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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인류학


 

[기말에세이]흐물흐물하게 존재하기

작성자
윤정임
작성일
2025-04-08 19:26
조회
26

흐물흐물하게 존재하기

주제문 : 신성과 영성을 찾아가는 초월성은 호모사피엔스의 인지 유동성에 내재한 본성이다.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유일신 교도로 살았다. 교회에서 성경은 역사책처럼 사실이니 믿으라고 해서 믿었다. 대학교에서 해방신학을 만나면서 성경이 사실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믿음의 기록이라는 것을 아는 순간 교회에 속았다는 생각이 강력하게 올라왔다. 그때부터 교회에서 말해주는 신이 아니라 스스로 신에 대해 생각하면서 인격신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무신론자로 30년을 살아온 지금 다시 종교 인류학을 공부하면서, 20대에 몰랐던 신이 발명되는 과정을 공부했다. 그 당시 내가 믿고 있었던 신은 어떤 신이었는지 알아보고, 건너뛴 맥락들을 찾아 메꾸기 위해 공부한 내용을 정리해 본다. 그리하여 신에 대한 인식의 지도를 다시 그리려 한다. ‘목욕물을 버리다가 아기까지 버린다는 독일속담처럼 그때 중요한 아기를 버린 것 같은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종교적 사고의 발생은 자연사

무신론자가 되는 과정에서 신과 종교는 주류 지배계급의 도구로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했다. 이것은 처음 종교적 사고가 발생되는 과정을 모르고 외부적인 환경만을 주목하는 편향된 시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지 고고학자 스티븐 미슨은 인지 유동성이 호모사피엔스에게 생겨나면서 종교적 사고가 가능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네안데르탈인은 영역 특이적인 지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Hmmmmm 의사소통체계-“전일적(hollistica)이고 다중적이고(multi-modal) 조작적이고(manipulative) 음악적(musical)일 뿐 아니라 미메시스적(mimesis)”(스티븐 미슨, 노래하는 네안데르탈인, 뿌리와 이파리, 247)-통해 전일한 감각을 향유 할 수 있었다. 반면 호모사피엔스는 각각 독립적으로 작동하던 인지영역(자연사 지능, 사회사 지능, 기술사 지능, 언어지능)들이 상호작용하고 연결이 자유롭게 이루어지면서 인지의 영역을 가로지르는 유동성이 생긴 것이다. 그 대신 분절언어를 사용하고 부분적 사고를 하고 타자를 인식하게 되고 다른 것을 생각할 수 있게 되면서 분리가 일어나면서 전일성을 상실했다. 호모사피엔스는 이러한 분리된 감각에서 초월을 통해서 통합하고 연결하려는 운동성이 계속 일어난다. 그러한 운동 중에 하나가 종교이다. ‘초자연적인 존재와 소통하는 행위는 과거와 현재를 통틀어 모든 인류 사회의 보편적인 특징(같은 책, 389)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사고가 미치지 않는 영역에 대해, 우리가 알 수 없는 세계에 대해 알고자 하는 원초적 구조가 생긴 것이다. 그렇다면 초월성을 향하는 것은 호모사피엔스의 내재적 본성이라 할 수 있다.

스피리트에너지의 유동체

초월성은 두 가지 방향으로 일어난다. 하나는 위를 향해 일어나고 다른 하나는 마음의 밑바닥을 향한다. 나카자와 신이치가 말하는 두 가지 신() GOD(유일신)과 스피리트의 방향성이다. 두 가지 방향성 중에 마음의 밑바닥을 향하는 스피리트들의 세계를 알아보자. 호모사피엔스의 뇌에서 생겨난 인지 유동성은 마음 활동의 밑바닥과 물질적인 과정이 만나는 경계에서 기묘한 물질성과 함께 초월이 일어난다고 한다. 이 물질성이 에너지의 유동체인 스피리트가 아닐까?

대칭성이 높다라는 의미는, 에너지의 유동체인 스피리트 세계 내부에서 스피리트나 그레이트 스피리트가 자유로운 방향으로 운동이 가능하고, 자유자재로 변형이 일어나, 고정이 불가능한 상태를 말한다.(나카자와 신이치, 신의 발명, 동아시아, 122)

 

에너지의 유동체를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이것은 수많은 빛으로 이루어진 흐름이 아닐까? 빛 중에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가시광선으로 매우 협소하고 제한적인 부분이다. 빛은 파장의 길이가 짧은 감마선에서부터 X, 자외선, 가시광선, 적외선, 초단파, 라디오파로 갈수록 파장이 길어진다. 이 많은 빛 중에 에너지의 유동체는 어떤 종류일까? 또한 우리가 느낄 수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전자기장과 중력장, 양자역학의 힘이 존재하듯이, 스피리트들은 자유로운 운동성과 변형을 일으키는 힘을 갖고 있다.

이런 에너지의 유동체인 스피리트를 보기 위해서는 특별한 훈련과 영성이 필요하다. 호주의 원주민 에보리진은 마음에서 이루어지는 내재적인 체험과 물질로 이루어진 외적세계의 체험이 하나로 연결된 것으로서 끊임없이 짜여가고 다이내믹하게 창조해가는 과정을 드림타임(같은 책, 73)이라 했다. 이들은 내부와 외부의 에너지장 즉 에너지의 유동체를 동시에 볼 수 있었다. 스피리트를 보기 위해서는 이런 고차원의 동시 시각이 필요하다. 우리는 다양한 종교와 책과 영화와 에니메이션에서 스피리트를 접해서 알고는 있지만 그들과 접촉하기는 어렵다. 특별한 훈련도 할 수 없고 영성도 없는 우리가 볼 수 없고 접촉할 수 없는 존재를 어떻게 경험할 수 있을까? 이들의 활동 행태를 통해 접근해 보자.

자유로운 방향으로 운동이 가능하고, 변형이 일어나, 고정이 불가능한 것은 어떤 상태인가? 이것은 유일신의 척도, 균질화, 추상성처럼 견고하게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에너지의 유동체이기 때문에 경계가 흐물흐물하여 어떤 것으로든 변화가 가능하고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이것은 오로지 변화로만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상태를 대칭성이 높다고 저자는 말한다.

유일신의 발명

위로 향하는 초월성은 유일신을 탄생시키는데 그 시작은 스피리트들과 함께 고차원의 대칭성을 이루던 그레이트 스피리트이다. ‘그것은 두루 존재하며 유동하는 보이지 않는 힘으로서, 절대로 인간의 모습을 하지 않음으로써 품격 있는 특별한 이미지를 풍(같은책, 92). 그레이트 스피리트는 고차원의 대칭성이 깨지고 저차원의 대칭성이 생길 때 지고신으로 변한다. ‘지고신은 인간이 거주하는 장소에서 멀리 떨어져 지극히 높은 곳에 머물며 변화를 일으키기 힘든 순수한 빛으로 그곳에 계속 머문 채 인간 세계의 질서를 유지하려(같은책, 123)하는 비대칭성을 특징으로 한다. 나카자와 신이치는 그레이트 스피리트에서 지고신이 출현하는 과정을 자연사로 설명한다.

아브라함의 신 야훼는 우르를 떠나 정착한 땅 가나안의 지고신 이었을 가능성이 높다(카렌암스트롱, 신의 역사, 재인용, 같은책 179)고 한다. 일반사람들은 풍요의 신 바알도 섬기는, 대칭성이 어느 정도 유지되는 다신교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러다 600~700년 후 모세의 신 야훼는 출애굽의 경험하면서 인류의 사고 안에 처음으로 절대적으로 비대칭적인 유일신으로 출현했다. 모세는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은 이후 다른 다신교 신들에 대한 신앙을 철저히 금지시켰다. 저자는 지고신에서 유일신이 출현하는 과정을 자연사가 아닌 혁명이라고 표현한다. 그 이유는 유일신이 강력한 하나의 척도와 기준을 내세우고 그 척도 안에 들어가지 않는 스피리트들의 다양한 차이는 억압시키면서 출현했기 때문이다.

내가 교회에서 만난 신은 이 유일신이었다. 대칭성이 깨진 세계에서 하나의 고정된 척도에 맞추기 위해 스스로를 깎아 낸 우리는 비슷비슷한 생각과 비슷비슷한 욕망으로 비슷비슷한 삶을 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언어로 구성된 이 세계가 추상화될수록 현실에서는 공허가 만들어지고 이것은 오로지 초월자인 유일신만이 메꿀 수 있다. 그래서 이 세계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척도를 열심히 따라가는 것과 신을 믿는 것만 남는다. 여기에서는 차이가 일어나지 않고 생성이 일어나지 않는다.

우글거리는 세계

모두에서 버렸던 아기는 무엇일까? 세속적인 종교의 형식을 버리면서 그 안에 있던 신성과 영성도 함께 버렸던 것 같다. 1학기 종교 인류학 수업을 통해 영적인 단어들이 우글거리는 세계에 접속했던 과정이 나에게는 신성과 만나는 순례였다. 그중에서도 차이를 보존하면서 타자와 공존하는 기술인 대칭성의 개념이 영적으로 느껴졌다. 고정되지 않고 어떤 것으로도 변이가 가능하게 흐물흐물하게 존재하면서 대칭적인 균형을 유지하고 스피리트들이 우글거리도록 서식지를 제공하는 것이 지금 요청되는 신성이고 영성이다.

친구의 아들 결혼식에 다녀왔다. 첫째 아들 결혼식에 셋째 아들이 축가를 불렀는데 망쳤다. 처음에는 어쩌나 싶었는데 그 마음을 인식하자, ‘좀 망쳐도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것이 완전하고 무결한 것이 좋다는 습관적인 생각들이 들어오지만, 이제는 스피리트적인 사고가 이어서 일어난다. 완벽한 결혼식보다 불완전한 이 결혼식이 더 기억에 남겠다는 생각이. 아무런 특이성 없이 완벽한 결혼식보다 망친 축가가 차이를 만들고 이야기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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