

 

스피리트들의 장소


스피리트는 인간이 거주하는 세계로부터 완전히 초월적인 곳으로 이탈해가지 않았다. 그렇다면 스피리트가 사는 공간은 어디일까? 일신교의 신에 비해 ‘덜 초월적인’ 장소에 거주한다고 함은 무슨 의미인가?

스피리트와 인간의 접촉은 단속적이다. 스피리트들은 모습을 감추기도 하고 드러내기도 한다. 인간의 입장에서 볼 때 스피리트는 느닷없이 나타나고, 부스럭거리는 기척을 내고, 근처에 머물다가 무엇에 마음이 상했는지 홀연히 떠나버리기도 한다. 만화, 애니메이션, 민속학 기록, 인류학 민속지 등에서 그들을 볼 수 있다. 스피리트들은 희한한 형태로 크고 작고 짧고 길고 이상하고 위대하다. 그들은 우글우글하고, 어디에나 있지만, 막상 보려고 하면 찾아지지 않는다. 이들이 있는 곳을 표현하는 여러 장소들을 열거해보고 위상 공간을 뽑아보자.

스피리트들은 하늘 높은 어딘가에 존재하는 유일신과 다르게, 어두컴컴하고 밀폐된 구멍 같은 데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동굴, 사당, 바위 틈새, 숲속 나무 구멍, 장지문으로 닫아 둔 빈 방, 어두운 복도 같은 곳이다. 일본이 아닌, 아마존 삼림지대 투카노 인디언들의 스피리트는 강 바닥, 급류 속, 동굴, 바위 틈이나 뒤에 있다. 그런데 그 안에는 의외로 밝고 널따란 공터가 있다. 빽빽한 숲속 깊은 곳에 숨어 있는 깨끗한 장소는, 자궁을 연상시키는 스피리트들의 집이다.

스피리트들의 집은 현실 세계에서는 들여다 보이지 않지만, 그들은 현실 세계로 드나드는 문을 잘 알고 있는 것 같고 수시로 드나든다. 하지만 인간 쪽에서는 접촉면조차도 쉽게 찾을 수 없다. 그 영역에 함부로 발을 들이는 것 자체가 매우 위험한 일로 여겨진다.

정리하면, 자연 세계에서 스피리트가 거주하는 공간은 (1) 사람이 드나들지 못하는 막힌 공간이다. (2) 안이 텅 빈 공간이다. (3) 스피리트의 세계와 사람의 세계 사이에 경계 막 같은 것이 있어서 그 막을 통해 스피리트들이 양쪽 세계를 오간다. 덧붙여 (4) 가치 있는 것의 발생지이다(26쪽).

(1)막힌 공간은 인적이 드문 곳, 외딴 곳, 오래된 곳, 어두운 곳, 빈 곳, 산이나 숲속으로 표현된다. 어둡다는 점에서 밤, 멀다는 점에서 밤하늘, 그곳에 흐르는 은하, 그리고 큰 강의 바닥이 되기도 한다. (2)안이 텅 빈 공간이란, 알이나 누에고치 같은 것이다. 텅 빈 상태는 주인이 자리를 비운 방, 밝고 깨끗한 공터 등으로 표현된다. 나카자와 신이치는 이를 “인간의 사고나 의지나 욕망으로 가득 찬 ‘현실’ 세계에서 멀리 떨어”진 공간이라고 표현한다(26쪽). 텅 빈 것과 가득 찬 것이 대비될 때, 그 장소를 채우는 내용물이 사고, 의지, 욕망이라는 것은 성과 속의 대비다.

(4)이 장소가 가치 있는 것이 발생지이므로, 여기서 밖으로 나온 “스피리트의 힘이 ‘현실’ 세계와 접촉할 때, 물질적인 부나 행복의 ‘증식’이 일어”난다. 현실 세계 속 부나 행복은 고갈된다. 하지만 스피리트의 힘과의 접촉으로 신비로운 ‘증식’이 일어난다. 이것은 인간 쪽에서 의지와 욕망으로 가득 찬 채로는 아무리 인적 없는 곳을 헤매보아도 스피리트에게서 받아올 수 없는 종류의 부이다. (3) 그러면 위험해진다. 그러므로 그러한 진입과 교섭이 가능한 것은 현실 세계의 의지와 욕망을 다 비울 수 있으며, 스피리트의 장소에 박학한 샤먼만이 가능한 것이다.



“마음의 밑바닥”(28), “‘아래로 향한’ 초월”(55)

지금까지 자연 세계에서 스피리트와 접촉하는 장소에 대한 표상들을 보았다. 그렇다면 인간 내부에서 스피리트는 어떻게 출현하는가? 명상이나 환각으로 크게 발생하는 “내부 시각”에서 빛의 형태로 출현한다. 그들이 거주하는 곳은, 인간 내부의 자연인 ‘마음의 밑바닥’이다. 마음의 밑바닥이란, “유동적인 심적 에너지의 심층부”라고도 하고 “물질적인 기본과정”이라고도 한다(53). 이곳으로부터 다양한 빛의 형태가 잇달아 출현하는 과정이 끊임없이 반복된다. 이러한 빛의 패턴들을 체험할 때, 대체 이 현상이 무엇인지, 왜 일어나는지 알 수 없다. 마음인지 물질인지도 온전히 알기 어려운 초월적인 체험이다. 이러한 기본 과정으로부터 마음의 모든 활동이 구성된다고 하지만, 마음이 활동을 일으키기 이전 상황에 해당하므로 마음 ‘외부’와의 접촉이기도 하다고 한다. 이 초월적 체험을 설명하는 원리로서 스피리트와의 접촉이라는 설명으로 우리는 다시 돌아온다.

내부 시각을 통해 초월적 체험을 하고 ‘돌아와’ 그것에 대한 해석을 부여하려고 해온 인류의 근원적인 사고의 흐름이 바로 세계에 의미를 가져오는 행위였다. 스피리트와의 접촉으로 세계에 의미가 도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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