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인류학
[기말에세이] 초월 탐사선의 히치하이커가 되어
종교인류학 1학기 순례기 “내 안의 신을 찾아서” 2025년 4월 8일 김유리
초월 탐사선의 히치하이커가 되어
종교인류학 세미나 1학기를 순례 여행하고 돌아와 보고한다. 이번 여행의 주제는 “초월성” 탐구였다. 1학기 구간 동승자는 여덟 명이었고 달님이 가이드였다. 첫 달엔 스티븐 미슨 호를 타고 언어 이전의 세계에 다녀왔다. 두 번째 달엔 나카자와 신이치 호를 타고 국가와 종교가 생기기 전으로 다녀왔다. 굵직한 개념들의 정거장을 거치며 많은 것들을 보고 들었다. 별처럼 많고 반짝이는 것들이 다시 멀어지는 기분이 든다.
배운 것을 한 마디로 말하면 본래부터 있던 것들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노래하는 네안데르탈인』을 읽으면서 말을 사용하지 않았던 때의 의사소통 도구가 여전히 쓰인다는 것을 알게 됐다. “Hmmmmm”(미슨이 창안한 약어이지만 그 자체로 음성 표현이기도 함)하고 소리내어 소통하는 방식으로부터 말뿐 아니라 노래와 악기가 진화하기도 했다. 보다 음악적이었던 과거의 소통 방식은 말을 사용하면서 생겨난 분리감을 메우고 전일함을 회복하는 능력을 지금도 잃지 않고 있다. 또한, 『신의 발명』을 읽어 보니 종교가 힘을 잃은 현대에도 현생 인류의 뇌 구조는 여전히 그 내부에 초월의 영역으로 통하는 통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성의 국경선이라고 할 만한 곳에 도달해 그 너머와 접촉할 때 인간의 뇌는 흥분 상태에서 이해되지 않는 형상들을 수없이, 그리고 다양하게 출현시킨다고 한다.
책의 종장에서 두 저자가 남긴 메시지는 스타일만 다를 뿐 동일한 것이었다. 스티븐 미슨은 그저 “노래합시다”라고 하며 여행을 마무리하고, 나카자와 신이치는 “형이상학적 혁명”을 일으키자고 말한다. 현대인에게 남아 있는 현생 인류의 유산인 노래와 영성을 옹호하고 사용하자고 하는 것이다(영성의 옹호에 대해서, 『신의 발명』, 14쪽). 노래와 영성을 사용한다는 것은 언어를 사용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 단순하게 표현해 본다면, 내가 그것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나를 맡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나를 넘어선 것과 접촉하면 처음 가보는 길이 생겨나는 것 같다.
나는 “초월” 개념이 계속 어려웠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런 어려운 것에 대해 이야기했던 나카자와 신이치는 영적 차원이 물질적 차원과 닿을 때 그 접촉면에서 무리지어 연달아 발생하는 형태들에 대해 알려 준다. 북미 인디언들이 말하는 “위대한 영”이 대륙의 초원을 마치 바람처럼 훑으며 지나갈 때, 그곳으로부터 수없이 많은, 그러나 전부 다른 형태들이 “스피리트들”로 출현한다. 스피리트란 어떠한 고정된 형태도 갖지 않는, 형태 형성 이전의 에너지 같은 것이지만, 세계와 접촉하는 순간 자기 표현 양식을 채택한다. 영들이 탄소질 껍질을 걸치면 각종 곤충들이 되고, 관념의 형식을 취하면 낯선 이미지들로 표현된다. 영적 차원과 물질 차원이 닿는 곳에 열리는 마음의 한 갈피에서 이제까지 없던 상상, 환상, 아이디어, 영감이 쏟아져 나오는데 이것은 모두 스피리트들이다. 현생 인류의 뇌는 스피리트를 원형으로 한 신을 발명하고 종교를 만들었다.
현대인에게 스피리트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현대 종교는 초월과 통하는 문을 지키는 역할을 상실했다. 초월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영들이 드나드는 좁은 문을 성역처럼 잘 관리하는 것이 종교의 본연의 기능이었다. 그러나 지금 나에게 ‘은총’으로 ‘충만’하고 날마다 ‘기적’이 일어나는 세계란 동화 속 이야기로만 여겨진다. 그렇다면 현실 세계는 어떤 모습인가? 우리가 사는 곳은 상품 세계다. 그런데 놀랍게도 저자는 상품이란 스피리트가 물질화한 것이라고 말한다. 경제 영역에 들어온 스피리트의 원리는 다음과 같이 작동한다. 이 세상에 두루 존재하며 벽을 뛰어넘어 구석구석 힘을 미치는 화폐 가치가 스치는 자락마다 많고 다양한 스피리트들이 생겨나 상품들로 물질화한다. 그렇다면, 상품 세계의 구성원은 물질이 된 망령을 먹고 입고 마시며, 자본주의라는 유령에 떨며, 화폐라는 단일 가치를 유일신으로 숭배하고 있는 셈이 아닌가? 신의 죽음 이후 자본주의적으로 부활한 스피리트에 대한 나카자와 신이치의 설명이다.
그런데 저자는 상품이란 스피리트와 다르게 사람의 영혼을 멀리 데리고 가는 능력이 없다고 덧붙인다. 상품은 화폐 가치의 바깥으로 우리들의 사고를 열어 주지 못한다. ‘초월’하는 스피리트적인 사고는 마음의 원리이므로 종교나 신에 국한된 것이 아닐 것이다. 나카자와 신이치는 종교를 억압하는 과학의 내부에서 스피리트적 사고가 낯선 과학의 형태로 생겨나올 것이며 그것이 초월과 접촉하는 통로가 될 것이라고 말하려는 것 같았다.
여행을 마치며 기념품을 하나 간직하고 싶다. 이번 순례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이미지로 조몬 시대의 토기를 꼽고 싶다. 개구리 등을 가르고 신생아의 얼굴이 출현하는 순간을 포착한 형상이다. 저자는 이것을 삶과 죽음이 구분되지 않는 영역에서 에너지가 솟아나와 새 생명을 낳는 장면이라고 해석한다. 분리된 두 세계 사이를 연결하는 통로가 열릴 때 벌어지는 일은 대칭성의 회복이다. 이 토기는 “스피리트와 함께 하는 고대”(113쪽) 사회에서 대칭성 개념을 담아 보낸 편지 같은 것이다. 그러고 보니 책이라는 상품도 꼭 조몬 개구리 토기와 닮았다. 상품의 등을 가르고 아직 상품이 생기기 전에 있었던 사고로 통하는 길을 열어 보이니 말이다. 이것으로 보고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