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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인류학


 

[신의 발명] 에세이 – 대칭성 회복을 위한 한 수

작성자
이성근
작성일
2025-04-08 18:10
조회
24

대칭성 회복을 위한 한 수()

 

아침부터 퀘퀘한 냄새가 바람을 타고 코를 간지럽힌다. 처음에 필리핀에 왔을 때는 단순히 자동차와 공장 매연 냄새 인줄 알았다. 그러나 현지인에게 들어보니, 쥐가 썩는 냄새라 한다. 날씨가 더워 4모작이 가능해서 음식과 과일, 동식물 등 온갖 만물이 빠르게 자란다. 개미와 바퀴벌레, 도마뱀 등을 쉽게 볼 수 있고, 빠르게 만물이 확장되는 만큼 동식물이 썩어가는 부패의 현장 또한 낱낱이 드러난다. 죽음과 삶이 연결되어 있음을 새삼 느낀다.

쌀의 놀라운 증식력은 아시아의 인구를 폭발적으로 늘리는데 일조했고, 필리핀도 세계 13위의 인구 대국이다. 하지만 빈곤층 2500만 인구가 월 7만 원 이하로 힘겨운 생존을 하고 있다.(2023년 필리핀 통계청) 무려 25% 인구가 먹고사는데 허덕이는데 쓰레기 처리에 돈을 어찌 쓴단 말인가. 필리핀은 해양 플라스틱 폐기물 배출에서 압도적인 세계1위 국가이다. 중국의 5, 인도의 3배가 넘는 수치이다.

우리 인간이 잘 먹고 잘 싸야 몸의 대칭이 잘 유지되는 것처럼, 지구 또한 그러하다. 80억의 인구가 배출하는 탄소와 쓰레기는 잘 순환돼서 인간의 이로움에 일조해야하지만, 지구 온도는 이미 심각하게 상승 중이고 환경문제도 상당히 대칭성을 상실했다.

 

대칭성 왜 무너졌나

책을 읽는 내내 내 마음을 가렵게 한 화두가 있었다. 자발적 대칭성이 깨지는 이유가 그것이다. 읽으면 읽을수록 박박 긁어서 알고 싶은 욕구가 치밀어 올랐다. 대칭성이 높다는 의미는 스피리트 세계 내부에서 스피리트와 그레이트 스피리트가 자유롭게 왔다 갔다가 하면서, 자유자재로 변용이 가능한 상태를 말한다. 그래서 고정할 수 없고, 스피리트들은 위치나 성질을 변화시켜 변신을 자유롭게 한다. 이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 자연스러운 사고가 가능케 하고 모든 우주 만물이 연결되어 있음을 자각하게 한다. 더욱더 큰 그림으로 이 세상을 이해하고,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공존의 삶을 모색할 수 있는 것이다.

근데 자발적 대칭성이 깨졌다. 도대체 왜? ‘자발적이라는 뜻은 스스로 알아서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스스로 알아서 대칭을 이루고 있던 세계가 무너진 것이다. 물리학에선 어떤 압력이 가해졌을 때, 고차원 대칭을 이루던 구가, 저차원 대칭을 이루는 원으로 바뀐다고 한다. 저자는 우리의 마음에서 커다란 대이변이 일어났다고 한다.

예로부터 모든 힘의 원천은 자연에 있었다. 그 원천에 접근할 수 있는 샤먼이나 전사들은 위험하다고 여겨졌고, 사회 중심에서 소외당했다. 그런데 샤먼처럼 특출한 능력을 갖춘 인물이 자신이 권력자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 모든 힘의 원천과 접촉할 수 있는 능력으로 왕이 되고자 한 것이다. 그래서 자연은 점점 인간을 위한 착취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여기서 사면과 전사들은 왜 마음을 바꿨을까? 사유재산과 선남선녀를 독식하며, 자신의 욕망만을 추구하면 자연과 불균형을 가져오고, 이것이 결국 자신을 불행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몰랐을까.

 

우주는 대칭성 회복을 간절히 원한다.

동양의 모든 사상의 근본인 음양오행에서는 양이 다하면 음이 온다고 한다. 봄과 여름에서 만물이 태동하고 성장하면, 반드시 가을과 겨울의 수렴하는 기운을 맞게 된다. 음과 양이 그 기운이 절정을 다해 극에 이르면, 그 기운이 바뀌는 것이다. 그것이 조화이고 균형이다. 뫼비우스 띠도 앞면을 양, 뒷면을 음이라고 보면 이치가 동양의 음양 사상과 잘 어울린다. 뫼비우스의 보이는 앞면이 극을 다하면, 안 보이는 뒷면으로 자연히 이어진다. 삶이 다하면 죽음으로 이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근데 그 뫼비우스의 띠가 절단되었다. 안팎의 경계가 철저히 나뉘었고, 서로 자유롭게 연결되기 힘든 구조가 되었다. 그래서 지고신이 생겼고, 변하지 않는 순수한 빛으로서 인간 삶에 군림하여 기준이 생겼다. 이러한 기준이 너무나 견고하고 변하지 않으면, 우리는 답답하다. 마치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두 각자의 창조성을 가지고 태어난 80억 인구가 오직 돈과 권력으로 인생을 평가받는 느낌이다. 후진국은 아직도 먹고살기 힘들어 발버둥 치며 괴로워하고 있고, 선진국은 지나친 물질의 풍요 속에 정신적 공허함을 느끼며 뭔가 색다른 길을 모색하고 있다. 국가 간, 인종 간의 대칭성이 무너진 것이다. 인류의 진정한 증식을 위한 교류가 사라지고, 자국 이기주의가 판친다.

그럴수록 대칭성을 회복하는 노력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래서 오히려 지고신에 가려서 God에 눌려서 찌그러진 내방신과 요괴로 전락한 잔여 스피리트가 더더욱 약동한다. 그 중의 좋은 예가 대칭성을 회복하려는 예술이다. 현대 환경문제를 풍자하는 각종 그림, 극단적인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힙합, 기존의 인간 본위의 과학을 뒤엎는 불교와 양자역학의 결합 등등

 

바둑으로 대칭성 춤을 춥시다

그중 나의 대안은 바둑 수련이다. 바둑은 음으로 지킬지, 양으로 움직일지 매 수의 선택을 통해 자신의 창조적인 생각을 펼치는 인생 드라마이다. 그러면서 점점 상대의 변화에 리듬을 맞춰 대응해야 하는 3중주 하모니와 같다. 음양중, 천지인, 내땅과 상대땅과 경계. 여기서 경계는 사피엔스의 야생적 사고가 창조되는 공간이다.

왼쪽 그림을 보자. 흑땅이 백땅보다 많아서 균형이 무너졌다. 이 때 살펴할 것이 바로 보이지 않는 공간이다. 빨간색 부분이 아직 확정되지 않는 공간(空間)이다. 미확정된 경계에서 우리는 대칭성을 회복하는 한 수()’를 꿈꾼다. 이는 마음먹은 대로 둘 수 있음을 말한다.

두 번째 그림에서 백이 텅 빈 빨간 공간에 한 수를 두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백땅이 부풀어 올라 흑땅과 비슷해졌다. 대칭성이 회복된 것이다.

이는 그레이트 스피리트와 일반 스피리트의 조화이기도 하다. 바둑 고수가 그레이트 스피리트라면, 초보자는 일반 스피리트이다. 고수가 초보자 돌을 다 잡아먹으면, 고수는 시시하고 초보자는 절망에 빠진다. 마치 미국과 중국, 러시아 같은 강대국이 약소국을 착취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 고수가 하수에게 미리 바둑판의 경계에 핸디캡을 주고 바둑을 두면, 신기하게도 땅의 균형이 맞춰진다. 하수는 고수의 돌을 잡으며 배울 수 있어 즐겁고, 고수는 지혜를 전수하기 때문에 뿌듯하다.

 

마음을 들여다보는 바둑

바둑에는 말이 없다. 그저 빈 공간과 흑돌, 백돌이 있을 뿐이다. 서로 땅을 증식하다 보면, 경계가 생긴다. 이 때 우리는 멈추고 생각한다. 양의 기운으로 나가야 할지, 음의 기운으로 멈춰야 할지. 이것이 출렁이는 마음이다. 더욱 균형 잡힌 대칭의 바둑을 창조하기 위해, 우리의 마음은 숙고한다. 이 지혜의 증식 공간인 경계에서 어디로 갈지 자연의 흐름에 리듬을 타는 것이 알아차림이다. 우주 자연은 언제나 대칭성을 유지하니깐.

그렇게 고수와 하수가 만나 신나게 리듬을 조율한다. 돌을 서로 먹고 먹히고, 땅을 서로 빼앗고 지킨다. 그렇게 섞이면서 한 판을 두면 그 자체가 인생 드라마 1()이 창조되는 것이다. 그렇게 두 판, 세 판 쌓이며 점점 균형 잡힌 바둑이 태어난다. 균형이 무너지면 우리 마음은 아프다. 이기든 지든 본능적으로 느낀다. 이겼을 때는 상대를 너무 압박했음을 돌아보게 하고, 졌을 때는 너무 욕심을 부렸음을 자각한다. 그러면서 점점 상대의 마음을 읽게 되고, 전일적(全一的) 소통이 일어난다. 이것이 소우주 인간이 한 수를 두어서 펼쳐지는 우주의 대칭성 회복이다. 이 때 우리의 마음은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점점 몸으로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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